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숲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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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모니터에서 나오는 빛이 흐릿하게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멍하니 그 모니터 속의 초록의 초원과 푸르스름한 하늘의 배경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휴대폰의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 난데, 너 혹시 이번 주말에 무슨 할 일 있냐?” 떠들썩한 사람들의 소리속에서 민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특별한 일은 없는데 왜?”

 

토요일 밤에 술 한잔 하자고.” 이미 술 한잔을 걸친 듯, 적당하게 기분 좋아진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본지 좀 됐잖아. 너네 둘만 알콩달콩 재미있게 놀지 말고 나도 늬네 얼굴도 좀 보면서 살자.”

 

소현과 만난 이후,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나는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그래서 순간 머릿속에서 거절할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난 괜찮은데 종현이가 어떨지 모르겠다. 요새 일이 너무 많아서 몇 주째 청주에서 못 올라오고 있어.”

 

이번 주말엔 온다면서! 좀 전에 종현이한테 먼저 전화 해봤거든?”

 

“.........”

 

다른 이유라도 생각해 내서 거절하고 싶었다.

 

특별히 할 일은 없었지만, 주말을 조용히 보내고 싶었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 마냥 아무생각 하지 않고 죽은 듯이 있고 싶었다.

 

 

하지만, 민호의 소개로 지금의 종현이를 만나게 된 것이고, 또 그에게 한번 거하게 쏜다고 몇 번을 약속을 해 왔던 터였다. 또 다른 핑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양심에 걸렸다.

 

! 토요일에 보는거지? 왜 대답이 없어!?” 그가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알았어. 종로에서 볼거지? 어디로 갈까?”

 

얼마전에 렘브란트라는 데가 생겼던데 거기 아직은 물도 좋고 새로 생긴데라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산뜻해. 5번 출구에서 나와서 둘러보면 보여. 2층이다. 시간은 여덟시 괜찮지?”

 

그래. 그럼 그때보자.”

 

 

 

전화를 끊고 몸을 일으켜 방의 불을 켰다.

 

그제서야 퇴근 후에 집에 와서 아직도 옷도 갈아 입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지의 벨트를 풀고 느릿느릿 지퍼를 내렸다.

 

 

책상위의 모니터 옆에 여전히 그녀에게 받아놓은 봉투가 놓여있었다.

 

 

 

 

그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서 있는 내내 손이 떨렸었다. 봉투를 열어서 그 내용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만큼, 그 안에서 내가 읽게 될 내용이 어떤것일지 몰라서 또한 몹시 두려웠다.

 

내 손안에 있는 그 노란 봉투는 마치 사람들이 말하는 판도라의 상자마냥 느껴졌다.

 

이 안에 그가 써 놓은 글 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 혹은 사람들의 이름들이 들어있을지, 혹은 나에 대한 감정이 적혀 있을지. 아니면 나와 동거하는 그 동안에도 다른 누구를 만나서 나에게 했던 것 처럼, 사랑한다고 속삭이면서 작업을 걸었던 내용이 쓰여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나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는 않은 지 그녀의 표정으로는 알 수 없었다.

만일 나의 이름이 있었다면 그녀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가지 않았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또한 순간순간 나를 응시하던 그녀의 눈빛은 나의 그런 예상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 싶었다.

 

 

이미 그는 나에게는 과거에만 존재하기에 그가 쓴 그 글 속에 내가 있던지 아니면 다른 어떤 내용이 적혀있던지 이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도 차마 나는 그 봉투를 열어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윤호에게 연락을 해서 그 봉투를 돌려 줄 생각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의 연인이라는 존재에서 이제는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은 두려움과 민폐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멍하니 그 봉투를 보고 있을 때 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종현이었다.

 

민호한테서 연락 받았지?”

 

, 방금 전화 했던데....”

 

미안... 얼떨결에 시간 괜찮다고 말해 버렸네. 너에게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데.....” 마치 나의 눈치를 보는 듯 그가 말끝을 흐렸다.

 

괜찮아. 같이 보지 뭐. 만난지도 오래됐고....”

 

그래..다행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훨씬 밝아져 있었다.

 

나 아직 일이 남아서 더 있어야 해. 너 피곤할 건데 편하게 쉬다가 먼저 자.”

 

그래. 고생하구. 일 끝나면 문자나 남겨줘.” 말을 끝내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여기다!”

 

렘브란트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민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나의 시야에 그와 함께 앉아있는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다가가서 민호의 옆자리에 앉자 민호가 그를 소개했다.

 

너 처음보지? 서현이 형이야.”

 

누구?”

 

윤호네 아버지 운전기사 하고 있어요.” 민호가 뭐라고 설명하기 전에 그가 나를 보면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 그제서야 그 이름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랬었지, 한 끝발 한다는 윤호네 아버지의 운전기사.... 그를 보고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슬며시 고개를 굽혀 인사를 했다.

 

, 좀 화장실에.....” 나에게 답례인사를 한 후, 그가 민호와 나를 한번 돌아보고 일어났다.

 

      

 

그가 홀에서 사라진 후, 민호가 나에게 얼굴을 돌렸다.

 

. 미안하다. 하필 요 앞에서 마주쳤는데, 같이 합석해서 한잔해도 되냐고 묻는데 안된다고 할 수가 있어야지....” 그가 피쳐를 들고 나의 맥주잔을 채우며 말했다.

 

괜찮아. 술 한잔 같이 하는 건데 뭐.”

