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리 버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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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주 새거 같은데 안 입고 버리게?”
“엄마, 그거 못 입어. 요새 누가 그런 촌스러운 디자인을 입어.”
“그럼 처음부터 사지를 말던지......”
엄마가 두 손으로 옷을 들어보면서 아까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이건 ‘폴루’네.”
줄무니가 있는 티셔츠를 펴 보시고 고개를 들어 나를 흘끗 올려다보셨다.
“이건 ‘토미헤픈걸’ 이고.....”
브랜드를 확인 해 보시고 옷의 이곳저곳을 들여다보시면서 여전히 아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셨다.
“꽤 비싸게 주고 샀을건데.....”
“엄마.”
그런 엄마에게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백화점에 가면 여기저기 눈에 띄는 정말 고가의 브랜드가 줄지어 있건만, 겨우 아울렛에서 반값으로 세일하는 것을 발품을 팔아서 사서 입은 아들의 노력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취업했다고 엄마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가는 아들이 자랑스러워 할 만한데도 좀 더 검소하게 살길 바라시는 듯한 말씀만 하시는 것이 답답해 보였다.
물론 매달 나가는 아파트 관리비는 엄마의 통장에서 자동이체로 빠져 나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난 앞으로 부유함을 누리면서 살게 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 아닌가.
크게 될 사람은 명품옷을 걸치고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이 기본 아니던가? 사람들은 그런 데 투자를 하는 것을 기본적인 품위유지비라고 부르며 당연시 한다는 것을 엄마는 아직 모르고 계신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근데 버리려고 한 그 옷들은 다 뭐하려고 그래요?”
나의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계속 정리를 하시던 엄마가 마지막으로 크래커다일 바지를 훑어보시고는 나를 돌아보셨다.
“너 여행갈 때 가지고 다니는 캐리어 좀 가져 와라. 그것 좀 쓰자.”
두달만에 반찬을 가지고 오신 어머니는 내가 버리려고 한쪽에 쌓아 놓았던 옷을 발견하시고는 그렇게 하나씩 확인을 하셨다.
그리고 모두 가지런히 정리를 하시고 내가 가지고 온 캐리어의 안에 차곡차곡 넣기 시작하셨다.
그리고는 빈 그릇을 담아 놓은 박스를 손으로 가리키셨다.
“넌 저거 들고가자.”
발을 옮겨 박스를 양손으로 들어보니 플라스틱 그릇이라고 해도 꽤 무게가 나가서 가볍지는 않았다.
“그냥 택배로 보내면 간단하고 편한데 왜 꼭 그 먼데까지 가지고 가려고 그래요?”
나의 말에 엄마가 고개를 돌려 나를 흘겨보셨다.
“그건 돈 안드니? 내가 온 김에 가져가면 되지.”
“짐도 있고 그러니 내가 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 드릴게요.”
“괜찮아. 이제 날도 어두워지는데 너 운전하기 힘들어. 그냥 저 앞 큰길에서 택시타면 돼.”
“그러길레, 그냥 전에 집에서 그냥 사시지 왜 그 먼 곳으로 이사는 가셔서......”
캐리어를 끌고 문을 열고 나가시는 엄마 뒤에서 신발을 신으면서 내가 투덜거렸다.
아버지가 2년전에 돌아가신 후, 몇 개월 동안 성내동에서 사시던 어머니는 이모가 살고 있는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선 어딘가에 있는 ‘예일리’ 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셨다.
혼자서 번잡거리는 도시 생활이 지겨워졌고 이제 흙을 밟고 사시면서 텃밭에 야채도 키우면서 조용하게 사시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캐리어를 끌고 앞장 서시고 가시는 엄마를 따라 양손으로 박스를 들고 어기적 거리면서 큰 도로 근처까지 가고 있을 때였다.
옆을 지나던 승용차가 멈추고 운전석의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툭하고 튀어나와 앞을 가로막았다.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이게 누구야? 상훈이 아니니?”
“네, 어머니 건강하시죠?”
원수는 통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아니 대나무 다리였던가?
여튼, 왜 통나무던 대나무던 다리도 아닌 아스팔트 도로에서 그를 만나느냔 말이다.
오늘은 잘 지나가나 싶었는데, 또 그를 보는 순간 재수가 없으려니 싶어졌다.
“무거워. 엄마 빨리 가.”
그를 피하기 위해서 엄마에게 재촉을 했다.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그의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팔뚝에 닭살이 돋고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버스터미널에 가는 길이야.”
낡은 옷을 정리하면서 나에게 하시던 무뚝뚝한 말투가 아닌 상냥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엄마가 대답했다.
“제가!”
엄마의 말에 그가 엄마가 들고 있던 캐리어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제가 태워다 드릴게요.”
“아니야. 미안하게. 안 그래도 돼.”
그러나 이미 그는 캐리어를 끌고 차의 트렁크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캐리어를 들어 트렁크에 싣고 난 후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박스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받는 대신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트렁크의 빈 자리를 가리켰다.
