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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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꾼의 초상 (A Likeness of the Night Watch)>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져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part 3
이틀 후 집사람과 아이들이 돌아왔고 나도 잠시 잊고 지내던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
는 더욱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일상을 감당해갔다.
그렇게 나의 행복은 위장되었다.
내가 연락하는 것에 인색함은 비단 바쁜 생활 때문만은 아니다. 천성이 숫기 없음 때문이
기도 하고 무엇보다 남자는 과묵해야 한다고 세뇌한 교육과 가정환경의 영향이 지대하다.
다른 이들에게 그렇듯 이번에도 '윤호'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족히 반년만의 전화였다.
사람들이 붐비는 저녁의 거리 풍경.
난 그 풍경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치는 사람들의 표정과 그들이 풍겨내는 기운들을 감당하
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들이 전하는 감정이 행복이던, 사랑이던, 슬픔이던, 나에겐 필
요 없는 동참이며 부담일 뿐이다.
요란한 염색과 액세서리로 치장한 청년들이 막 눈앞을 지났다. 난 인파 속에 멀어지는 그
들의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뭔가에 들떠 수다스런 대화를 나누는 그들... 무엇
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을까? 무엇이 지금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안 선배!"
어느 새 다가온 윤호가 쿡하고 옆구리를 찔렀다.
"뭘 그렇게 열심히 쳐다봐요? 아는 사람이라도?"
"아냐, 그냥... 여~ 얼굴 좋아졌는데. 잘 지내지?"
난 형식적인 대화로 오랜만의 만남을 시작했다. 그리고 형식적인 관계를 끊지 못하고 그
긴 밤을 보냈다.
2차에 걸친 술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는 여전히 학생들 이야기, 아직 그 학교에 남아있는 다
른 선생들의 안부... 그리고 뉴스 프로그램에서 언급되는 그저 그런 이야기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난 좁은 테이블 건너 가끔씩 무릎에 닿는 그의 무릎을 즐기고 있었
다. 그리고 살며시 가다와 마주치는 그의 구둣발도 느끼고 있었다. 서로 아무런 티를 내지
않았고 긴 시간도 아니었지만, 그것엔 보이지 않는 애절한 갈증과 섬세함이 가득 담겨져 있
었다.
학교를 옮기고 몇 번의 만남을 가졌지만, 우리는 한 번도 그때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
았다. 어쩌면 그런 암묵적인 신뢰가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윤호는 여전히 활기차 보인다. 늘 긍정적이면서도 가끔씩 알 수 없는 어둠을 품고 있는 그.
난 그 그림자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는 몇 안돼는 사람일 테지만 여전히 모르는 척 방관한
다.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그래... 미안하다. 비겁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냥 다른 많은 사람
들과 같고 싶을 뿐이야. 가장 소박하고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언젠가는 서로가 진실한 모습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언젠가는 감당해야할 나
만의 숙제로 가능함은 알고 있지만, 아직은... 아직은...
"저 결혼합니다."
버스 정거장 앞에서 저만큼 달려오는 버스를 향해 고개를 돌린 그가 말했다. 남 얘기하듯
성의 없이.
"이제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요. 나이도 나이고... 기왕 갈 거면 더 늦기 전에..."
"그게 네가 그렇게 힘겹게 꿈꿔왔다는 인생이니?"
윤호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던져버린 질문이기에...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일지도... 잠시 서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뭔가 말하려는데 버스가 정
류장으로 들어섰다.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채이며 그는 짧게 악수를 청했다.
"막차예요. 선배. 담에 만나서 더 얘기 나누죠. 잘 들어가세요!"
찰나의 순간, 난 잠시동안 움켜쥔 그의 손에서 문득 그날 밤의 감각을 기억해냈다. 섬세하
고 부드러우며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순수했던 본능의 숨결... 그리고 그 손을 놓으며 알 수
없는 처절한 고통을 맛보았다. 이제는 영원히 지금의 그를, 그리고 그 날의 숨막히던 열정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차라리...
윤호가 탄 버스는 금새 나의 시야를 벗어났고, 사람들도 하나 둘 사라져갔다. 덩그러니 남
은 나는 오랫동안 그곳 정류장에 서 있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어둠에 짓눌린 회색의 콘크리트 세상을 더욱 차갑게 얼려놓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 냉기를 견뎌내면서도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 Epilogue.
나의 사랑은 언제나 시작부터 비극이다.
처음은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했기 때문이었고... 이제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도 내가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나는 너무나 많은 기회들을 빼앗겼고, 놓쳐버렸으며 오랫동안 길들어져 버렸다. 누구
의 탓도 아니지만 나만을 탓하기엔 너무나... 그 슬픔이 크다.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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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야경꾼의 초상>에 나온 주인공이 <야경꾼>에서의 안선생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