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남자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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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에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채로  책상앞에 앉았다.


앞에 놓여있는 작은 거울을 통해서 나의 얼굴이 비스듬히 보였다.   그런 얼굴이 불편해서 손을 뻗어 거울을 돌려버렸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컴퓨터의 전원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멍하니 모니터 화면에 보이는 배경화면을 바라보았다.


“들어가도 되니?”


노크 후에 문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마치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던 듯 마우스 위에 손을 올려놓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문을 빼꼼히 여시고 내가 무엇을 하는 지 한번 살펴 보시고는 방안으로 들어오셨다.


“왜? 뭔데?” 고개를 돌려 겸연쩍은 표정을 하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아들 얼굴 잠깐 보는 것도 이유가 있어야 해?” 나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엄마는 섭섭하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물었다.


“너, 무슨 일 있지?” 훨씬 더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엄마가 물었다.


“일은 무슨... 아무일도 없어.” 다시 시선을 컴퓨터의 모니터로 옮겼다.


“진짜 아무 일 없는 거지?” 여전히 엄마의 목소리를 부드러웠다.


“그렇다니까. 무슨 일 있으면 벌써 엄마나 아빠에게 말 했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내가 대답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엄마가 문 쪽을 향해서 돌아서셨다.



“엄마.” 아무 느낌 없는 목소리로 그런 엄마를 불렀다.


“왜?” 나의 말에 다시 엄마가 나를 돌아보셨다.


“엄마는 왜 나를 이 모양으로 낳았어.” 불평과 원망이 섞인 목소리로 툭하고 내뱉었다.


“네가 어때서?” 엄마의 목소리의 톤이 조금 높아졌다.


“아니, 고등학교때 다른 친구 놈들은, 과외도 거의 안하고 그래도 좋은 대학 가더만, 그리고 또 대학교 다니면서도 학비가 없어서 학자금 대출도 받고 추운겨울에 오토바이로 목숨 걸고 피자배달 알바를 하면서도, 그렇게 살아도 이자도 못 갚게 되어서 ‘연체되면 신용불량자되며 온갖 불이익 받게 된다’는 경고장 받고도 부모님한테 그런 것 받았다는 말도 차마 말 못하고 화장실 들어가서 울기도 하고, 전전긍긍하면서 며칠 밤을 새면서 고민하고...... 그렇게 간신히 졸업하고, 그 다음에도 열심히 사는 친구놈도 있는데.....”


“친구 누구?”


“정식이라고 있어. 걔가 그래.”


“근데?”


“근데, 난 이게 뭐야. 과외란 과외 다 하고도 성적 나빠서 대학 못 갈까봐 엄마, 아빠 속 다 뒤집어 놓고도 후진 삼류대학도 대학이라고 다니면서도 알바는 커녕 맨날 용돈만 뜯어가더니, 졸업하고도 내 인생하나 제대로 살지도 못하고.....” 목이 컥 막혀와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누가 그래? 너가 후진 삼류대학 나왔다고?” 엄마가 큰 소리로 물었다.


“삼류대학이지 뭐. 이름을 대도 아무도 들어보지도 못한 대학, 어디 있는 줄도 모르는 산 좋고 물 좋은 시골동네에....”


“어머머... 얘봐!” 엄마가 나의 말을 끊었다.


“너가 다닌 대학이 왜 삼류대학이야?” 엄마의 말에 고개를 돌려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 대부분 다 봤는데, 너가 간 대학만큼 마음에 드는 곳도 없었어.” 그런 엄마의 말에 내가 피식 하고 웃었다.


“얘봐, 얘봐. 엄마가 지금 농담하는 줄 아니?” 엄마가 나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 놓으셨다.


“인서울이 별거니? 난 내 아들이 들어간 대학, 너 입학식하면서 내가 학교 정문에 서서 그랬다. 우리 귀한 아들 이렇게 좋은 대학에 4년동안 맡길테니 꼭 좀, 잘 좀 부탁드린다고....” 말을 멈추고 손바닥으로 내 등을 툭하고 치셨다.


“절대, 그런 생각하지마. 그런 말 하는 놈 있으면 나한테 끌고 와. 내가 아주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을테니까. 그냥!”


“..........”


“나간다 쉬어.” 다시 한번 어깨를 툭툭 치시고 방을 나가셨다.



그렇게 나를 위해서 학교선생님과 학부모회의에 꼭꼭 참석하시고, 내가 공부하기 싫어할 때마다 동기부여를 해주기 위해서 인터넷에서 출력한 여러 자료를 보관해서 보여주시고, 머리에 좋다는 음식과 키가 크게 해준다는 음식 골라서 식단 짜주시고, 혹시라도 학교에서 왕따라도 당할까봐 친한 친구들 자주 오라고 해서 맛있는 것 만들어주시고, 어쩌다가 몰래 컴퓨터로 게임을 하다가 화장실 가느라 살금살금 거실을 지날때에는 그때까지 안주무시고 계시다가 ‘뭐 필요한것 있니?’라고 내가 고등학교 3년을 다니는 동안 꼬박 그렇게 신경을 써주셨다. 친한 친구들 몇몇은 수시로 그래도 봐줄만 하다는 대학에 벌써 합격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꼭 대학 가야해?’ 라는 말을 해서 엄마의 속을 긁어놓았다.


