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雪)처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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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귈래?
어느덧 각조대항 장기자랑이 끝났다. 처음만나 서먹하던 관계가 장기자랑 준비로 많이 풀어져서 장기자랑후 술자리에선 모두들 흥겹게 얘기를 하였다.
"근데 혜미, 넌 당돌한건지? 자신감이 넘치는건지?"
어느새 술이 얼큰 올라온 것처럼 보이는 상철이 형이 혜미를 걸고 넘어가고 있었다.
이미 술이 몇잔 들어갈때 모두의 합의(?)에 의해 우리들은 형, 동생, 오빠의 호칭이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상철이형은 첫인상과 다르게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말과 인상으로 어느새 우리의 우두머리가 돼있었다.
"흥. 당돌하다니......난 대학이란 곳이 이렇게 따분한 사람들이 오는 곳인줄 몰랐지..헤헤"
"따분한 사람?"
슬슬 상철이형과 혜미는 아까 소개시간에 있었던 일들 얘기로 화제를 몰고갔다.
"그렇잖아. 호칭이란게 뭐 겉으로 말하는거고 듣는거고 그런거아냐? 그게 그렇게 중요한건 아니잖아?....사회는 10년 지기라는데..헤헤"
"이런 요 꼬맹이 말하는거봐라....그래 이제부터 그럼 오빠라고 하지말고 맞먹어라..응.."
"호호...정말...아이구 우리 상철이 이쁘기도 해라.."
"하하...형이 못당하겠네"
몇병의 술과 함께 선배들이 각방을 순례하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말이란 따분한 사회얘기와 그리고 TV 뉴스에서나 잠깐씩 들었던 노동가요 그런것들을 불렀다.
"휴....따분하네..우리끼리 놀고 있음 편할텐데...재영오빠 바람쐬러가자"
혜미 또한 이러한 분위기가 싫은지 나에게 살짝 말했다.
"응....그래..그럴까?...근데 상철이형은?"
"치..뭐 상철오빠는 관심이 많은듯한데?.."
관심이 있어보이는게 아니지....상철이 형은 이미 술이 머리까지 올라와 누가 무슨말을 하는지도 모를 지경인듯 보였다.
약간의 걱정(?)을 뒤로하고 혜미와 밖으로 나왔다.
"아..시원하다...."
아직 겨울의 기온이 많이 추운데 술을 먹어서 그런지 춥기보다는 오히려 시원하다고 하는 혜미에 말에 동감했다.
"그래..시원하네..공기도 좋고"
"그렇지... 난 또 강릉이라고 해서 바닷간줄 알았는데....바다보고싶다"
"짜식...낼 바다보고 그런다잖아...참아라"
혜미는 내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뭘 그렇게 쳐다보..뭐 묻었냐?"
"흠....아니"
"짜식 오빠 잘생긴건 알아가지고...왜 오빠가 뽀뽀한번 해 줄까?"
"응....., 자"
내말이 농담인건 아는데 혜미의 행동은 진담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그녀는 나의 말에 얼른 해달라는듯 눈을 감고 입술을 내쪽으로 살짝내밀었다.
"이놈봐라..하하.....됐다. 아직 오빠 나이 한창인데 너한테 코 낄일 일냐?"
".....흠...., 불쌍한 사람 하나 구제해줄라고 했더니 안돼겠군.."
"너나 걱정해라..여자가 그렇게 드세면 남자가 좋아하냐?"
".......내가........드세나?"
"그럼..순진한건 아니지..."
"정말..."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풀이 죽어보였다. 그리곤 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난 그런 분위기 싫어. 참지를 못하지.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먼저 나서주기를 바라는 것도 지쳤고. 여긴 별많네...."
"어...많네..., 그렇다고 내가 혜미가 싫은건 아니야.."
금방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다. 아까 처럼 활짝은 아니어도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며 나에게 말했다.
"정말... 그럼됐어. 오빠만 싫지 않음돼. 오빤 내가 처음 찍었으니까...배신하면 안돼..히히"
"이런...오빠가 찍혔냐?...."
"응 오빠... 아까 버스탈때 부터 찍어놨거든..히히..그리고 ...이건 선물..쪽!!"
"헉.."
볼에 살짝 그녀의 입술이 느껴졌다. 처음만나 만난지 이제 몇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거 넘 빠른거 아냐....아니지 그게 문제가 아니지 지금 내가 당한거잖아...
하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처음 봤을때 순수해 보이던 그녀의 모습은 술이 들어가고 약간의 취기가 오르자 꽤 괜찮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오로지 공부열심히해서 대학을 가자던 나의 결심으로 많은 여자의 유혹(?)을 꿋꿋이 버텼던 내게 처음의 여자였다.
"이놈 술이 많이 취했나 보다...나중에 술깨면 보자.."
"응...술깨면 또 해줄께..히히...오빠...오빤 이제 내꺼다..내가 도장 찍어놨어..히히"
이거 이러다 진짜 코 끼는거아냐?
이렇게 나의 대학생활은 그녀의 만남으로 시작됐다.
# 통보
"어 이제 집에 들어가는 길이야"
"어디갔다가?"
"학교에..."
"학교?....왜?"
"어...만나서 얘기할까 하는데"
"그래 잠깐만...그럼...신촌에서 보자 5시까지 갈께"
"그래 이따봐"
집에 가는길에 생각을 바꿔 그녀에게 얘기를 해주는게 좋을것 같아 그녀를 만나자고 통화를 했다.
