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너머를 달리는 그림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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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나는 가능한 회사일에만 전념하면서 의식적으로 그 외에는 어떠한 다른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면서 좀더 삶의 현실적인 면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좀 더 변두리로 옮겨가더라도 월세가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곳에 신축 건물이 많아 지하철을 타야하는 역과는 거리가 좀 멀어지더라도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정보도 조금씩 얻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은 그렇게 정보를 공유해가던 에스엔에스 팔로우를 통해서 어쩌다가 찾아 들어간 한 곳에서였다.

 

‘그렇게 달콤했던 '악질의 처형’을 더 이상 맛보지 못하게 되었네. 우울하다‘ 라는 말과 함께 누군가가 올린 사진의 인테리어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곳이었다.

 

그 내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기억을 더듬어 가던 나는 그곳이 바로 ’몰리에르‘ 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곳에서 일하던 바텐더분이 개인 사정상 더 이상 근무하시지 않는다네요.‘

나의 눈에 띄인 댓글을 보고는 한쪽 가슴에 허전함과 함께 어떤 사정인지 궁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그에게 톡을 보냈다.

’몰리에르 일 그만두셨나요?‘

나와 관련없는 사람의 일인데도 어쩐 일인지 몇분마다 휴대폰을 열고 나의 톡을 읽었는지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고 거의 포기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톡의 울림소리가 들려왔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일이 이제 마무리단계라서요.‘

준비했던 일...이라니..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분명한데도 나의 호기심은 계속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회사 이외의 다른 인간관계가 거의 없던 나에게 그래도 ’지인‘ 이라고 내 마음대로 억지로 우겨서라도 집어 넣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중에서 나에게 호의를 보인 그의 행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궁금함에 묻고 싶었지만 그것은 상대에게 불편한 관심일 것이 틀림 없었다.

 

아쉽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묻어 두기로 했다.

 

밤 늦게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던 나의 휴대폰에 톡이 울렸다.

’제가 얼마 후에 떠나야 하는데 그 전에 한 번 얼굴이라도 뵐까요?‘

떠난다니 어디로?

혼자서 중얼거렸다. 혹시 유학이라도 가는 것일까? 아니면 회사에서 지방으로 발령이 났나?

’편하실 때 연락 주세요.‘

그렇게 문자를 보낸 후 얼마 뒤에 톡을 통해서 전화가 울렸다.

“제가 우진씨 전화번호를 몰라서요."

전화를 통해서 그의 어색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신세까지 지고도 연락처도 안드렸군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의 밝은 목소리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어디로 떠나시는 지...“

”아...“ 그가 한순간 머뭇거렸다.

”그냥 이제 좀 먼 곳으로 가서 한번 지내보려구요. 여기서 제가 계획했던 일이 거의 다 끝나가거든요.“

”예...“

”그건 그렇고...“

다시 한번 말을 하기 전에 뜸을 들이고는 그가 말을 이었다.

”제가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해보고 있거든요.“

”네? 버킷리스트요?“
그의 뜻밖의 말에 놀라 물었다.

”뭐, 대단한건 아니고요. 사람은 누구든지 언젠가 한번은 가잖아요. 그래서 그냥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적어 놓은 것이 있는데요“

”.......“

”그 중에 하나가 이제 여기를 떠나기 전에 바닷가에 가서 해산물도 먹고 하루 느긋하게 쉬다가 오는건데요. 혹시 시간 되시면 드라이브 겸 같이 다녀 오실 수 있나 해서요.“

”글쎄요.“

그의 뜻밖의 제안에 내 자신도 모르게 망설여졌다.

”제가 바다를 좋아하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한번도 바다구경을 못해봤어요. 사느라 바빠서요.“

”.......“

”그리고 연애 할때에도 만나면 물고빨고 섹스하기만 바빴지 가까운 곳이라도 어딜 같이 가본 기억이 없네요.“

”.......“

”뭐 내키시지 않으신다면...“

”아니예요.“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나도 기분전환겸 바람이나 쐬고 오면 되는 것을...

”언제 가실지만 알려주세요. 시간 비워 놓을게요.“

 

그와, 아니 그가 아닌 누구라도 마음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적당한 상대라면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서 산이든, 바다든 한번 놀러갔다 오는 것이 무슨 대수인가 싶었다.

하지만 버킷리스트라는 그의 말이 어딘지 불편하고 불길한 느낌을 주었다.

 

하긴 얼마전에는 10대 아이들도 유행처럼 버킷리스트라는 이름 하에 이런저런 일을 하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무슨 특별한 의미도 아니었는데 내가 또 쓸데없이 오바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눈앞에 펼쳐진 서해바다를 보면서 그는 소년같은 얼굴로 해맑게 웃었다.

 

”역시 사람은 원래 이런 모습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고 바다에서 나오게 된 것이 틀림없어요.“ 밀려오는 파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감탄 한 듯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이렇게 오랜만에 와 보는데도 마치 고향 같거든요. 바다는요.“

바닷바람이 그의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흩뜨렸다.

 

미끄러운 개펄위를 그는 운동화를 신은 채로 두 손을 벌리고 마치 아이처럼 뛰어다녔다. 물이 분출하는 작은 구멍을 맨손으로 파 보기도 하고 비닷물에 매끈해진 소라껍질을 주워 들고는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는 시늉을 했다.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그의 머리카락이 햇볕에  반짝이고 가지런한 그의 치아가 눈이 부셨다.

