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숲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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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한 기분에 술 한잔 하고 싶어 종로3가에서 내렸다.

 

 

멀티플렉스영화관과 금은방이 들어차 있는 건물앞의 공터에서 걸음을 멈추어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하늘은 나의 마음을 비추는 듯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불쾌한 어두움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토요일 밤, 우울한 상태로 집안에서 구질구질하게 혼자서 소주한잔이나 기울이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주 화요일의 납품 날짜에 맞추느라고 주말에 꼼짝마라고 지난밤 종현이 전화를 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가득했지만, 그런 것을 알면서도 내 마음 한켠에서는 혹시 나의 미적지근한 행동과 말 때문에 그가 불편함은 느낀것은 아닌 지, 마음에 상처를 받아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손이 가는대로 휴대폰의 전화목록을 넘기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미리 전화하지.....” 내 전화를 받는 민호는 미안한 말투였지만 인생이 즐겁다는 목소리였다.

 

, 지금 누구랑 제부도 놀러왔어. 바다 구경한다고....” 말을 멈추고 그는 크게 웃었다.

 

야이.. 하지마앙.” 누군가 그에게 신체적인 장난을 치는 듯 그는 갑작스럽게 교태를 부렸다.

 

그가 아닌 타인의 목소리도 휴대폰을 따라 내 귀에 들려왔다.

 

누구냐? 너 혹시 경민이랑 사귀냐?” 머릿속에 떠오르는게 경민이라서 입 밖으로 갑자기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야이! 내가 미쳤냐?“ 그의 정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거덩?!”

 

그럼 누구?” 내가 은근히 짓궂은 투로 슬며시 물었다.

 

나중에 보여줄게. ! ! 끊자. 짐 형님 바쁘다!” 행복해 죽겠다는 투로 그가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렇게 종로3가에서 혼자서 배회하다 보니 그렇게 익숙한 거리가 왠지 낯설어 보였다.

 

언제든지 이곳에 오면 여럿이서 히히덕 거리면서 돌아다니곤 했는데, 어느 순간 혼자가 되어서 순식간에 갈 곳없이 방황하는 처지가 된 내 자신도 또한 낯설었다.

 

골목을 지나 지하철 5호선이 연결되는 큰 길로 빠져나왔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포장마차에는 좀 이른 시간인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길을 따라 느리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슬며시 둘러보았다. 모두 무슨 그런 즐거운 일이 있는지, 얼굴에 미소와 웃음이 끊기질 않고 있었다. 그들 각자의 삶의 향기가 마치 그들 개개인의 목소리의 다름만큼 여러가지 색깔로 피어올라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그 길을 나는 아무런 빛을 토해내지 못하고 느릿하게 걸었다.

 

 

그 시간에도 비어있는 자리조차 없었다. 낮에는 좀 더워졌지만, 해가 진 이후에는 선선한 기운이 도로 위로 밀려와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아 놓는 것이 틀림 없었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랬다.

 

이리와서 같이 술 한잔해.” 내가 아는 누군가의 얼굴이 불쑥 나타나 이렇게 말해주길 바랬다.

그래서 그렇게 즐겁게 웃고 있는 그들 사이에 나도 스며들어서 우울함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5번 출구까지 걸어 온 나는 주위를 들러보았다.

 

누군가를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누구를, 아니 무엇을 기다리고 여기에 와서 서있을까.’

 

 

렘브란트의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가득차 있었다.

 

마치 일행을 찾는 듯, 둘러보다가 홀 맨 안쪽에 빈 자리를 발견했다.

 

운이 좋았다. 무거운 몸을 털썩 의자에 주저앉혔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조잘대는 대화소리가 마치 바닷가에 깔린 조약돌처럼 홀을 채웠다. 어려보이는 두 아르바이트생은 눈코뜰새 없이 테이블 사이를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간신히 주문한 생맥주가 내 앞의 테이블위에 놓여지고, 갈증후에 들이키는 첫 한모금이 내 가슴속을 채우고 있을 때, 홀에 들어와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누군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어디에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아니면 잘생긴 사람을 보면 순간 관심을 갖고 쳐다보게 되는 인간의 본능 탓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내 자신이 쓸데 없이 느껴져서 픽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한순간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고정되었다.

 

겸연쩍어진 나는 곧 내 앞에 있는 맥주잔에 고개를 돌리고 손을 뻗었다.

 

....”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가 내 앞에서 서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혹시.....”

 

?”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윤호 아시는 분 아니신지......”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예전에 호텔 라운지에 있는 커피숍에서 잠깐 얼굴 뵌 것 같아서요.” 그의 얼굴에 멀쓱한 미소가 흘렀다.