 

종현이는?” 내 말에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가 물었다.

 

지금 오고 있는 중이야. 이삼십분 안에 도착 한댔어.” 잔을 들어 그의 잔에 슬며시 대면서 말했다.

 

그래. 잘됐다. 너네 둘이 잘 지내는 거지?”

 

그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 지내. 성격도 잘 맞고.. 종현이가 나에게 또 다 맞쳐줘서...”

 

그럼 누가 소개 시켜준건데.” 그가 크게 웃었다.

 

근데, 거리가 멀어진 게 좀 흠이다. 계속 가까이 지낼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텐데.”

 

주말마다 보는 것도 좋아. 새롭기도 하고 지루해 할 틈도 없고.” 어깨를 으쓱 해보이면서 내가 덧붙였다.

 

그리고, 나도 청주쪽으로 직장을 옮겨볼까 생각도 하고 있고....”

 

그런 나의 말에 녀석이 놀라 입을 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 정도로 발전했을 줄은 몰랐는걸. 하긴 '정말 내 인연이다라고 느껴지면 그만큼 또 내가 노력을 해야지. 여튼 대단하다.” 그가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그때, 서현이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그가 자리에 앉는 순간,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그를 통해서 소현이 준 봉투를 윤호에게 전달하면 되는 것이었다. 일이 풀리려면 이렇게 또 쉽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불청객으로 여겨졌던 서현의 존재가 며칠동안 고민하던 일을 해결해줄 구세주로 여겨졌다.

 

......” 그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 그가 나를 마주보았다.

 

혹시 아직.... 윤호네 아버님과 일하시는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아 네. 배운 게 도둑질 이라고 아직 그 집에 붙어있어요.” 그가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뭐 대충 민호에게 들으셨을테지만요. 그치?” 그가 나에게서 민호에게 얼굴을 돌렸다.

 

어쩌다 보니 말하게 됐어요. . 근데 별말 아니고요. 얘 나하고 친하기도 하지만 착하고요, ......”

 

됐어. 괜찮아. 별것도 아닌데 뭐.” 서현이 다시 민호에게서 나에게 고개를 돌려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왜요? 뭐 궁금하신거 있어요?” 그가 물었다.

 

아뇨. 궁금하다기 보다는.... 사실..”


뭔데요?”

 

제가 윤호에게 줘야 할 서류가 좀 있는데..... 그것 좀 대신...”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말을 멈추고 머뭇거렸다.

 

전달해달라고요?‘

 

. 그래주시면....” 말끝을 흐리고는 그를 보고 한번 겸연쩍게 웃어보였다.

 

뭐 어려울건 없구요. 그러면 언제 제게 그거 주실건데요?‘

 

혹시....” 그의 표정을 살피며 내가 대답했다.

 

내일 괜찮으신가요? 내일 밤에 종현이 배웅하고 나서 제가 한잔 사드리면서 건네 드릴게요. 9시 경 즈음에....”

 

예 그럼 그렇게 하지요.” 그가 대답했다.

 

 

 

 

... ”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맥주잔에 시선을 돌리던 그가 나의 머뭇거리는 말에 다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이도 저희보다 두 살 많으시다고 들었는데, 반말 하시는게 저도 편하고......형이라고 부를게요.”

 

그럼 그럴까?” 그가 한바탕 크게 웃었다.

 

잘 모르는 그라고 해도,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구세주에게 공손하게 존댓말하며 반말 듣는것이 무슨 큰일인가. 나는 그의 존재만으로도 어깨에 올려놓았던 큰 바위하나를 치운 듯 기분이 좋아졌다.

 

    

 

화장실에 갔다 온 사이에 종현이 도착해 있었다. 자리로 걸어오는 나를 보더니 그가 밝게 웃으면서 한손을 들고 나를 맞았다.

 

그의 손을 잡고 그 옆에 앉았다. 종현이 슬며시 손을 들어 내 허벅지 위에 얹고는 슬며시 한번 쓰다듬었다.

 

둘이 무척 좋아보이네.” 서현이 종현과 나를 보면서 웃음 지었다.

 

....” 그렇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종현과 눈을 맞추고 웃었다.

 

사귄지는 얼마나 됐지?‘ 서현이 물었다.

 

몇 개월 됐어요.” 종현이 대답했다.

 

작년 11월에 만나기 시작했어요.” 내가 손가락을 굽혀보면서 계산하는 흉내를 내고는 서현을 보았다.

 

그렇군.” 그가 뭔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그에게 나는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 시켜주고 싶었다. 그러면 틀림없이 그는 윤호에게 가서 말할 것이었다. ‘너 없이도 걔 행복하더라하고 말이다.

 

종현이 따라서 청주로 갈 계획이예요.” 내말에 종현이 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정말?” 그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럼, 정말이지. 가능한 빨리 가고 싶다. 너하고 따로 이렇게 사는거 너무 외롭다. 항상 같이 있으면 좋을텐데.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한다고.” 달착지근한 목소리를 내면서 종현을 보고는 슬며시 미소지었다.

 

그럼 나야 대환영이지. 매일 네 얼굴 보면서 사는게 내 꿈인데...” 입이 귀에 걸린채로 종현이 나를 끌어당겨 나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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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감정의 연결고리를 따라가다보면
먹먹해지는 이유는 무얼까?
나를 속이는 것이 그를 위한 길이라서 행복한 걸까?
자꾸만 질문들이 떠오르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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