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곰이 떠오르는 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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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다음 날 아침, 사우나 문을 열고 함께 나오는 승환과 종철. 승환은 종철의 옆에서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고, 종철은 아침 목욕까지 했으면서도 아직 피곤함이 덜 깼는지 부은 얼굴로 얼굴을 긁적인다.

'으응'

그리고는 내려가는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승환을 한 번 돌아보는 종철. 종철에게 기습 공격을 당한 지난 밤의 기억 때문일까, 승환이 종철에게서 몇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 서있다. 종철은 그런 승환에게 옆으로 붙으라고 손짓한다.

'아 하하.'

참 과감한 손짓들. 머쓱하게 웃으며 그제서야 종철의 옆으로 다가가는 승환. 이리도 민망한 상황에 괜히 아직 오지도 않은 엘레베이터 층 수만 고개를 들어 확인한다.

어젯 밤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종철의 손길에 너무나 예민하게 반응했던 승환.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또 한 번 승환의 찜질복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 넣고 승환의 꼬추를 만지작대며 잠을 자고 있던 종철이었다. 평소였으면 욕은 물론 주먹이 나가고 경찰까지 불렀을 테지만 왠지 모르게 잠에서 깨어나 자신을 만지고 있는 종철을 발견하고는 온 몸이 굳어버린듯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던 승환이다.

종철은 항상 태연하다. 이런 스킨십이 익숙한가보다. 그렇게 우리 사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승환의 어깨에 어깨동무를 하는 종철. 종철의 무거운 팔이 어깨에 툭 하고 올려지자 꼭 종철의 품 안에 껴안기듯 어깨가 웅크려지는 승환. 승환은 이 와중에 꼬추에 다시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것만 같은 미묘함에 입술을 깨문다.

'집에 가나?'

'ㅇ..예 가야죠.'

'아쉽네. 또 언제 볼 수 있으려나 으응'

때 마침, 도착한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엘레베이터로 승환을 끌고가듯 들어가며 말을 잇는 종철. 아쉬움이 진심으로 묻어나는 목소리다.

'하하.. 뭐...'

이 아저씨를 언젠가라도 다시 보는 게 맞는 걸까. 승환은 괜히 종철과 다시는 마주치지 않아야 할 것만 같다. 승환에게 이런 위험한 감정을 주는 종철. 승환은 지금 종철의 이름도 모르고 사는 곳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지 않나. 이대로라면 두 사람이 다시 만날 일은 없는 게 맞는 건데.

'내가 번호를 물어보면 주시나'

그 때, 1층을 누르고 문을 닫으며 말을 잇는 종철. 종철은 정말 적극적이다. 남자가 남자의 번호를 따는 게, 그것도 속이 뻔히 보이는 이유로 그런다는 게, 선뜻 말하기는 쉽지는 않은 질문인데. 종철은 그게 참 쉬워보인다.

하지만 번호를 묻는 종철의 남자다운 목소리, 은근슬쩍 장난끼가 묻어나는 입꼬리. 두툼하고 듬직한 떡대. 아침부터 향긋한 샴푸 냄새를 풍기는, 방금 목욕을 마치고 나와 살짝 머리가 젖은 종철의 모습이 한 순간에 가슴 속을 찌르며 뚫고 들어오는 승환. 이 사람은 남자가 봐도, 멋있어도 너무 멋있다.

그렇게 승환의 대답도 없었는데 종철은 자신의 휴대폰을 건넨다. 그리고 자신의 번호를 찍어주는 승환. 왜 그랬을까, 승환도 모르겠다. 다시 바깥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이 엘레베이터가 1층으로 도착하기 까지의 그 짧은 시간 안에, 종철과의 다음을 기약하고 싶었을까. 이 찰나의 순간이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마지막 기회라는 걸 직감했던 걸까.




















'잘 들어갔어?'

지하철 역에서 올라와서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는 승환. 겨우 그 먼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동네로 돌아오긴 했다. 밤새도록 문자 한 통은 남겨놓을 줄 알았던 여자친구가 연락이 없자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한 승환. 사실 걱정되는 마음이라기 보다는 의무감이 앞선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나는 찜질방에서 자고 이제 동네 왔어'

결혼까지 앞둔 사이인데, 한 번 다퉜다고 연락을 무시하고 그런 유치한 짓은 하지 않는 듯한 두 사람이다. 다만 서로를 향해 쌓아온 신뢰감과 확신이 무너졌다면 빠른 시일내로 어떠한 액션을 통해 다시 쌓아올리긴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제는 내가 좀 치사하게 군 거 같다. 미안해'

일단은 여자친구에게 사과를 건네는 승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잔뜩 토라진 목소리를 들었을 때, 경험적으로 승환이 사과를 하는 것 만큼 확실한 해결책은 없다. 해결책이라기 보다는 승환이 스스로 덜 피곤해지려면 그게 맞더라.

