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배달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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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내내 어떻게 하면 그 피자배달원을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퇴근할 때는 일부러 그 피자집 앞을 지나며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때 배달왔던 사람을 볼 수는 없었지만 의외로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피자집은 배달과 테이크아웃 전문 매장이고 (당연한 사실이지만 관심 없던 나는 모르고 있었다), 배달원은 그 사람을 포함해서 총 세 명이었으며, 밤 11시가 마감이었다.
즉, 피자를 주문하면 그 사람이 올 확률은 1/3밖에 되지 않는다는 소리지.
그러면 피자를 세 번 시키면 한 번은 오지 않을까?
성철이가 들었으면 뒤통수를 때렸을지도 모른다. 하루에 피자를 세 번 시키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내가 생각해도 좀 유치한 발상이라 혼자 피식 웃었다.
김지호,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갔구나.
그 뒤로도 성철이를 꼬셔가며 피자를 두세 번 더 시켰지만 그때 왔던 그 사람은 통 볼 수가 없었다.
사람은 가질 수 없는 것일수록 더 집착하게 되나 보다.
그 사람이 오지 않자 나는 슬슬 오기가 생겼다. 꼭 볼 때까지 다시 시키고야 말리라.
사실 다시 본다고 해도 뭘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 사람 얼굴만 한 번 더 보면 좋겠다 싶었다.
오늘도 퇴근길에 그 피자집 앞으로 지나왔다.
슬쩍 안을 들여다봤지만 그 사람은 배달 중인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쩝, 얼굴 한번 보기 되게 힘드네.
마침 내일은 쉬는 날이고 오늘은 성철이가 본가에서 자고 온다고 했었다. 뭔가 사고(!)를 치기에는 딱 좋은 타이밍이다. 피자집 앞을 지나면서 나는 임전무퇴의 자세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 되면 되게 한다. 김지호 사전에 실패란 없다!
이렇게 마초스러운 구호도 외치면서.
저녁 10시쯤 피자를 시켰다. 지난번에 그 사람이 추천해준 스페셜 피자로.
혹시 그가 배달오면 이걸 빌미 삼아 말이라도 걸어볼 생각이었다.
사실 지난주 내내 스페셜 피자만 시켰다. 오죽하면 성철이가 딴 것도 먹어보자며 내게 하소연을 했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날 때까지는 계속 스페셜 피자만 시키는 수밖에.
그때 추천해준 피자 시켰어요. 우와, 정말 맛있게 보이네요? 이렇게 말을 걸까?
아니면, 맛없으면 책임지셔야 합니다. 이렇게?
아 참. 박스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맛있게 보인다고 할 수는 없잖아? 받자마자 뚜껑을 열 수도 없고.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기억이나 할까? 하루에도 수십 번 배달을 나갈 텐데.
게다가 지난번에 봤던 이후로 벌써 2주나 흘렀다.
뭐, 기억 못 하면 어쩔 수 없지. 나는 복불복 심정으로 피자를 시켰다. 시간도 일부러 10시쯤에.
그때쯤이면 지난번처럼 물이라도 한 컵 주면서 말을 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피자 주문이 밀렸다고 하더니 50분이나 지나서야 배달이 되었다. 일반 고객 같았으면 항의라도 했을 테지만 난 사실 다른 목적이 있었기에 불필요한 항의는 하지 않았다.
다만…. 아쉽게도 이번에도 다른 사람이 피자를 가지고 왔다.
그 사람이랑 나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 이렇게 얼굴 한 번 보는 것도 힘드니….
아쉬운 마음을 피자로 달래려고 피자 박스를 열었다.
그런데 어라? 콜라와 피클이 없네?
피자가 늦게 온 것도 사실 항의를 해야 할 일인데, 주문했던 콜라가 빠져 있자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아마 그 배달원을 보지 못해서 더 열 받았을 수도 있다.
나는 당장 피자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피자집 주인이 무척 미안해하면서 지금 배달원이 모두 배달 나가서 사람이 없지만 누구든지 오면 바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당장 배달할 사람이 없다는데 더 화를 내기도 그래서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콜라가 오면 같이 먹으려고 피자 박스는 닫아 두었다.
약 20분쯤 지나자 초인종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 10분이었다.
“네.”
