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남자 6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매력있게 생겼네.”


“고맙습니다.” 그를 향해서 겸연쩍게 한번 웃어보였다. 정말 내가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생각지도 못한 기회로 어떻게 한번 엮어볼까 해서 입바른 말로 칭찬을 해 주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여튼 그는 그렇게 나에게 말을 하고는 소탈하게 웃어 보였다.



시간은 열두시가 넘어가고 적당히 취한 나는 주형, 주환이 커플과 종로3가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사람들로 꽉 찬 포장마차 안에서 옆 테이블과 거의 붙어 앉다시피 한 채로 술을 마시던 중, 주형이가 나에게 옆 테이블의 일행 중에 한 아저씨가 자꾸 곁눈질로 나를 보고 있다고 눈치를 주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돌리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가 나를 보고 웃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주형이 커플과 손에 들고 있던 소주잔을 마주치며 입안에 털어 넣는 순간 그 아저씨가 슬며시 내 옆의 빈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의 손에는 소주병이 들려져 있었다.


당황해하는 내 표정을 보면서도, 그는 방금 비워진 내 술잔을 그의 병이 들린 손으로 슬며시 가리켰다.


“한잔해요.”


황당하고 불편한 표정을 짓는 나와는 달리 주형이 커플은 마치 재미있다는 듯, 그런 나와 그 아저씨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키득거렸다. 


“여기 잠깐 앉아도 되지요?” 그제서야 그가 우리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그럼요.” 여전히 나를 보면서 생글거리는 표정을 지으면서 주형이가 말했다.


그가 내 잔에 소주를 채웠다.


“어떻게 이 잘생긴 친구는 혼자 앉아있나?” 그가 나를 보고는 다시 한번 빙긋 웃었다.


“얘는 아직 애인이 없어요.” 내가 뭐라고 말할 겨를도 없이 주형이가 툭 하고 내뱉고는 짐짓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런......” 그가 쯧쯧하고 혀를 찼다.


“나이는 얼마나 됐어요?” 


“스물 일곱요.” 이번에도 나를 대신해서 주형이가 대답했다. 불편한 느낌에 나는 눈을 둘 곳이 없어서 그저 주형이 커플이 앉아있는 포장마차 뒤쪽의 길로 지나가는 사람들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한참 좋을 때군.”


“저......” 주형이가 다시 입을 열어 그의 주의를 끌었다.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질문을 하고는 주형이는 멋쩍게 웃었다.


“아직 나도 한창이야. 올해 마흔넷이지.” 그가 대답을 하고는 무엇이 그렇게 만족스러운지 호탕하게 웃었다.


‘아저씨도 살아계셨으면 그 나이일텐데....“ 갑자기 아저씨의 생각이 들어 고개를 들고는 옆에 앉아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발그레 해진 얼굴로 흐뭇한 미소를 얼굴에 띠고 나를 흘끔거리면서 쳐다보는 그는 대충 우리 아저씨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 어느 곳에서도 아저씨와 비슷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완전하게 낯선 모습이었다.



“집은 어디고?”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보며 그가 물었다.


“인천이예요.”


“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개봉역 근처에 살아.” 그가 묻지도 않는 대답을 했다. 


“역에서 가까워. 기껏해야 걸어서 뭐 한 10분 정도 떨어진 아파트에 혼자 살아.”


말을 마치고 그가 여전히 나를 바라보면서 흡족하다는 표정으로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서 ‘픽’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럼 나중에 집은 어떻게 가게?” 그가 다시 물었다.


“피시방에..” 남의 일에 자꾸 주책맞게 끼어든다고 생각하면서도 입 밖으로 대답이 나왔다.


“아저씨가 데려다 주실래요?” 내가 입을 떼기가 무섭게 주형이가 또 끼어들었다.


“그거야 어려운 일 아니지만....” 주형이의 말에 그가 은근한 미소를 띠고는 나를 보았다.


그런 주형이에게 슬며시 눈을 흘겨보이면서 테이블 아래로 ‘툭’하고 그의 발을 슬며시 찼다. 


나도 보는 눈이 있다고.... 내가 무슨 팔리지 않는 재고품이라고, 원플러스원처럼 아무나 눈에 띄는 사람에게 떠넘기려는 행동이라니....



그의 일행이 그를 불렀다.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야. 너 뭐하는거야? 나도 눈이라는게 있거든?” 화가 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왜애? 저 아저씨 괜찮지 않아? 외모도 저 일행중에서 그래도 제일 낫고, 옷 입은 스타일도 꽤나 하이 클래스네. 인상도 좋고... 너 나이든 아저씨 스타일 좋아하잖아.”


