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리 버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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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짝 동기인 신우의 오전 외근이 길어지는 바람에 졸지에 혼자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럴줄 알았더라면 옆자리 윤하씨가 점심식사를 하러 갈 때 따라 갈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 일 아닌 것이 당연한데도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이 왠지 뻘쭘하게 느껴져서 일부러 밖으로 나와서 근처의 햄버거집에서 간단하게 때우기로 했다.





햄버거를 한 입 크게 베어 물면서 무의식적으로 창밖에 보이는 도로의 건너편을 바라 보던 나의 눈에 횡단보도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가전제품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신입사원때부터 점심 식사후에 회사로 다시 들어가기전 시간 때우기로 가끔씩 둘러보곤 했었다.



티비와 냉장고 코너 옆으로 휴대폰 매장이 있었고, 그 한쪽 구석에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지않는 카메라 매장이 있었다.



예전에야 한창 인기가 있었겠지만 이제는 휴대폰의 카메라 기능이 너무 좋아져서 점점 매장의 한쪽 구석으로 밀려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곳은 제쳐두고 자주 그 곳에 들러 쓸데없이 사지도 않을 삼각대며 백팩들을 돌아보곤 했다.


하지만 솔직한 나의 관심사는 내가 들르면 슬며시 책상에서 일어나 나의 곁으로 다가와 환한 웃음을 보여주며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는 주인 아저씨였다.



정말 황금의 나이를 지나고 있는 나이인 40이라는 그 아저씨는 이미 내가 그 어떤 것도 사지 않을 것이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내 곁에서 부탁하지도 않은 상품을 꺼내서 일일이 보여주곤 했는데, 약간 쳐진 그의 눈꼬리 끝에 서너가닥의 주름이 접히기 시작하고 밝게 웃을때마다 코 끝을 찡긋거리기도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설레어 '사장님을 부록으로 주신다면 하나 구매하겠다' 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곤 했었다.






꿀꿀한 생각에 트레이 위에 먹고 남아 있던 것들을 모두 쓰레기 통안에 쏟아 넣고는 터덜거리면서 도로를 건넜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다른 가전 코너들을 지나 카메라 코너에서 발을 멈췄다.  


하지만 전시된 상품들을 한번 훑고 있던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 사장님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스물 초반의 어린녀석이 나를 보고는 음흉한 미소를 띠고 다가왔다.


'역시 아직 누가 진짜 구매를 할 고객이고 누가 구경만 하고 가버릴 사람인지 구분하는 능력이 부족하군.”


그렇게 혼자 그 젊은 점원을 평가하고는 아무래도 사지 않을 바에야 비싼 물건에 시선을 둘 작정으로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 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그가 내 옆에 바싹 달라붙어 나의 시선이 머물러 있던 카메라를 집어 들고는 내 앞에 잘 보이도록 가까이 가져왔다.


“이게 나온지는 이삼년 됐지만 화질도 좋고요 가격도 다른것에 비해서 굉장히 저렴합니다.”


건성으로 그의 말을 들으면서 그 카메라를 한번 흘끗 보고는 슬며시 그에게 얼굴을 돌렸다.


“그런데 혹시.....”


“네?”


나의 말에 그가 들고 있던 카메라에서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 사장님은 안 계신가봐요?”


“아.....”  


나의 말에 그가 '큭' 하고 웃었다.


“오늘 사장님이 선 보러 가셨어요. 옷차림에도 신경 많이 쓰고 가셨는데....잘 되셔야 할텐데요.”


그가 다시 한번 씩 웃어보이고는 다시 그의 손에 들려있는 카메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전에는 뭐 맞은편 아파트를 몰래 엿보려는 응큼한 사람들이 구매 좀 했던 거거든요. 가격도 저렴하고 기능도 편리하고.....”


“네?”


공연히 그의 말에 나의 얼굴이 붉어져서 의도치 않았던 묻는 말이 나왔다.


“아.....뭐... 그건 불법이라 그러면 절대 안되는 거지만..... 예.... 그렇게 선명하고, 등산하실때도 건너편 산에 있는 나뭇가지에 앉아서 새가 똥 싸는 동영상도 아주 선명하게 찍혀요. 제가 직접 찍어본 적도 있다니까요.”





옆에서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가 어쩐 일인지 점점 더 멀어져가고 나의 눈 앞에는 거실에서 나체로 돌아다니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골반 아래로는 아슬아슬하게 가리워져 보이지 않던 그의 그런 모습이 나의 시야에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설마 그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보고 싶은 생각에 줌 카메라를 손에 들고 그런 그의 알몸을 떠올리는 것은 아니겠지?'



절대 그럴리 없다는,  어이없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지만 나도 몰래 그런 그의 모습이 예전에 그와 사귈때 나의 마음이 떠날까봐 내 눈치를 보면서 나를 유혹하던 그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아, 왜 그래.”


그때 나는 거실의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휴대폰을 들고 한참 게임을 즐기고 있었고, 그는 나의 바지를 벗기려고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를 귀찮다는 듯 굴었었다.


“왜, 싫어?”


바지와 팬티를 끌어내리던 그가 고개를 들고 나를 보면서 물었다.


“넌 그냥 가만히 있어. 내가 싸게 해 줄게.”





“저 손님?” 젊은 점원이 나를 불렀다.


“아...네?”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온 나를 그는 기쁜듯이 한번 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떠세요?”


“........”


“제가 싸게 해드릴게요.”







