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남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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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차가운 바람이 바닷가의 해변을 돌아서 언덕 위로 불어와 양지바른 곳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나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차가운 바람에 볼 주변과 귓가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갑자기 찾아온 그 돌개바람이 지나간 후에는 다시 나른한 햇볕이 장갑을 낀 손으로 내가 꾹꾹 누르고 있는, 방금 부드러운 흙으로 덮어놓은 작은 무덤 위에 내려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개 한 마리일 뿐인데, 이 추운 날씨에 여기 까지 와서 묻어 주다니, 너도 참 정성이 뻗쳤다.” 땅에 박아 세워놓은 삽의 손잡이에 몸을 기대고 나를 내려다 보면서 주환이 혀를 끌끌찼다.
햇살에 눈이 부셔 실눈을 한 채로 고개를 들어, 어깨너머로 그런 그를 올려다보았다.
“여기까지 와서 땅까지 파 주느라 수고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하는 나를 내려다보며 그가 피식 웃었다.
“추운데 차 안에 들어가서 잠시 앉아서 기다려.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나의 말에 그가 슬며시 삽을 뽑아들고는, 몸을 돌려 길가에 세워놓은 차를 향해서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런 그에게서 다시 고개를 돌려서 방금 만들어 놓은 작은 무덤을 한번 쓰다듬어보았다. 그리고 그 무덤의 왼쪽에 위치한 작은 둔덕위에서 자라고 있는 손바닥만한 작은 잔디위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준비해 놓은 작은 꽃 한묶음을 그 잔디위에 슬며시 올려놓았다.
“저, 다시 왔어요. 아저씨.”
그렇게 조그맣게 말을 꺼내자 갑자기 마음 속 저 아래쪽에서 찡하는 아픔이 몰려와 작은 덩어리 하나가 목 위로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눈물샘도 자극했다. 슬며시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아저씨......” 마치 그가 내 앞에 있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슬그머니 불러보았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차마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아서 다시 작은 둔덕위의 누렇게 변해버린 잔디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아끼던 생명을 방금 내 손으로 묻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
그가 무슨 일이냐고 넌지시 물어본다면 훨씬 편하게 말문이 열릴텐데, 내 귀에는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근처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해변에 부딪치는 소리만 잔잔히 들려올 뿐이었다.
“차돌이가 죽어있었어요. 아저씨.” 용기를 내어서 입 밖으로 그에게 사실을 말했다. 그러자 콧등이 가려워졌다. 슬며시 손을 들어 검지로 코를 긁었다.
“아저씨가 저한테 맡길 때에도 이미 그 녀석은 늙어서 할아버지 였잖아요. 그래도 제 딴에는,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이고 산책도 시켜주고, 얘기도 많이 해주고.......” 내가 그의 개에게 했던 다른 좋은 일들이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들어서 밀려오는 바닷가의 파도로 시선을 돌렸다. 넓게 펼쳐진 바다위로 햇볕이 내리쬐어 넘실거리는 물결위에서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좋아하는 바닷가에서 이렇게 누워 있으니, 이제 아저씨 행복하겠다. 그쵸?”
두 다리를 세워서 양팔로 안고는 무릎위에 턱을 기대고, 그렇게 평화로운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가끔 혼자서 외로웠을 텐데, 이제 차돌이가 옆에 있으니 덜 외롭겠다. ” 고개를 숙이고 다시 놓여있는 꽃다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저씨가 이제 차돌이 돌봐줘야 해요. 산책도 시켜주고.....” 손을 내밀어 꽃다발 아래의 누우런 잔디를 슬며시 문질러 보았다.
“아직 집에 개 껌하고 사료도 많이 남아있는데... 나보다 그래도 아저씨하고 더 같이 있고 싶었나보다. 차돌이가.....” 노란 국화꽃의 이파리를 슬며시 만졌다. 부드러웠다.
“아저씨가 떠난지도 벌써 3년이 지났네...... 이제 아저씨 얼굴을 기억하려고 해도 어떤 때에는 잘 떠오르지도 않는다. 남아 있는 사람들, 잊고 잘 살라고 정을 떼려고 먼저 간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흐릿하게 만든다던데 아저씨가 나한테 그렇게 하나봐.....” 다시 고개를 들어 바다 위에 쏟아져 내려 물결의 표면위에서 반짝거리는 햇볕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아저씨 만나서 내 인생 많이 바뀌었네. 나도 인간도 좀 되고.....” 그렇게 멀거니 바다 위를 바라보다가 그를 처음으로 만났던 기억이 떠 올라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아저씨 첫 인상... 정말 볼품없었는데........” 그렇게 그를 기억하면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나에게 위로라도 하는 듯 기러기 한 무리가 V자 형태로 '끼룩'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내 머리 위를 날아갔다.
