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너머를 달리는 그림자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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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마지막 짐이네요.”
양손으로 힘들게 들고 올라온 상자를 그가 원룸의 방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제 뭐 도와드리면 되죠?”
먼저 옮겨온 상자 속에서 간단한 주방용품을 꺼내서 싱크대 위에 정리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그가 물었다.
“글쎄요.”
아무래도 점심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삿짐 정리를 잠시 멈추고 점심으로 먹을 짜장면을 주문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일찍부터 와서 도와주고 있는 그도 이제 허기가 질 듯 해보였다.
“짐 나르시느라 고생하셨으니 우선 점심 식사부터 하시죠.”
몸을 굽혀 바닥에 놓여있던 휴대폰을 집어들고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혹시 뭐 드시고 싶으신 것 있나요?”
이사를 했다.
인터넷으로, 에스엔에스로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서 가장 저렴하고 지낼만 하다는 원룸을 힘들게 구했다.
낮은 산 아래에 바짝 붙어있는 새로 지은 원룸건물이었다.
그 동네 자체가 이제 막 개발되기 시작한 곳이라서 새로 이사 들어온 4층의 내 방의 창문에서 보면 낡은 창고가 내려다 보였고 그 너머로는 잡초가 우거진 큰 공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공터의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텃밭에서는 고추와 상추가 자라고 있었다.
역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려면 그 아래에 있는 작고 낡은 동네를 지나야 했다.
가로등은 설치가 되어있었지만 그래도 건물마다 모두 입주가 된 것이 아니라서 저녁에 되면 밖의 도로는 으슥할 듯 보였다.
그래도 곧 동네 여기저기와 원룸의 건물 입구에도 씨씨티비가 설치될 것이라고 집 주인은 말해주었다.
“당분간만 종로는 나오지 말아요.”
짜장면을 먹은 후, 그는 창 밖을 내다보면서 믹스커피를 한모금씩 천천히 마시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여전히 시선은 창문밖을 향한 채로 마치 지나가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왜요?”
“그 자식 가끔 와요.”
“누구요?”
재호를 말하는 것일거라는 것을 순간 깨닫고도 나는 그렇게 물었다.
“재호요?”
한번 고개를 끄덕해 보이고는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리고 이한철이하고 정성규란 놈도 길에서 몇 번 봤어요. 몰리에르도 두어번 정도 왔었구요.”
“그럼 그 자식들도 혹시....”
내가 묻는 이유를 마치 알고 있다는 듯 그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
“사장이 받아주라고 했어요. 그 자식이 그 동네 건물 몇 채 가지고 있는 건물주라고. 시끄럽게 하지 말자고....”
“......”
“술이 취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여자 둘도 데리고 왔던데요.”
그가 마시던 종이커피컵을 창문틀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당분간은 조심하는게 나을 것 같아요.”
얼마되지 않는 짐이라 혼자서도 널럴하다고 밖에 나가서 푸른 산과 한적한 동네를 산책이나 하고 돌아 오라는 나의 말에 그는 웃는 얼굴로 아니라고 했다.
“부지런히 정리하고 같이 돌아봐요.”
나보다 두 살이 위인 그는 그렇게 여전히 존댓말을 썼다.
아마도 이미 곧 이곳을 떠날 사람이라서 나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정을 주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행동으로 보였다.
그렇게 거리감을 두는 그를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는 서운함이 밀려왔지만, 이미 그가 떠날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를 만나기 시작한 것은 나였다.
이미 많이 어두워진 늦은 저녁에 자신의 차에 오르기 전에 그는 뒷좌석의 문을 열고는 작은 상자를 꺼내서 슬며시 나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얼떨결에 받아들고는 그에게 물었다.
“우진씨한테 주는 선물이예요.”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나를 보면서 그가 씨익 웃었다.
“여기서 열어봐도 돼요?”
나의 말에 그가 얼굴에 미소를 띠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린 상자 안에는 작은 소라껍질들을 이어 만든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실망하신 거 아니죠?”
그가 나의 표정을 살피면서 웃었다.
“아...아니예요.”
“전에 같이 바닷가 갔을 때 주워서 모아 두었던 거예요. 가끔씩 꺼내 보면서 나를 기억해 줘요.”
쓸쓸한 미소를 띠고 그는 나를 보고 하릴없이 웃었다.
“언제.......”
그에게 묻는 것이 두려워 머뭇거렸다.
“떠나....시는데요?”
“며칠안에요.”
가슴이 꽉 막혀오면서 답답해졌다. 눈치 없는 눈꼬리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가기전에 언제 다시한번...”
