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술 두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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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곳을 다시 찾은 건,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주일하고 하루가 조금 지났을까. 하루하루가 그렇듯, 일하고, 저녁먹고, 씻고 그리고 잔다. 아른하게 펴진 잠자리에 누우려니, 왠지 나가고 싶었다. 처음 누울 때 닿는 차가운 감촉이 싫어서였을까. 나도 모르게....그를 떠올렸다.
[....춥지?]
처음으로 멋적게 이불을 들어올렸던 그. 어설픈 뻔뻔함에 웃음 터뜨린 그날. 여지없이 불이 꺼지고, 장난스러운 밤이 되곤 했었는데...지금은 차가운 위스키 샤워의 씁슬함이 입가에 맴돌 뿐이었다. 에라 모르겠다...가뜩이나 친구들과 술약속도 취소했는데..난 코트를 집어들고 문 밖을 나섰다.
시계는 자정을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문 께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문을 닫을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리려하던 차였다.
[어? 오셨네요.]
[아..]
어딜 다녀 오는지, bar에서의 옷차림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뒤에 서있었다.
[마침 돌아가려던 차였는데요.]
[무슨 그런 말씀을..들어가세요 추운데..게다가...]
[?]
[....주무시려고 하셨나보죠?]
그는 나를 흘긋거리며 말했다.
[....앗!]
....깜빡 잊고 잠옷에 코트만 걸친 것이었다.
운은 조금 있는 편인지, 그날따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주인은 작은 잔과 양주병을 들고 곁에 앉았다.
[후...모처럼 안만나던 친구들을 만나고 왔거든요..얼굴이 빨갛죠?]
[예..그렇네요. 근데..친구라면..]
[아, 이반친구들입니다. 뭐, 이반 모임이긴 한데, 둘이 사귀기로 했다고 해서 말이죠.]
[...으흠...]
[뭐....원래 이반이란 친구와 연인은 애매하잖아요? 후후..그나저나, 오늘은...돈으로 계산하실 건가요? 아님 입으로?]
[흠.....원하던 바로 대답해 드릴까요 아님..]
[전 입이라도 상관 없는데....진.짜.입.]
[......]
[하하하..농담인데, 표정이 썩 안좋으시네요?]
[....인기 많으시겠네요.]
[뭐...그럭저럭이죠.. 암튼...한잔 하시고 안주거리삼아 들어볼까요?]
난 그가 따라준 잔을 받았다. 단숨에 들이키고, 잠시 고통에 떨곤 입을 열었다.
다행히도 그 때이후, 응철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나는 나대로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조심하였으며, 그는 또 그 대로 학교에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로 볼 기회가 적었다. 한 때가 지나고, 계절은 서서히 늦가을로 접어들어 가고 있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성적표가 나오고 그 다음날에, 옆반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김재훈? 김재훈이라는 애 여기 있지?]
[예? 전데요.]
[잠깐 나좀보자.]
선생이 꺼낸 이야기는 생소했다. 김응철의 며칠째 학교에 나오질 않았던 것이었다. 더불어 내 손에 성적표를 쥐어주며, 나더러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이걸 왜 제가..]
[주소를 보니 같은 동네이던걸. 우리 학교엔 그 동네 사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말이야. 그럼..부탁한다.]
나는 마지못해 성적표를 구겨 넣었다. 젠장젠장젠장..걔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뭔가 꼬일 거라는걸.
우리 동네 사는데가 다 그렇듯, 그의 집도 거의 찌그러져가고 있었다. 여기저기 얼룩진 시멘트 담장에, 고개만 내밀어도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게, 대문 한짝은 떨어져나가 있었다. 우리집과 별반 다를 게 없군...하면서,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꺼내려 할 때였다.
[아 그러니께.....오늘까지 집세를 내야~한당께..]
[아저씨, 전 돈 못내요.]
[아~그렁께? 오늘까졍 내야~한당께.]
