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남자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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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고 종로 3가의 지상으로 올라가는 좁은 에스컬레이터 위로 발을 올려놓았다. 


반대편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내려오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위로 살포시 흰 눈이 덮여 있었다. 더러는 머리 위와 어깨 위의 눈을 털어내고 있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두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의 폭설이 사정없이 내리고 있었다. 


주안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출발할 때 내리기 시작한 눈은 이제 세상이 완전히 어두워지면서 본격적으로 지상과의 전면적인 전쟁을 불사하기로 결심한 듯 쏟아져 내렸다. 



그런 그들의 급습에 순식간에 지상은 초토화 되어 있었다.


횡단보도 주변에는 사람들과 차들이 엉키어 서로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고 몇몇은 그런 상황이 즐거운 듯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약속 장소인 치맥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는 패딩을 벗어서 쌓인 눈을 털었다.


“무슨 눈이 이렇게 쏟아지냐?” 그런 나를, 먼저 와서 입구에 앉아 있던 주형이와 주환이가 실실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근데 왜 입구에 앉아 있냐?” 나의 질문에 주형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을 좀 봐라. 자리가 있는지.” 그의 말에 홀을 둘러보니 그래도 꽤나 넓은 홀을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가득 채우고 있었고 빈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연말이라 그런가 보다.”


“그러게.” 내 말에 주환이도 덩달아 홀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는 말했다.


“오늘은 어디를 가도 이럴거야.”



“그래도 여기는 너무 춥다. 사람들이 너무 들락거리고 찬바람도 많이 들어오고....” 내가 불평을 했다.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문도 제대로 닫지 않아서 열려진 문틈으로 얼음송곳 같은 바람이 두툼한 패딩을 뚫고 들어와 등을 서늘하게 했다.


“음.... 그러면....” 주형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갈 곳을 머릿속으로 스캔하기 시작했다.


“아! 거긴 어때?”


“어디?” 나와 주환이가 동시에 물었다.


“거기 거기. 너 저번에 나하고 간 적 있었잖아.” 주형이가 나를 보고 크게 웃었다.


“거기 너도 괜찮다고 했는데. 기억 나? 거기 가는 길에 ‘글래스고우’ 앞에서 너 기웃거리고 했었잖아.”


“아....” 이제 기억이 돌아와 그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기 괜찮았지?” 그가 해맑게 웃으면서 나에게 물었다.


“어. 뭐 인테리어도 산뜻하고 깨끗하고...”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테이블 위에 내려 놓으면서 내가 말했다.


“아르바이트생도 귀엽고 잘 생겼고.....”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다시 한번 그 누우렇게 색이 바랜 ‘글래스고우’ 라는 술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점점 더 가까워지는 그 간판의 윗부분은 눈에 쌓여 마치 흰 모자를 뒤집어 쓴 듯했다. 그리고 마치 외로운 빛을 띠고 있는 듯 나의 시선을 끌었다.


다시 한번 그 낡은 간판 아래에서 발을 멈추고 여전히 바랜 회색의 좁은 문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12월 마지막 토요일이었다.


아저씨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모임은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글래스고우‘에서 하고 있어.’  


“안가?” 그렇게 갑자기 발이 붙어 있는 듯, 멀거니 서 있는 나를 돌아보면서 주형이가 나를불렀다.


시선을 그 회색 문에서 주형이에게 돌렸다.


“저기.....”


“왜?” 주형이와 주환이가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돌아왔다.


“오늘은 여기 한번 들어가보면 안될까?” 


“뭐?” 주형이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오늘 같이 산뜻한 날, 이런 퀴퀴한 곳에 들어가서 아저씨들 사이에서 끼어서 밤을 보내자고? 12월 마지막 토요일 밤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번 웃더니 그가 주환이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한데. 오늘 한번만 들어가보자. 다음부터 가잔 말 안할게.”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 둘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렇게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는데, 한번 들어가보자. 가서 정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나오면 되지 뭐.” 주환이 주형이를 보면서 빙긋 웃어보였다.



문을 열고 좁은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작은 쪽문을 열었다. 홀 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순간 우리에게 몰렸다. 하지만 곧 그들은 시선을 거두고 자신들만의 대화속으로 돌아갔다.


