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너머를 달리는 그림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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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정재호씨가 강남마스타 카센터에 차를 입고 시켜 둔 그 날 저녁에 현재 혐의를 받고 있는 이윤우씨는 한우진씨의 집에 있었다 그 말이지요?”
눈꼬리를 치켜뜨고 형사는 그렇게 나에게 물었다.
“예.”
그가 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로 자신의 입꼬리를 문질렀다.
불쾌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고 날카롭게 뜨고 자신의 책상위에 놓인 모니터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몇시부터 같이 있었지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가 6시 30분 경이었고, 그때 이윤우씨는 집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그가 한쪽 눈썹을 치켜뜨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주인도 없는 빈 집에 먼저 들어와 있었다는건가요?”
“그 전에 도어락 비번을 알려줬습니다.”
그가 전혀 믿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몇시까지 같이 있었나요?”
“그 다음날이 토요일이어서 점심때까지 같이 있었습니다. 그 후에 2시경 즈음에 돌아갔구요.”
“그럼 밤을 한우진씨 집에서 같이 보냈다는 거네요?”
“네.”
그가 피식 하고 웃었다.
“두분이 무슨 관계이신가요?”
“그냥 조금 알고 지내는 사이....”
“그런데도 집의 도어락 비번을 알려주셨다.” 나의 답변을 중간에 가로막고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한우진씨. 지금 이거 중대한 살인사건이예요. 세명이 죽었습니다. 대충 그럴듯하게 얘기해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좋아했어요.”
얼떨결에 나의 입 밖으로 그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그 사람을.... 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나를 그가 다시 눈을 가늘게 뜨고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니 조금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게 위증은 아니지요.”
극도로 긴장이 되어 숨쉬기가 어려웠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나의 얼굴은 뻘개지고 그런 나를 보고 있는 형사의 입장에서도 내가 말하는 것을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나와 다를 수 있을 까 싶었다.
나만 두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조사해 보면 진실 다 밝혀집니다.”
그가 나의 얼굴을 빤히 노려보던 시선을 모니터로 돌렸다.
“집 근처에 CCTV 확인해 보시면 알거예요. 그날 그 시간에 그가 우리집에 와서 있다가 갔다는 것을...”
그가 다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알기로는 새로 이사온 원룸 근처에는 아직 CCTV는 설치되지 않았다.
원룸 입구에 집주인이 최근에 몇 개 달아놓긴 했지만 사건이 발생한 그 이후였다.
그러므로 경찰이 조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여튼, 시간을 벌고 싶었다.
그가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경찰과 미디어에 알리고 싶었다.
마을 버스에서 내려 힘들게 비포장된 언덕을 걸어 올라가면서 나 같은 쫄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를 구해보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아니 그것이 가장 필사적인 바램이었겠지만, 아직까지 비참하게 짓누르고 살았던 재호에 대한 분노가 마치 터진 수도관을 통해서 물이 쏟아져 나오듯 그렇게 분출해 버린 것이었다.
그가 살아있을 때에는 꼼짝도 못하고 빌빌거리던 내가 남의 도움으로 그 서러움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못나고 비겁한 것이 나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나인걸...
경찰이 회사로 나를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어떻게 알았는지 신문사와 방송국의 기자들이 어깨에 큼지막한 카메라를 들고 나의 사무실로 들이닥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두려움이 온몸을 사로잡았지만, 그래봤자, 최악의 경우에 퇴사하는 것 밖에 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인적 없는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무인도로 가라고...
그렇게 떠들어대고 나는 퇴사와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한다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태도인가.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그런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던 어느 날, 점심식사를 하려고 구내식당에 앉았을 때 마침 뉴스가 방송되고 있는 티비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그 교통사고를 단순한 운전자의 운전과실로 사건을 종결한다고 밝혔습니다."
뜻밖의 발표에 놀라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뚫어져라 티비 화면을 응시했다.
"폭발물 장치로 보이던 부품은 조사 결과 그 자동차에 설치되었던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그 고속도로의 사고지점 50미터 전방에서 터널 작업 중이던 당시 사용되던 것으로서.."
예상치 못했던 경찰의 수사 결과에 나의 막혀있던 가슴이 서서히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터져나왔다.
나의 맞은편에 앉아서 수저를 들고 있던 김과장이 허무한 표정으로 쩝쩝 입맛을 다셨다.
누군가 한 놈은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그 사고의 진정한 가해자가 아니더라도, 그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억눌려 있던 삶의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 그의 그런 스트레스를 쏟아 낼 대상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삶의 노곤함이 한순간 다시 그의 얼굴 표정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야. 밥이나 먹자.”
