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배달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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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심심풀이로 써두었던 거라 요즘 상황과 살짝 안맞을 수 있습니다. ^^;


***

 

일기예보에 열돔 현상 어쩌고 하더니 정말 밤에도 에어콘을 틀지 않고는 지낼 수가 없는 날이다

나는 거실 에어콘을 틀고 소파에 누워 하우스 메이트인 성철에게 문자를 보냈다.


- , 언제 와?

- 지금 들어가는 중. ?

- 출출한데 뭐 좀 사와.

- , 그래? 안 그래도 막 피자시킴. 곧 배달될 거야. 돈은 다 지불했으니 받아만 주삼.

- ㅇㅋ


녀석 행동도 빠르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말에 성철이와 함께 마트에 갔다 오다가 집 앞에 새로 피자집이 생겨서 유심히 봤던 기억이 났다

나는 피자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브랜드까지 따져가며 먹을 정도는 아니라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피자나 햄버거를 유난히 좋아하는 성철은 새로 생긴 집이 요즘 한창 뜨는 피자집이라고 좋아했었다. 


집에 있을 때면 늘 사각팬티에 헐렁한 민소매 티만 입는다. 여름에도 온종일 정장을 입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집에 오면 조금이라도 더 벗어던지고 싶다.


성철은 피자가 곧 배달될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 상태로 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티비를 아무리 돌려봐도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었다. 그렇다고 티비를 끄면 너무 조용할 것 같아서 만만한 오락 프로를 틀어 놓았다. 출연자들이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무척 공허하게 들렸다.


-”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솔로가 된 지도 벌써 3년째이다


마지막으로 사귀던 녀석을 처음 만난 게 6년 전이었으니 꼭 사귄 기간만큼 솔로인 셈이다. 카톡에 아직도 남아 있는 녀석의 사진을 보면 사는 게 정말 무상하다.

 

녀석과 헤어지고 석 달을 내리 괴로워하며 술로 날을 보냈던 나와는 달리, 녀석은 헤어진 지 한 달 만에 나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을 만났다


심지어 보란 듯이 새로 사귄 애인과 알콩달콩 지내는 모습을 카톡 프로필에 올리기까지 했다. 일부러 그런 건지 아니면 행복감에 고취되어 주위에 자랑하고 싶어서 그런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녀석에게는 나와 같이 지냈던 3년이라는 시간이 그리도 의미 없는 것이었나 싶어서 또 성철이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성철이는 내 엉덩이를 걷어차며 지지리 궁상은 그만 떨라고 했다. 너보다 열 살이나 어린 녀석은 보란 듯이 잘 사는 데 왜 너는 이 모양 이 꼴이라며.


에효.”


또 한숨이 나왔다. 그 녀석과 사귈 때는 정말 간, 쓸개를 다 빼주어도 상관없겠다 싶었다. 그만큼 그 녀석이 좋았다.


 한 사람에게 꽂히면 눈이 머는 지랄 맞은 성격 때문에 3년 동안 녀석에게 끌려다니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일방적으로 사랑을 퍼주기만 하던 나는 왠지 억울한 느낌에, 그리고 사실은 그냥 살짝 떠볼 생각에, 녀석에게 헤어지자고 말했고, 녀석은 너무나 쿨하게 오케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그제야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지만 우리 관계는 그걸로 끝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멍청한 짓이 아닐 수 없었다.


혼자 있다 보니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의 어리석음에 다시 머리를 때리며 자책하고 있는데 고맙게도 딩동, 하고 초인종이 울렸다.

 

.”


나는 얼른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내 의식의 흐름이 자학으로 이어지지 않게 끊어준 누군가가 정말 고마웠다. 문을 열자 바깥의 뜨거운 열기가 훅 집안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피자 주문하셨죠?”


문밖에는 피자 배달원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피자를 건네주었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6년 만에 다시 심장이 뛰었다

삼십 대도 이제 중반에 접어들면서 이런 감정은 이제 못 느낄 줄 알았는데!


나이는 이십대 중반? 키가 크고 균형이 잘 잡힌 몸매는 배구 선수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눈


살짝 눈웃음을 짓는 그 눈을 본 순간, 쳐다보기만 하면 돌로 만들어 버린다는 메두사의 눈을 본 것처럼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숨도 쉬지 않고 한참이나 멍하니 피자 배달원을 바라다보았다.


고객님, 죄송한데 이번 달부터 배달료 1,500원이 추가됩니다.”


그가 미안한 듯 웃었지만 나는 그 말의 의미도 모르고 눈도 껌벅이지 않고 넋을 놓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창피하기 짝이 없다. 늘어진 사각팬티에 민소매만 입은 아저씨가 정신줄을 놓고 있었으니.


, 고객님? 배달료 1,500원은 계산이 안 되었습니다.”


배달료를 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허둥지둥 지갑을 찾으러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 . 잠시만요. 더운데 잠깐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집안 에어콘에서 나오는 냉기에 열기를 식히려고 그가 손을 앞으로 뻗고 있었다

나는 얼른 지갑에서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그제야 내가 사각팬티 바람인 것을 깨닫고 입에 주먹을 처박으며 얼른 반바지를 입었다.


여기 2천 원요. 잔돈은 안 주셔도 됩니다.”


내 말에 배달원이 꾸벅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 죄송한데 실례가 안 된다면 물 한 잔만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오늘 땀을 좀 많이 흘렸더니 목이 말라서요.”


그가 미안한 듯 겸연쩍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도 그를 좀 더 붙잡아 두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그럼요. 그러지 말고 신발 벗고 잠깐 올라오세요. 물 한 잔 마시더라도 편하게 마셔요.”


괜찮습니다. 하루종일 뛰어다니느라 땀을 많이 흘려서 신발을 벗었다가는 발 냄새 때문에 뒷감당이 안 될 거예요.”


그가 농담을 하며 씩 웃었다. 그 미소에 심장이 또 쿵 소리 내며 내려앉았다.


 하기야 지금까지 피자뿐만 아니라 짜장면, 족발, 햄버거, 심지어 삼겹살 등 별걸 다 시켜 먹었지만 배달원에게 신발 벗고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얘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이 친구처럼 넉살 좋게 물 한 잔 달라고 하는 경우도 처음이었다.


나는 얼른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서 컵에 따라 건네주었다.


, 저 비염이 있어서 냄새를 잘 못 맡아요. 냄새 때문이라면 괜찮은데. 하하하.”


물컵을 건네주다 그와 손이 맞닿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왠지 그가 손가락으로 내 손을 쓰다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백만 볼트짜리 스파크가 번쩍하고 일더니 손가락을 타고 찌리릿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졌다

그 바람에 헐렁한 사각팬티와 반바지 속에 숨어있던 내 소중이가 불끈, 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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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ㅡ있을듯 하네요..
계속 연재 부탁 드립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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