그랬는데도,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한숨으로 보내셨을 그 시간동안 나에게 찌푸린 얼굴 한번 보이신 기억이 없었다.



아무 이유없이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직까지 살아오면서 무엇인가에 ‘열심히 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것은 해 본적이 없었다.


그저 만사를 께느른한 태도로 귀찮은 듯, 마치 ‘적당히’가 나의 삶의 모토라는 듯이 살아왔다.


그렇게 철이 없다는 핑계로 무책임하게 살아왔으면서도 끝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기댈 곳은 우리집이었고 엄마의 품이었다.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은 독립해서 사는 것에 대한 스릴과 로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항상 그런 것에 회의적이었다. 나는 나의 인생 모든 것에 자신이 없었다. 나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의 능력 밖의 것들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무기력, 무능력하고 무책임했다. 이 내 두 손으로 스스로 이룰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그러려고 노력을 한 적도 없었다.



단지 유일하게 내가 무엇인가 열중했던 것이 바로 과거의 아저씨였다.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동안 나에게 웃어주는 그를 보면서 내가 전혀 쓸모없는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 인해서 다른 누군가가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얼굴에 웃음이 깃들게 할 수 있다는 것,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생전 처음으로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모습도 오래가지 못했다.



아저씨도 그렇게 말을 했었다.


학비가 부족해서 대학 다니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꼬박 두 개씩 했었다고.... 동아리 모임은 커녕 학과의 행사에도 항상 빠져서 선배들로부터 미운털이 박혔었다고... 생존을 위해서 어쩔수 없었다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유학을 꿈꾸었다고 했다.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공부를 했고, 닥치는 대로 알바를 하면서 돈을 모았다고 했다. 물론 터무니 없이 적은 돈이었긴 했지만, 토플시험도 보고, 유타 주립대학에서 입학허가서를 받아 놓기도 했다고 했다. 인류학을 공부하길 꿈꾸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당시 인천 경찰서장인 삼촌을 불렀다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조언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저씨가 유학을 가지 못하게 막도록 부탁했을 것이다.


삼촌은 그를 보자 마자 그랬다고했다. ‘니가 영어를 해봤자, 기본생활영어 몇 마디 하는 거지, 그걸로 무슨 유학을 가냐' 고... 덩달아 온 그의 이모부와 이모들도 거들었다고 했다. ’어중이 떠중이 다 유학가려고 한다‘ 고 ’유학이 무슨 개가 개집 드나들듯 하는 건줄 아나보다‘ 고..

20대 초반이었던 아저씨는 저렇게 나이가 들면 저런식으로 얘기하게 되나보다 하고 그런 그들의 말을 이해하려고 했었다고 했다. 그래서 말 한마디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자신이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더욱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못하게 되더라고 했다. 그게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삼십이 되고 사십이 되어가는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이 아니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진정으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그런 이기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눈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타인을 대하는 것이 어렵고 조심스러워져서 예의를 갖추게 되는 것, 결코 타인이 우습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존중해야 하는 존재로 보게 되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도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면서 홀로서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의 곁에서 있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는 너무 어려서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되지 못하고 오히려 돌보아 주어야 하는 또 하나의 부담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휴대폰에 문자가 왔다는 신호가 울렸다. 슬며시 손을 뻗었다.


‘금요일 밤에 집에 올래? 삼계탕을 같이 끓여먹을까 하는데.’


이 아저씨는 인생을 어떻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겉으로 보이듯이 만만하고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만큼 삶이란 것은 즐거움과 쾌락의 파라다이스라고 여기고 있을까? 그런 그가 자신의 욕망의 배출구로 사용되는 도구일 뿐인 나는 정말로 자존감이란 없는 것일까?





“미안하다. 갑자기 집 앞까지 찾아와서....” 그가 겸연쩍은 미소를 띠우면서 웃었다.


“아니예요. 그런데 아저씨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인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어두운 얼굴 표정은 그런 그를 보는 나까지도 힘들게 했다.


“일이 좀 많아서 그래.” 그가 일부러 표정을 밝게 하려고 크게 웃어보였다.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그는 근처에 아는 분에게 강아지를 맡긴 듯 했다. 하지만 그 사람도 해외로 잠시 여행을 가게 되었다고 그 동안만 차돌이를 맡아달라고 그는 연락을 했다. 그리고 우리 집 근처의 작은 공원으로 차돌이를 데리고 왔다.