“누가 아저씨를 좋아해?” 그에게 슬며시 짜증을 냈다.


“어? 너 저 아저씨 또래의 연상 좋아하는거 아니었어? 예전에 만나던 아저씨도 저 사람 정도 되는 거 같던데...”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어쩌다가 인연이 그렇게 된 거였고.” 내가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뭐, 어쩌다 보니 이번에도 저 아저씨와 인연이 될 수도 있는거잖아.” 주형이의 말에 주환이가 킬킬거렸다.


“자 한잔해.” 주형이가 소주병을 들고 나에게 내밀었다.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짜증내지 말고.”


“그래. 그건 주형이 말이 맞아.” 주환이가 맞장구를 쳤다.


“너 누구랑 자본 것도 너무 오래됐잖아. 그것도 너무 오랫동안 팬티 안에서만 썩히면 나중에 정작 필요할 때에는 제구실 못한다 너!” 아군을 만난 주형이는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나를 그렇게 약을 올렸다.


“누가 저 아저씨랑 사귀라냐? 그냥 너 좋다는 사람 접근할 때 한번 풀라는 거지.”


“그럼, 그럼. 불토인데. 또 너 혼자 외롭게, 쓸쓸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어깨 축 처진 채로, 무거운 뒷모습으로 머리 떨구고 멀어지는 너를 우리가 어떻게 볼 수가 있겠냐?” 주환이도 은근한 웃음을 띠고는 주형이를 거들었다.


“아주, 누가 커플 아니랄까봐 쌍으로 지랄을 한다.”



그러는 사이에 옆 테이블로 돌아갔던 그 남자가 다시 슬며시 내 옆의 의자로 돌아와 앉았다.


“근데, 그러면 아직 대학생인가?” 그가 우리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아니요. 졸업하고 다 직장인이예요.” 주형이가 그를 보면서 대답했다.


“그럼, 혹시 독립했어요? 아니면 부모님하고 같이 살아요?” 그가 나를 보고 존댓말과 반말을 오가면서 물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특권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면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툭하고 아무런 질문이나 던져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아직 부모님에게 얹혀 살고 있어요. 혼자 살 능력이 아직 터무니 없이 부족해서요.” 말을 끝내고는 내 자신의 말에 내가 웃음이 나왔다. 


“그럼 부모님이 외박하고 그러면 뭐라고 꾸중하시고 그러지 않아요?” 그가 물었다.


그렇게 원하지 않는 그가 자꾸 끼어들어 대화를 이어가려는 것이 귀찮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친구 커플도 있는 자리였다. 그래서 조용히 대답해주다가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일행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생각지도 않은 다른 대답을 입 밖으로 내게 되었다.   알아서 눈치껏 돌아가라는 뜻이었다.


“예, 별 말씀 안하세요. 그냥 여친하고 그거 하려면 꼭 콘돔 쓰는 거 잊지 말라고 하시길레 지갑에 꼭꼭 두 개씩 갖고 다닌다고 했어요.”   하지만 눈치없는 그는 오히려 환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요.  부모님께 잘 해드려요. 가족이 최고잖아요.” 그가 소주병을 들어 내 잔을 채웠다. 


그런 그에게서 고개를 돌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었다.   주형이가 소주병을 받아들고 그의 빈 잔을 채웠다.


“지금이야 나이 먹어 가면서 부모님 간섭 불편해지고 자신의 인생 찾아가면서 독립할 때 되어가지만, 어렸을 때에는 가족이 최고였잖아요. 부모 그늘에서 안전하고 형제들로부터 사랑받고....” 그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에게서 동의를 구하는 표정을 하면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나의 아저씨와 내 앞의 남자는 공통점이 없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의 그런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아저씨가 예전에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


“집이란 동그라미 위에 있는 한 점이고, 나는 그 선을 따라 달리는 거야. 멀리 도망치고 간신히 안심할 만한 거리라고 생각하면 바로 눈 앞에 나타나는 그런 곳....” 


그런 집에서 벗어나려고 버스에서 뛰어내린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가 중학교 시절 아직 승객이 승차를 하면서 버스요금을 토근으로 내기 바로 전, 여전히 시내버스에 젊은 여성이 차장으로 일하던 때였다고 했다.


이제 버스에서 내리면 곧 집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그는 여전히 달리던 버스의 열리는 뒷 문으로 뛰어내렸다고 했다.

