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남자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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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문앞에서 발을 멈추고 ‘PUSH' 라고 쓰여 있는 문 손잡이에 손을 댔다. 하지만 곧 손을 내리고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는 지금 안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목에는 기브스를 하고 얼굴은 빳빳하게 세우고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마치 세상을 모두 가진듯한 표정으로 가끔은 카페안을 돌아보겠지. 그리고 주변에서 도란거리면서 대화를 하고 있는 젊은 이삼십대들을 보면서 생각하겠지. “늬들이 백날 죽어라고 살아도 내 발끝의 때만큼도 따라오기는 힘들것이다‘ 라는 표정으로....
그렇게 상위 클라스의 집안에서 재력과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라온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던 길이 평범한 서민들과는 꽤 달랐을 것이다.
“잠시만요.” 뒤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들의 길을 내가 가로막고 서 있었다. 슬며시 옆으로 비키면서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잠시 후에 또 다른 커플이 그렇게 서 있는 내 앞을 지나쳐서 문 손잡이를 밀고 들어갔다.
싫으면 싫은거고, 그러면 그만 두면 되는 것인데, 그렇게 단순한 일도 결정하지 못하고 그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듯한 내 자신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현재의 나는 시냇물에 떠 있는 나뭇잎 같은 존재라는 것이 옳은 표현일 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뭇잎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 푸르게 빛을 내면서...
그렇게 푸른색의 잎을 넓게 펴고 하늘의 태양을 마주하면서 따스한 햇볕에 일광욕을 하고, 나무줄기에 힘차게 달라붙어 용솟음치는 힘으로 뿌리에서 줄기를 통해 올라오는 사랑을 받아먹어야 한다. 그럼으로서 눈이부시게 푸르른 빛을 띄고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나뭇잎의 존재의 이유이다.
그러나 이제는, 마치 생명을 잃게 되면서 터진 심장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붉은 피로 온 몸이 물든 채로, 그렇게 자신의 의지 없이 흐르는 물 위로 떨어진 나뭇잎처럼, 나는 삶의 목표와 방향을 잃고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이 나의 등을 밀어내는 대로 그저 그렇게 아무 의지도 없이 삶이라는 냇물 위를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저 카페 안에 앉아있는 아저씨가 아니라고 해도 어느 길에서 발에 걸리는 대로 마주치게 되는 그 누구이던지, 인연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기만 하면 지금의 그에게 내가 하는 행동처럼, 그렇게 달라붙게 되어, 그런 관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게 되는 것이다.
왜? 어째서, 언제부터 어딘가에서 내가 그렇게 길을 잃은 것일까?
내가 가는 이 방향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가? 그리고 어디에서 끝이 날까?
슬며시 손으로 ‘PUSH' 라는 글자를 밀었다. 어짜피, 이곳까지 흘러왔고, 또 이 문은 밀고 들어가라고 내 앞에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의 종착역이 바닥을 알 수 없는 폭포의 바닥일지, 아니면 잔잔한 호수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왔네?” 생각했던 대로 그는 카페의 맨 구석에 있는 제일 넓은 소파에 등을 느긋하게 기대고 발을 꼰 채로 앉아있었다. 당당하고 뻣뻣한 그런 표정도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냥 그의 맞은 편 의자에 앉아 가방을 옆 의자위에 올려놓았다.
“왜 부르셨어요?” 나의 조금 퉁명스러운 말투에 그가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
“왜? 바쁘냐?” 그가 물었다.
“아니, 그런건 아니예요.” 일부러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너 제대로 된 양복이나 한 벌 사주려고 불렀다.” 그가 손을 뻗어 테이블 위의 자신의 앞에 놓여있던 커피를 집어들었다.
“내가 어제 백화점에 갔다가 봐 둔 옷이 한 벌 있는데....” 말을 멈추고 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내려놓았다.
“너한테 그럭저럭 어울릴 거 같길레 부른거야.”
“아. 네....” 그저 입안에서 중얼거리는 식의 대답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외모가 받쳐주지 못하면 옷이라도 제대로 입어야지.” 말을 멈추고 그가 피식 하고 웃었다.
“네가 뭐 그 인물로 남한테 어필하고 그럴 정도는 아니잖아?” 그의 표정이 마치 계약직 직원을 바라보는 마트 판매부서의 부장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너 어필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냐?”
