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너머를 달리는 그림자 9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카센터의 모든 직원들을 용의자로 보고 조사를 벌이던 경찰이 드디어 사고가 발생하기 4일전에 이미 회사를 그만 둔 그의 행방도 찾기 시작했다.

 

감쪽같이 사라진 그의 행적을 쫓으며 경찰은 그가 종로에 있는 게이바에서 바텐더로 투잡을 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재호가 카센터에 자신의 차를 맡겼던 것은 사고가 나기 바로 전날이었음에도 그리고 그때에는 이미 그가 퇴사를 하고 난 후였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경찰은 모든 수사력을 그를 찾는데 올인한 것처럼 보였다.

 

이미 그들은 재호가 차를 몰고 카센터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 다음날 아침에 다시 되돌아가는 시간까지의 모든 CCTV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동안 그의 모습이  화면에  찍힌 것은 없었다.

 

다른 모든 직원들을 조사한 경찰은 대부분의 카센터 직원들이 재호와 한철이의 패거리에게 폭행을 당했으며 범행의 동기가 될만한 원한을 사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그가 게이바의 바텐더로 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마치 그가 범인인 것처럼 경찰과 미디어는 그에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곧 티비의 헤드라인 뉴스에 그의 모습이 등장했다.




사실, 그의 아버지는 이한철의 엄마가 대표이사로 있던 기업에 물품을 납품을 하던 반월에 있는 작은 하청업체 사장이었다.

 

처음 얼마동안은 두 회사 사이에 신뢰가 쌓여가고  괜찮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철이 엄마가 대표이사로 나서면서부터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청업체로 지불되던 약속어음의 지급기일이 길어진 것이 첫 시작이었다.  그리고 곧, 이미 자체적으로 품질관리부에서 합격판정을 내리고도  갑자기 반품을 시키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급기야는  납품 대기중이던 모든 완제품들을 그 대기업이 계약서상의 이런저런 내용을 트집잡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항의하는 하청업체 사장을 오히려 계약위반으로 소송을 걸겠다고 협박했다.

그렇지 않아도 자금부족으로 직원들의 급여조차도 모두 지불하지 못하고 있던 그는 그러한 내용을 법에 호소했으나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주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대기업  본사 건물의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그의 아버지가 어느 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이틀이 지난 후, 그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경찰로부터 받게 되었다.

어떻게 그의 아버지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경기도의 한 변두리에 있는 작은 저수지의 옆길에서, CCTV는커녕 인적도 없는 그런 곳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는지 그의 가족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가족이 경찰로부터 통보를 받은 전부였다.

 

 

생산능력이 받쳐주지도 못하는 소규모 하청업체의 대표가 돈욕심이 앞서 앞뒤의 일을 재보지도 않고 덜컥 계약부터 체결한 것이 근본적인 이유였다는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임금체불로 고통받았다는 한 직원의 인터뷰가 티비 뉴스시간에 등장했다.  그리고 대표이사가 회사의 공금을 횡령하고 탈세를 한 혐의로 수사를 받을 예정이었다는 추측성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어떤 티비 매체의 시사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패널은 그가 사체업자에 쫓겨 야반도주를 하는 와중에 뺑소니를 당한 것이 거의 틀림없다는 근거없는 주장도 거침없이 내놓았다.

그리고 그런 결과로 생긴 일을 비뚤어진 눈으로 보게 된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원한을 갚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벌인 일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다른이는 그가 금전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보상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벌인 일이라고도 했다.

 

그렇게 내용이 그런 식으로 자극적으로 몰아가게 되자  퇴사를 한 후, 출근조차 하지 않던 카센터에서 어떻게 그가 그런 폭탄을 재호의 차량에 설치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아무런 의혹을 제기하는 이도 관심을 두는 이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재호의 어머니도 어느 티비의 뉴스에 등장했다.

슬픔이 가득한 목소리로 재호가 세상에 둘도없이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이었고, 길에서 발견한 다친 길고양이 한 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울먹였다.

생명의 존엄성과 고귀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에 의사의 길을 택한 천사같은 아이였다고 반드시 범인을 잡아서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녀의 아들의 한이라도 풀어주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녀는 흐느꼈다.

 

 

 

뜻밖에 그의 전화를 받은 것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던 새벽이었다.

 

고요한 어둠속에서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그 소리에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액정화면에 비친 낯선 번호에 나의 심장은 더욱 크게 뛰기 시작했다.

경찰이 틀림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혹시라도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할지 어떤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입에 침이 바짝 마르고 심장이 미칠 듯 뛰었다.

“나예요. 우진씨.”

“.......”

예상치 못했던 그의 목소리에 목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제가 자는 것을 깨웠지요?”

그의 말에 긴장속에서도 한숨이 나왔다.

“그게.... 그게 중요해요? 지금?” 목소리를 낮추려고 했지만 입 밖으로 큰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미안해요. 얘기한다고 하고 못한 것이 있어서....”

“괜찮아요?” 그의 말은 무시하고 그에게 물었다.