실망감이 역력한 말투로 그가 직원들을 둘러보았다.
내가 만든 알리바이가 그를 구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와 같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의 증언 한마디가 경찰과 미디어의 합작품이었던 그런 거칠 것 없는 급물살을 역류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예전의 티비에서 본 타버린 부품 조각은 그의 방에서 본 장치와 흡사해 보였다.
그리고 그도 나에게 자신이 한 일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분명 그와 관련된 일이 틀림없었지만 갑작스럽게 이해되지 않는 방향으로 사건이 흘러 종료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이제 모두 끝나버렸다.
며칠이 지난 후, 예전에 그로부터 연락 온 휴대전화 번호로 슬며시 전화를 해 보았다.
하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가슴 한쪽에 구멍이 뚫려 찬 바람이 새어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에게서는 그 후로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이십대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의 신원미상의 남성이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올때마다 이제 김과장은 그 사체를 윤우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저 봐. 거. 지도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저렇게 자살한거 아냐. 멀쩡한 젊은 인생 셋을 보내놓고 어떻게 편하게 살 수가 있었겠어.”
그가 잘된 일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당연하다는 듯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과장님. 그거 운전자 과실이라고 뉴스에 나왔잖아요.”
김소정씨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시선은 자신의 모니터에 두고 슬며시 대꾸했다.
“아냐. 과장님 말씀이 맞아.”
영원한 딸랑이인 이대리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피해자 가족이 너무 억울해서 자살을 시켰을 수도 있는 일이죠. 과장님. 피해자 가족들이 다 한자리 하는 거물급 집안이었잖아요.”
“맞아. 맞아.”
그의 말에 과장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그런 티비에 나오는 뉴스와 인터넷 기사들은 애써 피했다.
그 일리가 없다고 믿었다.
분명 나의 바램대로, 내가 믿는 대로 그는 살아있을 것이라 믿었다.
어딘가에서 어떻게든 볍씨만한 희망을 키워, 이제 그 희망은 밤톨만큼 커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서 그것을 땅 속에 심어 싹을 틔우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마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덩달아 그런 모습을 바래는 나의 믿음도 점점 더 커지는 듯 느껴졌다.
일행없이 혼자만의 종로에서의 술한잔도 이제 그렇게 나에게는 작은 만족이 되기 시작했다.
모두 이렇게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흘끗거리면서 나를 보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이제 익숙해져 있었다.
그들도 곧 그것도 지겨워질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자극적인 일이 생기면 나에 대한 쓸데없는 관심은 개나 주고 또 다른 가십으로 갈아탈 것이다.
아무도 눈여겨 봐주지 않는 그런 상황이 오히려 외롭게 느껴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때 즈음에는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도 한두명의 새로운 타인들이 모여앉아 적당히 취한 발그레한 얼굴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음짓고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도 생겨났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해가 되었다.
여전히 그로부터의 연락은 없었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그 사건은 점점 잊혀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마치 김과장이 그랬던 것 처럼, 신원미상의 젊은 남자의 변사체가 발견될 때마다 누군가는 지나가는 말투로 그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모두 동의하는 것인지 관심이 없는 것인지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 중에 그가 있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는 아무도 모르게 완전한 타인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잔인한 이쪽에서 살아가는 나와 달리 들이마시는 한움쿰의 공기마저도 새로운 저쪽 어딘가에서 낯선 타인이 되어 그의 삶을 시작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끊임없이 그의 살아있는 존재가 여전히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을 것이라고 내 자신에게 되뇌이다 보니 어느 순간 그것은 나에게는 명백한 사실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미래의 어느 화창한 날에 느긋하게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 나의 앞에 웃는 얼굴로 그가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튼 인생이란 것은, 그 누군가에게도 한번쯤은 나 보란 듯 꽃을 활짝 피워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 시간이 아무리 짧다 하더라도 그런 무아지경에서 행복감에 겨워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대한 기쁨을 만끽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가 아닌가.
그의 존재도 그렇게 소중하지 않은가?
팔뚝에서는 여전히 굵은 핏줄이 불끈거리고 그 안에 뜨거운 피가 요동을 치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예전에는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자신의 삶의 의미를 움켜쥐고 큰 소리로 희망을 외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마을버스에서 내려 기분좋게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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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10편을 다 읽었네요.
건조하고 담담하지만 그래서 더 와닿는 문체가 특히 좋았습니다.
다른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건조하고 담담하지만 그래서 더 와닿는 문체가 특히 좋았습니다.
다른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