“차돌이 안녕.” 강아지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려 가슴에 안았다. 하지만 녀석은 내 품 안에서 불편한지 버둥거렸다.


“이 녀석이 왜 그러지?” 슬며시 녀석을 다시 땅에 내려 놓았다.


“차돌이 그러면 안 돼. 왜 그래?” 아저씨가 손에 들고 있던 목줄을 차돌이의 목에 걸었다.


녀석이 나의 시선을 피해서 아저씨의 발 뒤쪽으로 돌아가서 숨었다.


“녀석아. 그러면 안 돼.” 아저씨가 몸을 굽히고 다시 차돌이를 잡으려는 순간 녀석이 몸을 한번 떨더니 아저씨의 신발위로 쉬야를 해 버렸다.


“아, 이런!” 차돌이를 내려놓고 아저씨는 젖어버린 신발을 내려다 보았다.


“양말까지 젖어버렸네. 이 녀석이 자기 버리고 가는 줄 알고 긴장했나보다.” 아저씨가 나를 한번 흘끗 보고는 피식 하고 웃었다.


“집에 들어가서 양말하고 제 신발 가지고 올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냐. 괜찮아. 출발하기 전에 집에 잠시 들르면 되지, 뭐.”


“아니예요. 어떻게 그렇게 하고 가요? 기다리세요.” 나는 그를 한번 돌아보고는 집을 향해 뛰었다.



“제가 차돌이 잘 돌볼게요. 걱정 마세요.” 벤치에 앉아서 양말과 신발을 갈아신는 아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래 고맙다. 이웃집분이 싱가폴에서 이번 주말에 온댔으니까 토요일까지만 맡아 줘. 미안하다.”


“아니예요. 내가 강아지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발치에서 잔디의 풀과 뿌리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고 있는 차돌이를 보면서 일부러 크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나도 내일 지방으로 출장 내려갔다가 금요일에 저녁에 올라올거야. 집에 도착해서 전화할게.” 그가 벤치에서 일어서면서 땅에 놓여있던 젖은 운동화를 집어들었다.


“이리주세요.” 얼른 그의 손에서 그의 운동화를 빼앗아 들었다.


“집이 바로 여긴데 제가 깨끗하게 빨아드릴게요.”


“그냥 내가 가져가서 운동화 세탁소에 맡기면 되는데.” 그가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제가 더 깨끗하게 빨아요. 얼마나 잘 빠는지 아저씨도 잘 아시면서....” 일부러 짓궂은 말장난을 하면서 그를 보았다. 그가 피식 하고 웃어보였다.


“고맙다. 차돌이 좀 잘 부탁할게. 그럼 너만 믿는다.” 그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는 손을 뻗어 내 볼을 한번 만졌다.

 

“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 따라가려는 차돌이를 두 손으로 붙잡아 가슴에 안았다. 여전히 녀석은 낑낑거리면서 버둥거렸다.


그런 그와 나를 보고 한번 웃어보이고는 아저씨는 차의 운전석 문을 열었다. 허리를 숙여 조수석의 창문을 통해서 운전석에 앉은 그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피곤하면 많이 쉬고 운전해요.”


“그래. 금요일 밤에 전화할게.“ 크게 웃어보이면서 그는 나와 강아지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세시에 끝나는 금요일 마지막 수업인 심리학개론이 끝나갈 무렵 아저씨에게서 이제 출발한다는 문자가 왔다. 아저씨 어머님의 간병인이 더 못 버티고 그만두겠다고 연락이 와서 급하게 병원부터 들렀다가 병원일 다 본 후에 연락하겠다는 문자였다. 그가 혹시라도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중에 내 문자를 받아서 확인이라도 할까봐 답문자를 보내고 싶은 생각을 참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통학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와서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왔다.


아저씨에게 돌려주기 전에 차돌이를 깨끗하게 목욕을 시키고 빗질을 해서 잘 돌봐주었다는 인상을 주어야 했다. 아저씨의 양말과 신발도 정성들여 빨아서 베란다에 널어 놓았는데, 아마도 바삭바삭하게 말랐을 것이었다.

 

저녁을 먹고 방에서 컴퓨터로 다운받은 영화를 보면서 휴대폰을 손에 들고, 울리지도 않고 문자신호도 오지 않는 액정화면을 5분이 멀다하고 확인을 했다.

 

새 간병인을 여기저기 연락해서 찾아봐야 하는 일이 그렇게 쉽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자를 보낼까 생각이 들었지만, 어머니와 또는 그의 가족이 모두 다 함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그에게 문자를 보냄으로서 혹시라도 그를 당황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연락이 오지 않는 그의 전화를 기다리면서 밤 늦게 집 앞으로 나가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차돌이를 품에 안고 오른손으로는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서성거렸다.


