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워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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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은 잘 보고 갔어?”

“무슨 일?” 뜬금없이 묻는 우영이의 질문에  내가 그에게 물었다.

“너 며칠 전에 우리 회사 왔었잖아. 업무부 한 대리하고 볼일이 있다고...” 피식 하고 한번 웃고 나서 우영이가 말했다.

“아....”

“너, 회사에서 잘 나가나 보다. 벌써 혼자 미팅도 나오고 하는 걸 보면...”
마치 감탄이라도 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가 손을 뻗어 내 손등을 툭툭 쳤다.

“잘 나가긴... 그냥 심부름 갔다가 온 것 뿐이야...”

“뭔데? 뭔데? 너네 무슨 얘기 하는거야?” 화장실을 다녀 와서 다시 대화에 낀 종석이가 호들갑을 떨면서 물었다.

“별 것 아니야....” 소주병을 들고 그의 잔을 채우면서 내가 말했다.

“별 것 아니긴.... 너네 나만 왕따 시키냐?”

“그게...” 종석이의 말에 우영이가 생글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까, 승우네 회사가 우리 회사 협력업체 였어?”

“그래?” 눈이 똥그래져서 종석이가 물었다.

“그럼 너네 이제 일 때문에라도 자주 보겠다.” 소주병을 건네 받고 나의 잔을 채우면서 종석이가 말했다.

“아냐.” 내가 손사래를 쳤다.

“난, 그때 한번 그냥 심부름 갔던 거고, 담당자는 따로 있어. 이제 입사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도 대단한 인연이지?” 환하게 웃으면서 나와 종석이를 번갈아 보며 우영이가 말했다.

“그러게. 그렇게 이어지기도 쉽지 않은데.... 정말 그렇다.” 종석이가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또 말야...” 나의 말에 친구 녀석 둘 다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말을 꺼내놓고 앗차 싶었다.

“또 뭐?” 우영이가 나를 보고 물었다.

“아, 그게....”

“뭔데? 빨리 말해 봐.” 종석이가 나의 팔을 툭 쳤다.

“그냥.. 우영이네 회사 정말 좋더라고....” 나의 말에 우영이가 피식 하고 웃었다.

“정문을 들어가자 마자, 나는 무슨 예술의 전당이라도 온 줄 알았어.” 말 실수를 할 뻔 했다는 생각 때문에 등이 오싹 해지면서 나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 담당하는 부서의 과장이 알고 보니 주형이 형이었다고 언뜻 말을 할 뻔했다.

우영이는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듯 싶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주형이 형과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말 조차도 나에게 한 적이 없었고 지금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그가 한 대리도 꽤 잘 알고 있다고 했는데, 그러면 당연히 그녀와 같은 부서의 과장인  주형이 형을 알고 있었을 터이고, 내가 한 대리를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에도  주형이 형이 업무부 과장이라고 나에게 말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그의 회사에 갔던 일을 꺼내 놓고도 주형이 형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다시 난 별일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게 무슨 대수인가’ 하고 그가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고, 일부러 말을 꺼낼 필요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 우영이는 나와 달리 크게 생각하고 크게 노는 녀석이었다.

소심함에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을 쓰고 고민하는 나와는 달리, 그는 그의 인생에서 훨씬 커다랗고 넓은 그림을 그려가면서 살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예전에 술에 취해 주형이 형에게 작업을 걸면서 껄덕거렸다고 말하면서 화를 내던 종석이도 같이 불러내어서 다시 이렇게 우정을 키워나가는 것이 아닌가.

뒤끝도 없고, 마음도 넓고 포용력이 있으며 잘생긴 외모에 배경도 좋고 머리도 좋은 녀석이다.

역시 우영이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포용할줄 아는 멋진 녀석이었다.




홀 안을 채우는 음악 소리가 기분 좋을 만큼 몽롱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휴대폰의 액정은 이제 한시반이 지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여전히 소주집은 그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근데 말야. 오늘은 주형이 형은 안나오냐?” 술에 적당히 취한 종석이가 우영이에게 물었다.

“그러지 않아도 오늘 같이 보자고 연락을 했는데, 선약이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렇구나, 같이 봤으면 좋았을텐데. 맛있는 것도 좀 사달라고 하고 말야.” 아쉽다는 표정으로 종석이가 손을 뻗어 소주병을 잡아서 우영이와 나의 잔을 채웠다.

