해병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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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나의 수호신 '차유안'과의 만남. 마지막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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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의 진실...
그 날 이후로...
난 심한 가슴앓이를 시작하였다.
그것은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토록 의지하고 기대던 사람이 떠나게되는
전역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유일하게 나를 아껴주고 편하게 해주는
그런 사람이 떠나가는 거니까..
그건 당연히 느낄수밖에 없는 감정인것이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뭔가 울컥이는 슬픔이 아무때나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일을 하다가도 그의 생각이 나면 울컥이며 눈물이 나오려 했고..
뒷산에서 담배를 피다가도 응어리진 무언가가 올라오고는 했다.
왜 이렇게까지 가슴이 저리는건지...
왜 이렇게까지 가슴이 떨리는건지....
그저.. 단순하게 사람을 떠나 보낸다기보단...
내 몸이 흩어지는것 같은 기분이었다.
병장 차유안의 얼굴을 보며 ...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을때 느껴졌던...그 감정..
두근두근.. 하던 그 느낌...
난 그것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속으론 안된다고...
그러면 안된다고 세차게 저항하고 부정을 해왔다...
하지만 아니라고 외칠수록 내 심장은 더 벌떡였고
애써 억누르고 있었던 그것은 불같이 치솟아 올라
지난 일들의 기억들을 꼼짝할수 없는 증거로 내밀기 시작했다.. .
잠든 그의 얼굴을 보며 설레었고
샤워실에서 만난 모습에도 설레었으며
그의 뒷모습에도 설레었다.
근무지에서 자신의 얘길 할때도 그랬고 섹시 댄스를 출때도 그랬다.
내 마음은 이미 차유안에게 완전히 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이런 내 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할까봐 겁이났다.
하지만..
괜시리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괜히 그가 미워지기도 했고 괜히 그에게 관심받고도 싶었다.
내 마음은 이렇게 답답하고 힘이드는데...
내무실에 있던 난.. 차유안을 향해 혀를 삐쭉 내밀어보였다.
감히 내무실에서 겁도 없이 하는 내 행동에 놀란 차유안이 주변을 살펴본다.
난 또다시 혀를 삐쭉삐쭉 내밀었다.
황당한 표정의 그가 손가락으로 뒷산을 가리키더니 먼저 내무실을 나간다.
"야 진우.. 미쳤어??
너 다른사람이 보면 어쩔려구 그래... 목숨 셀프기부 하는거야?? ..."
"아닙니다.. 그냥. 미워서 그랬습니다.."
"미워?? ... "
"네. 그렇지 말입니다.. 떠나시는데 밉지 말입니다. "
"하....... "
병장 차유안이 대책없다는듯 나를 바라본다.
이번엔 나도 지지않고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또다시 솟구치는 울컥임에..
내 입꼬리가 흔들렸고 눈시울이 빨개진다.
"진... 진우야.. 너 진짜 왜 이래... "
내 눈이 젖어드는것을 본 차유안이 그제서야 걱정스럽다는듯 내 팔을잡는다.
"아닙니다..
그냥 제가 마음이 약해서 그런거지 말입니다..헤헷.... ㅜ
뭐 아무렇지도 않지 말입니다..."
난 고개를 떨군채 땅을 내려다 보았다.
....
"진우야..
"네."
"헤어질땐 잠시 슬프겠지만 며칠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거야...
누구나 다 그렇게 헤어지는 거잖아.."
"네... 알지 말입니다.. 알고있는데도 이러지 말입니다..."
"니가 이러면..
나도 힘들어져... 이러지말고 힘내자 힘. 응? 진우야.. "
........
힘내야 된다는걸 누가모르나...
그게.. 너무 힘든거니까 그런거지...
내 몸의 떨림이 내 팔을 꽉 움켜잡은 그에게도 전해져갔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 얼굴에선 결국 눈물이 한방울 떨어진다.
그걸 차유안도 보았는지 그의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진우야... 그러지 말고.....우리.. 우리......."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던 그의 목소리가 되려 떨려오더니 흐려지듯 사라진다..
항상 강했던 차유안답지않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그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채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려는듯 계속 헛기침을 해댄다.
....
"진우.. 너 흠흠.. 암튼, 흠...
내무실에서 허튼짓 하지마.. 알았어?? 정말 큰일나... 찍힌다구... "
"....네....."
"어차피 다 헤어지게 되 있는거야.
그리고 또 만날수도 있는거구.. 그러니까 너무 거기에 신경 쓰지마...알았지?.."
"네.. 알고있지 말입니다....
그냥 투정 한번 부려본거지 말입니다.. 이젠.. 정말 괜찮을꺼지 말입니다..."
난 더 투정을 부려보고도 싶었지만..
그의 얼굴을 보며 조용히 대답을 했다.
차유안은 뭔가 더 말을 하려는듯 하다가
눈가에 가느다란 경련을 일으키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어딘가로 향한다.
그런 그의 뒷모습에서 쓸쓸함이 묻어났다.