“어디예요? 안전한 거예요?”

쉴새없이 묻는 나의 말에 뜻밖에 그의 말투는 침착했다.

“난 괜찮아요.”

“.......”

“우진씨 겨울 패딩 주머니에.....”

“......”

그가 마치 혼자 중얼거리기라도 하는 듯 말했다.

“반지를 넣어 놓았어요.”

“네?” 그의 뜻밖의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할아버지때부터 내려오던 거예요. 어머니가 아버지 유품 중에서 저에게 주신거예요. 소중한 것이니 꼭 잘 간직하라고....”

“그걸 왜 저에게....”

“제가 몸에 지니고 있어봤자  없어져 버릴거예요.”

“......”

순간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숨막히는 초조함과 두려움 속에서 제대로 정신을 가다듬을 수 조차 없었다.

“저기....”

그런 와중에서도 조심스럽게 나는 입을 열었다.

“그거 윤우씨예요?”

“......”

“윤우씨가 그랬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잠시동안의 침묵 후에 그가 입을 열었다.

“그 이듬해였어요. 한철이 그 놈이 내 여동생이 다니던 고등학교 정문 근처에서 지 여친을 만났는데... 하필 그때 내 여동생이 그 앞을......  걔가 그랬대요. ‘너네 엄마네 회사 말아먹으려고 했던 그 놈의 딸년이 저기 지나간다.’ 라고...”

“......”

“하필 그 인간같지 않은 것하고 같은 고등학교를 다닌 것이.....  다른 학교라도 어떻게든 알게 됐을 테지만.... 학교마다 원정다니면서 양아치 짓을 했다고 했으니까요.”

“.....”

“여동생의 뒤를 따라가 붙잡고는 강제로 근처 모텔로 끌고 갔대요. 그리고 거기서 온갖 폭행과 모욕을 주고, 그놈들이 여동생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말을 잇지 못하던 그가 마침내 낮은 목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죽인채로 온몸이 굳어진 채 움직이지 못했다 .

 

“여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에....”

여전히 울음섞인 목소리로 그가 말을 이었다.

“엄마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정신없이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하고....”

“.......”

“어떻게든 엄마는 잃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 고통이 엄마가 견뎌내기에는.....”

“......”

그렇게 동생이 떠난 후, 딱 한달 만에 다시 엄마의 장례를 치르면서 그때 나도 엄마와 함께 죽은거예요.  그리고 이 몸뚱이만 남은 거예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껍질만.....그 놈에게 복수하는 방법만 찾으면서....“

”......“

”이제 내가 할 일 끝냈어요."

그의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이 세상에 아무 미련 없어요. 저 세상에 가서 부모님하고 동생의 얼굴을 이제 떳떳하게 .....“

”죽긴 왜 죽어요.“

아무 의식도 없이 멍하게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나의 입에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누구 좋으라고 죽어요?“

그리고 슬며시 그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가족들 몫까지 버티면서 살아야죠.“

”........“

”인적없는 산 속으로 들어가요. 네? 세상 돌아가는 것 모르고 살아가는 노인들만 있는 외딴 섬을 찾아봐요. 무인도면 어때요? 로빈슨 크루소도 살았는데....“

그렇게 그에게 사정을 했다.

”제가 잘 보관했다가 나중에 꼭 그 반지 돌려드릴게요. 소중한 거잖아요.“

그렇게 그에게 애원을 했다.

나의 말에 그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진씨도 소중해요. 나에게...."

그렇게 그는 중얼거리듯 말끝을 흐렸다.




”.......“

 

그리고 멍한 나의 귓속에 더 이상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휴대폰을 두손으로 부여잡고 나는 그렇게 쪼그리고 누웠다.

머릿속이 빙빙돌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져서 간신히 한숨을 내쉬었다.

생전 믿지도 않고 찾지도 않던 신을 향해서 손을 모았다. 그에게 빛을 보여달라고... 볍씨 한톨만한 것이라도 좋으니 그에게 희망을 던져 달라고.... 그리고 다시 그에게 살아갈 기회를 달라고.....

 

 

억지로 숨만 쉬면서 사무실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버티고 있는 나의 등 뒤에서 밖에서 담배를 피고 돌아오던 김과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후 세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그 놈 잡혔다는데?“
그의 말에 놀라 고개를 돌린 나의 눈에 휴대폰에 눈을 고정하고 자신의 자리에 앉는 김과장이 들어왔다.

”누구요?“ 옆자리의 이대리가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누군 누구야. 승용차에 폭탄 설치해 논 그 놈이지.“

그의 말에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디서 잡혔대요?“ 맞은편에 앉은 김소정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과장에게 물었다.

”경기도 어디에 있는 모텔이라는데, 지가 뛰어야 벼룩이고 날아야 하루살이지. 젊은 청춘을 셋이나 그렇게 보내고 어딜 도망을 간다고...“

가소롭다는 듯, 그렇게 쾌재를 부르는 김과장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간신이 몸을 일으켜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휴대폰을 열고 천천히 그가 잡혀있다는 경찰서의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