“근데, 그 형은 같이 술 마시면 취하는 모습도 좀 보여주고, 실수도 하고, 쓸데없는 농담도 하고 그러면 좋은데... 그런 게 없어.” 자신의 빈 소주잔을 들어 우영이에게 내밀면서 종석이가 말했다.

“사람이 쫌 빡빡하긴 하지. 학교 다닐 때도 공부밖에 몰랐다고 그러는 것 같던데.”

“그래?” 우영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종석이가 잔을 들었다.

나도 아무 말 없이 내 잔을 들어 그들과 건배를 했다.

“대학 다닐 때에도 4년 동안 장학금 받고.......” 말을 멈추고 우영이가 소주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 하는거지. 뭘로 보나 빠지는 게 없잖냐.” 잔을 내려놓고 그가 씨익 웃었다.

“나도 공부나 더 할 걸 그랬어.” 젓가락으로 냄비 속의 작은 새우 한 마리를 집어서 입에 가져다 넣으면서 종석이가 말했다.

“그랬으면 나도 지금 쯤 ‘사’ 짜가 들어가는 직업을 가지고 있을텐데 말야.” 말을 마치고 종석이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게, 너도 공부 좀 했지?”

“좀, 했지. 고등학교때 전교에서 5등 밖으로는 안 밀려 나갔거든. 우리 학교 그래도 서울에서 알아주는 특목고였는데....”

“뭐, 이제 계속 잘 풀리겠지. 부모님도 너가 뭘 하든 밀어주신다고 그러지 않아?”

“유학가서 공부 더 하고 와서 아버지 가업 물려받으라는데.....” 말을 멈추고 종석이가 피식 웃었다.

“우리가 지금 한창 때잖냐.” 그가 말을 잇기 전 다시 피식 하고 웃었다.

“매일 밤 몸은 달아오르지. 종로오면 괜찮게 생긴 놈들 자주 눈에 띄지....”

그 녀석의 말에 우영이도 피식 하고 웃었다.

“공부도 때가 있는 것처럼 모든 게 다 할 때가 있나 봐.” 그가 우영이와 나를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은 신나게 즐길때지.” 말을 마치고 종석이가 키득거렸다.




“참, 너 차 바꿨다면서?” 홀을 채우는 노랫소리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던 우영이에게 종석이가 물었다.
“어, 얼마전에 엄마가 바꿔주셨다. 신형 아우디로....”

“좋겠다. 나도 바꿔야 하는데. 엄마한테 좀 졸라 볼까나?” 술잔을 놓고 종석이가 기지개를 켰다.

“너도 바꿔 달라고 그래. 그래봤자, 1억도 안되던데...”

“근데 차 가지고 나오면 워낙 도로에 차들이 많아서 말야....” 말을 마치고 종석이가 입맛을 다셨다.

“그러게, 개나 소나 다 차들을 끌고 나와. 싸구려 똥차 끌고 다니면서 뭐가 그렇게 좋은지...” 우영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기름값 좀 팍팍 올려야 한다니까, 돈 없는 것들은 대중교통이나 이용하라고 말야.”

그렇게 말하고 그 둘은 키득거렸다.



어느 순간부터 그 녀석들의 대화에 낄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대화에 참여는커녕 맞장구를 칠 만한 틈도 보이지 않았다. 나와는 너무 먼 세상 속의 대화였다. 그런 그들이 부러웠다.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놓여 있던 소주잔을 들어 입에 갖다 댔다.


“야, 너는 대학 어디 나왔지?” 우영이가 나를 돌아보고 물었다.

“나?” 두 녀석이 나를 빤히 바라 보았다.

“뭐..그냥.....인 서울....”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얼버무리고는 그들의 시선을 피해서 젓가락을 들었다. 친구 사이인데도 자존심이 상해하는 내가 속이 좁은 것인지, 어쩐 것인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좋은데 취업했으니 된거야.” 종수가 마치 위로하듯이 말했다.

“그러게. 그래도 우리 회사 하청업체까지 되는 회사에서 널 채용한 거 보면, 너도 성공한거야.”



냄비 안에 있던 우동사리가 잡히지 않았다.