유안님도 슬픈건가... 나랑 헤어지는게...
그날밤도 슬픈 표정을 짓더니...
그래도..
나란 존재가 ..
유안님에게 그렇게까지 하찮은 존재는 아니었나보다..
나때문에 슬퍼하기도 하니..
내가 좋아하는 유안님의 마음속에
내 비중도 어느정도 있는것 같다는
스스로의 위안을 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
근데...
왜.....
왜 슬퍼하는거지.... 왜..
전역이라면 정말 기쁜일인데...
나랑 그렇게도 정이 든건가..
슬픈건.. 소중한 사람이 떠날때나 슬픈건데...
.....
소중한 사..람?......
순간 내 발걸음이 멈추어진다.
.....
나도.. 차유안님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수도 있다는건가...
난 조용히 기억을 떠 올려본다...
내 목덜미에 연고를 발라주던 그날...
차유안은 자신의 전역이 별루 기쁘지는 않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그 이유를 물었을때...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대신...
거울속에서 마주쳤던 그 눈빛과 웬지모를 어색함만이 있었을 뿐...
.......
나의 머릿속에 천천히...
나를 대하던 그의 모습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샤워실에서 이병인 내게 길을 비켜주던 모습과
근무지에서의 따뜻함과 엉뚱했던 모습...
당연히 열외임에도 훈련에 참가해 나와 함께하려던 모습과..
내 머리에 혹이 났을때 열받아 하던 모습..
나를 달래기 위해 애쓰던 모습과... 슬픈 표정...
일요일 근무.. 치즈케익. 쿠폰. 삐뚤빼뚤한 메모...
어느순간.. 내 머릿속에 그 모든기억들이 폭풍처럼 몰아치더니
한순간 정적이 흐르며 단 한 장면만이 떠오른다.
그날 밤...
자신도 나의 얼굴을 기억하고 싶다며 날 어루만져보던 차유안..
알수없는 .. 뭔가가... 내 속에서 ... 끓어오르는 느낌이다.
어렴풋이 뭔가가 보이는듯 했고...
희뿌연 안개속에서 무언가가 보일듯 말듯 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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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홀로 남겨진다는것..
"야!! 홍진우!! 너 정신 안차릴래???!!!!! "
"필씅! 이병! 홍진우!! 정신차리겠습니다!! "
"너 이새끼 요즘 정신나간 새끼같어!
"넵넵!! 정신 차리겠습니다!!!"
내무실 선임의 고함에 난 두 눈을 번쩍 뜨고 화기 훈련에 집중했다.
병장 차유안은 거듭된 실수로 욕을 먹는 내 모습에 고개를 떨궜고
난 도무지 제정신이 아닌것만 같았다.
그도 날 좋아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든 신경이 그에게로 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마음을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대놓고 물어볼수도 없는것이고..
그리고 만약!!... 만약에라도... 내 생각이 틀린거라면?...
난 태어나서 정말 최악의 실수를 하게 되는것이다.
그리고.. 최우현이 그렇게 당한것처럼....
그리고 유안님을 희롱했던 그 선임처럼..
난 커밍아웃이 되어 유안님에게 인간같지도 않은 취급을 받을수도 있는것이다.
안그래도 아까운 시간들은 내가 홀로 끙끙 앓는순간에도 흘러만갔고
드디어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서던 날..
난 식당에서 정말 듣고싶지 않은 말을 들었다.
보병중대 최고참선임이 같은 동기인 병장 차유안에게 신이나서 떠들고 있던 내용을..
밥 6끼만 먹으면 제대를한다며
이틀후엔 서울에서 술을 바가지로 먹겠다는...
...
웃고 떠드는 차유안님과 그의 동기 모습을 보니..
배신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가 떠나고나면...
난... 뭐가 되는거지...
내 마음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있는데..
내 전역은 아직 1년 반이나 남았는데...
난 그를 떠나보내고서 혼자 1년반을 보내야 한다.....
1년 반이 넘는 시간을 나 혼자 버텨야 된다.. 오로지 나 혼자서..
그게 도대체 언제지.. 내년?...아니잖아.. 내후년 봄??
세상에.... ㅜㅜ
울고싶었다.
좋아하는 감정을 혼자서만 품고 있는것만 해도 미치겠는데..
그와중에 쫄병생활까지?? .... 뭐지 이게.... 뭐냐구 이게 ... ㅜ ..
한달정도의 꽃같은 시간을 함께 보낸 댓가는...
나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가혹한 정도가 아니라 진정한 지옥이 다시 내 앞에 펼쳐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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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 차유안 행님~ 대대장 전역보고 드리기 1시간전 입니다."
"어.. 벌써?,, 그렇구나.. 알았다. 좀있다 나갈께..."
병장 차유안의 전역 하루전..
내무실에서 짐 정리를 하고 있던 그는 당직사관의 말에 시계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자신의 관물함에서 물건들을 정리한다.
얼마전.. 휴가에서 돌아와 짐을 풀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 그의 흔적조차... 하나도 남김없이 떠나려고 하는것이다.
