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워커 1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본문
버스 창문 너머로 평창동의 고급 주택들이 뒤로 미끄러지듯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1년 전 부푼 꿈에 젖어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반대방향으로 향하는 버스의 좌석에 앉아, 고급스러운 평창동의 주택가를 지나면서 의기양양하게 조소섞인 비웃음을 나는 창 밖으로 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에는 현실적인 부와 성공을 거머쥐고 있는 듯이 보이는 그들은 속물스러운, 이기적이고 교만한 족속들로만 여겨졌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보다 더 품격이 높고 우월한 존재로 내 자신을 여기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감히 추구하지 못하는 더 고급스럽고 이상적인 목표를 품에 안고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렇게 현실에의 만족, 눈에 보이는 세속적인 향락을 추구하는 그들에 비해, 나는 좀 더 이타적이고 이상적인 것을 열망하는, 태초부터 인간이 동물과 다른, 고귀한 존재로서 추구하며 얻길 바라는 것들을 결국에는 손에 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절대로 구체화 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 결국 인간이 얻고자 하는 최상의 것들 - 진실한 신념, 충실, 신의... 그리고 사랑 - 이 나의 삶 속에 가득하게 될 것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그저 신기루일 뿐이라는 것을 내 자신이 인정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일년만에 그들에게 보냈던 그 모든 비웃음이 나에게로 고스란히 돌아와, 좌절된 모습으로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아픈 표정으로 애써 창밖의 모습을 외면하면서 쭈그리고 앉아있다.
지난 일년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버린 실망스러운 내 자신의 내면을 깨닫게 된 후, 속죄의 마음을 끌어안고, 원래의 나의 모습으로, 원래 내가 있던 곳으로, 그리고 내가 있어야만 하는, 내가 속한 곳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랬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나는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었다.
애초에 서울로 다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나의 볼품없는 내 자신의 치부를 세상에 그렇게 드러내 놓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리고 난 겸손하게, 내가 있던 자리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내 고향인 군산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철물점을 하시면서 기계를 수리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근처의 작은 공장에서 근면하게 노동을 하며, 그 대가로 주어지는 작은 행복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그런 운명의 장난은 나의 차례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운명의 장난에 놀아나는 것이 나중에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도 모른 채, 1년전 나는 그렇게 서울로 다시 올라오는 버스 속에서 순진한 얼굴을 하고 희망으로 가득 차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밝은 미래를 꿈꿨다.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긁어다가 뒷바라지를 한 아들 녀석이 서울에 있다는 대학을 졸업하고 수많은 기업체에 이력서를 마치 길가에서 무슨 전단지 돌리듯이 넣어 놓고도 단 한 군데에서도 반기면서 오라는 회사가 없다는 사실에 부모님은 참담해 하셨다.
초라한 시골로 돌아가서 인생을 보내기 싫다는 졸렬한 생각에 나는 알바로 생계를 이어나가면서도 어떻게든 서울에서의 생활을 버텨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도움이 없이 나의 노력만으로는 서울은 살아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마침내 인정해야만 했다.
고향마을에서의 삶은 지루함의 연속이었고, 나는 희망의 풍선을 타고 상승하다가 땅위로 추락해버린 모습으로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몇 주 동안을 소주병을 손에 들고 살았다.
취해 있을 때에야 나는 그 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술에 취해 내 방에 고꾸라져 있을 때에는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를 하던 내 모습, 커피를 마시면서 잘생기고 몸매 좋은 남정네를 훔쳐보는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빌딩의 1층 라운지에서 어깨를 펴고 멋진 핏이 드러나는 정장을 하고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당당하게 걷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너무나도 감격스러워서 나는 마치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버린 나르시소스 마냥 그런 내 모습을 붙잡으려 손을 뻗어 보았지만, 곧 그런 나의 모습은 신기루처럼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라고, 답답하고 지루한 현실에 부딪치면서 나도 조금씩 시골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이력서를 넣었던 기업체 중의 한 곳에서 느지막이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그 예상치 못했던 연락에 나는 보이스 피싱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하지만, 어안이 벙벙해 하던 나에게 그 인사과의 직원은 얇은 웃음을 띤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설명을 했다.
채용한 직원들 중에서 한명이 3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고, 꼭 필요한 인원이었기에 이력서를 제출한 사람들 중에서 대기자를 찾아냈다고 했다.
그때 나에게 그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전화하기에 앞서 연락했던 세 사람은 모두 다른 곳에 취업을 했기 때문에, 그 기회가 나에게 까지 닿게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두 번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그에게 가겠노라고 했다.
대학물까지 마시고 와서 빌빌거리던 내가 속으로는 창피하셨을 부모님은 뛸 듯이 기뻐하셨다. ‘우리 아들같은 인재를 알아보는 곳도 있구나’ 하시면서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꿈에 젖어서 바람이 빠져 바닥에 떨어져 있던 풍선을 다시 손에 집어들고 기쁨에 젖어 입에 물고 힘차게 불기 시작했다.
공기를 가득 채워 넣으면 그것이 나를 다시 저 하늘 높이 띄워 보내줄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렇게 바랐던 그럴싸한 기업에 취업이 되었다는 기쁨에, 활기찬 서울의 삶속에 다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또한 우연히 종로 3가에서 만나게 되어 대학생활 동안 절친으로 지냈던 친구인 우영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나는 다시 들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밝은 웃음을 보여주는 운명의 이면에는 나에게 감추고 있는 그것의 추악한 장난질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결코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화사하고 부드럽게 보이는 모래의 늪으로 순진한 얼굴로 웃음을 지으면서 한발을 내딛었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mulan" data-toggle="dropdown" title="hotaru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hotaru</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re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몰아서 봐야 하기 때문에 일단 댓글 먼저..ㅎ;잘 읽을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