'응 그래. 밥 챙겨 먹고.'

그렇게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는 승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연애 초기에는 항상 보고싶기만 하고, 바라만보고 있어도 설레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데. 그런 감정은 사라진지 오래다. 누구나 가치관은 다른 거 겠지만, 승환이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그냥 무던한 상대라서. 혹은 그동안 함께 해온 시간들이 워낙 길고 일상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려서. 다들 결혼은 그렇게 한다고들 하더라. 물론 남자 선배들 말에 의하면 말이다.

우우웅-

그 때, 전화를 끝내고 심란한 마음을 정리하기도 전에 다시금 울리는 승환의 휴대폰. 저장되지 않은 번호이지만 직감적으로 승환은 누구인지 알 것만 같다.

'..여보세요?'

'어이! 찜질방, 맞나'

'아 넵 맞아요'

승환의 이름을 모르니 찜질방 맞냐 물어보는 종철의 물음이 다소 엉뚱하다. 다시 들어도 거친 종철의 목소리. 이 목소리가 왜 이리도 승환을 설레게 하는지.

'이상한 번호 준 건 아니네. 허허. 보고싶어서 전화했지'

그러자 바로 또 직설적인 멘트를 던지는 종철. 승환은 남자에게 이리도 적극적인 구애를 당하는 게 생전 처음이라 더욱 당황한 기색이 가득하다.

'아.. 조심히 들어가셨나요'

'으응 조심히 왔지. 어제 너무 재밌었는데. 놀아줘서 고맙기도 하고'

'저도 재밌는 시간이었습니다'

'근데 우리 더 재밌게 놀 수 있지 않나? 천천히 오래오래 보면서?'

종철의 쏟아지는 거침없는 멘트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혼란스러워지는 승환. 이건 누가 들어도 썸이라도 타자고 데이트 신청을 하는 멘트다. 항상 여자들에게 고백을 먼저 하기만 했던 승환인데, 남자에게, 그것도 나보다 열살은 더 많아보이는 아저씨에게 고백을 받는 이 기분이 승환은 너무나도 낯설다.

'재밌게요? 하하.. 어떻게 재밌게요?'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기분이 싫지는 않다. 여자친구에게 죄책감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이 순간 만큼은 여자친구의 생각이 들지가 않는다. 내가 이 아저씨를 몇번 더 본다고 여자친구와 결혼을 안 할 건 아니니까. 승환은 자신이 애초에 게이가 아니니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하나 보다. 괜히 이제는 기가 죽지 않으려고 여유로운 척 말을 받아치는 승환.

'재밌는 건 많지. 어제도 재미를 다 못봐가지고 내가 좀 많이 아쉽다. 아 근데 그쪽 이름이 뭘까 내가 이름도 모르고 이러고 있었네 허허허'

'형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어우, 그렇지. 내 이름도 말 안하고 좀 예의가 없었네. 나는 배종철'

배종철. 형님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렇게 종철의 이름이 크게 와닿는 승환. 승환이 여자친구와 의무적인 통화를 할 때와는 확실히 다른 몰입도로 승환이 말을 잇는다.

'저는 김승환입니다.'

'승환이. 김승환. 이름도 이쁘다.'

'형님 이름도 이쁩니다'

왜 순간 종철이 이쁘다 말하는 게 자존심이 상하는지는 모르겠다. 멋있다도 아니고 이쁘다라니. 괜히 종철의 앞에서 한없이 위축되고 잔뜩 긴장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서 더 당당한 목소리를 뱉는 승환. 어짜피 앞으로 계속 이어질 인연이라면, 내 본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남들 앞에선 그렇게 소심하고 바보같은 사람은 절대 아닌데.

'하하하 그래? 내 이름이 이쁜가? 그런 말은 이쁜 승환이한테 처음 듣네.'