난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보고있으면 자꾸 눈물이 나올것만 같아 뒤돌아 앉아 일기장과 볼펜을 꺼내들었지만
하얀 일기장이 이내 뿌옇게 흐려진다.
oooo년 oo월 oo일...
.....
..
.
..ㅜ..
난 두 주먹을 꼭 쥐며 슬픔을 참아낸다.
결국..
이렇게 헤어질것을 알았다면...
처음부터 만나지 않는것이 더 좋았을것을..
홀로 가슴에 담고 혼자서 버텨내야할 앞으로의 시간들..
그의 마음을 확인도 못한채...
그렇다고 내 마음을 전할 용기도 없고....
아...
정말....
사회에서의 이별이라면 내 멋대로 뭐라도 할수있지..
이건 뭐.. 쫄병이라 울지도 못하고.. 땡깡도 못부리고...
앞으로의 일에 암담함을 느끼는데 뒤에서 병장 차유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우야.. 너 이거 가져라..."
일부러 시선을 피해가며 몸을 돌리자
차유안이 내게 봉투에 밀봉된 무언가를 건네준다.
"이..이게 뭔지 말입니다.."
내 목소리가 갈라지듯 울려나왔다.
"..... 아직 열지말구.. 나 가고나면 열어봐... "
"뭐..뭔데 말입니다. "
"그냥.. 내가 아끼던거야...
혹시나 내가 잊어먹을까봐 미리주는거니까.. 열지말구 있어.
봉투 뜯었는지... 혹시라도 생각나면 검사할거다.. "
"..... 네.."
병장 차유안이 대대로 나가고 난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뒷산으로 올랐다.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이고 길게 빨아들였다가 길게 내쉬며 혼잣말을 해본다.
"안그래도 슬픈데 자기 가고나면?... 꼭 그런 단어를 써야하나... 정말.."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담배를 보니
날보구 담배좀 그만 피우라던 그의 음성이 생각났다.
"참나.. 나보구 기생년처럼 생겼다니..
자긴 뭐 대단한줄 아나보네 ... 칫.."
요리조리 나무사이를 바쁘게 날아다니는 박새를 보며 또다시 혼잣말을 중얼거려본다.
....
".... 뭐.. 대단 하.. 긴 하지....
그러게 왜 대단해서.. 날 힘들게 만드냐구...."
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담배가 거의 타들어갔고
난 마지막 한모금을 길게 빨며 한숨짓듯
몰아쉬며 허무한 말을 이어갔다.
"... 그래도..... 잘 가시지 말입니다....... 후.. ..."
조그만 박새는 여전히 이나무 저나무를 바쁘게 옮겨다니고
있었고 난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란한 마음으로 내무실 청소를 하고있는데
옆소대 선임이 들어오더니 대뜸 날 보고 말한다.
"홍진우. 너 근무준비 해야겠다.
위에 올라간 박상덕 이병 가족이 면회 와서 걔 면회 내보내야하니까 얼른 준비해.. "
....
"넵 이병 홍진우! 근무 준비하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근무에 속이 부글부글 타오른다.
안그래도 오늘 마지막 날인데..
가뜩이나 같이있어도 모자라는 시간에..
이글이글.. 부글부글.. ㅜㅜ
무슨 이병이 벌써부터 면회를...
나도 확 아무한테나 면회좀 오라구 할까.... 에휴..
서둘러 근무준비를 끝마치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채 산을 오르는데 아랫쪽에서 누군가가 날 부른다.
"진우야!~ 진우야!!! "
뒤를 돌아보니 누군가가 허겁지겁 뛰어오고 있었다.
??
찌푸렸던 인상을 펴고 보니 병장 차유안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다 내 앞에 다와서야 멈추고 걸어온다.
"어휴,, 숨차.. 너 지금 어디가는거야.... 헉헉..."
아... 정말 그순간 얼마나 반갑던지..
앓고있던 아픔이 그 순간만큼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엇!!.. 차유안해병님.. 어떻게.."
"어떻게긴 뭐가 어떻게야..
대대장 보고 마치고 오는데 니가 여기 혼자 올라가는게 보여서 온거지..ㅋ"
"앞선 근무자 가족이 면회와서 대신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음... 그래 잘됬다.. 너 잠시 여기서 기다려. "
내게 잠시 기다리라며 내려갔던 차유안은
근무자 복장으로 다시 헐떡이며 되올라왔다.
"헉헉... 어휴.. 말년이라 그런지.. 되게 숨차네.. 헉헉.. "
"근무 올라가시는지 말입니다??. "
"응..나도 마지막으로 근무지 한번 보구 싶어서 ㅎㅎㅎ"
"아.. 정말 잘됬습니다!!.... 정말 잘됬네요 헤헤..."
난 진심으로 기뻐 웃음을 지어보였다.
마지막으로 근무지를 보고싶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냥 다 포기하고 있던.. 그와의 시간이..
그와 단둘이 할수있는 시간이 생긴것에 너무 기뻤던것이다.