지하철의 계단을 힘차게 뛰어내려 갔건만 지하철의 문은 바로 내 앞에서 닫혀 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들어 천장에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를 확인하니 다음 지하철이 곧 뒤따라서 오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따라오는 지하철 안에는 사람이 적어 운만 좋으면 내가 앉을 자리도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기대를 했던 것처럼, 내가 올라타면서 맨 끝자리에 앉아있던 남자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막 닫히고 있던 지하철문의 밖으로 날듯이 뛰어나갔다.


마치 횡재를 한 기분으로 자리에 느긋하게 앉아 휴대폰을 들고 계속 보고 있던 웹툰을 찾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음 역에서 문이 열리면서 승차하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보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나이가 많이 든 노인분이라도 탈 경우에는 자리를 양보한다기 보다는 하루종일 피곤에 찌들었던 나의 몸을 돌봐주기 위해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나의 눈이 하필 그때 그 지하철, 그 칸의 그 문에서 승차를 한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나의 휴대폰에 시선을 집중했다.




“승우야.”


웬일인지 그가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형이 어젯밤에 일이 있어서 술을 많이 마셨더니 숙취 때문에 죽겠다. 자리 좀 양보해주라.”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피곤에 취하고 초췌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보란듯이 그에게 한번 씨익 웃어주고는 다시 뻔뻔한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귀를 울리는 신나는 댄스음악에 맞추어 슬며시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리듬을 맞추었다.




그렇게 잠시 내 앞에 서 있던 그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힘없이 지하철의 다음 칸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마 다른 칸에는 빈자리가 있을까 하고 찾아보려는 듯 싶었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서있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는데 옆칸이라고 빈자리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냥 자리를 양보해 줄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뒷통수를 뒤로 기대고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이제 부드러운 발라드가 귀에 조용하게 퍼지고 생각지도 않았던 졸음이 슬며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나의 발끝을 찼다.


깜짝 놀라 눈을 뜬 나의 시야에 나를 빤히 노려보고 있는 그가 들어왔다.


“야, 뭐해? 일어나.”


그가 곁눈질로 옆을 가리켰다.


그의 옆에는 할머니 한 분이 희미한 웃음을 띠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그가 나를 보고 눈을 부라렸다.


“아니, 괜찮다는 데 자꾸 그러네.” 할머니가 미안한 표정으로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나 문가 쪽으로 발을 옮겼다.


“금방 내린다는 데도 굳이 이렇게...” 할머니가 자리에 앉고는 야윈 손으로 그의 손을 한번 쥐어보였다.


“고마워요. 총각.”


“아니예요. 할머니. 많이 힘드실텐데 할머님이 당연히 앉으셔야죠.” 그가 달착지근한 말투로 할머니의 말을 받았다.





두 정거장이 지나 그 할머니는 내렸고 그 앞을 든든하게 딱 지키고 있던 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잠이 들어 코까지 낮은 소리로 골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노려보면서 내려야 할 역을 그가 깨지 않고 그대로 지나치기를 간절히 빌었지만 


바로 전 역에서 그는 귀신같이 잠이 깨고는 눈을 떴다. 그리고 아직 잠이 덜 깬 충혈된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런 그가 어이가 없어서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그에게 한번 지어 보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형 도대체 왜 그래?”


지하철 역을 벗어나 도로의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면서 그에게 입을 열었다.


“내가 뭐?” 뻔뻔한 얼굴로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깟 자리 뺏긴 것 가지고 말하면 내 자신이 구질구질해 보일 것 같아 순간 다른 할 말을 찾았다.


“다른 사람들 눈도 좀 생각해 줘, 제발!”


나의 말에 그가 다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이 드신 할머니에게 자리 양보해 드린게 그렇게 억울하냐?” 한심하다는 표정을 그가 지었다.


“아, 정말!”


그런 식으로 말하는 그에게 점점 더 화가 났다. 당장이라도 죽빵을 날리고 싶었지만 꾹꾹 참았다.


“누가 그걸 말하는 줄 알아?”  


주위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나는 다시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럼, 뭐?”


“옷도 다 벗고 알몸으로 내 몸좀 봐라 라는 식으로 거실에서 돌아다니지 좀 말라고!”


그렇게 말하고는 이제 바뀐 신호등에 다른 사람들을 따라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봤냐?”


횡단보도를 건너고 내 등 뒤에서 그가 나에게 물었다.


“남의 집안 엿보는 거, 그거 범죄다.”

“내가 볼려고 본게 아니고 내 눈에 띈거거든?” 발을 멈추고 그를 돌아다보면서 내가 짜증을 냈다.


“누가 형 맨몸 보고 싶은 줄 알아?”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재촉해 그와 거리를 벌리면서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야. 이승우!”


아파트 현관 앞에서 비번을 누르고 있는 나의 등 뒤에서 그가 나를 불렀다.


“너, 내가 말 안하고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말야.”


돌아보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멀찍히 서 있던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너, 툭하면 여기 놀이터에서 몰래 담배피고 꽁초 아무데나 버리고 도망 간다면서?”


“........”


“매너 좀 지켜라. 아파트가 너 혼자 사는 곳은 아니잖냐?”


그렇게 큰 소리로 남들이 다 들으라는 듯 말하고는 그는 몸을 돌려 106 동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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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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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싸게 해 드릴게요'가 특히 기억에 남네요. 하하.
전개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합니다. 계속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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