문을 여니 지난번에 봤던 그 사람이 콜라를 가지고 온 게 아닌가.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지난번처럼 배달복을 입은 게 아니라 청바지에 하얀 면티를 입고 있었는데, 면티가 땀에 젖어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콜라 가져왔습니다. 빠뜨려서 죄송합니다.”
“괜, 괜찮아요. 뭘 그럴 수도 있죠.”
그를 봐서인지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 조금 전까지 전화에 대고 잔뜩 신경질을 부리던 나는 어디로 가고 돌연 열여덟 살 소녀가 현관에 서 있었다.
“그런데 웬 땀을 그렇게 흘리세요?”
다한증인가? 면티가 축축해지도록 땀을 흘리는 그를 보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 열대야라 덥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땀을 흘리는 건 좀 이상했다.
“아, 퇴근하던 길이라 콜라를 가지고 직접 뛰어왔어요. 그래서 이렇습니다. 죄송해요.”
그가 땀 흘리는 모습이 미안한지 겸연쩍게 웃었다.
“네? 이 날씨에 직접 뛰어왔다고요?”
“바로 코앞이라 가까울 줄 알고 그냥 뛰어왔는데 생각보다 덥네요.”
그가 한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생각보다 팔뚝이 하얬다. 팔을 들자 제법 굵은 근육이 드러났다.
“아 참. 들고 뛰어오느라 콜라가 좀 출렁거렸을 거예요. 딸 때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안 되겠다. 그냥 제가 따 드릴게요. 제가 이런 것 좀 잘하거든요.”
그러더니 그가 내 손에서 다시 콜라를 가져갔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그가 2리터짜리 콜라 페트병을 안듯이 잡고 뚜껑을 조심스럽게 돌리기 시작했다. 콜라가 출렁였다고 하더니 뚜껑을 조금 돌리자 정말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왔다.
뚜껑을 열었다가는 그대로 폭발할 것만 같아 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할 지경이었다.
그가 거품이 가라앉도록 잠깐 뜸을 들이나 싶더니 다시 뚜껑을 돌렸다. 다행히 탄산이 조금 빠졌는지 아까처럼 거품이 일지는 않았다.
하지만 땀이 난 손이 미끄러지면서 그가 콜라를 놓치고 말았다. 그의 하얀 면티와 바지가 순식간에 콜라를 뒤집어썼다.
“헉! 어떡해요?”
“오늘따라 뭐가 잘 안 되네요. 어떡하죠? 콜라를 다 쏟아 버렸네요.”
“괜찮아요. 그것보다 옷을 다 버려서 어떡해요? 그래서 갈 수나 있겠어요?”
“그럼, 죄송한데 욕실 잠깐 쓸 수 있을까요?”
땀에 콜라까지 범벅이 된 그의 면티와 바지는 보기에도 굉장히 찝찝했다.
“그러세요. 얼른 들어오세요. 괜히 제가 부탁을 드려서.”
“아닙니다. 저도 괜한 오지랖이었네요.”
그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멋쩍은 듯 씩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물색없는 내 심장이 또 두근거린다.
아 좀! 그렇게 웃지 말란 말이야. 가슴 떨리니까.
“땀도 많이 흘린 데다 콜라까지 쏟았으니 그러지 말고 그냥 샤워를 해요. 남자끼린데 뭐 어때요?”
정말 그가 걱정되어서 한 소리였지만,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본심이 들킨 기분이 들었다.
이건 그냥 순수한 마음에서 한 말이다. 순수한 마음에서 한 말이다….
주문을 외듯이 나를 세뇌시켰다.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이 상태로 전철역까지 어떻게 가나 안 그래도 고민이 좀 되었거든요.”
그 친구가 겸연쩍게 웃더니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집안으로 들어오자 기분이 이상야릇했다. 상상만 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속이 울렁거리고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욕실 앞에서 전혀 주저하지 않고 면티를 훌렁 벗었다.
면티를 벗자 단단한 근육이 자리 잡은 등과 군살 하나 없는 매끈한 허리가 드러났다. 지난번에도 운동선수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지만 정말 운동선수라고 해도 믿을 만한 몸매였다.
상의를 벗은 그가 나를 등진 채 이번에는 벨트를 풀더니 청바지마저 벗었다.
헉! 이 사람 알몸까지 보게 될 줄이야.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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