느릿하고 조용한 음악이 홀 안에서 흐르고 있었다.


어색해서 쭈뼛거리면서 나는 한번 홀 안을 둘러보고는 테이블이 길게 늘어져 있는 구석자리 바로 옆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 맘에 드냐?” 주형이가 나를 보면서 어이없다는 웃음을 짓고는 다시 한번 슬며시 홀을 둘러보았다.


나는 긴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슬며시 그렇게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살펴보았다.


“왜, 그쪽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냐?” 주환이가 나를 향해 상체를 기울이고 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한번 피식 웃어보였다. 주형이가 메뉴판을 보고는 그런 나와 주환이에게 묻지도 않고 주문을 했다.



“오늘 신이 온다고 했냐?”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온다고 댓글은 달았더만, 모르지 뭐. 와야 오는 거지.” 다른 남자의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먹고 살기 힘드니 한달에 한번 모이는 것도 쉬운게 아니지.” 또 다른 차분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예상이 맞는 듯 했다. 그들이 바로 아저씨가 예전에 있었던 모임에 온 사람들인 듯 했다.


아저씨가 살아 있었을 때처럼 그들은 여전히 이렇게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모임을 갖고 있었던 듯 했다. 



‘해지는 온다더만.“ 같은 목소리가 말했다.


“해지, 언제 귀국했대?” 다른 목소리가 물었다.


“며칠 됐나봐. 회사 그만두고 프랑스에서 살아보겠다고 그렇게 벼르고 하더니, 그래도 이제는 자리도 잡히고 대충 먹고 살만한가 보더라.”


“걔 애인은 어떻게 하고?”


“같이 갔지. 처음엔 얼마나 힘들었겠냐. 말도 잘 안 통하고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겠지. 그래도 어떻게 버티니까 다 살게 되나 보더라. 오늘 모임에 온다고 했는데, 조금 전에 좀 늦을거라고 전화왔더라고...”



‘아저씨도 그렇게 버텨봤더라면....’ 갑자기 그런 터무니 없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 말대로 버티면 다 살게 되는 것일텐데...


그래서 아저씨도 저 사이에 끼어 앉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라도 그에게, 만약 내 존재가 방해가 된다면 저 쪽 구석에 혼자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기다릴수도 있을 텐데. 가끔 슬며시 고개를 들고 모임속에서 대화를 하는 아저씨를 보면서 한번 ‘씨익’ 웃고는 생맥주잔을 들고 한모금 마시고 또 다시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쓸데없는 연예 가십거리를 뒤져 보면서 시간을 보낼수도 있을텐데....


이곳이 아니더라도, 아저씨를 저 가게 문 앞에서 이 안으로 밀어 넣고는 나는 근처를 기쁜 마음으로 배회할수도 있을텐데.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세상 돌아가는 대화를 하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술 너무 마시지 마세요. 아저씨 무거워서 업고가기 힘들어요.’ 라고 문자를 보낼수도 있을 텐데.


술자리가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다고 해도, 기쁜 마음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를 세면서 다시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손을 잡는 시간을 기다릴수 있을텐데.


갑자기 그의 손을 잡은 느낌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는 오른손으로 슬며시 내 왼손을 쥐어보았다. 역시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공연히 우울해졌다.



“야. 나 말야.” 그 일행중의 누군가의 목소리가 다시 뒤쪽에서 들려왔다.


“어젯밤에 꿈에 건우를 봤다.” 


누군가의 입에서 예상치 못했던 이름이 툭 튀어 나오는것에 놀라 온몸의 신경이 순간 등 뒤로 집중되었다. 두 귀는 쫑긋해지고, 눈앞은 흐려졌다. 마치 모든 나의 촉수가 뒤통수에서 뒤를 향하는 듯 느껴졌다.


“오늘 모임이 있으니 꿈에 나왔나보다.” 다른 넉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아무래도 그랬겠지?” 그가 맞장구를 쳤다.


“걔 생각하면 참 안됐어.”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어?”


“일부러 사고낸거라고?” 다른 목소리가 놀란 듯 물었다.


“그런말은 하지 말고....” 또 다른 목소리가 책망하듯 들려왔다. 


“아니 그 자식이 왜?.” 또 다른 목소리가 물었다.


