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반죽-너를 사랑하는 나는 불행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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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와 술잔을 기울이기를 좋아했다. 그는 잘난 사람이여서 잘난 체 하기를 즐겼고 나는 어리고 어리석어서 그 인과가 당연한 줄로 여기었다.



그는 소주병을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언젠가 이렇게 무너질 것이다. 비를 맞는 나는, 뙤약볕 아래 나는, 눈발 날리는 어느 길거리에서 나는. 모든 이성을 잃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의 파멸을 택하는 나는. 나는...

평범함을 쫓던 시절이 그리워지도록 인생을 녹이고 있는데 공허함이 스며들어 나는 이렇게 녹아내리고, 이렇게 무너진 폐허 위에 벽돌 하나를 쌓다 먼지구름을 또 만들고 나는...

 

삶을 쫓기는 지쳤고 죽음을 택하기에는 두려움이 많은 그는 그리 회한를 방패삼아 현재를 낭비하는 데에 특화되어 마치 손이나 발이 없는 마냥 고 자리에 누워 버둥대는 것 이였다. 차라리 죄 불구였으면 그는 미치지나 않았을것인데 불쌍하고도 불쌍하고도...


누구는 금붕어가 뻐끔대는 지느러미를 보고 회반죽을 떠올렸다는데 나는 이 정경을 눈에 담고도 이정도 한탄만 늘어놓아서 부아가 치민다, 하며 그는 술잔을 깨지라고 콰앙 내려놓았다. 그의 젖은 손에 욕정하며 나는 손가락을 꿈지럭 움직였다. 조명이 침침하기를 몇 번이더니 결국 끔뻑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이다. 불이 켜질떄마다 표정이 바뀌는듯하여 나는 그와 새로움을 느낀다. 새로운건 불안하고 나는 거짓말과 함께 불안함을 아주 무서워한다.


흰 꽃을 꺾듯 핏기가 빠진 모가지를 쥐고는 비트는 짐승처럼 고작 술병을 쥔 우리는 거리를 떠돌다 그렇게 녹아내린다. 녹아내린 유리는 굳어 재가 붙어 더럽고 불투명하니 우리가 그렇다. 거리의 구석에서 섹스를 하자. 아주 더럽고 추잡한 섹스를 하자. 그의 외침이 가로등 아래를 떠돈다.


내가 너의 재인지 너가 나의 재인지 알 수 없어 우리는 서로 모래고 유리고... 알 수 없는 말을 하릴없이 지껄이다 쓰러진 위에 하늘이 깔렸고 생각하던 것보다 파랬다. 올려다볼 용기가 없어 고꾸라져 꼬나보는 하늘은 새파래서 눈물이 났다. 너가 울고 내가 운다. 내가 울고 너가 우냐고 묻는 너를 사랑하는 나는 불행하다. 이제 온 몸에 눈이 내린다. 흰 나타샤를 끌고 당나귀를 사랑하자. 깔깔깔.



이 짧은 회고를 마치는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선풍기 위잉대는 소리가 심장 소리보다 커서 나는 눈물을 조용히 쿵쿵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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