나와 같이 올라간 병장 차유안을 본 앞선 근무자가 놀라 잽싸게 달려나온다..
"필승! . 차행님 어떻게 오신건지 말입니다??"
앞선 근무자의 물음에 한껏 기지개를 펴던 차유안이 웃으며 말한다.
"내일 가기전에 여기 한번 보고 가려구..
지금 아니면 언제 한번 볼수있겠냐..."
"아,, 그러시지 말입니다.! ㅎㅎㅎ"
"넌 내려가라.. 내가 볼테니까... "
"정말인지 말입니다. ??"
"응.."
앞선 근무자가 차유안에게 재차 확인을 하더니
얼른 자신의 철모를 챙겨쓰며 웃는다.
"안그래도 상활실에 볼일이 있었는데..
차행님. 감사합니다 ! ㅎㅎㅎㅎㅎ "
입이 귀에걸린 그 선임 근무자는 자신의 화기를 챙겨
신이나서 박상덕이랑 내려간다.
내가 근무지 도착을 상황실에 알리고
초소 밖으로 나가자 차유안이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그의 마지막 근무를 함께할수 있어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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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약속.
"이제 떠나시는지 말입니다."
"그러게 .. 벌써 이렇게나 되버렸네.. 거참.."
"더 있다 가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ㅎㅎ... "
"......... "
"어떡하겠니.. 이제 ... 있으려고해도 나가라고하니.... "
"그냥.. 저희 중대 하사관으로 말뚝 박으시지 말입니다. ㅎㅎ"
"풉.. 하하하... 홍진우 이제 좀 살만한가 보구나.. 농담도 좀 할줄알구..."
"..... 농 .. 담 아닙니다..."
"......"
전역전날 무슨 근무냐고 말리던 당직하사에게 차유안은 떠나기전..
이곳을 보고싶다며 우겨 올라온 것이다.
난 애써 담담한척 그런 차유안님을 대했다.
이제 떠나야 하는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그래도 툭툭 터져나오는 투정은 어쩔수가 없었다..
"칫.. 좋으시겠습니다.. 칫...."
"진우야.. 너무 걱정하지마.. 어차피 시간은 지나는 거니까....
너도 언젠가 지나고보면 느낄때가 있을거야.
그때는 니가 나처럼 이런얘기를 후임들에게 하게될거구..."
"...칫.... 어느 세월에 말입니다.... 흥..칫.. "
"시간 금방간다~~ㅋㅋ "
"지나고나면 빠른거지..
그게 어디 제맘대로 가는지 말입니다...ㅎㅎ "
"이녀석이 정말.. ㅋㅋ"
병장 차유안이 꼬박꼬박 내 말대꾸에 웃다가 뭔가 생각났다는듯 벌떡 일어선다.
"진우야.. 우리 사진이나 한장 찍자.."
"네?"
"잠시만.. 이게.. 어디갔더라.."
병장 차유안이 전투복 여기저길 뒤지더니 핸드폰을 하나 꺼내든다.
"어.. 핸드폰.."
"비밀이다.. 간부한테 공폰하나 빌려왔어.. ."
"아.. 걸리면 어쩌시려고.."
"둘다 죽어야지 ㅋ"
"ㄷㄷㄷㄷ "
"자.. 이쪽으로 와봐... "
난 병장 차유안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자... 찍을테니.. 웃어."
"이병은 웃으면 안되지 말입니다."
".... 그냥 쫌 편하게 찍자..자~ 스마일~~ "
"스 마 일~~~ㅎㅎㅎㅎ "
찰칵.... 찰칵...
병장 차유안과 난 어깨동무를 하고도 찍었고 서로 웃으면서도 사진을 찍었다.
서로 브이도 하고 얼굴도 마주대고 신이나게 찍었다.
"자~ 보자.. 어디 어떻게 나왔는지 좀 볼까.. ㅎㅎ
"저도저도.. 저도 보여주시지 말입니다. "
난 병장 차유안의 곁으로 바짝 다가가며 그의 손에 쥐어진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병장 차유안과 난 핸드폰에 찍힌 사진들을 보며 또다시 웃어본다.
"이거 핸드폰이 구식이라 그런지 화질이 영 별루네 ㅎㅎ"
"저는 그럭저럭 나왔는데 유안병장님은 실물이 훨 낫지 말입니다..."
"아냐.. 잘 봐봐..
이게 뭐야... 어떻게 너를 이딴식으로 나오게 할수있지 ㅎㅎㅎㅎ"
"괜찮은데요 뭘..
이거.. 저도 좀 주시지 말입니다.. 저도 간직하고 싶지 말입니다. ㅎㅎ"
"이거 들키면 너 큰일나. ㅋ"
"제가 바본지 말입니다.. 메일로 보내주시지 말입니다.. "
"응.. 진우 너 메일 주소 알려주면 글루 보내줄께... "
"네네. 제 메일 주소는 995265ㅁㄴㄹ쟈ㅜㄻㅈ @ ㄹㄹㄹ.com 이지 말입니다. "
"뭐.. 뭐라구..?"