[제가 무슨 돈이 있어요 중학생인데...]
응철은 땅주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되야 안되야, 얼렁 돈을 주던가, 아님 방을 빼랑께?]
[아, 맘대로 하쇼. 캬악, 퇫.]
[아따...이놈이...나이도 어린 것이 배짱을 튕그는구마이...집문서를 찾아봐야쓰겄구만?]
그는 허름한 응철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응철은 어디 해볼테면 해보란 듯 마당에 짝다리를 집고 서 있었다. 분위기상 안좋은 것 같아, 나는 슬슬 뒷걸음질쳤다.
[......달그락.]
.......젠장젠장젠장...망할 자갈같으니..
[...? 어? 너?]
[아...안녕..저기...이거 선생님이 갖다주라 하셔서..]
[그으래? 으흠...마침 잘됐다 야 일루 와봐.]
[왜..왜?]
[왜는....좋아서]
하고는 손을 잡아 끌었다.
[자식! 이걸 잘 부탁한다.]
[?]
그는....구깃구깃한 누런색 서류봉투를 손에 쥐어주었다.
.....집문서였다.
[가.]
[....?]
그는 인상을 쓰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가!]
[아따, 집문서를 워따 둔 것이여 암만 찾아봐도 없구마...아? 야! 야! 니 거기 서랑께!! 야! 야 이눔아!!]
[이따 애기에서 봐!]
으다다다다다다!!! 난 뒤도 안돌아보고 정신없이 뛰었다. 흘긋 돌아보니...집주인은 손을 휘두르며 쫒아오고 있었고...응철 그 놈은 여유있게 손까지 흔들고 있었다.
[헉....헉...헉..]
나는 전력 질주해서 집까지 뛰어왔다. 언덕 께에 있는 우리 집까지 뛰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년아!! 나가 죽어라! 그래, 애편네라는 것도 그렇고, 하나밖에 없는 딸년도 잘하는 짓이다 이년!]
[아버지!!! 악!!! 꺄악!!]
이번엔 우리 집이었다. 누나가 뭘 잘못했길래. 나는 서둘러 대문을 박차고 뛰어들어갔다.
[아버지 왜 그래요 또!!]
아버지는 병마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누나 머리채를 붙잡고 흔들고 있었다.
[이놈! 너도 똑같은 놈이야..너도!! 니 누나가..헉..헉..니 누나라는 게..헉....몸 팔고 다니는 거 알고 있었지 이놈!!]
[뭐...뭐라구요?]
[안되요 아버지..엉엉..말하면 안된단 말예요..엉엉]
누나는...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홧병으로 의식 불명이 되었을때도..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도..다니던 학교를 그만 두었을 때도 한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누나의 눈에.....마스카라가 번진 검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아버지 눈은 허옇게 돌아가 있었고, 입에는 침 거품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급기야 소주병을 집어들었다.
[죽어라 이년! 죽어!!!! 에잇!!]
아버지는 소주병을 높이 들더니, 누나를 향해 내리쳤다.
[안돼요!!! 아버지!]
퍽!!!!!!!
[꺄..꺄악!!!!?]
눈앞에 불이 확 튀었다. 산산히 유리조각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우..우에..엑]
쩔그렁...아버지는, 괴상한 신음소리와 함께 깨지고 남은 부분을 힘없이 떨궜다. 그리곤...서서히 앞으로 고꾸라졌다.
[누나...도망가..빨리...가...]
[재..재훈아....다..다시 올께? 응? 알았지?]
[빨리 가아아!!!]
[흑....미안해 재훈아..미안해...미안해..흑..흑흑]
누나는..그렇게 미안하다는 수많은 말을 남기고...마음을 다친 나와...쓰러진 아버지를 놔둔채..
얼굴을 파묻고 언덕을 뛰어내려갔다.