“저... 어머니,”
운전을 시작한 그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차 시간이 괜찮으시면 주유소 좀 들렀다 가도 될까요?
“그럼, 괜찮아. 아직 표도 안 샀어. 도착하면 사야지.”
“네, 어머니... 그럼 잠시만....”
그가 핸들을 돌려 옆에 있는 셀프주유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거 가지고 가서 네가 계산해.”
차에서 내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던 엄마가 카드를 내미셨다.
“왜? 내차도 아닌데.”
내 말에 엄마는 눈을 흘기시고는 내 손에 카드를 쥐어주시고 등을 떠미셨다.
“넌, 왜 나와?”
그가 계산대 앞에서 버튼을 누르면서 고개를 돌려 나와 내 손에 들려있는 카드를 얼핏 보았다.
“아니, 그냥.....뭐....”
얼른 주머니에 카드를 넣고 엄마가 창 밖을 보지 못하도록 등으로 가렸다.
한번 피식 하고 웃어 보이고는 그가 계산을 하고 주유를 시작했다.
“쬐끄만 차라서 많이 나오진 않네.”
나의 말에 그가 다시한번 나를 흘끗 보고는 또 다시 피식하고 웃었다.
“뭐,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면 그때 갚을 게.”
말을 마치고 그의 시선을 피해 얼른 조수석의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아 엄마에게 카드를 돌려드렸다.
“얼마 나왔어?”
“얼마 안 나왔어.” 심드렁하게 내가 대꾸했다.
“영수증은?”
“아.....”
고개를 돌리고 밖을 흘끗 내다보다가 주유기 옆에 놓여있는 큰 플라스틱 쓰레기통을 슬며시 손으로 가리켰다.
“버렸지.... 저기에다가...”
“그래?” 엄마도 심드렁하게 말하고는 이제 운전석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에게 환한 웃음을 보였다.
캐리어를 대합실 한쪽에 있는 의자 앞에 세워놓고 표를 사오겠다면서 잰 걸음으로 매표소를 향하는 그의 뒷 모습을 바라보면서 엄마가 슬며시 한숨을 쉬었다.
“내가 무슨 복에 상훈이 같은 애를 네 짝으로 두겠니.”
마치 혼잣말이라도 하는 듯 엄마가 중얼거렸다.
“엄마.”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내가 입을 열었다.
“남자는 그래도 마흔은 돼야. 인생도 알고, 삶의 진리도 깨닫고....”
나의 말에 엄마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셨다.
“상훈이도 마냥 삽십대일줄 알아? 재도 금방 마흔 돼.”
“.........”
“내가 우리 상훈이만 보면 아까워 죽겠어, 그냥.”
정말 속상하기라도 하다는 듯, 그렇게 엄마는 표를 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엄마가 갑자기 불편해져서 나는 소변을 본다는 핑계로 반대쪽에 있는 화장실을 향했다.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걸음을 옮기다가 나는 엄마가 흰 봉투를 그에게 쥐어주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어머니의 손을 피하며 그 봉투를 받지는 않고 있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네.’
어쩔수 없이 손가방에 봉투를 넣는 엄마를 보면서 다행스러운 감정이 스며들어 슬며시 웃음이 났다.
“그냥 먼저 들어가.”
엄마가 계속 그에게 재촉을 했다.
“난 여기 앉아서 차 들어오면 가면 되니까. 어서 들어가.”
괜찮다는 그를 한사코 엄마는 떠미셨다.
“한시간이나 남았는데, 배도 많이 고플거고 시간도 늦어지고....”
계속 해서 가라는 손짓에 그가 마치 마지못해 일어나는 듯 엄마의 손을 잡았다.
“조심히 들어가시고 곧 또 뵈요. 어머니. 건강하시고요.”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이야.’ 속으로 ‘큭’ 하고 웃음이 나왔다.
‘일년전에 헤어진 남친이 엄마에게 ’어머니‘ 라면서 ’또 뵈요.‘ 라는 인사를 하고 있다니....’
“어서 너도 따라가.”
엄마가 나를 보고 걸어가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가리켰다.
“집에까지 버스타고 갈거야?”
“엄마는....”
그렇게 빤히 나를 보고 있는 엄마에게 섭섭하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아들한테는 아껴쓰라고 잔소리하시면서 이제 아무 상관없는 상훈이형한테는 봉투까지 주려고 그래?”
나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한심하다는 투로 야단을 치셨다.
“에휴, 네가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그러더니 내 등을 떠미셨다.
“얼른 따라가. 집에 어서 들어가서 쉬어.”
터미널 주차장을 빠져나와 사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무슨 생각에라도 잠긴 듯 아무 말 없이 빤히 앞을 보고 있던 그가 주위를 살펴보더니 갑자기 차를 돌려 길가에 세웠다.
