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아버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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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그를 만난 건 내 나이 열 아홉이 되던 해였다.
그 해 3월 새학기가 시작되었고 친구들은 고3이라는 위치에 모두들
부담을 느끼는 듯 했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곳을 일찍이 포기한 나는 친구들이 느끼는 그러한 중압감에서 자유로웠다.
하지만 고3이라는 위치는 그렇게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는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였다.
대학을 가든 그렇지 않든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그리고 선생들의 잔소리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런 갑갑한 일상에서 나에게 유일한 휴식이 되어주는 것은 나처럼 대학을 포기한 친구들이였다..
우리는 항상 귀에 이어폰을 끼고 살았고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면 서로에게 음반을 빌려주며 음악에 대한 어설픈 지식으로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시작되면 늘 학교 담을 넘는 것이 일상이였다.
그런 부류 중에서도 유독 나와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었다. 그 녀석의 이름은 진수였다...학교에서 10분 거리 쯤에 위치한 녀석의 집은 언제나 우리의 아지트였다.
진수의 집은 언제나 조용했다. 맞벌이를 하시는 친구의 부모님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귀가를 하셨고...그 시간이 오기까지 친구의 집은 우리의 세상이였다...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특별히 한 일도 없었지만 그 당시...나의 유일한 즐거움은 진수의 집에 머무는 그 시간이였다.
친구의 집은 자유로웠다. 가끔씩 진수의 책상에는 그의 아버지가 써놓은 메모가 놓여있었다.
"진수...이 녀석아...담배 좀 작작 펴라...방에서 너구리 잡을 일 있냐?" 등과 같은 메모를 볼 때 마다 나는 일찍이 어머니와 헤어진 나의 아버지를 생각해 보곤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너무 어린 시절, 어머니와 헤어지셨고 그 이후론 일년에 두, 세번 얼굴을 볼 뿐이였다.
성장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미움으로 바뀌어 있었다...그렇게 한동안 아버지라는 존재를 잊고 살았었다.
그러나 진수의 아버지가 남겨 놓으신 메모를 볼때면 그동안 참고 억눌렀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피어올랐다.
어쩌면 나는 진수의 아버지를 통해서 내 아버지의 모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그러한 그리움이 진수의 집을 다시 찾게 하는 이유였으리라...
고3 1학기가 반 쯤 지나갈 무렵...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상습적으로 자율학습을 빠진 우리는 담임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상담실에서 허벅지가 터질 지경까지 두들겨 맞은 우리에게 담임은 내일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했다..
"에이..C발...재수 없어...야...너 내일 부모님 데려 올꺼냐???"
상담실을 나오면서 진수가 말했다.
"부모님 안모시고 온다고 지가 우리를 죽이기야 하겠냐...한번 더 맞고 말지..."
"야...지금도 이렇게 허벅지 터질 것 같은 데 여기서 또 맞으라구???
난 못하겠다...우리 대장 내일 회사 쉰다는데 학교 한번 오라고 해야겠다..."
"..."
난 진수의 말에 아무런 댓구도 하지 않은 채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높였다...
어머니를 불러 올 수는 없었다...그렇다고 진수처럼 아버지를 불러 올 수는 더더욱 없었다...
다음 날...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데고 학교를 가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음악만 들었다...
모든 일이 귀찮았다...숨 쉬는 것조차...
저녁이 다되어서 진수에게 삐삐가 왔다...
수화기를 들고 삐삐에 남겨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야...저녁이나 먹으러 나와라...우리 대장이 오늘 저녁 쏜단다..."
"그냥 집에 있을란다...너나 포식해라..."
"그러지말구...우리 대장이 너 꼭 데리고 나오라고 했단 말야...나 너희 아파트 앞으로 간다...준비하고 나와.."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진수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귀찮게스리..."
무거운 몸을 일으켜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진수의 아버지라...진수네 집에서 사진으로만 봤을 뿐 실제로 알굴을 본 적은 없었다...
'어떤 분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우리 대장이야...인사해라..."
진수 옆에는 마흔이 안되보이는 분이 서 계셨다...우리 아버지에 비하면 10년은 젊은 듯했다...
"안녕하세요...진수 친구 **라고 합니다..."
고개를 들어 진수 아버님의 얼굴을 봤다...얼핏 본것보다 훨씬 젊었다...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키에 적당한 체형을 가진 분이셨다.
다부진 턱선에 온화한 눈웃음이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얼굴이였다.
"그래...네가 **구나...우리 진수한테 얘기 많이 들었다...아주 미남인데..."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별말씀을요...감사합니다..."
"그래...우리 뭐 먹을까? 먹고 싶은 거 있니???"
진수의 아버지가 자상한 목소리로 물어오셨다.
"전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아빠...우리 갈비나 뜯으러 가져???"
"그래??? **도 갈비 좋아하니?"
"네..."
괜시리 두근두근 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아빠...저번에 갔던 그 집가자...거기 맛있던데..."
진수가 아버지를 재촉했다.
"그럴까??? 그래 그럼 거기로 가자..."
"앗싸...오늘 소한마리 뜯어야지..."
진수 녀석이 너스레를 떨며 내 손을 잡았다...
"가자...너 내 덕에 포식하는지 알아라..."
"그래...고맙다..짜샤!!!"
앞서 가는 진수 아버지를 따라 우리는 갈비집으로 향했다...
"나 자율학습 내일부터 안하기로 했다..."
갈비집으로 가는 도중 진수 녀석이 말했다.
"어떻게...???"
"우리 대장이 오늘 학교에서 담탱이랑 한판했잖아...무조건 학교에 잡아둔다고 공부가 되냐고...그래서 내일부터 자율학습 안하는 대신 학원 다니기로 담탱이랑 합의 봤지..."
"학원은 무슨...이제 노났구나..."
"ㅋㅋㅋ...부럽지???"
"..."
녀석에 어리광에 아무 말도 할 없었다...머릿 속에는 진수 아버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기 때문이였다...
"그런데 너네 아버지...진짜 아버지 맞냐??? 삼촌 아냐???"
"ㅋㅋㅋ...우리 대장이 젊기는 하지...??? 대학 1학년때 우리 엄마랑 사고쳐서 나 낳은거잖아...그리고 바로 결혼하고...우리 대장이랑 나랑 20살 차이밖에 안난다..."
"그...래...?"
진수랑 20살 차이...그러면 서른 아홉...? 우리나라 나이로는 마흔인가???
저만치 앞서 가는 진수 아버지의 뒷모습을 봤다...
어린 시절 집을 나가던 내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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