어머니처럼
마지막 뒷모습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는 의식을 잃고 있었다. 미운 사람. 미운 얼굴. 미운 집구석.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버지였다. 나는 조심스레 아버지를 들쳐매고, 방에다 뉘였다. 그리고 서류봉투를 집어들곤 집을 나섰다. 왠지 어지럽고, 몸이 비틀거렸다.
애기는, 우리 동네에는 뒤에 작은 산이 있는데, 우리 동네 사는 사람이라면 왠만큼 아는 곳이 있다. 애기바위라는 작은 바위가 있는데, 거기에 가면 우리 동네는 물론 멀리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나는 어둑해진 산길을 열심히 올라갔다.
[야, 왜이렇게 늦게 왔어 아씨...추워죽겠구만..]
[미안...]
나는 한걸음씩 그를 향해 걸어갔다. 주변이 일렁이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가 화끈거렸다. 그도 바위에서 터벅 내려와 나한테 왔다.
[가지고 왔지? 아...추워 2시간이나 기다렸...어...어어? 야? 너 얼굴에? 머리에?]
[어?]
[피나잖아 너!!! 이런...쓰...야 너 대체 무슨!]
그제서야...나는 얼굴에 엉겨붙은 게 피라는 걸 깨달았다.
...서서히 땅이 나에게 덮쳐왔다.
[.......안됐...네요.]
가게의 주인은, 잔을 만지작거리더니, 한 잔 쭈욱 들이켰다. 빈 잔을 채워 나에게 넘겨 주었다.
[뭐...이젠 그냥 그래요.]
[.......]
[오래된 이야기이니까....오히려 주인장께서 안좋으신거 같은데요? 하하....다른 이야기 할까요?]
[아니요...거기서 어떤 첫사랑이 나올지가..더 궁금해지는데요.]
[글쎄...운명이란거....믿으시나요?]
[음...어쩌다 있는 일이라고 생각은 해요.]
쭈욱....나는 잔을 비우곤 내려놓았다. 그리곤 한장의 사진을 꺼내놓았다.
[...이게 그분?]
[예.]
[잘생겼다...어쩜...지금도 만나고 있나요? 아니 그것보다....]
[우리랑 같은 사람이냐구요?]
[후훗..눈치도 빠르셔..]
[........글쎄요..]
..................ing
[....춥지?]
처음으로 멋적게 이불을 들어올렸던 그. 어설픈 뻔뻔함에 웃음 터뜨린 그날. 여지없이 불이 꺼지고, 장난스러운 밤이 되곤 했었는데...지금은 차가운 위스키 샤워의 씁슬함이 입가에 맴돌 뿐이었다. 에라 모르겠다...가뜩이나 친구들과 술약속도 취소했는데..난 코트를 집어들고 문 밖을 나섰다.
시계는 자정을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문 께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문을 닫을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리려하던 차였다.
[어? 오셨네요.]
[아..]
어딜 다녀 오는지, bar에서의 옷차림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뒤에 서있었다.
[마침 돌아가려던 차였는데요.]
[무슨 그런 말씀을..들어가세요 추운데..게다가...]
[?]
[....주무시려고 하셨나보죠?]
그는 나를 흘긋거리며 말했다.
[....앗!]
....깜빡 잊고 잠옷에 코트만 걸친 것이었다.
운은 조금 있는 편인지, 그날따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주인은 작은 잔과 양주병을 들고 곁에 앉았다.
[후...모처럼 안만나던 친구들을 만나고 왔거든요..얼굴이 빨갛죠?]
[예..그렇네요. 근데..친구라면..]
[아, 이반친구들입니다. 뭐, 이반 모임이긴 한데, 둘이 사귀기로 했다고 해서 말이죠.]
[...으흠...]
[뭐....원래 이반이란 친구와 연인은 애매하잖아요? 후후..그나저나, 오늘은...돈으로 계산하실 건가요? 아님 입으로?]
[흠.....원하던 바로 대답해 드릴까요 아님..]
[전 입이라도 상관 없는데....진.짜.입.]