영문을 몰라하는 나를 흘끗 보고는 고개를 숙이고 조수석 창문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가서 빵하고 우유좀 사와라. 배고파서 디지겠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뚜러줄러 체인점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냥 빨리 집에 가서 먹지?”
내 말에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도 지지 않고 시선을 차의 앞으로 고정하고 마치 굳어버린 듯 뻔뻔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러자 그가 나의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기울여 조수석의 차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나의 어깨를 마구 밀어냈다.
얼떨결에 차 문 밖으로 강제로 떠밀려나왔다. 어이가 없었다.
“돈은?”
손바닥을 펴고 그에게 내밀었다.
“나중에 기름 값 갚는다며? 그걸로 퉁치자.”
그의 말에 기가 막혀서 입을 벌리고 있는 나에게 피식 웃으면서 그가 한마디 더했다.
“맛있는 걸로 사와라.”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런 그를 한번 노려보고는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려 가게로 향했다.
보통때에는 맛있는 것을 고르기가 어렵더니, 그에게 줄 빵을 고르자니 가장 맛없는 빵을 고르기도 힘들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듯 보이면서 겉은 기름으로 튀겨서 설탕을 발라놓은 빵을 골랐다. 속으로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흰 우유를 하나 집어 들고는 계산대로 가져갔다.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나의 눈에 그의 차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통의 흐름때문이라던가 경찰이 나타나서 일부러 오래 정차하지 않기 위해서 동네 한블록을 한바퀴 돌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하지만 20분이 지나도 여전히 그의 차는 보이지 않았고, 그제서야 나는 그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그렇지.”
헛 웃음이 나왔다.
“그런 자식을 믿었던 내가 등신이지.”
이렇게 제멋대로 인 놈이라는 것을 빤히 알고 있었으면서 또 다시 속은 것이 분통이 터졌다.
‘설마 처음부터 이것을 노리고 엄마를 태워다 주겠다고 했던거였어?’
속에서부터 밀려오는 짜증은 그를 향한 것인지, 빤히 알면서도 또 속은 모자란 내가 한심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전화라도 해서 한바가지 욕이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그의 전화번호도 모르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 손잡이를 잡고 어두운 창 밖을 내다보면서도 그를 향한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내가 앞으로 다시는 그 자식을 아는 척 하면 난 개돼지다.’
어금니를 깨물면서 그 자식을 저주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반대의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왜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고 가만히 있어야 해?
받은 만큼 되돌려 주는 것이 인생사 인지상정 아닌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그에게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괜찮은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았다.
손잡이를 쥔 손을 바꾸다가 손에 쥐어져 있는 빵이 담긴 비닐봉지가 눈에 띠었다.
그래 그것이었다.
이 빵을 곰팡이가 피어 날때까지 기다리는 거였다. 그리고 그에게 슬쩍 갖다 주는 것이었다. 예전에 빵사준다고 하고 가버려서 못 준거 주는 거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었다.
터미널까지 엄마를 모셔다 준 답례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그런 은혜를 잊겠냐고 하면서...
그리고 덤으로 상한 우유를 마시도록 주는 것은 기본적인 센스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기분이 개운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탈이 나서 밤새 배를 붙잡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그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그제서야 흐뭇한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 한 후,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사가지고 온 빵을 화장실의 세면대 위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분무기로 그 빵위에 물을 뿌려 놓았다.
적당한 습도는 곰팡이의 사랑이라는 글을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 듯했다.
커피를 한잔 마시고 잠자기 전 세수를 하러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잘 도착 했는지 궁금해졌다. 버스 출발 시간이 늦어서 아직도 달리는 버스안에서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시간에 맞춰 정거장에 나오도록 이모에게 말해 놓겠다고 하셨지만 내심 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휴대폰을 들고 엄마의 번호를 눌렀다.
집에 잘 도착했다는 엄마의 목소리에 안심이 되면서 엄마가 좋아하는 그의 실체를 낱낱이 알리고 싶어졌다.
“엄마, 그 형이 글쎄....”가능한 슬픈 목소리로 내가 그에게 당한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럼 다음부터 엄마는 최소한 내 앞에서 그가 아깝다는 둥, 그런 말씀은 하시지 않을거라는 계산이 나왔다.
“너, 언제 정신차릴래. 이 녀석아.”
뜻밖에 내 귀에 들려오는 엄마의 말은 내가 예상했던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너네 출발하고 조금 있다가 상훈이 다시 돌아왔더라.”
“........”
“날더러 ‘짐도 무거운데 버스 너무 오래 기다리신다고 힘드시다고 태워다 드리겠다’고 .... 그렇게 내가 괜찮다고 만류하는데도 짐 빼앗아서 들고 앞장을 서길래 어쩔수 없이 타고 왔다.
“......”
“나 집에까지 태워다 주고 좀 전에 출발했어.”
“......”
“너한테는 아무 말 하지 말라고 그러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애가 이 세상에 또 없을 건데. 엄마는 상훈이가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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