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에게 돌을 던지랴!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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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종로의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에 화려한 불빛들이 많아서일까! 밤하늘에 보여야 할 별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종로에 그 많은 게이가 다 모였나 싶었더니 그새 거리는 많이 한산해졌다. 만식은 다시 형규 일행이랑 합칠까 생각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괜히 둘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았다. 차라리 어디 가서 혼자라도 한잔할까 하다가 그냥 지하철로 발길을 옮겼다.
어차피 인생은 이렇게 혼자이니까... 며칠 후, 만식의 종로 바 가게 입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죄송합니다. 며칠간 휴무 합니다. 에너지 충전 가득 채워서 오겠습니다...^^
만식은 애인에게 며칠간 혼자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일방적인 통보라고 할 수 있었다. 애인 영우가 가게는 어떻게 하고 며칠 쉰다는 거냐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하지만 만식의 나이 오십이 넘도록 혼자서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평소에 아니,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던 만식이 심각하게 말을 하니 영우도 체념한 듯 잘 다녀오라며 여행 경비까지 얼마를 가방에 넣어 주었다. 솔직히 만식도 그런 착한 애인을 두고 혼자서 여행을 떠난다는 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왠지 죄를 짓는 거 같기도 하고 또한 영우가 어떤 걱정을 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하지만, 더 이상 미루기에 만식은 너무 지쳐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만식은 예전 애인이나 현재의 애인을 만나면서도 혼자서 제대로 된 여행을 떠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상대에게 맞춰 주다 보니 정작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 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아무래도 가게를 하다 보니 손님이 뜸한 시기에 다녀오는 것이 좋을 듯해서 조용한 때에 여행 시기를 택한 것이다. 솔직히 며칠이나 다녀올지 정하진 않았다. 이렇게 떠났다 가도 내일 돌아올지, 아니면 일주일을 보내게 될 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정말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시간을 가져 보고 싶었었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밀려 있던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집 안 곳곳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구석구석 깨끗하게 쓸고 닦고 했다.
만식은 집을 며칠 비우게 되면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이상하게 집 안을 싹 치우고 가는 습관이 있다. 보통 어딜 떠나면 설레고 흥분되어 대충 어질러 놓고 다녀오는 게 다반사인데, 만식은 예전부터 그렇지 않았다.
평소에 대충 있다 가도 어딜 떠나게 되면 돌아왔을 때의 그 깔끔한 느낌을 위하여 정리하곤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평생을 그렇게 했으니 그런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었다.
그렇게 청소하다가 오래전에 회사 다닐 때 창립 기념일로 받은 구형 카메라가 눈에 띄었다. 필름을 넣어서 찍는 방식인데 이제는 골동품 같은 카메라였다. 당시, 줌이 제법 먼 거리까지 되는 성능이 좋은 카메라였고 받을 당시만 해도 비싼 가격의 제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디지털카메라 뿐 아니라, 핸드폰의 카메라 성능이 더 뛰어나다.
문득,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만식의 화려했던 2, 30대가... 왠지 그때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참으로 만식의 삶에 있어 황금 시기가 아니었나 싶었다. 만식이 하고 싶었던 것 다 하고, 갖고 싶었던 거 원 없이 가지며 부러울 게 없었던 시절이었다. 비교해 보면 만식의 유년 시절과는 너무나 차이가 났었다. 그 세월이 그다지 오래 차이가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득한 옛날 같았다…
* * *
만식이 어릴 때는 집안이 너무나 가난하여 편하게 공부를 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 작은 목공소를 운영하던 아버지께서 사업에 실패하고, 매일 술과 여자들에게 정신이 팔려 집안을 내팽개치는 바람에 어머니 혼자서 만식과 세 남매를 키우셨다. 만식은 2남 1녀 중에 막내였다.
늦게 태어나서 막둥이라고 불렀다. 어려서부터 자그마한 체구에 귀여운 얼굴이라 어딜 가나 미움은 받지 않았다. 만식은 어려운 집안 형편이라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다. 만식의 유년 시절은 파란만장했었다.
잠시, 회상에 빠져 구형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다가 뒷면의 개폐 스위치를 자신도 모르게 눌러버렸다. 순간, 뒷 커버가 확 열렸다. 깜짝 놀랐다. 혼자서 멋쩍게 웃다가 안을 보니 어찌 된 건지 필름이 장착되어 있었다. 오래전에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고서 필름을 빼지도 않고 그냥 두었나 보았다.