"995265ㅁㄴㄹ쟈ㅜㄻㅈ @ ㄹㄹㄹ.com 이지 말입니다. "
" ;;; 뭐.. 뭐라는거냐... 좀있다 종이에 써서 줘.."
"이것도 못외우시는지 말입니다? ...바본지 말입니다?? "
"... 요것봐라.. 요거.. ㅋㅋ "
병장 차유안이 내 어깨에 팔을 걸치고 이마를 내 머리에 부벼댄다.
"아야!! 아프지 말입니다. ㅜ"
사진을 찍고나서 그와 난 나란히 앉아
흘러가는 하얀 구름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 하얀 조각구름에 가을이 깃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 그런지 각자 생각에 잠기게 된다..
"진우야" "차유안 해병님.."
"어.. 같이 말했네.. ㅋ 진우 너먼저 얘기해.... "
"아닙니다.. 먼저 말씀하시지 말입니다.ㅎㅎㅎ."
"괜찮아... 먼저 얘기해... 난 별거 아니니까..."
"....... "
"저희.. 나중에.. 아주 나중에라도 다시 만날수 있을지 말입니다."
......
내 물음에 병장 차유안이 먼 하늘을 보며 조용히 말한다....
"당연히 만날수 있지... 당연히... "
"...... "
"그래도 좀 아쉽긴 해.. 니가 조금만 더 빨리왔으면 .."
"네?...."
"진우 니가 조금만 더 빨리왔더라도...
이렇게 빨리 헤어지지는 않았을거잖아.... "
"힝.. 그런 논리라면 유안 병장님이 쫌 늦게 오시지...... "
"헉.. 이런... ㅋㅋㅋ"
"아!! 그러면 안되네요.. 생각해보니..
늦게오셨으면 최우현 상병한테 둘다 먹혔을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ㅎㅎㅎ"
"그랬으면 아마 더 친해졌겠지...
동병상련으로 ㅎㅎ 둘이서 같이 부둥켜 안고 울수도 있었을테구..
아니다... 홍진우 니가 그렇게 당했다면...
아마도 내가 그새끼 패죽이고 잡혀갔을지도.. ㅎㅎ"
"....... 최우현을 패 죽인다구요??... "
"당연하거 아니니?? "
.......
"왜요??"
"왜긴 왜야.. 당연히.. 우리 진우를 괴롭혔으니까..... "
병장 차유안이 허공에 시선을 고정한채 싱긋 웃으며 얘기한다.
난 그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이제껏 내가 느끼던 감정이 허상은 아니었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나 혼자 숨겨왔던 그 감정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단 생각에 확신이 든것이다.
그걸 지금에 와서야...
너무나 허탈했고... 쓴웃음이 지어진다.
"....... 역시.. 저 때문이셨군요....."
"......응??.... "
"다......저 때문 이셨어요......"
".......... "
"하..... "
내가 고개를 숙이며 크게 한숨을 내쉬자
병장 차유안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왜...왜 그래,,,, "
"저... 유안 병장님께... 궁금한게 있습니다.. "
"뭔데??? ....."
"꼭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꼭요..."
"응... "
차유안이 긴장한듯 자세를 고쳐앉는다..
"저희 처음 만났을때 기억하세요?? 휴가에서 돌아오신 날요.."
"응.."
그때.. 제가 느낀건.. 유안병장님께서 뭔가..
뭔지는 모르지만 저를 보자마자 좀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는 거였어요..
"음.. 내가?,,,"
"네.."
"근데... 그게 왜?? "
.......
"그게.. 최우현을 팬거랑 연관이 있으니까요.... "
"... 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
"최우현을 왜 그렇게까지 패셨나요?? "
"응? ..."
"최우현을 왜 그렇게까지 패셨냐구요..."
"그건.. 너도 알잖아... 정말 안좋은 행동을 했으니까...."
"제가 아닌...다른 사람이 당했더라도...
그렇게까지 무리하게 하셨을건지를 묻는겁니다. "
....
말년 병장이.. 그것도 별것도 아닌 제가 맞은것에 대해서...
왜 영창갈 각오까지 하셨냐는걸 묻는겁니다."
".... 그... 그건.. 그 자식이.... 너에게....너를..."
......
"그날 처음 본 저를 위해 그렇게까지 위험한 행동을 하셨다구요??? "
".... "
"전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처음 본 이병을 위해 그런식의 무모한 행동을 한다는것이요.."
....
"그리고... 그날.... "
그날 .. 저한테 연고를 발라주시면서....
전역하는것이 기쁘지 않다고 하셨지 말입니다."
"어?.... 아.. 아닌거 같은데...."
"아뇨.. 분명히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기쁘지 않냐구 물어봤을때..
아무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제 뒤에서...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바라보다가 저랑 눈 마주쳤던거...
기억 하시죠?... 어색하게.."
"......... "
"그럼 다시 한번 물어볼께요..