군대를 제대하고 2개월 정도 지난 후였다.
언제 군대생활을 했었냐는 듯이 나는 원래의 나로 돌아와서 게으름의 한 가운데를 유영하고 있었다.
쌀쌀한 2월의 중순이었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졸업해서 취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아무 생각이 없이 살고 있었다. 그저 군대생활이 힘들었으니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철부지였다. 더러는 군대를 갔다오면 철이 든다고 하지만, 그 말은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듯 했다. 미래를 바라볼만한 능력이 없었는지, 아니면 현재의 즐거움만 쫒기에도 바쁜 그런 현실의 쾌락에만 충실한 하루살이 였는지 판단이 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런 나는 3월 학기에 복학할 생각도 없었다. 넉넉하게 반년 정도를 놀고 싶은 생각만 마음 속에 가득 차 있었다.
친구들은 복학을 하면서도 시간을 쪼개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노는 것이 지겨워지면 나도 편의점 같은데서 알바라도 하지 뭐.. 라는 얄팍한 생각만 하고 있던 나는 정말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던 듯 싶었다.
그래도 군대생활 고생했다고 제대하자마자 엄마는 나에게 신형 휴대폰을 사주셨다.
게임도 하고, 시티 앱도 깔고, 술번개도 나갔다.
한창 건강한 20대 초반 사내놈의 싱싱한 몸이 아무짓도 못하고 거의 2년을 군대에서 썩는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고통의 시간을 보낸 보상을 받으려고 꾸준히, 활발하게 화끈한 사회생활을 하려고 밤마다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녔다.
하지만, 나는 거의 모든 모임에서 속된말로 팔리질 않았다. 모임에 나온 봐줄만한 녀석들은 죄다 딴 놈에 꽂혀 나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기대감에 모임에 참석했지만, 나중에는 좌절감과 모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모임의 결과로 내가 얻은 것은 만취후에 어딘가에서 어떤 일로 생긴 것인지 몰라도 신형 휴대폰의 한쪽에 깨진 액정뿐이었다.
그래도 딴에는, 목욕을 한 후에 거울에 나의 알몸을 비춰보면서 그런 내 몸매는 봐줄만 하다고 생각했다. 헬스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군대에서 훈련으로 거듭난 나의 단단한 몸매는 거의 완벽하다고 혼자 생각했다. 그런 나의 알몸을 거울속에서 슬며시 에로틱하게 만져 보면서 혼자서 흥분이 되어 아랫도리의 물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곤 했다. 얼굴이야, 딴이 아이돌의 얼굴과는 비교가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스킨과 로션을 바를 때마다 이 정도면 이번 모임에서는 나에게 몇 놈은 필이 꽂힐 것이라고 자신감이 생겼었다. 하지만, 번번이 술번개에서 나를 본 녀석들은 나를 외면했다.
그때의 나는, 그 놈들은 지들의 주제 파악도 못한 채, 모임에서 제일 잘 생겼다고 여겨지는 놈에게 시선이 꽂혀서는 원하면 뭐든지 바치겠다는 표정으로 침을 질질 흘리고 자빠졌다고, 그리고 그 잘나가는 놈은 목에 기브스를 한 것처럼 도도한 표정으로 양 옆으로 앉아서 한여름의 더위에 혀를 빼놓고 핵핵거리는 개새*끼들 처럼 이마 한번을 쓰다듬어주길 바라는 녀석들을 하찮다는 듯이 내려다보며 고개를 돌린다는 유치한 비유를 머릿속으로 하곤 했다.
신기하게도 그런 녀석들을 보면서 까뮈의 이방인이 떠올랐다.
인간이라는 족속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인가. 하지만, 그런 놈들하고 눈이 맞아서 어떻게 한번 해보려고 하는 나는 어떤가.
그런 결과로, 젊음으로 꽉 찬 싱싱하고 괜찮은 몸과 봐줄만한 얼굴을 하고서도 나는 거의 매일 밤을 욕망을 푸는데 내 손을 의지했다.