그가 한순간 나에게 다가와 모래사장이 끝나는 뻘의 가장자리에 서 있던 나의 팔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들어와봐요. 기분 너무 좋아져요.“

”신발 더러워져요.“ 그런 그를 피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그의 당기는 팔 힘에 속절없이 진득한 개펄로 끌려갔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에게 매달렸다.

 

”차 안에 여분의 슬리퍼하고 입을 옷 있어요.“

그런 나를 바로 붙잡아 세우면서 그가 씨익 웃었다.

바다 안쪽에서 끈적한 바람이 불어와 눈부신 햇살에 찡그리고 웃는 그의 눈꼬리의 주름을 덮고 있던 앞머리카락을 이마위로 흩뜨리고 그의 허리 뒷 부분에서 웃옷자락이 휘날렸다.

 

그가 몸을 굽혀 두 손으로 뻘을 손바닥 한가득 퍼서는 나의 앞으로 내밀었다.

”나의 조상의 조상, 그리고 그 위로 계속 올라가다 보면, 지금 나를 숨쉬게 하는 근원은 아마 내 손 안에 있는 이 개펄 진흙 속에서 생긴 걸 거예요.“

뜬금 없는 그의 말에 아무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 정말 좋아하시나봐요.“

나의 말에 그가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시선을 먼 바다를 향했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펴고 흔들어 뻘을 떨구고는 두 손을 벌리고 가슴을 폈다.

 

 

 

”오늘 너무 좋지 않았어요?“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그가 핸들을 쥐고 시선은 앞을 향한채로 나에게 물었다.

”네. 덕분에 오늘 오랜만에 아주 즐겁게 보냈네요.“

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흘끗 보고는 씨익 웃었다.

”저녁은 제가 집에 장을 보아 둔 것이 있는데 드시고 갈래요? 혼자 살면서 배워놓은 요리 솜씨를 발휘를 좀 할건데요.“

”예. 그런데, 계속 폐만 끼쳐서.....“

”아니예요.“ 그가 나를 보고는 눈을 찡그리고 웃어보였다.

”제가 감사드려야죠. 오늘 저를 위해서 시간까지 내어주셨는데...“

 

 

 

 

그가 시간을 들여 공들여 만들었다는 서양식 스테이크로 배를 채운 후, 그는 음료의 표면에 작은 꽃잎 두세개가 떠 있는 아련한 에메랄드 그린 색을 띄는 음료를 안주로 할 핑거푸드가 담긴 접시와 함께 테이블 위에 내 놓았다.

그런 칵테일의 빛깔에 감탄을 하면서 손을 뻗어 잔을 들고는 한 모금 맛을 보았다.

”이 음료 이름이 뭐예요?“

예전에 맛보지 못했던 이국적이면서 신비로운 맛과 향에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면서 물었다.

” ‘악질의 처형’ 이예요.“

”아.....“ 그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름답고 훌륭한 맛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이름 같은데요.“

”중세시대에 유럽에서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질들을 처형하고 난 후, 마을 사람들이 자유와 행복을 찾은 후에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시던 음료라네요.“

”아... 그렇군요.“

그렇게 신비하게 보이는 음료를 한번에 마시기가 아까워서 나는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왜요?“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 아까워서 천천히 마시려고요.“

그가 나의 말에 씨익 웃었다.

”또 만들어 드릴게요.“

 

핑거푸드 조각 하나를 집어들어 입에 넣은 후, 슬며시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말을 꺼내고 머뭇거리는 나를 그가 빤히 바라보았다.

”뭔데요?“

”그게....“    겸연쩍게 한번 그를 보고 웃어보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시는거예요?“

나의 질문에 그가 고개를 숙이고 한번 희미하게 웃었다.

”그냥...... 벗어나고 싶어서요. 여기에서.“

”그럼...어디로...“

나의 말에 그가 다시한번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먼데로요....“

”........“

반복되는 나의 질문에도 대답을 회피하는 그에게 가는 곳을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아니 물을 수가 없었다.

 

 

뻘쭘한 느낌에 다시 핑거푸드가 담겨 있는 접시로 손을 뻗으며 다시 그에게 물었다.

”부모님은 어디 사세요?“

”두 분다 돌아가셨어요.“

무심코 물어본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에 놀라 집었던 조각을 떨구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 저런. 죄송합니다.“

”아니예요. 괜찮습니다.“ 그가 느긋한 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보았다.

”아빠는 저 대학교 입학하던 해에 돌아가셨어요. 교통사고로요.“

”........“

”엄마는 그 이듬해 가을에.....“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듯 했지만 곧 다시 피식하고 나를 보고는 웃어보였다.

”그럼 형제는....“

입 밖으로 툭하고 말을 하고는 앗차 싶었다. 모자란 놈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다. 나처럼 주변머리없고 눈치없고 멍청한 놈은 특히 그래야 한다.

”여동생이 한명 있었는데 엄마 돌아가시던 해에....“

”죄송합니다. 눈치 없이 이 놈의 주둥이가...“

그를 흘끗보고는 미안한 마음에 손바닥으로 내 볼을 툭 하고 때렸다.

”거긴 입이 아니고 볼인데요.“

그가 나를 보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가 그와 나의 사이에 있던 테이블을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 슬며시 다가와 한 손으로 나의 턱을 잡았다. 그리고 나의 입술에 키스했다.

”우진씨.“

그가 내게서 얼굴을 떼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의 검은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오늘 여기서 자고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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