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의 그림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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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기가 무섭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무슨일 있어?"

"아니, 그런건 아니고 오늘 퇴근 후에 특별한 일 있어?'

"뭐 특별한 일은 아직은 없는데...."

"그럼 오늘 퇴근하고 만나.  다른 약속 잡지말고, 회사 회식있다고 해도 핑계대고 꼭 빠져야돼 알았지?" 

"왜? 무슨일인데?"  갑작스런 그의 말에 부담스러워져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냐. 그냥. 오늘은 꼭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 알았지? 약속만 해."

"그래 알았어"

부장이 부르는 소리에 얼른 대답은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무슨 일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제 서로 만난지 삼개월 남짓 됐으려나 하는 기간 동안, 서로가 어떤 부담을 주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부담되는 말을 하면 정색을 하는 그 였다. 

 

나와 만나기 시작하면서, 어느 날 대화중에 그의 입을 통해서 김포라는 장소가 나왔다. 김포에는 비가온다고..

'김포에는 비가와?' 라는 말에 그는 '응' 하고 대답했다.

"어떻게 알아?"

"아, 그냥 거기 아는 사람이 살아서."

김포라...그냥 거기 아는 사람이라..  생전 질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나였지만, 그와 나의 삶에 전혀 동떨어진 김포라는 장소가 대화중 툭 튀어나온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혹시 거기에 앤 하나 두고 있어?"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좀 서늘한 표정이었다.

"알거 없어.  그리고 우리 사생활은 서로 건드리지 말자. 나 그런질문 받기 싫어."  냉랭한 그의 목소리가 뜻밖이었다.

"알았어"  무심한 척 말을 받았지만,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나는 이런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웠다.

차를 세워놓고 누구냐고 따져야하는 걸까?  쿨 하게 그냥 웃고 지나가는 것일까?

 

그렇게 그와 나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로에서 충분한 개인적인 공간을 남겨주면서, 상대방의 선약을 챙겨주고 넉넉하게 뒷발치에서 서로를 보고 있었다.

그런 그가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또는 회사의 회식자리도 거절하고 자신을 만나야한다는 말에 하루종일 목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답답했다.  혹시 회사에서 짤린거야?  돈이 필요해?

왜 꼭 이럴때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밀려 오는 것인지, 인간이면 다 그런쪽으로 몰아서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부정적인지.

 

"오래 기다렸어?" 커피숍 문을 열고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를 내려다 보면서 태연한척 말을 걸었다.

"어, 아냐. 나도 금방 왔어.  저녁전이지?  그래도 들왔으니 대충 커피한잔 마시고 나가자."  그는 짐짓 무표정을 지으려고 하지만 그 속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안좋은 일은 아닌듯하군'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생겼다.

"오늘이 무슨날인줄 알아?" 그가 자리에 앉은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글쎄.....   혹시 오늘 생일이야?"  나는 약간 놀란듯 물어보았다.  아직 그의 생일을 몰랐다.

"내가 이럴줄 알았어." 그는 그제서야 입을 벌리고 씨익 웃었다.

"오늘이 우리 만난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몰랐지?"

"그래?  근데 미스터 터푸씨 께서 그런것도 챙겨?' 나는 짐짓 의외라는 듯 물었다. 사실 의외였다. 그에게 이런면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럴줄 알고 나만 준비했어."

그는 내 앞 탁자에 그림엽서 한장과 반지하나를 내밀었다.

"선물이 하나 더 있긴 한데, 그건 나중에 헤어질 때 줄께.  그리고 이 반지 선물이다. 나는 미리 끼었어. 여기 봐." 그는 나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내밀며 웃었다.  그의 손가락에 탁자위에 있는 반지와 똑같은 모양의 반지가 끼어져있다.  커플링이었다.

"부담스러우면 안끼어도 돼. 하지만 잃어버리지 말고 꼭 보관해. 약속하지?"

"응? 어..  그래.." 

나, 이 건너편에 앉아있는 녀석 싫지는 않았다. 그럭저럭 무난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감정이 없었다. 그저 외로움을 떨치는데 조금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오랜만에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 자신보다 상대를 더 아껴줄수 있는 사람을 만난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큐피트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녀석인가?  이 쯤 되서는 내 가슴에 사랑의 화살을 한방쯤은 쏴서 맞춰줘야 할 것 아닌가, 내 생전 받아본적 없고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이런것을 이 정도 되는 녀석이 나에게 내밀면, 눈물한방울 정도 흘리면서 감격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열두시가 다 되어서 그를 집까지 바래다 주고 집으로 향하면서도 내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티비를 보면서 좋겠다느니 어쩌니 감탄사를 남발했으면서도 정작 내 자신에게 그런일이 생겼는데, 무감각하고 무신경한 내 자신이 오히려 이해되지가 않았다.

