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저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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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비가 지나가고 뙤약볕을 맞이하고, 그리고 다시 짧은 비가 내린후 아침으로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개강이였다.
여름내내 얼마나 많은 물건을 들고 오리온 전파사를 들락거렸던가? 하지만 애석하게도 보려던 아저씨 얼굴은 보지 못하고 가을이 다가오던 그 무렵, 난 오히려 아줌마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어버렸다.
"진영이 때문에 우리가게 장사한다니까..."
아줌마는 그날도 고장난 커피메이커를 들고 들어서는 나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오렌지쥬스를 가득 담은 유리컵을 내밀었다.
어느새 조심스레 내 앞에 밀어놓은 의자에 앉은 나는 그날 아줌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름이 다 지나가나봐... 어우 징글맞게도 덥더만..."
"그러게요..."
"그나저나 이번 여름은 진영이 때문에 심심하진않았어."
"하하 무슨 그런말씀을요..."
"왜 올여름 진영이가 말동무해줘서 얼마나 좋았는데..."
아줌마의 웃는 얼굴은 이뻤다.
아직 아이가 없어서 일까? 그리 미인형의 얼굴은 아니였지만 오밀조밀하게 늘어선 눈코입은 정겨웠고, 웃는 모습은 다정해보였다. 아저씨는 그런 아줌마의 모습에 반했겠지?
"그런데 아줌마는 아저씨 언제 만났어요?"
"응... 저인간. 글쎄 언제더라 후후 우린 선봐서 만났어."
"그래요..."
"진영이 네 또래들은 이해못하지. 선봐서 사람만고 결혼하는거... 그런데 난 그랬어. 뭐 그때라구 연애해서 결혼한 사람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그땐 나도 좀 쑥맥이였거든..."
"하하 그럼 지금은 쑥맥이 아니시구요?"
"후후 그렇게되나. 하지만 분명히 쑥맥은 아닌것 같아. 저 인간하고 사느라고 는건 악다구니밖에 없으니까..."
"왜요? 아저씨가 잘 안해주세요."
"잘안해주는 아닌데... 너무 잘해줘서 탈인건가... 나도 잘모르겠어. 좋은 사람인건 분명한데... 가끔 아니 자주 저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숨이 막히곤 해. 답답해지지.
후후 내가 지금 무슨말이래 젊은 총각 앉혀놓고..."
"아줌마는 아저씨 사랑하세요?"
"사랑? 역시 젊은 사람이구만... 글쎄 사랑이라... 어머 벌써 7시네 진영이 오늘 여기서 밥먹고 가라. 내가 버섯전골해줄께."
"아뇨 가야되는데..."
아줌마는 극구 저녁대접을 권했고, 난 잠시동안의 갈등끝에 대답했다.
"그러죠머. 대신 맛있게 해주셔야돼요!"
아저씨를 볼수 있었다. 그것도 바로 내 코앞에서 물론 아줌마와 함께 겠지만... 하지만 아저씨와 함께 밥상을 마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했다.
밥상이 방으로 들어오기전, 아저씨와 나는 잠시 인사를 나누고는 어색한 분위기속에 있었다. 아저씨의 복장은 여름이 시작되던 그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그대로였다.
여전히 짧은머리에 반팔런닝과 줄무늬 반바지...
굳이 달라진 것이라면 수염이 조금 자라나있다는것쯤.
아저씨의 모습을 살피는 동안 밥상은 들어왔고, 아줌마는 환한 웃음으로 전골그릇의 뚜껑을 열었다.
"많이 먹어요.진영씨. 당신은 조금만 먹고, 더 배나오면 내가 아주 이혼해버릴테니까...호호"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아줌마는 환한 웃음이였지만...왠지 아저씨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과묵하다는것과는 다른 그 무엇.
밥상을 물리고 아줌마는 커피 두잔을 방으로 밀어놓은채 가게로 나갔다.
"남자들끼리 얘기좀해. 난 돈벌러 나가야지. 진영씨 재미없더라도 커피다 마실때까지는 집에가면 안돼"
아줌마가 나가고 나서 난 다시 어색한 분위기에 이리저리 널려진 전자제품들에게 눈길을 두고있었다.
"나 때문에 그럴꺼야. 내가 밖에 안나가고 집에만 있으니까... 불편하면 얼른 커피마시고 가도되요."
"아뇨 불편하지 않아요"
다시 침묵...
"그런데 하루종일 집에 계시면 답답하시지 않으세요?"
"글쎄... 이젠 많이 익숙해졌어..."
익숙해졌다고, 그렇다면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이 자의가 아니라는 얘기잖아...
"무슨일이 있으세요."
"아냐 그냥 이게 편해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수줍게 웃는 아저씨의 얼굴은 너무 이뻤다. 안아주고 싶을정도로... 내가 처음 본 아저씨의 웃는 얼굴.
"아저씨 그런데 참 잘고치시던데요."
"........"
"아니 그냥 얘기가 아니라 제 카세트랑 전축이랑 일제라 왠만한 가게에선 대리점으로 가라고 그러는데 아저씬 하루만에 말짱히 고치시잖아요. 그거 보통실력 아닌데..."
다시 아저씨의 수줍은 웃음.
"저도 명색이 공대를 다니지만 기계에는 별로 거든요."
"그래..."
아저씨의 귀여운 엄지발가락을 보면서 떠오르는 앙큼한 생각.
"아저씨 초면인데 이런 부탁을 드려도 될지 모르지만..."
"뭔데...?"
"저희과에서 이번 학기에 전자제품수리에 대한 현장실습리포트를 내는게 있거든요. 아저씨가 도움을 주셨으면 해서요..."
물론 거짓말이였지만... 나의 표정은 절박했다. 그래 절박한 표정만은 거짓말이 아니였다. 적어도.
"내가 뭘 도움이 될수 있다고..."
"아저씨 부탁드려요."
"........그래 뭐 학생한테 도움이 된다면야... 하지만 난 정말 별로 할줄 아는게 없는데..."
"아녜요. 그냥 제가 와서 아저씨 고치는거 보고 몇가지씩 적기만 하면 돼요."
"그래..."
표정관리하기 힘들정도로 기쁜마음...
"아참 그런데 저 아저씨 그냥 형이라고 불러도 돼나요?"
아저씨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거의 갈색에 가까운 깊은 눈.
"그래... 학생이 편한대로 해요."
"제 이름은 김진영입니다. 학생이 아니구요.
내일 뵙겠습니다."
가을이 오면서 나의 스토커 생활은 이렇게 말끔히 청산되었고, 아저씨와의 꿈같은 만남은 살아 있음을 가끔 망각할 정도의 기쁨으로 나를 찾아왔다.
아줌마 역시 아저씨의 웃는 모습을 자주 보게되어 기뻐했다. 그날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래 그 날이 없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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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전파사"...
제가 인터넷을 통해 이쪽을 처음 알게되고
"이반"이라는 단어를 알게 될 즈음
그 당시 어느 다른 사이트에서 "오리온 전파사"라는 제목으로 읽었던 글이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어서
늘 언젠가 이 글을 다시한번 읽어볼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 볼수가 있게 되었네요..
그럼 다음편을 기다리며...
제가 인터넷을 통해 이쪽을 처음 알게되고
"이반"이라는 단어를 알게 될 즈음
그 당시 어느 다른 사이트에서 "오리온 전파사"라는 제목으로 읽었던 글이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어서
늘 언젠가 이 글을 다시한번 읽어볼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 볼수가 있게 되었네요..
그럼 다음편을 기다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