지금도 전역하시는게 기쁘지 않으신가요?... "
"............. ;;; "
"내일 전역이신데 기쁘지 않으시냐구요...
이때까지 그렇게 기다리셨던 꿈이셨을텐데요...."
내가 정색을 하고 묻자 병장 차유안이 내 눈치를 살핀다.
"자식ㅎㅎ 왜 이렇게 심각해... "
"말 돌리지 마시고 대답해 주시지 말입니다.."
"..... "
병장 차유안은 또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는 거짓말을 아예 할줄 모르거나 거짓말을 할때면 몸이 얼어버리는가 보다.
"또 .. 대답을 못하시네요.."
"................ "
난 병장 차유안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 날 처음 봤을때..
내무실에서 처음 만났을때처럼 당황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제가 그 답을 알려 드릴까요??"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제가 그 답을 대신 해도 되냐고 묻고있습니다."
"...... "
가만히 앉아있던 내가 몸을 움직이자 병장 차유안이 흠칫 놀란다..
"저는... 처음.. 유안 병장님께서 휴가에서 돌아오셨을때...
왜.. 저를 보고 그렇게까지 당황한 표정을 짓는지 몰랐습니다."
"........ "
왜.. 저를 처음 보고 그런 표정을 지으셨는지..
왜.. 최우현을 그렇게까지 패셨는지....
왜.. 전역하는것이 기쁘지 않다고 하셨는지...."
"......"
"저는 항상 궁금했습니다."
내 목소리가 점점 떨려 나오기 시작한다.
"근데.... 그걸... 이제야......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진.. 진우야..."
"차유안 해병님.."
"어?... 어.... "
난 그를 바라보았다.
"그냥 아무말 없이 가시면 저는 어떡하는지 말입니다...."
"그게 무슨.. "
"..... "
"가시기전에... 저한테 무슨 할말 있지 않으셨는가 말입니다..... "
"무... 무슨말을.. .. "
"그동안.. 저한테 하지못한 말씀이 있지 않냐고... .
제가 물어보고 있지 말입니다!! 제가 !!! "
병장 차유안이 자신에게 갑자기 언성을 높이는 내 모습을 보더니 급격하게 흔들린다.
"..,, 홍진우,,, 너 왜이래.. "
"하............. 정말... 말씀 안하시는군요.. 좋습니다.
전역 하는게.. 기쁘시지 않은이유....
제가 그 답을 드리겠습니다.
......
유안병장님께서 전역이 기쁘지 않은건....
저와 헤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
",,,,, ,"
"최우현을 그렇게까지 팬건!!...
영창.. 아니.... 구속까지 될수 있을만큼 팬건!!!...
제가 더러운짓을 당했기 때문이구요.... "
"그리고.... 저 처음 만난날.. 그런 표정을 지으셨던건.....
......
전역할때가 다 되어서야 제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제말이 틀린건가요??.. 제말이 틀린지 말입니다!!!.... "
"...아... 진... 진우야...그.. 그만하자.. .... .. "
"....... "
차유안이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인다...
.........
"제가 생각하고 있는게 맞다면 말씀해주세요..
제 가슴을 저미게 만드는 그 감정이 맞다면 제발 말씀좀 해주세요.......
유안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감정이랑 다른건가요???? "
"....... 아... 진우야,,, "
차유안의 몸이... 그 강하고.. 완벽했던 그의 몸이.. 떨려온다..
"저는 .. 그 답을 찾느라 엄청 헤맸습니다.ㅜ
요근래 제가 실수투성이로 욕 엄청 먹은거 아시지 말입니다..
혼자서 그 답을 찾다가 돌아버릴 지경이라 그랬습니다."
........
"왜 이제껏 혼자만 ... 왜 혼자서만 그러고 계셨는지 ...
저한테도 말씀해 주시지....
저희 만날수 있는 시간도 별로 없었는데..
그 소중한 시간을.. "
난 슬픔을 참느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일 혼자 가버렸을때..
뒤에 남아서 그 사실을 알게됬을 저는 어쩌실려구 그러신건지....
아무말 없이 그렇게 가 버리면.... 전 ..
정말 저는 어쩌라구 그러신.건.지.. "
내 몸이 부들부들 떨려오며 감정이 격해져온다.
"진.. 진우야...... "
병장 차유안이 자신도 괴로운듯 고개를 떨군다...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예전 최우현한테 두들겨 맞을때라도 좋으니 ...
그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ㅜ"
"진우야 진정해.. 자자.... "
병장 차유안이 내 여린 몸을 감싸듯 안아준다..
"저는 아직 1년반이나 남았습니다....
1년 반이나요.... 전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요.... 어떡하면... "
저 진짜 그냥 탈영이라도 하구 싶습니다 ㅜ.."
.......
"정말... 정말... 너무나 슬픕니다..... ㅠㅠㅠㅠ .. "
"........... "
참을수 없는 슬픔과 외로움에 난 결국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나를 안고있는 그의 목소리도 심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미안해.... 정말 ... 아... 내가 ..... "
.... ㅜ
병장 차유안이 완연히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정말... 정말... 말할수가 없었어.... ..."