군대가는 결정은 전적으로 혼자내렸다. 아직 집에다가 얘기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혜미에게도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얘기하면 화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보다는 정리를 하고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 있었던 것같다.
평일인데도 신촌에는 사람이 북적거렸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혜미랑 자주가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아..예...커피주세요"
주문을 받고 커피가 나왔다.
혜미완 처음 오리엔테이션 이후 자연스럽게 캠퍼스커플이 돼버렸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첨부터 우리가 사귀고 대학에 같이 온줄 알았단다.
혜미의 행동은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상철이형과 혜미, 나 이렇게 셋은 어딜가나-화장실은 빼고- 붙어다니는 사이가 돼버렸다. 특히나 혜미는 언제나 내옆자리에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여자들의 시선(?)을 차단했다.
그렇게 우린 일년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나의 반쪽이라 불려버리게 돼버린것이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 혜미에게 진지하게 사랑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없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려러니 하고 그냥 넘어가버리곤 했던것이다.
그리고 이제 군대가기를 결심하니 혜미와의 관계를 확실히-끝이던 이어지던- 해두고 싶었다.
첫번째 커피 리필이 끝난후 혜미가 커피숍 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오빠.., 뭔일있어? 학교는 왜갔는데? 또 빵구난 과목있어?"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녀는 벌써 몇가지의 질문의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급하기도 하다.. 참 그놈의 성격은 평생가도 그렇게 안변하냐?"
여자의 변신은 무제라고 했던가.....처음봤을 때 촌스러움은 여름방학후 한번의 변신을 하여 나를 깜짝 놀래키더니 이번 겨울방학을 통해 그변신은 한층 화려함까지 더해가고 있었다.
"일단 커피부터 시켜"
"응. 여기여 커피한잔이여"
주문을 받으러 오는 종업원이 채 오기더 전에 혜미는 주문을 끝내버렸다.
"오빠 휴학했다"
"응....응? 왜?"
따가운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는 혜미가 황당하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갑자기 휴학은 왜? 집에 무슨일 생긴거야? 나한테 그런얘기 없었잖아? 왜? 무슨일인데?"
"휴....얘기해줄께...천천히 좀 얘기하자"
일단 혜미를 진정시키고 난 얘기를 이어갔다.
"요즘 오빠가 고민이 많다. 아직 1학년인데 이런 고민들이 웃기긴 한데 그런데..하여튼 그래서 군대나 갔다올라고. 이왕 갈꺼 일찍 갔다가 오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뭐...어디?...다시말해봐"
"좀 흥분 좀하지말고 들어. 군대 갔다온다고. 자원신청했다. 곧 영장 나올꺼 같아"
혜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래서...."
"응...뭐가 그래서야...군대 갔다온다는거지..."
"그래.....그럼..난..뭐야"
"응...뭐가 뭐야...넌 너지.."
순간 혜미가 나를 한번 흘겨봤다. 그리고선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 커피숍에서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커피값을 계산하고 혜미를 뒤따라 달려나갔다. 멀지않은 곳에서 혜미는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혜미 곁까지 뛰어간 난 아무말 없이 뒤따라 걷기만했다.
차라리 화라도 냈으면 편할텐데...혜미는 아무말없이 걷기만 했다.
길건너 Y대 캠퍼스까지 걸어가던 혜미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몸을 천천히 돌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왜 따라와!!"
그동안 혜미가 화낸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이렇듯 내앞에서 소리를 지른 적은 없었던거 같다. 놀란 눈으로 혜미를 쳐다보며 말했다.
"왜그래 혜미야. 어차피 남잔 군대 가는거잖아...."
"내가 지금 오빠 군대 가는거 때문에 화난거야... 난 오빠한테 뭐야? 아무것도 아냐? 내가 오빠한테 이정도 밖에 안돼?"
"음..."
혜미가 지금 어떤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얘기를 선뜻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난 혜미가 내가 군대간사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단정지어버린 후였다.
"왜 아무것도 아냐...오빠 동생이잖아"
"동생...하!....동생...그렇지...동생..그래...알았어 잘갔다와. 됐지 그럼 이만갈께..오빠도 잘가"
뒤돌아서 건물안으로 들어가버리는 혜미를 잡지않았다.
'그래 잘된거야...어차피 내가 군대가 있는 동안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가지고 ....그래...여기서 정리하는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도 가족들이 모두 놀라하며 어머니가 서운해 하셨다.
"그런 결정있으면 먼저 얘기해줬음 좋았지...."
어머니의 옆에서 아버지가 그런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시며 나에게 말했다.
"난 재영이가 무슨 결정을 하던지 믿는다. 니가 갈때라면 갈때겠지....그래..영장은 나왔냐?"
"아녀..아직..내일정도에 병무청에 문의 해볼려구요"
"그래. 날짜 나올땐 바로 얘기해줘라. 너희 어머니도 마음 준비를 해야지"
언제나 아버지는 내편이셨다. 재수하느라 여러모로 걱정을 끼쳐드렸건만 아버지는 항상 내편에서 생각해주시고 나의 결정을 존중해 주셨다.
반면 어머니는 위로 둘인 누나에게는 별 말이 없는 반면 나에겐 항상 어린이 다루듯이 하신다. 아마도 막내이고 아들이라 그런듯했다. 이번 결정도 어머니께선 처음 자식을 군대 보내시는 것이니 마음이 안놓이시는 것같았다.
"따~~~르릉"
"여보세요"
"나쁜자식...!!"
혜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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