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20살의 일용직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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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 부모님은 어릴 적에 사고로 떠나셨고, 친척들 중에서는 아무도 나를 맡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고아원에서는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해 대학교에 들어가지를 못했다. 매일 울화가 치미는 삶. 그러던 어느 날 친척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이 맡아 두고 있었던, 부모님의 재산에 관해 얘기할 것이 있단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내게 필요한 돈이라 생각해 가게 되었다.

'천만 원 정도.. 정말 우리 부모님은 가난하셨던 모양이구나.'

친척집에 가며 생각한다. 지하철을 타는 내내 불편함이 감돈다. 마치 구걸하러 간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매일 라면에 김치.. 덕분에 살은 찌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돈을 모으려면 한참 남았어.'

매일 아침 거울을 본다. 꽤 잘생긴 얼굴이다. 연줄이 있었다면 연예인 같은 걸 해도 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그런 것은 하질 못했다.

'그것도 돈이 있어야 하는 거지..'

약간의 자괴감이 느껴진다. 어쨌든 친척 집에 도착했다. 서울 교외의 평범한 아파트.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위이이잉..

웅웅 소리가 나는 엘레베이터. 약간 노후한 느낌이 드는 모습이다.

'뭐.. 친척들 중에서 돈 많은 사람은 없다고 했지..'

친가, 외가의 사람들과는 부모님의 사고 이후 인연이 다 끊겼다.

'하긴, 나를 맡아주겠다고 나선 인간도 없었으니 굳이.. 인연이 생겼다면 더 굴욕적이었을 거야. 나를 고아원에 보내 놓고도.'

분노가 싹튼다.

띠링..

어쨌든 친척 집이 위치한 층에 도달한다.

'807호..'

한참을 걸어 807호를 발견한다. 문 앞에 서서 잠시 멈칫하는 나.

'긴장되는걸..?'

띵동

초인종을 누른다. 안에서 누군가가 문 쪽을 향해 걸어 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열린다.

"안녕하세요! '견우' 친구세요?"

활기차게 웃는 남자애.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인다.

"그 애는 친척이다."

안에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 친척..'

들어가자 평범한 중년 남성이 소파에 앉아 서류를 읽고 있는 보습이 보인다.

"아, 친척이시군요? 전 '견우' 방에 들어가 잠시 쉬고 있을게요!"

문을 닫고 들어가는 녀석. 나는 중년 남성에게 다가간다.

"......"

말없이 기다리는 나. 그는 자리를 옮겨 소파에 자리를 만들어 준다.

"여기 앉아라."

푹신한 소파에 앉자 그가 내게 말을 건넨다.

"서류는 여기 있다. 통장 계좌번호만 줘라. 도장은 여기에 찍고."

"저.. 도장이 없는데요."

"그럼 서명만 해."

"알겠습니다."

서명을 한다. 그러자 그가 내게 말을 건넨다.

"오래 못 봤구나. 네가 아기일 때 본 이후로는."

"......"

이후 서로 말이 없다. 그때 방에서 녀석이 나온다.

"일 다 하셨으면 형은 저랑 놀아요!"

활기차게 웃으며 다가오는 녀석.

"얘는 너랑 동갑이란다, '진호'야."

"안녕하세요! :)"

활기차고 매력적인 미소.

"네, 안녕하세요."

어색한 인사.

"이리 와요! 같이 게임이라도 해요."

방으로 들어가며 말하는 녀석. 난 녀석을 따라 들어간다. 들어가자 평범한 대학생의 방이 보인다.

'전공서적들.. 부럽네.'

나는 대학교는 꿈도 못 꿀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에서 뭘 더 기대하겠는가? 방을 잠시 둘러보고 '진현'을 바라본다.

"친척인데 이 집에는 처음 오시나 봐요?"

"아, 네.. 친하지 않아서요."

"그렇군요?"

해맑은 미소. 나는 금방이라도 매혹당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엄청 잘생겼네. 분명 클럽에서도 인기가 많겠지? 요즘 대학생들은 다들 클럽에 다닌다니까..'

잠시 말이 없어진다.

'무슨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아무 말이 없네?'

그때, 갑자기 녀석이 다가온다.

스윽..

내게 입을 겹치는..

'뭐지?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화들짝 놀라지만 뒤로 물러서거나 하지 않는다. 남자끼리의 입맞춤임에도 야릇한 감각이 몸에 퍼지기 시작하고, 남성이 맥동하며 발기하는 것을 느낀다. 떨린다.

'내 첫 입맞춤..'

처음에는 좀 놀랐지만, 지금은 그저 녀석을 방치해둔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입술을 떼는 녀석.

"잠시 스마트폰 좀 주실래요?"

"아.. 네."

스마트폰을 건네자 녀석이 스마트폰을 두들긴다. 그러자 녀석의 바지 속 스마트폰이 진동한다.

"들어가서 연락 드릴게요! :)"

"..네? 아.. 전 이만 가볼게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억지로 발기를 가라앉힌 다음, 서두르는 마음이지만 침착하게 방을 나와 '견우'의 아버지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온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긴장과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가져간 것은 무슨 의미이지?'

난생 처음의 경험, 첫키스. 그 맛을 생각하자 욕정이 느껴져 부끄러움이 전신에 확 퍼진다.

'수치스러운 건 아냐. 남사스러운 거지.. 아직도 감촉이 남아 있어.'

한참 우왕좌왕하는 마음. 그때 스마트폰이 울린다. 바로 스마트폰을 낚아 채는 나. 스팸 번호다.

'이런 xx..!'