만식이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깜빡하는 건 유명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러나 뚜껑이 열리면서 빛에 노출되어 다 필름이 타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했다. 필름은 외관상으로 이상이 없어 보였으나 대낮에 필름을 빛에 노출 시켰으니 아마도 필름은 다시 사용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어떤 게 찍혀 있는지 모를 기대감에 필름을 꺼내어 쭉 펼쳐 보았다. 그런데 웬걸...? 필름에는 사진 한 컷 찍혀 있지 않았었다.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실망감이 더 밀려왔다.
= 삐~ 삐~ 삐~
그때 세탁이 다 되었는지 통돌이가 울기 시작했다.
- 알았어...
만식은 먼지가 끼어 있는 카메라를 물티슈로 마저 닦기 시작했다.
= 삐~ 삐~ 삐~
- 알았다니까!
만식은 또 그 버릇이 나왔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듯한 말투가... 여전히 만식은 카메라 렌즈를 부드러운 솔로 먼지를 털어 내고 있었다. 통돌이의 알람음이 계속 울어 댄다. 그제야 만식은 하던 일을 끝내고 세탁기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마지막 헹굼에 사프란을 한 컵 부어 넣고서 다시 세탁기를 돌렸다. 탈수 후 트롬 건조기에 돌려 뽀~송하게 말리고 나니 마음마저 개운한 기분이었다. 말린 빨래를 개고 난 후 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제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았다.
집 정리를 마무리하고 만식은 드디어 집을 나섰다. 여행 배낭을 챙기고 집을 나서니 벌써 시간은 점심때가 훨씬 지났다. 솔직히 이번 여행의 목적지를 딱히 정해 놓지는 않았다. 만식은 잠시 집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11월로 들어선 가을 하늘은 푸르고 높기만 했다. 시원한 바람이 만식의 목을 휘감고 지나갔다. 일단, 만식은 발걸음을 뗐다. 아무래도 버스 터미널이나 서울역으로 가야 했으니까...
만식이 도착한 곳은 집에서 가까운 청량리역이었는데 일단은 그냥 기차를 타기로 했다. 그래도 여행의 재미는 기차가 최고다! 그런데 목적지를 두지 않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가야 할 목적지가 생각이 났다. 만식은 카드를 꺼내며 정동진으로 가는 기차 편도를 한 장 구입했다.
역내의 상점에서 생수와 밀감 한 줄을 사며 혹시나 해서 카메라 필름을 찾았더니 역시 없었다. 만식은 집에서 나오면서 구닥다리 카메라를 가져온 것이다. 요즘에야 사진을 찍으려면 스마트폰에 고급 기능이 있어 따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지만, 왠지 예전의 필름 카메라로 추억을 담고 싶었던 것이었다.
집에서 나서면서도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상점에는 필름을 팔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문 사진관에 가야만 필름을 구할 수가 있을 듯했다. 카메라를 괜히 가지고 나왔나 살짝 후회되었다.
다행히 기차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 정동진으로 제때 출발을 했다. 정동진까지 무궁화로 6시간이 족히 걸리는 시간이라 모처럼 여유 있게 기차 여행을 즐길 계획이었다.
만식의 좌석은 순방향의 창 쪽이었다. 아직 옆 좌석에는 기차가 이제 출발해서 그런가 앉는 사람이 없었다. 11월이지만 한낮의 따가운 햇볕이 넓은 창 안으로 흠뻑 쏟아져 들어 왔다. 만식은 눈이 부신 듯 커튼을 펼쳐 따가운 햇볕을 막았다. 역시, 커튼으로 빛을 가리고 나니 좀 아늑한 느낌이 들며 시선이 편안해졌다.
아침부터 청소하고 준비하느라 부산을 떨어서 그런지 피곤하며 노곤하기까지 했다. 배는 좀 고팠으나 오랜만의 들뜬 여행이라 참을 만했다.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연결하고 1시간 후에 멈추게 세팅하고 눈을 감았다. 정말로 많이 피곤 했었는지 만식은 이내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다.