[......]
[하하하..농담인데, 표정이 썩 안좋으시네요?]
[....인기 많으시겠네요.]
[뭐...그럭저럭이죠.. 암튼...한잔 하시고 안주거리삼아 들어볼까요?]
난 그가 따라준 잔을 받았다. 단숨에 들이키고, 잠시 고통에 떨곤 입을 열었다.
다행히도 그 때이후, 응철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나는 나대로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조심하였으며, 그는 또 그 대로 학교에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로 볼 기회가 적었다. 한 때가 지나고, 계절은 서서히 늦가을로 접어들어 가고 있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성적표가 나오고 그 다음날에, 옆반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김재훈? 김재훈이라는 애 여기 있지?]
[예? 전데요.]
[잠깐 나좀보자.]
선생이 꺼낸 이야기는 생소했다. 김응철의 며칠째 학교에 나오질 않았던 것이었다. 더불어 내 손에 성적표를 쥐어주며, 나더러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이걸 왜 제가..]
[주소를 보니 같은 동네이던걸. 우리 학교엔 그 동네 사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말이야. 그럼..부탁한다.]
나는 마지못해 성적표를 구겨 넣었다. 젠장젠장젠장..걔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뭔가 꼬일 거라는걸.
우리 동네 사는데가 다 그렇듯, 그의 집도 거의 찌그러져가고 있었다. 여기저기 얼룩진 시멘트 담장에, 고개만 내밀어도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게, 대문 한짝은 떨어져나가 있었다. 우리집과 별반 다를 게 없군...하면서,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꺼내려 할 때였다.
[아 그러니께.....오늘까지 집세를 내야~한당께..]
[아저씨, 전 돈 못내요.]
[아~그렁께? 오늘까졍 내야~한당께.]
[제가 무슨 돈이 있어요 중학생인데...]
응철은 땅주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되야 안되야, 얼렁 돈을 주던가, 아님 방을 빼랑께?]
[아, 맘대로 하쇼. 캬악, 퇫.]
[아따...이놈이...나이도 어린 것이 배짱을 튕그는구마이...집문서를 찾아봐야쓰겄구만?]
그는 허름한 응철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응철은 어디 해볼테면 해보란 듯 마당에 짝다리를 집고 서 있었다. 분위기상 안좋은 것 같아, 나는 슬슬 뒷걸음질쳤다.
[......달그락.]
.......젠장젠장젠장...망할 자갈같으니..
[...? 어? 너?]
[아...안녕..저기...이거 선생님이 갖다주라 하셔서..]
[그으래? 으흠...마침 잘됐다 야 일루 와봐.]
[왜..왜?]
[왜는....좋아서]
하고는 손을 잡아 끌었다.
[자식! 이걸 잘 부탁한다.]
[?]
그는....구깃구깃한 누런색 서류봉투를 손에 쥐어주었다.
.....집문서였다.
[가.]
[....?]
그는 인상을 쓰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가!]
[아따, 집문서를 워따 둔 것이여 암만 찾아봐도 없구마...아? 야! 야! 니 거기 서랑께!! 야! 야 이눔아!!]
[이따 애기에서 봐!]
으다다다다다다!!! 난 뒤도 안돌아보고 정신없이 뛰었다. 흘긋 돌아보니...집주인은 손을 휘두르며 쫒아오고 있었고...응철 그 놈은 여유있게 손까지 흔들고 있었다.
[헉....헉...헉..]
나는 전력 질주해서 집까지 뛰어왔다. 언덕 께에 있는 우리 집까지 뛰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년아!! 나가 죽어라! 그래, 애편네라는 것도 그렇고, 하나밖에 없는 딸년도 잘하는 짓이다 이년!]
[아버지!!! 악!!! 꺄악!!]
이번엔 우리 집이었다. 누나가 뭘 잘못했길래. 나는 서둘러 대문을 박차고 뛰어들어갔다.