그리고 어느 날, 견디지 못할 만큼 동물적 발*정이 온 몸을 뒤덮은 날, 나는 어떤 놈이든, 한 놈이라도 걸리기만 한다면 온몸을 불태워버리겠다는 욕정에 사로잡혀서, 부평역 근처의 술집에서 시작한 술번개에 참석을 했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이, 그 '혹시나'도 또한 '역시나'로 끝나버렸고, 그래도 한껏 달아오른 몸으로 집으로 그냥 돌아가기 싫었던 나는 근처에 있는 소주방으로 향했다.
소문으로 들어서 간신이 찾아 들어간 그 소주방은 상당히 작은 곳이었다.
“ㄷ” 자로 생긴 그 소주방의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최근에 알게 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려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서울로 원정 번개를 뛰고 있는 중인 그 녀석에게 그쪽의 물은 어떤지 묻고 싶었다. 물론 그쪽 물이 좋다고 하더라도 이미 지하철은 끊긴 후였고 아마도 버스도 없을 듯 싶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괜찮은 놈을 물어서 인천으로 왔거나 오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금이 간 액정 사이로 간신히 문자를 찍으면서 술집 안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역시 한번 더 시선을 끌 만큼의 외모를 소유한 인간은 보이지 않았고, 그들 또한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피차 술이나 한잔 빨다가 모두 각자의 집으로 사라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어색하고 우중충한 그림과 같은 모습이었다.
문자를 보내면서 소주잔을 잡다가 손에 쥔 휴대폰이 미끄러져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씨*발.” 이젠 휴대폰 액정이 더 이상 어떻게 손댈 수도 없이 박살났을 것을 예상하면서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허리를 숙이면서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누군가의 슬리퍼차림의 발이 그 휴대폰을 힘차게 밟아버렸다.
“이런!” 입 밖으로 짜증난 소리를 확 내뱉으면서 고개를 들어서 올려다보았다.
“아. 이런.” 그도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낡은 회색 츄리닝 차림의 삽십대 후반이나 사십대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후즐근한 옷차림 만큼이나 얼굴이나 몸매도 볼품없었다.
“이를 어쩐다....” 그가 난처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런 그와 내 손에 쥐어진 휴대폰에 교대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던 나는 굳은 얼굴을 하고는 그를 올려다 보았다.
“밟으셔서 액정이 박살났는데. 수리비 주셔야겠는데요.”
내 말에 그가 내 손에 쥐어진 휴대폰의 깨진 액정을 내려다보았다.
“관리 좀 잘하지 좀......” 그가 입맛을 쩝쩝 다셨다.
“얼마예요? 액정 교체하는 게.”
“십삼만원요.”
그가 다시 무슨 말을 꺼내기 전,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 듯 싶었다. 그런 그를 한번 보고는 가능한 화가나고 침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 휴대폰의 깨어진 액정을 슬며시 만져보는 척 해 보였다.
“그럼 피차 잘못이 있으니, 내가 십만원 줄께요. 관리 잘못한 본인이 삼만원 내요.” 그가 대답을 하고는 내가 앉은 모서리의 옆에 앉았다.
“아저씨, 그런게 어디 있어요? 이거 산지 며칠 되지도 않아요. 액정만 깨진게 아니고 아주 제대로 밟으셔서 휴대폰 여기저기 스크래치도 잔뜩 났어요.” 내가 짜증섞인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그래도 그냥 액정 교체 값만 제가 말씀 드리는거예요.”
내 대답에 그가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그런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는 주인에게 소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내가 일부러 밟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애지중지 하는 것이면 관리를 잘했어야지, 바닥에 떨어뜨려서 이런 사고가 나도록 원인 제공한 것은 그쪽 젊은이잖아요. 그리고, 내가 안밟았더라도 액정이 깨졌을 수도 있고.... 그러니 십만원 받아요.” 그가 무표정하게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일 내가 여기 주인장에게 십만원 맡겨 놓을 테니까 나중에 찾아가요.”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주인에게서 건네 받은 소주병의 뚜껑을 따고는 따라주려는 주인의 손을 마다하고 자신의 술잔에 소주를 따랐다.
“지금 주세요.” 내말에 그가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가 아저씨 말을 어떻게 믿어요?”
“허 참.” 내 말에 그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픽 하고 웃었다.
“내가 여기 벌써 몇 년째 단골인데....그리고, 내가 그깟 십만원 떼먹을 사람으로 보여?” 그가 나와 술집 사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왜 반말을 하시고 그래요?” 기막히다는 표정의 그에게 나는 화를 냈다.
“그건 아저씨 사정이고요. 그냥 지금 주세요. 집이 멀어서 내일 여기 또 오기도 힘들어요.”