...
"너에게..
최우현같은 쓰레기 취급을 받게될까봐 너무 무서웠어. .....
정말 상상 하기도 끔찍했고...
정말이지.. 너무나 무서웠어...너무나..아....."
.....
"......그래도 말씀해주시지..ㅜ...
제가 그렇게나 힘들어 했는데..ㅜㅜ "
"진우야.. 난.. 정말 ....
날 순수하게 믿는 너에게..
그런얘길 한다는건.. 최우현보다 더 사악한거라고 생각했어..
도저히 .. 도저히 내가 할수없는 말이었다구....정말 ..."
...... ㅜ
그가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며 독백을 하듯 말한다.
"너를 두고 가면서도... 너에게 말도 못하고...
정말.. 나 혼자 숨기느라 나도 미칠것만 같았다구....
차라리 내가 남겨지면 좋았을것을...... 아..... "
......
병장 차유안이 어쩔수 없는 현실 앞에 자책을 한다.
말할수 없는 현실..
숨겨야만 했던 감정..
그도 나와 같은 고통을 겪어왔던 것이다.
그도 나와 같이 서로 다른 유리상자에 갇혀있었던 것이다.
순간.. 병장 차유안이 고개를 들더니 축 처져있던 내 어깨를 움켜잡는다.
"진우야.... 우리 이러지말구.. 우리 약속 하나 하자... 지금... "
"........."
"자자.. 진우야.. 내 얼굴 봐봐... 응?... 진우야..."
"....."
내가 고개를 들자 그가 예전의 강인한 얼굴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 약속 하나만 하자.. 너와 나만의 약속.. "
"........... "
"다시는 깨지지않을 그런 약속..."
"어... 어떤 약속을..요.......ㅜ... "
"우리가 늦게 만나게 된건 .. 정말 어쩔수 없는 일이었어..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봐..
늦게라도 만날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구..."
.......
"비록.. 여기에서의 만남은 이제 끝나겠지만.....
우리 다시 만나게 됬을땐...
그땐... 끝이 없는걸로 하는거야..
우리 둘.. 정말 끝이 없는 만남으로 함께하는거라구... "
"........ "
"약속할께... 정말이야.. 내 모든걸 걸어서라도 약속할께...
우리 서로 말못하고 숨기는 그런일은 다시는 없게되는거야... 다시는... "
"..... "
병장 차유안이 처음보는 간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그게... 그게 .. 정말인지 말입니다...."
"응.. 정말이야.. 내가 약속할께... "
"꼭 ,,, 약속해.. 주시지 말입니다... ..꼭.... "
"응.. 꼭 악속할께.. 꼭!!
지금은 어쩔수 없이 헤어지는거지만.... 다시 만나게 되는날.. 아니..
이제부터 시작하는거야.. 진우 너랑 내가.... "
난 그의 얼굴을 천천히 올려다 보았다..
그의 입술에서 따뜻한 숨결이 느껴진다.
자신을 믿으라는 미소가 담긴채..
그날밤...
몽환적인 상상을 하던 그날 밤이 생각난다.
가슴속에 숨겨져있던 두근거림이 시작되던 그날이..
부드러운 손길이 내 얼굴에 느껴지며
고요하게 내쉬는 숨소리가 다가온다.
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들었을때 그의 발그스름 하던 입술..
그날밤 그렇게까지 매혹적이던 입술이..
지금... 내 입술에 포개지는 순간...
난 이제부터..
우리의 만남이 시작됨을 알수 있었다.
그의 따스함을 느끼며 그의 말을 되뇌어 본다.
늦게라도 만났으니.. 다행이다..
....
그래.. 늦게라도 만난거..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아프고 힘들어도.... 이렇게 헤어질수있는 기회라도 생긴거니까...
늦게라도 만나지 못했으면...
우리가 함께할 시간을 영원히 없었을 테니까..
영원히...
.................................................................................................................
8. 비어있던 관물함과 일기장.
야이 새끼들아.. 신나게 애들 팰땐 언제고 ...
너희같은 것들이 뭔 해병이냐.. 요런 개 잡새끼들아!!!
우리 화기중대장 '우재혁' 은 이제 25살의 중위였다.
그는 얼마전 중대 폭행 사건때문에 대대로 갔다가
참모장에게 철모로 얻어맞아 쌍코피가 터져 들어왔고
화가 머리 지옥 끝까지 치솟은채 중대원들을 미친듯이 패기 시작했다.
근무지에서 멀리 보이는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뭔가 좀 웃겨보였다.
대대장이 참모를 발로 까고 참모는 중대장을 철모로 까고 중대장은 줄빠따를 날리고.. ㅋㅋ
역쉬 전통있는 문화이다.ㅋ
근무지에 있던 나와 은호는 열외였다..
나는 곧 전역이었고 은호는 이병이었으니까...