“헌이가 같이 인천 사니까 가끔 전화통화 하면서 지내다가 건우 사고도 들었나봐. 영안실 갔었는데 거기에 있던 누군가 그러더래. 어렸을때부터 가족들에게 학대받다가 욱하는 마음에 그랬을 거라고. 안 그러면 사고가 날 장소도 아니고, 멀쩡한 직진 길에서 왜 갑자기 가드레일을  받고 고속도로 밖으로 튕겨나가서 차가 몇 번 뒤집어질 정도로 사고를 냈겠냐고. 지나가던 차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는데...”


“혹시 졸음운전은 아니었을까?” 


“본인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거지. 그걸 어떻게 알겠어.”


“살아 있었으면 좀 좋아? 이 좋은 날에?” 털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모여서 사는 얘기도 하고, 서로 얼굴 보면서 같이 시간 보내고, 서로 축하해주고 슬퍼해주고, 그러는 게 사는 거지 뭐. 그게 또 행복인거고....” 여전히 털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 신경은 그들의 말에 가 있으면서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맥주잔을 들고 주형이 커플과 건배를 하고는 입에 대고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영안실에서 누군가 그렇게 숙덕거리는 소리를 들었었다.


아마도 견딜수 없이 많이 힘들었을거라고,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라고.... 


그가 그렇게 힘들었다면,  곁에 있는 나를 두고 떠날 정도로 그렇게 버티기 어려운 일이었다면 이제 그가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저 세상에서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야했던 그에게 나마저도 원망의 말로 짐을 얹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신이 있다면 그렇게 갈 수 밖에 없었던 그를 신의 품 안으로 받아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삶을 살아가던 그를 편안하게 자신의 품 안에 거두고 이제 편안함이 가득한 그런 곳에서 지낼 것이다. 틀림없이..... 


그렇지 않다면 삶이란 것이, 죽음이란 것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저기 해지오네.”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말에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키가 작은 한 남자가 두툼한 패팅을 입고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안경에 온몸 전체가 둥글거리는 그는 마치 굴러다니는 작은 곰 같았다. 


그런 그가 얼굴에 웃음을 띠고는 내 등 뒤의 일행에 합류했다.


“해지,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그렇게 인사를 하는 왁자지껄한 여럿의 목소리가 나의 양쪽 귀를 채웠다.


“그래 다 나왔네?” 그가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는 듯 했다.


“건우가 없네?” 해지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도 건우 얘기 하고 있었어.”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우, 너 빠리로 떠나는 날 죽었어. 교통사고로.....” 


“뭐?” 그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래저래 가족일도 그렇고 해서 혹시 지방에서 고속도로 타고 올라오면서 일부러 사고 낸건 아닌가 하고.....” 누군가의 서글픈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해지라는 사람의 어이없다는 듯이 그의 말을 잘랐다.


“너가 어떻게 알아?”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다.


“공항에서 빠리로 가는 비행기타기 전에 내가 너네들한테 다 전화줬잖아. 안받는 애들은 다 문자 보내고. 근데, 그때 건우한테도 전화를 했었거든.” 여전히 큰 소리로 그가 말을 이었다.


“그날이 금요일이고, 바로 다음날이 우리 모임이었잖아. 그래서 ‘얼굴도 못보고 간다’ 라고 말하니까. 나보고 참 안됐다고 그러는거야. 다음날 모임에서 자기 젊은 애인 소개 시켜 주려고 했다는 거야. 스물 넷 밖에 안 된 젊은 녀석이라고... 자기 지금 너무 너무 행복하다고... 이 세상에서 자기보다 더 행복한 사람 없을거라고 전화에 대고 그러길레 내가 ’지랄하지 말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 그랬거든. 그랬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젊은 애인하고 천년만년 살거라고 그러면서 운전대가 조금 흔들리는게 마음에 안 든다고 진작 카센타에 맡겨 놓았어야 했는데, 바빠진 회사일에 어머님이 갑자기 입원하셔서 뒤처리하느라 시간이 없었다고, 인천 도착하면 차부터 수리 맡긴다고 그랬는데, 그런 놈이 무슨....“



몽롱한 나의 시선에 주형이가 나에게 내민 냅킨이 보였다.