이 사람은 이런 식이다.
마치 상대방이 어느 정도까지 참을 수 있는 지 테스트를 해 보는 듯, 유치하고 괴팍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상대의 자존심을 긁고 밟으면서 슬며시 눈치를 보고는 떡 한 덩어리를 던져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을 상대에게 반복한다.
마치 앞에 있는 강아지를 이리저리 골려먹으면서 언제 이 강아지가 자신에게 이빨을 내놓고 으르렁거릴지를 예측하면서 그것을 즐기는 동물학대자와 흡사하다. 많은 다른 젊은 녀석들을 앞에 놓고 자신의 그런 게임을 즐겼겠지. 참을성의 한계를 벗어나게 된 녀석들은 그가 원하던 결과, 화를 내고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를 얻었을 것이다.
자신이 실컷 가지고 놀다가 그 젊은 녀석이 지겨워지면 더욱 더 자존심을 긁으면서 한계점으로 몰아갔겠지. 그러면 그 젊은 녀석은 그가 원하는 대로, 알아서 욕을 한마디 그에게 내뱉고는 자기가 받은 선물을 들고 그의 앞에서 사라졌겠지.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다른 신선한 사냥감을 편안하게 다시 찾아 나서는 것이겠지.
그래, 적당한 시기에 알아서 먼저 떨어져나가 주지 않는 녀석은 그렇게 그가 밀쳐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그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자존심을 긁으면 화를 내줘야 하는데 그런 그를 안됐다는 듯이 바라본다. 그에게 아무 감정이 없는 채로 그저 있을 뿐이다. 그의 곁에 있다는 것이 좋을 것도 없고 싫을 것도 없다. 그냥 그런 인간이려니 하면서 그를 대해왔다.
그럼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 도대체 왜 내가 그 옆에 이렇게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와의 이런 관계가 언제 끝이 날까?
아마도 그런 나에게 지루해져 버린 그가 나에게 ‘그만하자’ 라는 말을 하는 때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나는 그와의 관계에 내 자신이 그런 말을 할 만큼의 의미도 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앞에 앉아있는 이 남자야말로 정말로 외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예전의 아저씨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지독히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 남자는 타인과 정이 드는 것을, 진짜 사랑을 하는 것이 두려워서, 그렇게 잘난 자신의 존재가 그가 그렇게 우습게 여기는 별볼일 없는 그저 몸뚱아리만 젊은 녀석에게서 실연을 당할수도 있다는, 그런 사실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의 자존심이 그런 일은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그 결과로 그는 그렇게 고독의 늪에서 잠겨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앞에 앉아 있는 이 남자만큼 사실 내 자신도 가엾다고 느껴졌다.
열정이 사라진, 무감각한 공기가 나의 내면을 감싸고 있었다. 매일매일의 일상에 젖어서 그 이상을 꿈꾸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감정이 없는 사이보그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내 나이 이제 겨우 스물 일곱.
아무리 내가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차려입고 다녀도 내면의 공허함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속이 텅 비어있는 쇼핑몰의 쇼 윈도우안에 서 있는 젊은 마네킹 처럼 살고 있었다.
“마음에 드냐?” 백화점에서 쇼핑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가 나에게 물었다.
“네.” 차의 앞, 횡단보도 위의 길 한가운데의 허공에 매달려있는 신호등을 바라보았다.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제 곧 색깔이 초록색으로 바뀔 것이다.
“집에 가서 다시 입어봐야지? 백화점 매장에서 입어보는 것하고 또 집에서 입어보는 것하고는 많이 다르니까.” 그의 목소리가 꽤 부드러웠다. 섹스를 하고 싶다는 표시였다. 그래, 그가 이런 고가의 양복도 한 벌 사줬는데, 그까짓, 침대에서 그의 살덩어리를 물고 빨고 해주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울것이 있는가.
신호등이 바뀌고 차는 다시 출발했다.
이 남자도 집에 가서 나와 그것을 할 생각에 지금 그의 사타구니의 그것이 발기되어 있을까?
슬며시 시선을 돌려 운전을 하고 있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역시 내가 사랑했던 그 아저씨가 아니었다. 가슴이 저려왔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누군가에게 정착하고 싶다는 감정을 불러일으켜 준 것이 그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찡해지며 목구멍에서 따뜻한 덩어리가 슬며시 올라오면서 그리움에 젖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것이 그였다. 수많은 시와 소설의 추상적인 사랑이야기가, 그를 만나면서 구체적인 현실이 되었다.
