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태백은 아름다웠다 -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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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없이 드시면 체해요]
한 손으로는 내 왼쪽 어깨를 짚고 내 오른쪽 얼굴을 지나쳐 온 물병을 들고 있던 손은
내 앞의 테이블에 물병을 놓았다.
그리곤 돌아서 내 앞에 선 그 사람
[새벽에 물병 고마왔어요. 엄청 목이 탓었는데 덕분에]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하던 그 사람은 갑자기 시선을 돌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너무 추운데 오래 있다 보면, 갑자기 그럴때 있어요]
무슨 소리이지? 하는 순간 알았다. 왠지 모르게 왼쪽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서야 아 내가 울고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던 나는
그 사람이 건네주는 티슈 한장을 마다하고 입고 있던 패딩 손목부분으로 눈을 딱았다
[너무 추워서 그런지 눈물이 흐른다는 감각도 없네요
새벽에 그 분이신거죠? 누구신지 모르다가 옷 보고 생각이 났네요
산행은 잘 하셨어요?]
[네 덕분에 잘 했죠. 이 새벽에 산을 오르다가 이렇게 인연도 만들구요]
[인연은요. 식사는 하셨어요? 전 라면이랑 샀는데]
[저도 그럴려구요. 그리고 그거 아세요? 사발면에 계란 깨서 넣어 먹으면 엄청 맛있어요]
50평은 되어 보이는 매점
이른 아침 텅빈 공간의 한 가운데 조그만한 석탄 난로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사발면 하나와 김밥을 마쳐 먹고는 그 사람이 말을 이어갔다
[태백 분은 아닌거 같은데. 담 부턴 조심하세요
겨울 산행은 그런 옷차림으로 올라오면 위험해요
청바지는 물을 먹기 때문에 눈에 젖은채 산을 오르면 체온을 다 뺏겨요
담에는 장갑도 하시고, 운동화 대신 보온화 준비하시고, 스틱도 잇어야 하고 ....]
5분이 넘게 겨울 산행에 대해서 한참 떠들던 그 사람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못했네요, 전 양종현 이라고 해요.
나이는 그 쪽보다 많은거 같은데 34 입니다, 그 쪽은?]
[아 저요? 저는 박종훈 이고 해 넘어가면 30이네요]
[아 29 30, 그 그 나이면 뭐 갑자기 산에 오를수 있지
밥도 다 먹었는데 이제 뭐하실려구요?]
[저는 그냥.. 뭐..]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 사람에게 말을 했다
[이제 버스 타고 서울 올라갈려구요.
보고 싶던거 봤고, 놓고 가고 싶은거 것도 털어버렸으니까 이제 올라가야죠]
[.... 뭐 젊으니까.. 그래도 오기 힘든 길 왔는데 구경은 제대로 하고 가야죠
태백산 말고도 황지도 있고, 태백 한우, 물갈비 맛난 것도 많고..]
육개장 사발면 한 그릇과 김밥 하나를 먹는 그 짧은 사이에
참 많은 말들을 서로 주고 받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주 사이에 사람과 가장 많은 말을 주고 받은 듯 싶다.
태백에 대해서 길게 자랑을 하 던 그분은 왼손목의 시계를 한번 보더니
[저도 이제 슬슬 일어나야 겠네요
이게 어디 있드라. 아 여기 제 명함이요
이 것도 인연인데 나중에 기회 되면 또 뵈요]
그 사람이 내 앞에 명함 하나를 놓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쓰레기통에 육개장 사발면과 김밥을 포장했던 쓰레기들을 버리고
자리에 돌아오니 흰색의 명함 한장이 계속 눈에 밟힌다.
자리에 앉아 만지작 만지작 하던 명함 한장
지갑에 명함을 꼽고는 매점을 나섰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눈빛으로 당골 광장의 아침은 눈살을 찌뿌릴 정도로 눈이 부셨다.
눈이 부셨다.
그리고 따스했다.
그리고 걸음을 떼고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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