[아버지 왜 그래요 또!!]
아버지는 병마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누나 머리채를 붙잡고 흔들고 있었다.
[이놈! 너도 똑같은 놈이야..너도!! 니 누나가..헉..헉..니 누나라는 게..헉....몸 팔고 다니는 거 알고 있었지 이놈!!]
[뭐...뭐라구요?]
[안되요 아버지..엉엉..말하면 안된단 말예요..엉엉]
누나는...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홧병으로 의식 불명이 되었을때도..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도..다니던 학교를 그만 두었을 때도 한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누나의 눈에.....마스카라가 번진 검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아버지 눈은 허옇게 돌아가 있었고, 입에는 침 거품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급기야 소주병을 집어들었다.
[죽어라 이년! 죽어!!!! 에잇!!]
아버지는 소주병을 높이 들더니, 누나를 향해 내리쳤다.
[안돼요!!! 아버지!]
퍽!!!!!!!
[꺄..꺄악!!!!?]
눈앞에 불이 확 튀었다. 산산히 유리조각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우..우에..엑]
쩔그렁...아버지는, 괴상한 신음소리와 함께 깨지고 남은 부분을 힘없이 떨궜다. 그리곤...서서히 앞으로 고꾸라졌다.
[누나...도망가..빨리...가...]
[재..재훈아....다..다시 올께? 응? 알았지?]
[빨리 가아아!!!]
[흑....미안해 재훈아..미안해...미안해..흑..흑흑]
누나는..그렇게 미안하다는 수많은 말을 남기고...마음을 다친 나와...쓰러진 아버지를 놔둔채..
얼굴을 파묻고 언덕을 뛰어내려갔다.
어머니처럼
마지막 뒷모습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는 의식을 잃고 있었다. 미운 사람. 미운 얼굴. 미운 집구석.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버지였다. 나는 조심스레 아버지를 들쳐매고, 방에다 뉘였다. 그리고 서류봉투를 집어들곤 집을 나섰다. 왠지 어지럽고, 몸이 비틀거렸다.
애기는, 우리 동네에는 뒤에 작은 산이 있는데, 우리 동네 사는 사람이라면 왠만큼 아는 곳이 있다. 애기바위라는 작은 바위가 있는데, 거기에 가면 우리 동네는 물론 멀리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나는 어둑해진 산길을 열심히 올라갔다.
[야, 왜이렇게 늦게 왔어 아씨...추워죽겠구만..]
[미안...]
나는 한걸음씩 그를 향해 걸어갔다. 주변이 일렁이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가 화끈거렸다. 그도 바위에서 터벅 내려와 나한테 왔다.
[가지고 왔지? 아...추워 2시간이나 기다렸...어...어어? 야? 너 얼굴에? 머리에?]
[어?]
[피나잖아 너!!! 이런...쓰...야 너 대체 무슨!]
그제서야...나는 얼굴에 엉겨붙은 게 피라는 걸 깨달았다.
...서서히 땅이 나에게 덮쳐왔다.
[.......안됐...네요.]
가게의 주인은, 잔을 만지작거리더니, 한 잔 쭈욱 들이켰다. 빈 잔을 채워 나에게 넘겨 주었다.
[뭐...이젠 그냥 그래요.]
[.......]
[오래된 이야기이니까....오히려 주인장께서 안좋으신거 같은데요? 하하....다른 이야기 할까요?]
[아니요...거기서 어떤 첫사랑이 나올지가..더 궁금해지는데요.]
[글쎄...운명이란거....믿으시나요?]
[음...어쩌다 있는 일이라고 생각은 해요.]
쭈욱....나는 잔을 비우곤 내려놓았다. 그리곤 한장의 사진을 꺼내놓았다.
[...이게 그분?]
[예.]
[잘생겼다...어쩜...지금도 만나고 있나요? 아니 그것보다....]
[우리랑 같은 사람이냐구요?]
[후훗..눈치도 빠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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