바로 수신 차단을 해버리고 스마트폰을 침대 위로 홱 던져버린다.

'재수 없게..'

잠시 노트북을 열어 게임을 켠다. 노트북 사양이 좋질 않아 고사양의 게임은 무리다. 30분 쯤 되었을까, 스마트폰이 다시 울린다. 나는 게임을 멈추고 바로 스마트폰을 잡는다.

'모르는 번호.. 하지만 스팸은 아니야. 아까 그 애겠지?'

나는 통화를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진현'이에요!"

청량하고 앳된 목소리. 하지만 정제되어 있어서 전문직을 떠올리게 하는 어조다.

"안녕하세요, 전 '한율'이에요. 이름도 말씀 못 드렸었네요."

"하하! 괜찮아요."

우리 둘은 한참 얘기를 한다. 얘기를 주도하는 것은 녀석이다. 나는 그저 우물쭈물 답할 뿐이다. 내 머뭇거리는 태도에도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말을 잇는다. 그러다 우리는 3일 후 일요일 5시에 만나자는 약속을 해버리게 된다.

"그럼, 그 때 봬요! :)"

"네, 그 때 봬요."

'뭘 하려는 걸까? 대담하게 키스를 했으니 혹시..'

남자끼리도 하긴 한다고 들었지만, 그런 건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남자끼리여도.. 느껴버렸으니..'

쓸 데 없는 기대를 해버린다.

'걔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 알고 미리 기대하는데..!'

살짝 우울한 마음이 든다.

'분명 돈 많은 집의 학생이겠지? 그에 비해 나는..'

내게 자격이 있는지 걱정된다. 그 '자격'이라는 의식 때문에 난 여지껏 여자를 품을 생각조차 못 해 왔다.

'어쨌든 만나고 생각하자. 더 생각은 접고..'

하지만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성적인 상황에 대한 상상.

'남자끼린 어떻게 하는 거지..?'

두근거리는 마음. 나는 억지로 잠을 청한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난 계속 녀석과의 만남을 의식해 왔다. 오늘이다. 지하철을 타고 종로 3가로 오란다.

덜컹.. 덜컹..

지하철 소리가 내 마음을 대변하듯 덜컹거린다. 찢어지듯 시끄러운 소리. 나는 곧 종로 3가에 도착한다.

탁, 타닥..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는 나. 출구에 이르자 녀석이 환한 햇살을 받으며 미소 짓는다.

"여기에요!"

"네, 제가 좀 늦었죠?"

몇 분 늦지도 않았지만, 인사 대신으로 말을 건넨다.

"괜찮아요! 저희 커피나 마시러 갈까요?"

'커피..'

한 잔에 4, 5천 원은 훌쩍 넘어버리는 고가의 음료다. 한 번도 마셔 본 적이 없지만, 마침 부모님 유산으로 돈에 여유가 좀 있으니 흔쾌히 승낙하기로 한다.

"네, 좋죠."

나는 녀석이 따라 가는 데로 걷는다.

꽉!

갑자기 내 손을 잡는 녀석. 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고개를 열심히 돌려 보지만, 아무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

"다 도착했어요. 제가 자주 가는 카페에요."

작은 카페. 프랜차이즈는 아닌 것 같다.

'소규모로 하는 곳 같네..'

들어가 보니 가격이 착하다. 아메리카노가 2,300원이다.

"뭘로 드실래요?"

묻는 녀석. 나는 가장 기본적인 아메리카노를 택한다.

"아메리카노로 주세요."

"저는 카푸치노 주세요."

카드를 꺼내는 녀석.

'계산하려는 건가? 나중에 돈을 줘야지.'

"카드 받았습니다."

종업원이 결제를 한 다음 카드를 녀석에게 건넨다. 음료를 만들기 시작하는 종업원을 뒤로 하고 우리는 자리에 앉는다.

"잘 지내셨어요?"

"네, 잘 지내셨어요?"

"저야 뭐.. 과제가 많아서 좀 힘들긴 하네요, 하하..!"

여유롭게 웃는 녀석. 약간의 동경이 싹튼다.

'나도 대학생이고 싶어진다. 유쾌해 보이네..'

녀석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긴 하는 걸까?

'그러고보니 그걸 안 묻네..? 그냥 내가 먼저 말해버리자.'

"전 일용직 노동을 하고 있어요. 어떤 전공을 하고 있으세요?"

"전 철학을 공부해요! 저도 방학 때면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죠."

먹잇감을 바라보는 것 같은 눈길이다.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러시군요."

난 한참 말이 없어진다.

'내가 싫어진 건 아니겠지..?'

마음이 초조해진다. 무슨 말이라도 들으면 좋겠다. 잠시 커피만 바라본다.

"저희 나갈까요?"

"그러죠!"

황급히 일어나는 나. 녀석은 침착하다. 여전히 미소를 띤 채.

"......"

난 녀석이 가는 데로 무작정 걷는다. 녀석은 그런 내 손에 깍지를 낀다. 따스하다.


도달한 곳은 작은 모텔이다. 녀석은 거리낌 없이 걸어 들어간다. 함께 모텔 안으로 들어가자 카운터가 나온다.

"방 하나 대실할게요."

직원은 남자 둘이 대실하는 것임에도 전혀 놀라지 않고 방 열쇠와 꾸러미를 건네 준다.

"감사합니다 :)"

열쇠와 꾸러미를 건네 받고 녀석은 곧바로 방으로 향한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3층에 도달한 우리. 녀석은 너무나도 익숙한 길을 걷는 듯 망설임 없이 방을 찾아 간다.

'분명 많이 와 봤을 거야..'

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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