내가 술에 취해 있는 것인지, 그 사이에 불어버린 우동사리가 더 미끈거리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옆에 있던 형체를 알 수 없는 채소 조각을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우영이 녀석, 내가 다닌 학교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대화 중에 슬그머니 다시 그걸 물어본 것이 녀석에게서 야속함을 느끼게 했다.

아니, 술에 취하면 우리 모두 어느 순간 어떤 것들은 기억 속에서 잠깐 잊게 될수도 있지 않는가. 남이 아닌 내가 바로 어젯밤에 뭘 했는지도 잠깐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 그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협력업체라고 그러더니 하청업체라고 갑자기 바꿔 부르는 것에 대한 야속한 생각은 남아있었다. 그가 나를 우습게 여길리는 없을 테지만, 그 두 말의 차이가 주는 뉘앙스가 내 마음 속에 작은 상처 조각으로 남아버렸다.

뭐, 말실수야 어느 누구든 흔하게 하는 것이라지만 말이다. 하긴 나도 내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고 남에게 작은 상처가 되는 그런 사소한 말 실수를 하루에도 얼마나 많이 하면서 보내는 것일까.

나오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짜내면서 그 녀석들을 보고 태연한 척, 웃어보였다.






김과장의 심부름으로 상품관리과의 오과장에게 서류를 전달하러 5층에 올라갔을 때였다.

“일이 많이 힘들지?” 오과장이 넌지시 물었다.

“아닙니다. 재미있습니다.” 가능한 밝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래... 열심히 해.” 그가 손을 들어 나의 팔을 툭툭 쳤다.

“내려가서 일 봐.”

“예.”



“아, 이 승우씨.”

다시 나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그를 보았다.

“총무과 쪽에 영업관리 시스템실 결재 난 것이 있을거야. 올라온 김에 가서 총무과 직원에게 달라고 해서 받아가. 바로 옆 사무실이니까.”

“예.”

공손히 대답을 하고는 나는 다시 몸을 돌렸다.




총무과 사무실의 앞쪽에 앉아 있는 남자직원에게 다가갔다.

“영업관리 시스템실에서 왔는데요.”

그가 고개를 돌려 비어있는 옆자리를 살폈다.

“지금 담당 여직원이 자리를 비운 것 같은데요...”

“.........”

“저쪽으로 돌아가시면 탕비실이 있는데 거기 있는 듯 하네요. 한번 가서 물어보세요.”

그의 말에 고개를 한번 꾸벅 해 보이고는 발을 옮겼다.




담당 여직원의 이름을 불러서 탕비실의 밖으로 나오게 하고 싶었지만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

문에 노크를 해 볼 생각으로 탕비실 가까이에 갔을 때 빼끔히 열린 문 틈으로 여직원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영업관리 시스템실 윤대리 그 인간 말야. 아직 결재도 안 올린 걸 처리 한 셈치고 미리 달라고 왔더라니까...” 작은 목소리긴 했지만 가늘고 날카로운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똑똑하게 들렸다.

“또?” 다른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완전 또-라이 아니냐? 새로 온 남자직원 있잖아. 그 사람도 얼마 못 버틸거야 아마.”

“왜?”

“저번에 일 때문에 영업관리 시스템실 갈 일이 있었는데, 사무실 앞에서 못 들어가고 망부석이 되어서 서 있더라니까. 전에 들어온 신입사원도 윤대리가 괴롭히고 지 잘못 뒤집어 씌워서 못 버티고 몇 달 다니지도 못하고 나간 거 아냐.”

“어머 어머.” 다른 여직원의 놀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부랴부랴 면접 보러 왔던 지원자들 중에서 다시 연락해서 불러 온 거거든. 지금 그 신입사원이...”

“근데 그럼 과장님은 그런것도 모르시고?”

“대충 알겠지. 근데 과장님하고 윤대리가 같은 대학교 같은 과 선후배 인거 알아? 팔도 안으로 굽는거지 뭐.”

“어머 세상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며시 뒷 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그녀들의 목소리가 나의 귀에 들리지 않게 되자, 처음 온 것 마냥 그녀를 불러보려고 했다.

“저기요...”

하지만, 나의 입만 벌려졌을 뿐, 소리는 나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천천히 멍한 상태로 나는 몸을 돌려, 처음부터 오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 문 쪽을 향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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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혀있는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를 풀어가는 작가님의 필력에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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