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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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층간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 써두었던 글입니다.

이 순간에도 저란 놈은 이런 발칙한 상상이나 했네요. ^^;

 

***

 

우당당 탕.

윗집에서 또다시 한바탕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씨, 지금 몇 신데 저 지랄이야?”

 

설풋 든 잠이 깬 나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새벽 145.

요 며칠 불면증으로 고생하다가 이제 막 잠이 든 터라 더욱 짜증이 치솟았다.

 

. . .

 

이제는 있는 힘껏 발을 구르는 모양이다. 콘크리트 벽을 타고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렸다.

 

-”

 

나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 일어나 앉았다.

 

안 해! 씨벌!”

 

바락바락 악을 쓰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엘리베이터에서 가끔씩 마주치던 그 고등학생일 가능성일 것이다.

 

아버지를 닮아서 키도 크고 체격도 좋은 그 학생은 눈빛도 매서워서 교복을 입지 않으면 건장한 조폭으로 보일 정도였다. 아래층 사람이 불면증으로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오밤중에 있는 힘껏 바닥을 차는 사람도 아마 이 학생이리라.

 

화가 난 학생 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멱살 잡는 소리,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락바락 악을 쓰는 학생의 목소리에 뒤이어 학생 어머니의 흐느낌 소리도 들려왔다.

 

다시 우당탕. .

 

물건이 사정없이 바닥에 몸을 박는 소리가 벽을 넘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결국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느 집이든 사연 없는 집은 없겠지.

그래, 살다 보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싸울 수도 있다.

억울한 일도, 괴로운 일도 많을 테니 소리라도 지르지 않고 어떻게 버티겠는가?

그 정도는 나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윗집은 싸워도 꼭 새벽에 싸운다. 그것도 새벽 두 시 언저리.

나로서는 하루를 힘들게 버티다가 겨우 잠드는 시각.

 

처음에는 참지 못하고 윗집을 찾아갔었다.

잔뜩 화를 내어 주리라 하고 단단히 결심하고 갔었는데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 뒤에 나온 아주머니 표정을 보니 도저히 독한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화장기 없는 푸석한 얼굴은 샛노랗게 질려 있었고, 우울한 두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왜 올라왔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지 아주머니는 내 눈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연신 죄송하다며 허리를 숙였다. 정작 시끄러운 이 집 아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완전히 달아난 나는 그대로 슬리퍼를 신고 아파트 밑으로 내려갔다.

계속해서 저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짜증도 밀려왔고 담배 생각이 간절해서였다.

 

7월의 밤하늘은 생각보다 선명했다.

며칠씩 장대비를 퍼붓던 장마가 막 지나간 뒤라 그런지 미세먼지도 별로 없었고 밤바람이 시원하게 헐렁한 민소매 티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우리 아파트는 다행히 밖에서 피우는 것까지 금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내에서는 금연이라 늦은 밤까지 나처럼 밖에서 서성이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가끔 한둘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물고 숨을 들이마시자 알싸한 박하 향이 물씬 콧속으로 들어왔다.

18층의 불이 환하게 들어와 있었다.

 

저 집도 나처럼 불면이긴 마찬가지이다.

부부 모두 사람은 좋아 보이던데 어째서 밤만 되면 저렇게 아들과 싸우는지 모를 일이다.

덕분에 나만 맨날 고역이다.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마시는데 누군가 아파트 현관 밖으로 나왔다.

역시 나처럼 짧은 반바지에 헐렁한 민소매 티, 발가락 사이에 끼우는 쪼리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 사람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 손으로 자신의 짧은 앞머리를 학대하듯 마구 헝클었다. 그리고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다른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였다.

 

씨벌.”

 

윗집 학생이었다.

남의 잠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아파트 아래로 따라 내려와서까지 나를 괴롭힐 작정인 것만 같았다.

 

라이터를 찾는 게 분명한 학생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파트 현관 불빛 때문에 민소매 밖으로 드러난 맨 어깨와 팔뚝이 야릇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젠장, 지금은 이런 생각 할 때가 아닌데.