시선을 돌려 바라보는 나를 보면서 녀석이 나의 눈을 가리켰다.


그가 내민 냅킨을 받아쥐고 눈 주위를 한번 문지르고는 맥주잔을 들어서 입에 갖다 대었다. 다시 볼을 흘러내린 눈물이 턱 끝에서 테이블 위로 툭 하고 떨어졌다.


“너 왜 그래?” 이제는 당황해진 얼굴로 주형이가 물었다.


“행복해서 그래.....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 손가락으로 다시 볼을 문질렀다.


“오늘 여기 같이 와 줘서 고마워. 정말  너무 고마워.” 


“그렇게 좋냐?”


나의 말에 주환이가 픽하고 웃었다.


“그래서 내일은, 그 아저씨 만날꺼냐? 아니면 우리랑 같이 놀던지. 영화 보러갈건데 같이 가자.” 


“아냐. 미안한데. 내일은 따로 꼭 만날 사람이 있어.” 


말을 마치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휴대폰을 들었다. 매듭을 지을 일은 빨리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며칠의 말미를 준 올해가 가기전에.... 새해가 오기 전에...



‘미안합니다. 아저씨. 저 아저씨와 안되겠어요’ 문자를 보내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에게서 전화가 올지도 모른다. 건방떨지 말라고 하겠지. 네가 감히 나에게 이런.... 이라고 말하면서 어이없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나는 깨어나 버렸다. 


이제 내가 가야할 방향이 마치 아침의 안개가 걷히듯 그렇게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이 느껴졌다. 


예전의 아저씨가 떠난 후, 나는 번데기로 쌓인 상태로 있었다. 그러나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다시 전진하기 위해서 잠시 내 안에서 변화가 있었을 뿐이었다. 


몇년전에 나를 버린 줄 알았던 그가 돌아와서 나의 딱딱한 고치를 두드렸다. 나의 힘으로는 결코 깨뜨릴 수 없을 줄 알았던 무거운 장막이 그의 뜻밖의 방문으로 사방으로 금이 갔다. 



그가 그렇게 사랑해 준 내 자신을, 이제는 내 스스로가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진정한 나의 삶의 또 다른 페이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할 때라는 그의 목소리가 나의 귓전에서 퍼지는 듯 했다. 



“내일 누굴 만나길래?”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주형이가 물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나의 맥주잔을 들어 건배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


잔을 입에 갖다 대면서도 주형이는 시선을 나에게서 떼지 않고 흘끔거렸다.


“사실, 내가 예전부터 오해하고 원망했던 사람이 있었어. 내일은 가서 마지막으로 고백이나 하려고.... 무지무지 사랑했다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했다고..... 너무 고마웠다고....나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내 자신을 사랑하면서 살겠다고...”


말을 마치고 나는 반이나 남은 맥주를 벌컥거리면서 시원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아저씨 여기 맥주 오백하나 더요!” 잔을 내려놓으면서 나는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입고 있던 패딩을 벗었다. 더 이상 춥지 않았다.


이제 나만의 숨겨 놓았던 날개를 펴야할 때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 아저씨가 마음에 들었던 나의 날개라면 틀림없이 남들에 견줘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들기 시작했다. 


가슴을 펴고 크게 한번 심호흡을 했다. 


곧, 하얀 거품이 피어나는 시원한 맥주가 가득 들어있는 큼직한 잔이 내 앞에 놓여졌다.


나는 손을 뻗어 기쁘게 그 맥주잔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건배를 했다.


영원히 나의 마음속에 남겨질 그의 첫사랑의 기억을 위해서. 또한 그가 찾아준 나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는 마치  잔에 키스라도 하듯이 입술을 대고 그 안의 달콤 쌉싸름한 액체를 맛보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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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formylife" data-toggle="dropdown" title="그리고함께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그리고함께</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다.
서로에 대한 숨결은 함께 하진 못할지라도
영혼이 함께하게 되는 그런.
생각지 못했던 결말의 그림은
신선하면서도 낯설지 않은 따뜻함이 있어서 좋다.
결말이 처음과 연결되면서
둘의 사랑의 깊이를 되새기고 되뇌게 되는
소설이다. 소설 제목, 환상적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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