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태백은 아름다웠다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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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면서 조금씩 거칠어지는 호흡과 올라가는 체온으로 인해 안경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안경을 벗고 숲길을 쳐다보니

어느 덧 눈은 이 어둔운 숲길에 익숙해져서

나뭇잎 하나하나 솔일 하나하나 길가의 돌맹이 하나하나가 보인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보니 앉을만한 바위가 하나 있었고

거기에 앉아서 숨을 가다듬고 편의점에서 사온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멍하니 숨을 고르고 있다가 하늘을 보니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 사이 사이로 짙은 남색의 하늘을 수 놓은 별들이 보인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 사람에게 항상 주늑이 들어있었다.

20대 시절의 학력 컴플렉스 때문이였을까

아니면 남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나와 내 가족의 삶을 그에게 들켰기 때문이였을까

그의 친구들은 하나 같이 관악구 학교 출신에 다들 석박사 과정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태원 피자 헛에서 그와 친구들은 해피 타임을 이용하기 위해 시간에 늦을까 조급해 하지도 않았고

초밥이 먹고 싶다며 당연한듯 조선호텔 스시조에서 오마카세를 시켜 먹었다.


혼자 청승맞게 산을 오르다 보니 갑자기 벼라 별 생각이 다 든다.

바지에와 신발에 묻은 눈들을 털어내고

이제 슬슬 다시금 산을 오을려고 하는 순간 아랫 쪾에 바스락 바스락 눈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눈길 속에 한 사람이 산을 오르고 있다.

나 처럼 무작장 산을 타기 싶었는지

그의 복장도 눈길이 쌓여있는 태백을 오르기에는 적합한 복장은 아니였다.

청바지에 패딩점퍼 그리고 비니모자....

그는 천천히 산을 오르면서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가벼운 목인사를 했다.

나도 가볍게 목인사로 답례를 하고 옆에 두었던 물병을 가방에 옆 주머니에 찔러 넣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저기..

 혹시 그거 물인가요? 제가 급하게 산을 오르는거라 물을 안챙겨서 그러는데

 ....

 물 좀 주시면...]

[아..

 네.... 여분 있으니 하나 드릴깨요]


가방에서 부랴부랴 새물을 찾느라 주섬 주섬을 가방을 뒤적뒤적 이고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내 가방의 옆 주머니의 물병을 가리키며

[그냥 이거면 충분할꺼 같아요]

[네???? 이거 제가 먹던거라]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천제단이라 굳이 새 물병 안찾으셔도 괜찮아요]

그러더니 가방 옆주머니의 물병을 자기 스스로 들고 가며

[정말 고맙습니다. 10분 정도만 더 가면 천제단이니 정상에서 뵈요]

하고는 다시금 걸어가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그의 뒷모습을 계속 쳐다보았다.

검은색 비니 모자, 색이 바랜 청바지, 베이지색 패딩, 그리고 매고 있는 회색 백팩.


풉, 나는 순간 산을 올라가는 그의 뒷 모습을 보면서

살짝 웃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태백역에게 내리게 만든 그 뒷모습

다시 한번, 약간은 서글픈 미소를 짙고는 산을 타기 시작했다.

눈 앞의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천천이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게

한발 한발 걸어나갔다.

그리고 정상에 올랐다.

매서운 바람에 몰아치며, 이미 차갑게 얼어붙은 뺨을 아프게 만들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도 내 눈앞을 가로막는 산도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검은 남색의 하늘이 동쪽 하늘 부터 조금씩 밝아오는게 보였다.

다시금 정상 능선의 한 쪽에 있는 돌무더니 천제단을 향해 다시금 한발 한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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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3편 언제 올리시나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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