 

.. 그제서야 그가 현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이렇게 보니 사진속의 그가 맞았다.

 

맞으시죠?” 반갑다는 듯 그의 얼굴에 함박 웃음이 피어났다. 그리고는 나에게 묻지도 않고 그는 마치 나와 일행인 양 그렇게 내 맞은편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버렸다.

 

정말 반갑습니다.“ 계속 얼굴에 밝은 웃음을 띤 채로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내민 그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서로 악수를 하고 손을 떼었다.

 

윤호에게 연락 좀 해보려고 했는데 연락이 안되서요. 궁금해 하던 참이었거든요.” 여전히 그는 웃고 있었다.

 

!” 홀 뒤편에서 스물너댓 정도 먹어보이는 녀석 하나가 우리 쪽 테이블을 향해 소리쳤다.

 

현준이 고개를 돌리고 그에게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래, 윤호는 잘 지내나요? 연락은 되시는 거죠?” 그가 다시 나를 돌아보고 물었다.

 

. 그냥 그럭저럭......”

 

어린 녀석이 테이블 앞에 와서 서서 나에게 목례를 하더니, 현준에게 고개를 돌렸다.

 

현준이 그의 손을 잡아 그를 자신의 옆자리에 끌어 앉혔다.

 

윤호 아시는 분이야. 너두 윤호 한두번 본 적 있지?”

 

...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젊은 녀석이 나를 향해 고개를 한번 숙여보였다.

 

아르바이트생이 메뉴판을 들고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병맥주에 간단하게 마른 안주로 할게요.” 현준의 말에 아르바이트생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되돌아섰다.

 

 

저 괜찮으시면 윤호 연락처 좀.....전화번호가 바뀐 것 같던데요.” 오프너로 도착한 맥주병뚜껑을 따면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생각해 보니 나도 바뀌었다는 윤호의 전화번호를 모르고 있었다. 그와 헤어진 이후 그의 번호를 지운후 그에게 전화로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윤호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나도 모른다고 하면 될 것을 다른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왜요?” 그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교통사고로......”

 

얼마나 다쳤길레요?” 그가 내 말이 끝나기 전에 다시 물었다.

 

사실, 왼쪽 다리를 많이 다치긴 했는데, 이제 거의 나았어요. 2주정도 지나면 퇴원할거예요.”

 

병원 좀 알려주시면...” 그가 끈질기게 물었다.

 

그에게 병원이름과 호실을 알려주는 동안 옆에 앉아있는 젊은 녀석은 현준의 바지 주머니에 검지 손가락으로 낚시바늘처럼 걸고 마치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붙어 있었다.

 

런던에서 윤호 아시게 되셨다고 들었는데요...” 모두 휴대폰에 저장한 후, 그것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그를 보면서 물었다.

 

, 작은 한국인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거기서 알게 되었어요.” 그가 대답했다.

 

유용한 정보도 교환하고 친목도모도 한다고 열대여섯 명이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 보았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우리 정훈이가 얼마동안 다니던 목장갑 공장 운영하시는 사장님 아들이더라구요.”

 

그 사장님이 연희누나 짤랐지. . 십이년 넘게 경리일 하면서도 남자직원들 이상으로 몸바쳐 일했는데 ....” 젊은 녀석이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도, 윤호는 다르잖아. 너도 진짜 괜찮은 사람이라면서....” 현준이 그에게 한번 시선을 준 후 다시 나를 보고는 씨익 웃었다.

 

우리 정훈이가 그 회사에서 얼마간 일 하면서. 거기서 오랫동안 일하던 여직원 하고 친했었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우리 정훈이라고속으로 피식 하고 웃었다. ‘어이어이, 남이 혼자 있을 때에는 닭살커플 티 내지 말라고.“

 

.......” 그가 말을 꺼내기전 잠시 망설였다.

 

여전히 윤호... 애인이신거 맞죠?” 그가 조심스러운 말투와 표정으로 나의 눈치를 살피면서 물었다.

 

“...........”

 

런던에 있을 때 윤호가 앞엣분에 대해서 많이 얘기를 했었거든요.” 그가 손바닥을 내밀어 슬며시 나를 가리켰다.


귀가 아플 정도로 자랑도 많이 하고, 사실 사진도 많이 보여줘서 여기 들어오면서 금방 알아봤어요. 이름도 기억하는데.... 민환씨 맞으시죠?‘

 

“...........”

