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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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11.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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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무거운 사람을 등에 업고 험한 산비탈을 얼마나 내려 왔을까?
상황의 급박함에 나에게 초능력이라도 생긴 것일까?
그리고 이 분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며 나의 이런 선행이 행여 불이익으로 돌아오지는 않을지... 등등
여러 생각들이 그분의 무게를 잊게 해 주었었다.

고문의 흔적은 잔혹했지만,
생사의 기로에 선듯한 그런 심각성은 없어 보였다.
3번 16번 정릉발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병원으로 갈 생각에 지나가는 택시를 불렀다.

"택~시~"

하지만, 등뒤에서 뒤척이듯 손을 내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여관으로 가 주세요!"라고 신음하듯 말했다.

다소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뚜렷한 주관이 섞인 말이었다.

휴일인 탓에 약국문은 대부분 닫혀있었다.
한참을 헤매고 나서야 작고 허름한 약국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대충 상황을 설명하고 그에 맞는 약을 요구했다.
다소 느긋한 약사는 바르는 약 두가지와 붙이는 약 두가지,
그리고 붕대 하나를 골라주었다.

다음으로 편의점에 가서
단팥죽과 캔맥주 몇 개와 김밥 두어줄 등을 사들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조그만 신음 소리가 들렸지만,
그분은 눕혔던 그 자세 그대로 곤히 자고 있었다.

아침부터 무척 땀을 많이 흘렸던 탓인지
찝찝하고 고단하였다.
어차피 한 두 시간에 끝날 것 같지는 않고
오늘 하루는 여기서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마른 수건을 물에 적셔 그분의 얼굴과 손을 씻어주었다.
그리고 나도 땀에 젖어 있어 샤워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쏴~악~"

물살이 세차게 뻗어나왔다.
어딘가 불안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끝마치고 나오니,
상쾌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김밥과 맥주를 다 마시고 나니 포만감과 피곤에 눈커플이
천근만금 잠이 솔솔 일어났다.
침대 옆에 놓여 있던 나머지 이불을 바닥에 깔고 거기에 엎어져
나는 잠에 골아 떨어졌다...

얼마를 잤을까,
문득 눈을 떠 시계를 보니 벌써 6시가 되었다.
침대 끝에 걸터 앉아 TV를 켜고
물을 마실려고 하는데,
그가 일어나 앉으려고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설마했던 니가 나를 떠나~ 버렸어~"

TV에서는 인기가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고,
이정현의 노래가 들려 왔다.

" 아... 이제야 정신이 좀 드시는군요. "

그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도와주었다.

" 여기가 어디오? 그리고 누구시오? "

입술을 움직여 말을 하는 그의 인상이
아까와는 또 다르게 너무도 선해보였다.
한편으로는 굵은 이미지와 함께 또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한...
여전히 눈망울은 맑았다.

" 예... 제가 오늘 산에 오르다가 길을 잃었었는데.... "

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오늘 어떤 일로 산에 오게 되었으며,
등산중에 어떻게 당신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산을 내려왔는지,
중간중간에 무슨 말을 했었는지를,
소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말없이 듣던 그가,
분노를 참는듯 몸을 한번 부르르 떨더니,
다시 자리에 누우려는듯 베개를 찾았다.
그가 눕는 것을 도와주고,
그에게 편의점에서 사온 죽을 내밀었다.

죽을 내밀은 나를 잠시 가만히 보던 그는,
죽을 받을 생각은 않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고맙소, 허나, 나와 며칠 더 여기에 머물러 줄 수 있겠소...? "
" 내가 거동할 수 있을 때까지만. "

" 예.... 뭐.... "

순간 나의 뇌세포는 여러 경로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니, 솔직이 말해서 왠지 모르게 그와 같이 있고 싶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는 팔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온통 피멍투성이인데다가,
인대가 늘어났는지,
움직일 때마다 신음소리를 흘렸다.

때문에, 음식도 먹여줘야 했다.

그에게 죽을 떠 먹여주면서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았다.
그랬다. 흐뭇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흐뭇함...
그것을 꼬박꼬박 받아 먹는 그가 귀엽기도 했고,
떠먹여주는 나 또한 스스로
'인류애의 유일한 실천자'와 같은 몽상이 싫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장했던지 그는 단팥죽을 금새 다 먹어치웠다.
약을 바르려고 보니 상처가 깨끗하지 않았다.
다시 씻겨야 했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젖어있는 수건을 다시 물을 묻혀 가지고 왔다.

이불을 젖히고 그 수건으로 상처들을 닦으려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문지르는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 안되겠어요... 아무래도 움직이셔야겠는걸요... "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놓고,
침대에서 일으켜 바로 욕조로 부축했다.
그는 아까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워했다.
거의 업다시피해서 욕조에 와 눕히려는데,
4각 트렁크가 마음에 걸렸다.
벗겨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상하게도 그와 살이 맞닿을 때마다 가슴이 쿵쿵거렸다.
그와 눈이 마주칠 때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은근한 행복감이었다.

" 벗겨...드릴까요...? "

그가 대답 대신, 스스로 벗으려고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의 트렁크를 벗긴 것은 나의 손이었고,
발을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나의 코가 그분의 물건 2cm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꺽~"

같은 남자의 '물건'을 보고 잘 생겼다고 생각이 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의 '물건'은 그야말로 무게있게 균형잡힌 '두툼함'이었다.
이상하게도 그의 '물건'을 통해 그가 '완성'되어 보였다.
안아보고 입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끝에 잠시 내가 멍하니 있자,
그는 스스로 욕조에 들어가려고 했다.
잠에서 깨어난 듯, 나는 벌떡 일어나 그를 욕조에 뉘었다.

그가 잠시 얼굴을 찡그리더니,
이내, 피로가 풀리는듯 편안한 얼굴을 되찾았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고,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씻는 것을 도와주면서
(실상은 내가 거의 씻겨 주었지만)
그의 몸 구석구석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는데...
나의 아랫도리에 그것은 왜 그렇게 힘이 들어가는지
정말 주책이었다.

몇 번이고 안고 싶다는 충동을 잠재워야 했으며,
몇 번씩 입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지워야 했다.

욕실에서 나와
온 몸 여기저기 약을 발라주면서도
또 한 번 충동을 억제해야 했다.

" 전 여기서 잘께요..."

침대 및 아직 펴놓은 이부자리를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그는 묵묵히 끄덕이며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