고단함에 얼마나 잤을까...? 살며시 눈을 떴다. 음악은 꺼져 있는 걸로 봐서 한 시간은 족히 더 잔 것 같았다. 아직 바깥의 날씨는 환하게 밝아 있었다. 만식은 이런 상황이 너무 좋았다. 너무나 따사롭고 안락하며 평화로운 지금의 이 기분… 그렇게 다시 만식은 잠이 들며 몇 번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그 새에 옆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쩌면 만식보다 조금은 나이가 더 있어 보이는 중년이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풍성한 머리숱에 은테 안경, 구레나룻이 짙게 나 있어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점잖은 스타일이었는데, 만식과 비슷할 수도 있는 나이 같아 보였다. 그러나 분위기는 너무 달라 보였다. 만식은 주변을 환기하기 위해서 일부러 생수를 따서 한 모금 마셨다. 그제야 옆의 중년도 만식을 힐끗 쳐다보았다.
만식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언제나 그렇듯이 캐주얼하게 옷을 차려입고 나섰다. 밝은 오렌지색의 티셔츠에다 새끼 곰이 그려져 있는 흰색의 점퍼를 입고 있었다. 더군다나 블랙진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 만식의 나이보다 5살은 훨씬 더 어려 보였을 것이다. 아니, 스타일은 대학생 분위기였다.
만식은 중년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그러자 중년도 가벼운 미소로 화답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는데 기차가 터널 안으로 들어서자 터널 안의 울림으로 인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그 시끄러움이 오히려 중년을 편하게 했는지 옆의 만식에게 말을 걸었다.
- 학생은 어디까지 가?
= 헉?!!! 하… 학생이라니? 내 나이가 몇 인데...?
만식은 평소에 또래들 보다 나이가 많이 어려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곤 했었다. 그래도 그렇지 내일모레면 육십이 다 되어 가는데 학생이라니? ㅎㅎㅎ 오히려 만식이 민망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비슷한 나이인 것을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 생각하니 더 말을 하지 못했었다...!
- 저, 학생 아닙니다...
- 에구... 그래요? 이거 실례했네요...!
- 아닙니다. 근데, 어르신은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만식은 그냥 편하게 어르신이라고 했다)
- 허허… 난 정동진까지 간다오... 집이 그곳이라우...!
- . 네... 저도 정동진까지 갑니다...
- 그래요...? 정동진 좋죠! (중년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 네... 오랜만에 한 번 가 보려고요...
- 네. 그렇군요…
- 전, 몇 년 전에 한 번 갔었거든요... 좋았던 기억이 있어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 이렇게 무작정 기차를 탔습니다...
- 에구, 그래요? 우리 고향을 다시 찾아준다니 고맙군요! 허허허... 현재 살고 있지만 내 고향도 그곳이라우... 정말 좋은 곳이죠...! 그럼, 올해 나이가 몇이나 되우?
중년은 말을 할 때마다 에구 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만식은 잠시 망설였다. 사실대로 말했다 간 가는 내내 분위기가 어색할 것 같아 나이를 속이기로 했다. 기차는 터널을 빠져나와 도착지를 향해 가는 듯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해안의 철조망이 끊임없이 이어져 갔다. 이건 또 무슨 분단 비극의 흔적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렸다.
- 네, 전 올해 마흔여덟입니다...
- 에구, 그래요...? 음... 가만있자 그럼 내가 11살이나 많군요. 허허…
중년은 자신의 나이가 많은 게 마치 자랑인 듯이 말을 했다. 만식 보다 실제로는 한 살 더 많았다. 그렇지만 중년은 훨씬 더 많아 보였었고, 만약에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상심이 클까 생각하니 거짓말이지만 속이는 게 잘했다 싶었다.
= 뭐, 어차피 기차에서 내리면 다시 안 볼 테니…
만식은 그렇게 생각했다.
- 네. 그러시네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 음... 그럴까? 그래, 자네는 무슨 일 하는가...?
초면인데 하대를 하란다고 바로 말을 놓는 중년이 그래도 싫진 않았다. 왜, 밉상이 아니었으니까! 만식도 그제야 제대로 중년을 살펴보니, 적당히 통한 체격에 목소리도 굵직하며 수더분한 인상이었다. 만식은 귤을 꺼내 중년에게 내밀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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