내 말에 그가 츄리닝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가 손을 뺐다. 그리고 만원짜리 두장을 펴서 마치 파리나 모기를 잡듯, '짝'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 위에 손바닥으로 쳐서 올려놓았다.
“잠도 안오고 그냥 술 한잔 생각나서, 이런 차림으로 잠깐 들른건데, 귀찮아서 지갑도 안들고 나왔다고. 집이 바로 이 근처라...” 그가 말을 멈추고 굳어진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꼭 오늘 받아가려면 기다렸다가 이따가 우리 집에 들러서 받아가던가....”
“..........”
그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의 몰골로 봐서는 그의 말에 그리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그와 나의 대화를 그 자리의 모두가 들은 후였다. 할 일 없이 모여 있던 그들은 우리의 대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닌 척 하면서도 모두 귀를 기울일 터였다. 그래서, 이미 한번 질러본 말을 다시 슬며시 빼는 것도 자존심이 상할 듯 했다.
“그럼 기다렸다가 따라가서 받아갈게요.” 그렇게 말하고는 소주잔을 들어서 입안에 터프하게 한번에 털어 넣었다.
“들어와요.” 그가 자신의 원룸의 현관의 키를 열고 앞장서서 들어가서 불을 켜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여전히 열린 문가에 서서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아님 그럼 그냥 거기 서 있던가.”
방안에서 따뜻한 공기가 빠져나오면서 나의 차가운 볼을 간지럽혔다. 나는 슬며시 안으로 한걸음 들어와서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자신의 지갑을 찾기 시작하는 그를 보면서 좁은 그의 원룸을 돌아보았다. 정리 되지 않은 방 안은 지저분했지만, 생각외로 구질구질한 술병이나 남은 음식 쓰레기 같은것은 보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외국어로 쓰여진 책 몇권이 컴퓨터 책상 옆에 놓여있었고 그 옆에도 두툼한 책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내 마음속에 있던 속물근성이 슬며시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그런 방의 분위기가 그를 뭔가 있어보이게 만들었다. 결코 내가 무시하지 못할 그런 사람으로 그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그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환한 전등불 아래에서 다시 본 그의 얼굴은 술집에서의 흐릿한 조명아래에서와는 달리 그럭저럭 봐줄만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패딩의 주머니를 뒤져보던 그가 다시 몸을 돌려 현관문의 맞은 편에 있는 창문 아래에 놓여있던 가방쪽을 향했다. 등을 나에게 돌리고는, 그는 가방을 집어들기 위해서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의 엉덩이는 꽤 봐줄만 한 듯했다. 옷만 제대로 된 것으로 갈아 입는다면 다른 모습으로 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아예 벗던가....
그가 가방에서 지갑을 찾아서 깨냈다. 그리고는 현금을 세기 시작했다.
사라진 줄 알았던 굶주린 욕정이 스멀거리면서 몰려와서 내 온몸을 휘감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혼자 사시는 거예요?” 마음속에 다른 꿍꿍이가 생기다보니, 흉물스럽게 내 입에서 달착지근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그가 지갑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 그가 만원짜리 묶음을 내밀었다.
돈을 받기 위해서 손을 뻗으면서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선한 눈동자에 담겨있는 눈빛은 우울함을 비추고 있는 듯이 보였다. 갑자기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욕망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나이 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나이 또래의 뽀샤시한 피부의 젊음을 발산하는 남자가 좋다. 내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절대로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온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시간을 끌고 싶었다. 이 방안에 좀 더 있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가능한 천천히 돈을 세기 시작했다.
“맞지?”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막 입을 열려고 했다. 이제 가라는 말을 하려는 듯 보였다.
“저기....” 그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왜? 뭐?” 그가 다시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그가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 속에서 날뛰는 욕정 때문인지 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차가 없어요.”
나의 말에 그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두시 넘었잖아요. 집이 멀어서 집에까지 걸어갈 수도 없고....”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그에게서 무슨 대답을 듣기를 원하는 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냥 긴장으로 온 몸이 굳어져 버렸고, 심장은 쿵쾅거리면서 뛰었다. 숨소리도 거칠어져서 그가 이런 나의 변화를 틀림없이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손만 뻗으면 나를 가질 수 있다는 신호를 은밀하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쉬었다 가라’ 그렇게 말하기를... ‘들어왔다가 첫 차를 타고 가라.’ 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길 바라면서 호소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아무 말도 없이 그런 나를 보던 그가 다시 지갑을 열고는 내게 만원짜리 한장이 들린 손을 내밀었다.
“택시타고 가. 택시비 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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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필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