여전히 그에게서는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 나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그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순간 생각이 드는 것은 그와 그의 어머니 또는 가족들과의 불화였다. 또 어떤 이유로 그가 휴대폰까지 꺼 놓을 정도로 힘든 상황으로 가족들이 그를 몰아넣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문자는 한번 좀 주지....전화를 한통 주거나...” 못내 아쉬워서 느릿한 걸음으로 공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한숨을 쉬었다.



두시 반 넘도록 뒤치락거리다가 간신히 잠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악몽으로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6시 반이었다.


휴대폰을 찾았다. 여전히 아무런 전화나 문자가 온 곳이 없었다. 헛된 희망을 주는 그런 친구로부터의 바라지 않는 문자 같은 것도 없었다. 내 휴대폰은 그렇게 너무나 조용하게 마치 잠이든 듯이 있었다.


슬며시 방문을 빼꼼히 여니 기다렸다는 듯이 거실의 구석에 누워있던 차돌이가 방안으로 뛰어 들어와서 방바닥에 모로 누워있는 내 가슴과 목을 파고 들었다. 녀석의 털이 빠져 한두가닥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간신히 입술에 붙은 털을 떼어냈다.


“야. 니 주인은 도대체 어디 있길래, 연락을 안하는거냐?” 웅크리고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있는 녀석에게 물었다.


“너도 모르냐?” 손을 들어 녀석의 하얀 털을 쓰다듬었다.



점심을 먹고 한시가 넘은 시간까지도 그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병원에 있지 않다면 그가 있을 곳은 아마도 부평에 있는 그의 원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에 차돌이는 집에 두고 부지런히 출발을 했다.



원룸은 비어있었다.


혹시 아저씨가 잠시 나갔거나, 곧 올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저씨의 침대에 걸터 앉아서 휴대폰을 꺼냈다. 슈퍼 세일한다는 광고메일이 한 개, 조별로 하는 과제물 때문에 같은 과 친구에게서 온 건조한 문자 한 개를 빼고는 여전히 아저씨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슬그머니 아저씨의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아저씨의 냄새가 배어있는 베개를 품에 안고 쪼그리고 누웠다.


“우리 아저씨는 어디 있나요?” 입을 열고 조그맣게 허공에 대고 물었다.


“건우야 방황하지 말고 집에 들어와라. 젊고 잘생긴 애인이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말을 끝내고 피식하고 웃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왜 그는 연락도 없이 휴대폰은 꺼 놓은 채로 어디에 있는 것일까?



창밖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꺼져 있는 그의 휴대폰을 확인 하고 그의 원룸을 나섰다.



1층의 경비실을 지나치다가 관리 아저씨가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망설일 틈도 없이 유리문을 노크했다.


“어! 204호 사는 양반 아는 동생이지?” 그가 나를 보고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예, 근데 혹시 못 보셨나요? 연락이 안되어서요.” 슬며시 그에게 물었다.


“아니, 연락 못 받았어?” 그가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예? 무슨......”


“연락 못 받았나보네. 아이고, 어제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서 204호 사는 양반이 죽었대.”


“네?” 그의 말에 머릿속이 몽롱해졌다.


“소지품 확인하다가 여기 주소가 나와서 확인 왔다고 어제 밤 늦게 경찰 두 명이 왔다갔어.”


“.........”


“아니 어쩌다 그랬대 그래? 연락 못 받은 거야?”


“아저씨가 잘못 아신거 아니예요? 204호 우리 아저씨가 확실해요?” 이제야 멍했던 머리가 제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그가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204호 우리 아저씨가 맞아요? 아니죠?” 손을 내밀어 그의 팔을 붙잡았다.


“다른 사람하고 착각하시는거 아니예요?” 그의 표정이 미안하다는 듯, 안타깝다는 듯 변해가고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가 잘못 아시는 거죠? 다시 한번 확인해줘 보세요.” 그의 팔을 잡고 그에게 사정을 했다.


“신남동병원에 있대. 아마 영안실에 있을 건데 한번 가봐.” 그가 측은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의 말에 슬며시 그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돌아섰다.



문을 열고 몇 걸음 걸어 나왔다. 주차장에 차들이 내 앞길을 막았다. 마치 가지 말란듯이, 그곳에 나의 아저씨가 누워있을 리가 없다는 듯이, 관리 아저씨가 잘못 알고 있다는 듯이...


눈앞이 보이지 않고 혼미해져서 세워져 있는 차의 옆면에 손을 짚어 기대었다.



곧 눈앞에 차들이 사라지고 벽지와 같은 동그란 패턴의 무늬들이 눈앞에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학생! 학생!” 아저씨의 목소리가 멀리서 어렴풋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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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mulan" data-toggle="dropdown" title="hotaru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hotaru</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re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누군가를 떠나 보낸다는건 참 힘든 일이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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