   

죽으려고 했다기 보다는 어떻게든지 집에 가기 싫다는 극단적인 충동의 결과였다고 했다.



그랬던 그와 지금 나의 앞에 앉아 있는 이 남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왔음이 틀림 없었다.


좋은 부모와 가족에서 듬뿍 사랑받고 살아온 사람과 인연을 맺으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런 사람이 정말로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줄 줄 안다고.... 사랑을 주고 받는 것도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가족으로부터 배워가는 것이라고...


“뭘 그렇게 생각해?” 


그의 말이 나를 현실로 끌어 당겼다.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이 아저씨는 살아 왔으리라. 그래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아저씨는 사랑을 주고 받는 것에 익숙하고 자연스러우리라.


“그냥, 예전의 어떤 사람이 생각나서요.” 겸연쩍은 표정을 지우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내 앞에 놓인 술잔을 들었다.


“혹시 사랑했던 사람?” 그가 넌지시 물었다. 하지만 나는 잔에 남아있던 술을 마시고 그냥 헛기침을 한번 해 보였다. 주형이도 그런 나를 보면서 잠자코 술잔만 들고 있었다. 그러자 그 아저씨도 얼굴에 미소만 띠운 채 나를 한번 보고는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개봉역에 있는 현대아파트요.” 그가 택시운전사에게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술은 이렇게 시간을 뛰어넘게 하는, 내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그 중간중간의 다리를 건너는 정도는 생략하게 만드는 그렇게 흐릿하게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 있다. 


나는 그와 같이 택시 안의 뒷자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가 슬며시 손을 뻗어 나의 손을 쥐었다. 그의 그런 접촉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싫은 것도 아니었다. 뿌리치고 싶기도 하고 그런 행동이 또한 불필요한 듯 귀찮기도 했다. 


택시는 달리고 있고 이제 머지 않아 그의 집에 도착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나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그의 옆모습을 흘끗 살펴보았다. 


처음 아저씨를 만난 날 느꼈던 그런, 동물적인 욕정도 생기지 않았다. 그의 손의 감촉은 미지근하고, 이런 현실을 생각하는 나의 감정도 미지근했다.


그가 그의 집에서 나를 원할 때 내가 응하지 않으면 내가 어떤 면으로는 그를 이용하는 것일까? 그의 의도를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집으로 같이 들어간 후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나쁜 놈이 되는 것일까?


택시에서 내리면 그에게 술을 더 사가지고 들어가자고 말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런 멀쩡한 의식을 몽롱하게 만들기 위해서,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의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아직 살아 숨쉬는 나의 아저씨를 잠재우기 위해서.... 


그리고 새로운 아저씨가 나의 몸을 탐할 수 있도록 허락하기 위해서... 또한 나도 나를 두고 먼저 가버린 그 대신에 또 다른 존재를 옆에서 느끼기 위해서...






“얘가 아저씨 강아지예요?”


그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치스 종이라 원래 작아서 그렇지 이 녀석도 벌써 나이 많아. 열 살이 넘었다.” 그의 개를 두 손으로 들어올려 안아보는 나를 보면서 그가 미소를 띠었다.


“개는 대개 몇 살까지 살아요?” 그렇게 나를 보고 웃는 그를 보면서 내가 물었다.


“열서넛까지는 살겠지?” 그가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빙긋 웃었다.


“그럼 이 녀석도 벌써 할아버지네. 사람으로 따지면 아저씨보다도 나이 훨씬 많은 거네요.” 땅에 강아지를 내려놓자 그 녀석은 다시 자신의 주인이라고 꼬리를 흔들면서 아저씨의 발 주변을 맴돌았다.


“이름은 뭐예요?”


“차돌이.”


“차돌맹이처럼 생기긴 했네요.” 말을 마치고 피식 웃었다. 진짜 하얀털을 가진 주먹만한 놈이 졸랑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것이 차돌같았다.


강아지에게서 고개를 들어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점심은 먹었어?”


“방금 먹고 왔어요.”


“을왕리 해수욕장까지 드라이브가서 같이 먹자고 하려고 했는데...”  그가 아쉬운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맛있는 거 사주시면 더 먹을 수 있어요.”


그가 나의 말에 피식 하고 웃고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쌀쌀한 날씨에도 공원에 몇몇 사람들은 조깅 중이었고 두세 커플은 서로의 얼굴을 감상하면서 바퀴벌레 처럼 달라붙어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가 슬며시 나의 손을 잡아 끌었다.