그의 머리카락 끝, 그가 웃을 때 올라가는 입꼬리, 그의 뭉툭한 손 끝, 그가 한 입 베어먹고 남겨놓은 사과까지도 나의 삶에 잊지 못할 의미를 남겨놓았다.
가끔은 그런 그가 사무치게 그리워서 술에 취해 나도 몰래 그가 살던 원룸 근처를 배회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 지 그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런 그를 원망하면서 나는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나의 인생은 그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는데, 그의 인생에는 나는 큰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그의 잔인한 가족 속에 머물러서 내가 파고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듯 했다. 그렇게 나를 보면서 웃어주면서도, 그의 관심은 모두 자신을 학대하던 가족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아이러니였다.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그의 가족의 압박속에서 그의 탈출구는 내가 아니고 죽음이었다.
나에게는 그가 전부였었는데, 그는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요?” 핀잔을 주는 나의 목소리에 그는 힘들게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왔니?” 술에 취해서 헤벌쭉하게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웃어보였다.
그가 손을 뻗어 나의 허리 뒤로 돌려서 나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우리 지민이 엉덩이가 실하기도 하지...”
그런 그의 가방을 들고 그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그가 손을 양복 주머니에 넣더니 지갑을 꺼내서 내게 건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지갑을 받아 술값을 지불했다.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그를 부축해서 집에까지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의 가방을 목에 걸고 그가 앉아있는 의자 앞에 쪼그리고 그에게 등을 내밀었다.
“왜애?” 그가 술 취한 목소리로 물었다.
“업혀요. 아저씨 집에까지 못 걸어가요.” 핀잔을 주듯이 그에게 말했다.
그가 마지못해 슬며시 나의 등위로 몸을 맡겼다. 그의 몸의 무게가 느껴졌다. 허리와 발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옆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술집의 문을 열어주었다.
“아이쿠, 고맙습니다.” 술에 취한 목소리로 아저씨가 그에게 인사를 했다.
“마트에서 술 좀만 더 사가지고 가서 마실까?” 그가 나의 등위에서 말했다.
“아저씨 오늘 너무 많이 마셨어요. 안돼요.” 그의 양쪽 허벅지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더 하면서 짐짓 화가 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쬐끔만... 아주 쬐끔만 더 마시면 안될까?” 그가 다시 아이처럼 칭얼거리듯이 말했다.
“오늘은 그만 마셔요. 더 마시면 아저씨 죽어요.” 힘에 겨워 보폭을 조금씩 줄였다. 그래도 코너를 돌면 이제 그의 원룸이 있는 건물이 눈앞에 나타날 것이었다.
“죽는게 어때서. 사는 것 만큼 힘들라구....” 그가 말을 멈추고 ‘후우우...“ 하고 나의 뒷통수에 대고 술냄새를 뿜어냈다.
“나는 어쩌고요?” 내가 물었다.
“나는 아저씨하고 아직 더 오래 같이 살고 싶은데, 아저씨 그렇게 쉽게 가면 난 어떻게 해요?” 짜증이라기보다는 섭섭한 투로 그에게 말했다.
“..........”
그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볼을 내 목덜미에 얹고는 팔을 돌려 내 목을 끌어안았다.
“무슨 일 있었어요?” 그를 침대에 눕히고 그의 양말을 벗기면서 슬며시 물었다.
“..........”
“잠드신 건 아니죠?”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아니. 잠들지 않았지. 우리 귀염둥이가 왔는데, 어떻게 내가 그냥 잠을 잘수가 있어.” 여전히 그의 목소리는 술에 취해서 발음이 꼬였다. 그의 양말을 방 한쪽 구석에 있는 소쿠리 안에 넣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그의 옆에 슬며시 엎드렸다.
“무슨 일이예요?” 손을 뻗어 그의 입술을 검지로 슬며시 문질렀다.
“별일 아니야.” 그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집에 무슨 일 있었어요?” 잠시 기다리다가 다시 그에게 물었다.
“항상 그렇지 뭐.”
머리를 살며시 그의 어깨 위에 올려놓고 손을 그의 가슴위에 올려놓았다.
