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한국전쟁, 1/3, 수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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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우리 집은 소작농 집이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께서 논밭일을 하시며 우리 두 형제를 키우셨다. 먼 조상까지 올라가면 우리 집도 나름 부농 집안이었다고 했는데, 일제시대부터는 땅을 이리저리 빼앗겨서 지금처럼 소작농이 되어 갔다.


"현아! 밥 먹어야지!"


나를 부르는 한 아이의 목소리. 우리에게 소작을 주는 지주 집의 셋째 아들이다. 공부를 뒷전으로 하고 아버지 밑에서 마름 일을 하면서 땅을 물려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유난히 우리 형제를 챙겼는데, 그 이유를 짐작은 하지만 딱히 의식하고 싶진 않다.


일을 멈추고 녀석이 부르는 곳을 돌아본다. 평범하게 잘생긴 편이다. 우리 형제만큼은 아니지만. 언젠가 냇가에서 같이 목욕을 했을 때 본 녀석의 몸은 마른 편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런 녀석을 비웃으면서도 녀석의 밑에서 일하는 굴욕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동생과 함께 녀석에게 다가간다. 녀석은 주먹밥 몇 개와 찐 감자 몇 개를 우리에게 건넨다.


"맛있게 먹어."


수줍게 웃으며 말을 건네는 녀석. 생긴 건 남자면서 마음은 여린 소녀 같다. 우리를 좋아하는 티가 숨겨지지 않는다.


"잘 먹을게."


퉁명스레 밥과 감자를 가져가서 망설임 없이 뒤돌아 가는 우리 형제. 녀석이 어디론가 발길을 옮기는 소리가 들린다.


'언제나 맛있게 해 오네.'


나보다 2살 어린 녀석을 귀엽다고 생각하면서도, 녀석에게 소작지를 받아 일하는 것에 굴욕을 느낀다. 언젠가 이 상황이 바뀌기를 희망하면서도 이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언제나 조금은 화가 치밀어 있다.


'녀석이 원하는 건 절대 주지 않을 것이다.'


남자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관계가 조선시대 시절 주종에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른 일하고 집에 가야지.'


오늘은 동생과 야한 짓을 할 생각이다. 시내에 가신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 빨리 끝내야 한다.


'저 녀석이 우리 둘을 의식하게 된 건 아무래도 그때 그 일 때문이겠지?'


집에서 동생과 야한 짓을 했을 때 녀석이 깜짝 방문을 한 적이 있었다. 방문을 활짝 열고 웃는 표정으로 들어왔다가 그 표정 그대로 굳어버렸던 녀석. 그때 우리 형제는 정말 큰일이 난 줄 알았지만, 녀석은 누구에게도 우리 형제의 비밀스런 일을 얘기하지 않고 오히려 생글생글 웃으며 우리 둘에게 다가오게 되었다.


'녀석과는 절대 안 해. 모욕적이고 굴욕적이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동생과 함께 집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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