 

불 좀 빌려주세요.”

 

중저음의 성숙한 목소리였다.

지금 내 앞에서 불을 빌리는 사람이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절대로 학생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목소리.

 

불을 빌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나는 학생의 사나운 눈빛에 그냥 순순히 불을 빌려주기로 했다.

 

여기.”

 

학생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손에서 라이터를 낚아채듯 건네받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이 담배 피우는 것을 말리지는 못할망정 얌전히 라이터를 빌려주는 꼴이라니.

30년 인생을 헛살았다.

 

-”

 

학생은 익숙한 듯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뭐랄까 마치 세파에 찌든 트럭 운전사나 주름이 자글자글한 뱃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느낌이랄까.

어린 녀석이 사는 게 뭐 그리 괴롭다고.

 

아저씨 아래층이죠?”

 

어라? 이 녀석이 담뱃불을 빌리더니 갑자기 아는 척했다.

그동안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도 눈인사 한번 하지 않던 사이였다.

이웃이라고 하기에는 껄끄러워 한 번도 아는 척하지 않았었다.

 

우리 집 때문에 잠 못 자서 나온 거죠?”

 

녀석이 정곡을 콕 찔렀다.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너 때문이지.

이 성질머리 더러운 녀석아.

 

윗집 학생이 이렇게 나오니 나도 답을 하기로 했다.

이참에 왜 그렇게 맨날 싸우는지 좀 물어보고 싶기도 하고.

 

알기는 아네요.”

 

하지만 제 잘못만은 아니에요. 우리 집 두 노땅이 맨날 나를 화딱지 나게 해서이지.”

 

말 나온 김에, 왜 그렇게 맨날 부모님이랑 싸워요? 그것도 새벽에?”

 

녀석이 갑자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나를 잠시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보다 최소한 10센티는 더 큰 그가 나를 가늠하듯 내려다보자 기분이 이상했다.

 

가슴근육 때문인지 녀석의 젖꼭지가 민소매 밖으로 유난히 두드러져 보였다.

 

그런 게 있어요.”

 

학생이 담배꽁초를 바닥에 비벼 껐다.

뭐야, 싸우는 이유를 얘기해줄 듯이 먼저 말을 걸어놓고서.

 

먼저 올라갑니다.”

 

담뱃불을 빌린 것으로 어느새 친해졌다고 생각을 했는지 학생이 인사를 하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큰 키에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몸매. 단단한 근육.

헐렁한 민소매 밖으로 드러나는 균형 잡힌 실루엣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체육 특기생인가?

그러기에는 피부색이 너무 하얗다.

실내에서만 하는 운동이면 그럴 수도 있을까?

 

민소매 밖으로 유난히 돌출되었던 그의 젖꼭지가 떠올랐다.

문득 젖꼭지 색깔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얀 피부에 어울리는 분홍색 유두면 좋겠는데.

그 유두를 한 모금 머금을 수만 있다면.

문득 가랑이 사이가 묵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젠장.

 

나는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 물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잠을 못 자서 내려왔는데.

화를 내지는 못할망정 그놈의 속살이나 상상하고 있다니.

꼰대도 이런 꼰대가 없다.

 

나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젓고는 아파트 단지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배꼽 아래 쓸데없이 흥분한 녀석을 가라앉혀야 했다.

이 녀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상대방을 가리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자조 섞인 웃음이 났다.

 

한번 흥분한 녀석은 아파트 단지 안을 한 바퀴 다 돌아도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안 한 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가. 잠도 안 오는데 간만에 이 녀석이나 좀 달래줘야겠다.

 

헐렁한 반바지 앞섶이 뭉툭하게 섰다.

검은색 반바지라 어두운 데서는 티가 나지 않았으나 밝은 데서 보면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챌 것만 같았다.

 

누가 있을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아서인지 다행히 17층에 도착할 무렵에는 흥분이 많이 가라앉았다.

 

드르륵.

 

낡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오자 우리 집 현관문 옆 계단에 누군가 웅크리고 앉은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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