점점 머리가 아파왔다.

어두운 큰 도로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 시간 지나는 차는 나를 빼놓고는 아무도 없었다.  신호등은 빨간색이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한두번 이런것도 아니고, 집에 빨리 가서 눕고 싶었다.

 

"꽝!!"

엑셀을 밟고 잠깐 전진을 했는데 어두운 그 속에 차가 있었다.  낡은 프레스토 승용차가 그 어두움 속에서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고 갑자기 돌진해 온것이었다.  그래도 어쩌겠어. 그는 자신의 신호를 보고 냅따 달린것이고 나는 신호위반이었다.

엔진이 있는 앞부분이 완전히 찌그러진 그 차 안에서 한남자가 뛰쳐나와서 구르기 시작했다. 고통으로 비명을 질렀다. 나는 말짱했다.  내 차도 앞쪽은 많이 나가버렸지만, 몸엔 상처하나 없었다.  차 문을 열고 뛰어 나와서 핸드폰으로 119를 불렀다.

 

경찰서에 들러서 조서를 작성하고 집으로 향했다. ' 그리 심하게 다친것은 아니라네요. 한 일이주 나올거라니까.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거 같습니다'  전화를 받아본 경찰이 나에게 말했다.

보험회사에서 사람이 나와서 집에까지 태워다 주었다.

너무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나를 그는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대놓고 말했다. '왜 그렇게 미련한 짓을 하셨어요. 잘 모르겠다고 하시고, 신호등도 잘 못봤다. 라고 하시면 될 것을. 그리고 날 기다리시지." 라고 그는 책망하듯 나에게 말했다.

 

베란다의 창문을 열고 줄담배를 피웠다.  새벽공기가 서늘했다. 기분이 좋았다.

솔직하면 안되는, 정직해서는 손해보는 세상이 우스워서 한숨이 나왔다.

 

그 다음날 오후에 병문안을 갔다.  괜찮다고 했다. 사람도 나쁜 사람은 아닌듯 보였다.  그의 어머니도 와서 계셨다.  좋은분 같았다.

불편한데 안오셔도 된다고 나와 비슷한 나이인 것 같았는데도 꼬박꼬박 존칭을 썼다.  어쩌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그래도 솔직한 사람 만나서 독박쓰지 않은것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미안하면서 씁쓸했다.

 

퇴근하고 열시가 넘어서 그에게 전화가 왔다. 

"그냥 보고 싶어서 전화한거야." 그가 그렇게 말했다.

"나 사실, 어젯밤에 너 만나고 오다가 교통사고를 냈어."

"뭐?  그래서 괜찮아? 다친덴 없어?"  그의 목소리는 사뭇 놀랜듯 보였다.

"난 괜찮아.  근데, 그런일 당하니까, 네 생각이 나서, 너가 너무 간절하더라." 

사실 그냥 그가 기분좋으라고 한 말이었다. 그에게 해준것이 너무도 없어서 말이라도 좋게 해주고 싶었다.

"기다려 나 지금 간다!"

뭐라고 대꾸도 하기 전에 그는 전화를 끊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반응에 당황해져 있었다. 그냥 걱정된다 조심해라. 내일 보자. 그런 식의 반응을 기대했었다. 

 

약 40분 지나서 핸드폰이 울렸다.

"집 앞이야. 나와봐"

주차장 앞쪽에서 그가 핸드폰을 켜서 빛을 내면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갑자기 나의 두 손을 잡았다.

"괜찮은거야?"

당황한 나는 그의 손을 슬며시 뿌리쳤다.

"사람들 봐."

"다친덴 없어?"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난 괜찮아. 상대방은 병원에 입원했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한걸 보면, 참 나도 질기게 살거 같다."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나 오늘 자고 갈꺼야. 어머니 한테 말씀드려."

내 눈속을 들여다 보면서 그가 짐짓 명령하듯 말했다.

복종하듯이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순간 몸이 긴장 되면서 숨이 막혀왔다.

어둠속에서 그가 나의 허벅지안쪽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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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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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차 사고까지 내고
그 와중에 두 사람이 만나서 또 외박을~~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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