“엄마가 갑상선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저런...‘ 그의 말에 다시 고개를 들어 창밖으로 들어오는 흐릿한 빛에 윤곽이 드러나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큰일은 아니야. 예전부터 그러셨어. 계속 관리만 해주면 되는 거야.”
그가 힘들게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 보았다.
’호르몬 수치가 너무 달라지면 가끔 입원을 하셔서 관리를 받으시는거야.”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흐릿한 빛 속에서 그의 얼굴은 더욱 힘들어 보였다. 슬며시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게 다예요?”
아무 말 없이 그가 나를 보고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그게 다 일리가 없었다.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싫은 그런 그의 가족과 40년 동안 살아온 그였다.
그런 가족을 대하는 것에 이제 이골이 난 그는 어지간한 일에는 웃어넘기는 여유까지 생겼을 터였다.
남편과 이혼을 한 그의 큰누나는 조카가 결혼을 하고 2년이 지난 후, 아들과 같이 살겠다고 지방에 사는 아들집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변하지도 않고 없어질리 없는 그 성격으로 인해서 곧 며느리와 대판 싸우고 난 후 집을 나왔다고 했다. 막상 갈 곳이 없어진 그녀는 친정으로 들어왔고 그것이 바로 그가 집을 나와 부평역 근처에 있는 원룸으로 이사를 나와버린 이유였다.
예전에 아저씨와 같이 저녁을 먹는 도중에 그의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집에서 오는 전화는 나와 있는 자리를 피해서 받던 그였지만 식사중이었던 그는 대충 얘기를 하고 끊으려는 생각이었던 듯 했다.
하지만, 그가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맞은편에 앉아있는 나의 귀에까지 날카롭게 박히던 그의 어머니의 비명과 같은 목소리는 나까지도 얼어붙게 만들었었다.
외아들이던 그에게는 결코 그런 어머니와 가족은 도망칠수는 없는, 마치 족쇄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있던 그가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왜요?” 그런 그가 걱정스러워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물좀 마시려고...”
“그냥 달라고 하시지...”
슬그머니 일어나 냉장고를 열고 물병을 꺼내 컵에 따라서 그에게 건넸다.
힘들게 손을 뻗어 컵을 쥐고는 그는 쉬지않고 바닥이 보이도록 물을 들이켰다.
빈잔을 나에게 건네는 그의 눈빛은 마치 절망에 빠진 듯, 우울함만 가득했다.
“아저씨 괜찮아요?”
그가 손을 뻗어 그렇게 조심스럽게 묻는 나의 팔을 잡았다.
“우리 지민이에게 좋은 모습만 많이 보여주고 싶었는데... 한참 어린 녀석, 내가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는데...” 나를 보던 시선을 슬그머니 떨구고 그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 아주 행복해요. 아저씨가 옆에 있어서...”
“........”
“아저씨만 내 옆에 있어주면 돼요.”
“........”
“아저씨가 말 안해도 나 다 알아요. 왜 이렇게 술이 취했는지도...”
그가 나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슬며시 그런 그를 나의 품으로 끌어 안아서 등을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내가 있잖아요. 아저씨에게는 내가 있어요. 내게 아저씨 고통과 슬픔 다 넘겨버려요.”
“겨우 스물 넷 먹은 어린 녀석이...” 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꽉 막힌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아니예요. 아저씨. 내가 거짓말 한거에요. 사실 나는 백년도 넘게 살았어요. 아저씨 만나려고 그렇게 오래 기다린거예요. 그러니 어리지 않아요. 아저씨의 아버지보다도 더 오래 살았어요. 그러니 내 품에서 편히 쉬어요.”
그는 잠시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의 등을 두드리고 어루만졌다.
“우리 아기 힘들어서 아직까지 어떻게 견뎌왔어? 내가 진작 와서 돌봐주었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마치 할머니가 손자를 다독거리듯, 그에게 슬며시 그렇게 말을 했다.
그의 어깨가 슬며시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조금씩 낮은 목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를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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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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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주인공의 언어의 궤적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람에 대한 사랑과 측은지심을
지민을 통해 배우는 시간이다.
어쩌면 작가님의 직간접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담아내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소설이 그저 말초신경을 자극만 하는 재미만을 추구한다면
무슨 의미로 남겠는가. 배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이 작품을 통해 거듭 깨닫게 된다.
작가님 밥 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