“힘들 것 같아요. 우진씨.”
그가 입주위에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네요.”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를 부등켜 안고 싶었다. 그를 끌어안고 그의 체온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의 가슴과 목덜미에서 나는 그의 냄새를 맡고 그의 뒷통수에 손바닥을 대고 비벼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잠시동안 꼼짝도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그리고 그가 내민 손을 내려다 보고 나도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
그가 차에 오르기전 다시 한번 쓸쓸한 표정과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에게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렸을 땐 어땠는지, 여동생하고는 잘 지냈는 지, 친구들과 뭘 하면서 놀았는 지...... 그리고 내가 그의 맘에 들었는 지...... 지금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오는 지..“
그의 차는 나를 새로운 원룸의 건물 앞에 멀거니 남겨두고 그렇게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그를 보내주기로 했다.
떠나는 그가 홀가분하길 바랬다.
자신이 결정한 미래를 가고자 하는 그에게 티끌 하나만큼의 부담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동안 퇴근후에 혼자 방안에 덩그라니 누워서 휴대폰의 액정화면에서 그의 이름을 빤히 보면서도 통화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이제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려고 고개를 돌렸다.
느즈막히 일어난 토요일이었다.
밀렸던 빨랫감을 세탁기에 돌리고 방을 치웠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외출 준비를 했다. 아직 포장이 되지 않아 흙먼지가 날리는 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왔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느라 줄을 선 사람들의 맨 뒤에 서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켰다. 뽀얀 먼지를 날리면서 버스가 달려와 정류장에 멈추고 사람들이 하나씩 버스에 올랐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동네의 모습이었다. 예전 추억의 뮤직비디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팝콘과 콜라를 사들고 의자에 앉아 영화관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빨대의 끝을 질근질끈 씹다가 후욱 빨아 한모금 크게 마셨다.
휴대폰을 켜고 시간을 확인 한 후에 화면에 손을 댔다.
뉴스의 메인화면에 교통사고 소식의 헤드라인이 보였다.
아무 생각없이 손가락 끝을 갖다댔다.
‘고속도로에서 정재호(27)씨가 몰던 롤스로이스 승용차가 가드레일을 치고 15미터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그 사고로 이한철(27), 정성규(27)씨등 탑승했던 전원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경찰은 추락후 화재가 난 승용차의 잔해를 수거해 사고원인을 확인중이지만 운전자 과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순간 놀란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콜라를 떨어뜨렸다.
얼른 집어들긴 했지만 떨어지는 충격으로 뚜껑이 벗겨져 바닥이 콜라로 흥건해졌다. 아르바이트 생이 마포를 들고 뛰어와 바닥을 닦았다.
”죄송합니다.“
입으로는 사과의 말이 튀어나왔지만 나는 여전히 휴대폰의 액정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사고와 관련된 뉴스에는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집안의 자식인지가 밝혀지고 있었다.
특히 한철의 아버지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아주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검사였고 어머니도 큰 기업을 경영하는 가문의 딸이었다.
극장 밖으로 걸어나왔다.
주머니에서 극장표를 꺼내 입구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쪽에 있는 카페로 발을 옮겼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뉴스에 눈을 떼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뉴스하단에 그들의 젊음이 덧없이 끝났음을 애도하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그래, 한편으로 누군가의 목숨이 그렇게 사라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 한쪽에 고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짓눌러오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 느껴졌다.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근처의 누군가도 나와 같은 뉴스를 보고 대화하는 듯 했다.
”하필 사고가 난 곳이 절벽이었대?“
”내말이... 진짜 재수 더럽게 없었나보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세일하는 백화점에 들러 모처럼 오랜만에 새옷을 사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름 정도가 지난 후였다.
밀려있던 일을 하느라 삼일동안 연속 야근을 하고 난 뒤에 과장은 미안했던지 남아있던 직원들에게 저녁을 쏘겠다고 했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한 후였다.
한쪽 벽에 있던 티비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경찰은 그렇게 수거한 잔해 중에서 의심쩍은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소형 수제폭탄일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것이 자동차의 센서에 부착되는 경우에는....“
티비의 화면에 화재로 인해 확실한 형태는 알 수없어도 경찰이 수제폭탄으로 여기고 있다는 부품조각이 보여졌다.
그것을 화면에서 보는 순간 예전 그의 집에서 나의 눈에 띄었던 부품이 떠올랐다.
”경찰은 차량에 그런 부품을 장착할 수 있는 곳이 사고 직전에 차주가 들렀던 카센터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엔비케이 김영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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