 

귀국하기 전에 저 우리 정훈이 구두 사준다고 쇼핑갈 때, 그때 윤호도 따라왔었거든요. 민환씨에게 줄 선물 사야한다고.....”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정훈에게 한번 눈길을 준 후에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선물 고르는데 얼마나 까다로운지, 민환씨 선물,.... 핑크색 사선들어간 웃옷요. 그거 선물로 받으신 거 맞죠?" 그가 혹시나 실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얼굴로 나의 표정을 살폈다.

 

"..."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거 사느라 쇼핑몰을 네시간 넘게 돌아다녔어요.” 그가 말을 멈추고 나를 보고는 다시 한번 함박웃음을 지었다.

 

순간 다시 멍해졌다. 가슴은 꽉 막혀버리고 먹먹해졌다.

 

런던에 민환씨하고 꼭 한번 다시 온다고 그랬는데 같이 갈데가 있다고......” 그가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정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나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왔다.

 

, 이거 내가 말해버리면 안되는 건데....” 그가 빙긋 하고 웃고는 내 표정을 살폈다.

 

뭔데요? 모르는 척 할게요.” 오른손으로 막혀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같이 있을 때 그를 더 많이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의 말을 모두 믿어줄걸. 나를 위해 말을 할 때 더 맞장구 쳐주고 고마워할걸....

 

런던에 세인트 피터스 파크라고... 아담한 공원이 있거든요. 혹시 아세요?" 그가 물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윤호의 입에서 그 공원 이름이 나와서 나의 귀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는 내 이름보다 더 강하게 그 공원의 이름을 각인하고 있었다. 헛말이라고 해도 그가 나를 데리고 가고 싶다고 했던 그 곳. 책방에 들를 때마나 인터넷을 검색할때마다 그 공원의 이름을 떠올리곤 했었다. 그곳의 위치는 어디쯤인지, 어떤 모습인지, 윤호는 그 안에서 어디쯤에 앉아있었던 것인지를 지도와 사진 속에서 상상하곤 했었다.

 

"글쎄요...." 조그맣게 우물거리면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도 한번밖에 가본 적이 없는데, 아담하고 산뜻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윤호가...자기는 사실 돈 있는 부모 만난 것 밖엔 없다구, 그래서 사실 배경 빼면 볼품 없다구. 그래서 그 공원처럼 작고 특별한 건 없지만, 그 공원안에 있을때마다 느끼는 잔잔하고 따사로운 즐거움과 평화는 민환씨에게 줄 수 있다구..” 그가 말을 멈추고 정훈이 부어주는 맥주잔을 들었다.

 

제가 말했다고 하지 마시고 나중에 윤호한테 들으면 처음 듣는 것처럼 해주셔야 해요.” 그가 말을 끝내고 입을 벌리고 나를 보고 웃었다.

 

! 저기 자리 났다.” 주위를 둘러보던 정훈이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 그럼...” 현준이 정훈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너무 반가워서 너무 말을 많이 한 것 같네요.” 그가 엉거주춤 반쯤 일어나는 나의 손을 잡았다.

 

윤호랑 잘 지내시고, 윤호에게 언제 한번 문병간다고 전해주세요.” 그가 나를 보고 밝게 한번 웃어보이고는 앞서서 가는 정훈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지하철 1호선역을 향해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그래, 그랬었다.

나는 항상 그를 많이 사랑했었다.

 

하지만 그만큼 나는 내 자신을 너무 강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나를 혼자 남겨놓고 먼저 가버린 부모님 처럼, 내가 사랑하는 그도 나를 떠나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에 나를 향한 그의 마음을 내 스스로 걸러낸 것은 아닐까, 내 스스로 내 자신의 검열의 막을 세워놓고 그의 진실을 내 멋대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칠 듯 사랑한다면서도 미래의 불안감에 깨어질까 두려워서 미리 내 심장의 주변에 결계막을 쳐놓고 알맞게 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깨지고 피투성이가 된다 하더라도 내 품에 끌어안고 있어야만 했던 그의 사랑을 말이다...

 

마치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가 날까 두려워서 전속력으로 달리지 못하는 그런 달리기 선수마냥, 그렇게 그의 사랑을 대했었다.

 

헤어진 한참 후에서야 그의 진정한 모습을 내 마음속에 담아가는 너무 초라한 내 자신이 감당할수 없을 만큼 부끄러워졌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지하철의 계단을 힘들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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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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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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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올리고 나서 잠시 후에 읽어주세요.

아랫부분이 항상 잘려서 서너번은 조각붙이기를 해야하네요.

1대1 문의를 올렸는데 아직 답이 없네요.       변변치 않은 글이지만 불편하게 해서 제가 죄송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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