“어디로 가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기꺼이 그의 뒤를 따라서 부지런히 걸었다. 그리고 그는 공원의 한쪽에 있는 공중화장실 건물의 한쪽 외벽의 구석에서 발을 멈췄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과 나무로 주위가 막혀 있었다.


그가 나를 은근한 미소를 띤 얼굴로 바라보고는 슬며시 나의 입술에 키스했다. 떨어지려는 그의 입술을 느끼고는 그의 머리를 꼭 붙잡고 그의 입술을 벌리고 혀를 밀어 넣었다. 그가 손을 내밀어 나의 사타구니를 만졌다. 뻣뻣해진 나의 것이 그의 손아귀 안에서 살아 있다는 표시를 하듯 꿈틀거리면서 더욱 커졌다. 


나도 손을 뻗어 그의 물건을 쥐었다. 그리고 그의 것의 윤곽을 따라 손으로 슬며시 문질렀다. 그의 입안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바지의 지퍼를 슬며시 내리고 손을 집어넣었다.


“여기선 안되지.” 그가 나의 손을 잡았다.


“집으로 가요.” 내가 말했다. 마치 나의 목소리는 애원하는 듯 들렸다.


“차돌이가 못들어가.” 그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피식하고 웃었다.


“내가 사는 원룸은 애완동물 금지거든.” 


“아......”   이대로 멈추기에는 너무 아쉽고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원룸 근처 어디에 이 녀석을 잠시 묶어놓고...”


나의 말에 그가 큭 하고 웃었다. 


“안되지.”


“아아....” 그를 보면서 애가 탄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는 손을 뻗어 그런 나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밤까지 기다려.” 그가 빙긋 웃었다.


“지금도 하고 밤에도 또 해도 되는데..”  나의 말에 그가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그런데 강아지는 어쩐 일로 데리고 나왔어요?”  해안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운전을 하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집에서는 어머니가 산책을 시켜 주는 일이 드물어서 내가 잠시 데리고 나왔다.” 


그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녀석도 나를 닮아서 바다를 아주 좋아해. 해변가에 앉아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녀석도 나처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바다를 바라본다니까.”


그의 터무니 없는 말에 피식하고 웃었다.


“밀려오는 조용한 파도소리는 마치 자장가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와 같아.”


그의 말에 평범하지 않다고 듣던 그의 어머니가 떠올라 고개를 돌려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기였던 시절에는 아마 우리 엄마도 그렇게 나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었을거야.  내 기억에만 없는 것일 뿐이라고 혼자서 생각하고 있지만..”


여전히 시선은 앞으로 둔 채로 그가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내가 언제 찾아가든, 바다는 나를 반겨.  어서오라고. 드넓은 마음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나에게 편하게 쉬라고 말해주거든.  힘든일이 있으면 모두 나에게 넘기라고... 그리고 편해지라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자신에게 약속을 했다.


내가 그의 곁에서 그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의 삶의 기쁨이 되겠다고... 그리고 그의 가슴에 따뜻한 불을 계속 지피겠다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의 남은 일생동안 내가 그의 절대적인 반쪽, 무슨일이 있어도 옆에서 버티면서 지켜줄 그의 반쪽이 되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다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 눈 앞에 탁 트인 넓은 바다가 나타났다.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렇게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나를 느꼈는지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가 말한 것처럼 아무리 그가 도망쳐도 마지막에 닿는 것은 어쩔수없이 그의 가족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를 속박하고 있는 그 터무니없는 ‘가족’과  가장 먼 지점이고, 그는 또 다른 가족인 나와 함께 있다.


슬며시 손을 뻗어 핸들을 쥐고 있는 그의 손 위에 얹었다.


그렇게 나는 그와 함께 있었다.  


그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파도소리가 차장 밖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formylife" data-toggle="dropdown" title="그리고함께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그리고함께</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호흡이 무리없이 치고 빠진다.
장면들 하나하나 그려지는 것이
사실적인 느낌까지 든다.
한때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악몽같은 시절이 있었다 할지라도
'나'가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Home'
그곳에 세상 모두가 나를 비난하는 순간
유일하게 내 편이 되어줄 공간의 사람들
그들이 '가족'임을 나는 믿는다.
그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세상 존재의 이유도 사라진다.

아마도 그런 가족이 아니라면
세상은 아직 '나'에게 비난과 격려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극히 편리한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남은 삶을 마무리하기에는 세상에는 다른 행복들이 넘치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가 행복의 유일함은 아니지 아니던가.

더더욱 행복의 소소함에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