난 은호에게 군 생활 꿀팁을 전수 중이었고 은호는 열심히 꿀을 빨고 있는 중이다.
뭐.. 물론 얼마안가서 두들겨 맞겠지만 말이다 ㅋ
그러고보니.. 나도 좀 변했나보다..
애들 맞는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게 됬으니 말이다.
저 멀리 아래..
우리를 교대할 다음 근무자가 산 초입에 들어서는 것이 보인다.
자...
이제는 나도 작별이다..
추억이 가득했던 근무지에서 내려오기전.. 바다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여전히 그대로인 바다..
폭풍이 몰아치든 비가오든 바람이 불든...
내가 이병이든 병장이든 바다는 언제나 저기 저 자리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저 바다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보고...
떠나고... 또다시 그걸 반복하게 되겠지..
그 마지막 근무에서 내려와..
아무도 없는 텅빈 내무실에서 각을 잡고 앉아본다.
1년 반전.. 내가 이곳에 이렇게 앉아있었는데...
이제 내일이면 나도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 이제서야 이 모든게 꿈처럼 느껴진다.
이곳에서 겪은 수많은 일들...
문득.. 지금 내가 앉은 이 자리에서 신병대기중일때..
태연 선임이 주었던 종이가 생각난다.
일기장에서 그 종이를 꺼내 펼쳐보자
몰래몰래 달달 외우던 그 종이는 빛이 바래져 있었고 조각조각 찢겨져 나간곳도 있었다..
그 안에 적혀있는 중대 인원들의 이름과 기수와 군가들...
이제는 이 종이위에 적혀있던 모든 선임들이 제대를 했고,
그 모든것을 지켜보던 내 차례가 왔다.
살며시 눈을 감아본다.
이병때 폭풍이 치던 그 잠못이루던 밤이 떠오른다.
그토록 두려워하며 뜬눈으로 지새던 그날 밤이..
천둥소리도 들리지 않고 하얗게 내리치던 번개와 창문을 뒤흔들던 빗방울 소리..
그 속에서 절망에 빠진채 근무를 기다리던 내 모습...
그날의 밤을 회상하다 다시 눈을 떠보니...
그 겁에 질린 이병은 온데간데 없고 전역할 병장만이 남아있다.
그 모든것이 정말 꿈처럼 지나갔고...
그 모든것이 눈을 한번 감았다가 떠보는 사이에 일어난것이다.
...
이제 슬슬 짐 정리를 해야하겠지....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매일같이 구석구석 걸래질을 하던 90미리 내무실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구닥다리같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포스터와 네모 반듯하게들 걸려있는 전투복..
단 한곳도 내 손을 거치지 않은곳이 없는 이곳과 이제 작별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구석구석 까지 기억에 남기려 세세하게 쳐다보는데...
시선이 멈추는 곳이 있었다.
항상 비어있던 관물함....
내가 신병 대기할때 항상 비워져 있던 그 관물함...
그리고 기억나는 이름..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차유안..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아련했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문득 그가 주고 간것이 떠올랐다.
그가 전역하기 전날..내게 주었던...
자신의 일기장...
그곳엔 그의 이병생활부터 병장때까지의 하루하루가
어설픈 글씨체로 쓰여져 있었고,
그의 전역 하루전 날짜로 끝맺음이 되어있었다.
oooo년 oo월 oo일..
진우야..
이거..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일기장인데..
읽어보면 도움이 될거야.
내가 겪은일들은 너도 겪게 될거니까...
그리고..나중에...
꼭.. 나에게 다시 가져다 줬으면 해.
귀찮더라도.. 꼭..
알았지?.... 기다릴께..
차유안.
ps: 택배로 보내면 혼난다..
ㅜㅜ
그가 남기고간 그 일기장은 매일같이 나와 함께했다.
차유안의 하루하루를 읽다보면..
어느새 그와 함께 있는것같은 생각이 들었고
언제나 내 곁에 그가 있는것처럼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밀봉된 봉투속에 자신을 주고 갔던것이다.
그리고 이제..
병장 차유안...
그를 만날수 있다.
자유롭게..
난 이제 더이상 이병이 아니니까..
예전에 그가 전역할때 울던 내가 아니니까..
아..
난 아무도 없는 빈 내무실에서 그가있던 관물함을 향해 나즈막하게 보고를 해본다.
차유안 해병님..
정말이지.. 정말이지 너무나 보고싶지 말입니다..
그동안 정말.. 너무나 힘들었지 말입니다.
이제 곧 약속드린대로 찾아뵙겠습니다..
여기에서의 만남은 너무나 짧았지만...
다시 만났을때는 끝없이 길게 만들자는 약속.
저는 꼭 지킬테니 말입니다.
이제야..
이제서야....
그때 마지막 근무에서 약속했던 바램을 이룰수 있게된것 같습니다...
정말 보고싶고.. 너무나 보고싶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병 홍진우..
.................................................................................................................................
끝없는 만남.. 이제는 시작 되기를...
...............................................................................................
쿠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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