또 이쁘단다. 일부러 이러는 건 아닌 듯. 종철은 승환의 머릿 속이 이리도 복잡한 상황인지는 모르나보다. 그저 기분이 좋아 보이는 종철의 목소리. 평소에 말을 안할때는 말 걸기 무서울 정도로 강한 인상인데, 막상 입을 열면 은근 해맑은 모습을 내비치는 게 매력적이다. 승환이라서 해맑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형님 소주 한 번 드시죠 그럼'

자신이 조금은 주도권을 빼앗았다는 기분이 드는 걸까. 홧김에 소주를 마시자고 제안을 하는 승환. 그동안 종철에게 겁을 내고 있었던 게, 종철이 무서워서가 아니고, 종철이 주는 이 낯선 감정이 어색해서였다는 걸 느껴버린 걸까. 승환은 더 이상 종철에게 기가 눌리지 않으려고 오히려 주도적으로 다음 만남을 이어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소주? 감당 되겠나'

'ㄱ. 감당, 감당은요 무슨 감당이요'

허나 감당이 되냐는 종철의 능글맞은 목소리에 바로 당혹감이 들어오는 승환. 애써 티는 내지 않으려고 말 끝이 흐려진다.

'내가 술을 많이 못하잖냐. 맥주도 한캔 먹고 뻗는 몸인데 소주라고 별 수 있겠냐 하는 거지'

'제가 형님 집 근처로 가서 뵈어도 되는 거니까요'

'아니 내가 갈게. 내가 요즘 한가해서. 심심하거든 그러다가 어제 승환이를 만나가지고. 기분이 참 좋네'

종철의 목소리에 애정이 가득 담겨있다. 그런 종철의 대쉬가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오히려 입꼬리가 올라가는 승환. 나도 형님과 내가 뭘 어쩌자는 건지를 모르겠다. 그저 일단 마음이 가는대로 가보자 싶은 승환이다.














'풉 너가 까불었네'

'네 까불었죠. 그 때 괜히 까불지 말 걸 그랬네요'

'야 근데 니가 생각보다 자존심이 세구나. 안그래 보이는데'

승환의 이야기를 듣다가는 풉하고 웃음이 터진 남우. 남우는 승환이 마냥 웃기다고 쳐다보고, 승환은 그런 남우를 살짝 찡그린 얼굴로 바라본다. 남우에게 짜증이 나는 게 아니고, 그냥 그 때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니 자신에게 후회가 된단다.

'형님은 그런 거 없어요? 같은 남자인데, 괜히 나만 남자답지 못한 모습 보이면 억울하잖아요.'

'나는 그러면 내가 여자다 생각하고 사는 거지 뭐'

'자.지 달린 여자라고요?'

'미.친 새끼네 이거 큭큭큭. 달려있으면 뭐 하냐 평생 쓰지를 않았는데.'

'떼시죠 그럼.'

'야 임마 확'

자연스레 장난을 치는 두 사람. 남우는 순해보이는 겉보기와는 달리 생각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거침이 없다. 그런 남우를 놀리는 게 은근 재밌다는 승환. 그 때, 남우가 괜히 마주본 승환을 위아래로 한번 훑고는 말을 잇는다.

'니 자.지도 뭐 별 거 없지 않냐'

'저요? 저는 아주 쓸만하죠. 여자 몇명을 울렸는데'

'에이. 내가 듣기는 아닌데'

'예?'

'너도 듣기로는 뭐 덩치만 컸지. 뭐..'

'이래서 배종철을 제가 싫어하는 겁니다'

'아이 장난이야 히히'

그렇게 괜히 자기만 당할 수는 없다고 장난을 잇는 남우. 헌데 승환은 자신의 프라이버시까지 진작부터 떠벌린 듯한 종철이 너무나도 싫다고 잔뜩 표정이 굳어버린다. 남우에게 화가나는 건 아니다. 남우는 종철의 친구니까 당연히 별 이야기를 다 들었을 수도 있지. 지나고보니 괜히 종철에게 자격지심이 많이 쌓인 것 같기도 한 승환의 모습이다.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쇼!!!!'

'네엡'

저녁 시간, 정신없는 곱창집의 풍경. 퇴근을 하고 술 한잔씩 하고 있는 듯한 사람들이 테이블에 모여 앉아 시끌벅적 각자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리고 있다. 술 없이는 이대로 잠에 들 수 없단다. 눈 뜨면 다시 출근이니 이 쳇바퀴같은 인생에 소주라도 마시며 아쉬운 밤을 달래보잔다.

그리고 외부 테이블에서 술에 잔뜩 취한 아저씨 무리가 다소 무식한 목소리로 외치는 소주 주문을 받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르바이트 학생. 20대 후반 정도 되어보이는 알바생은 그렇게 냉장고 문을 열고 이슬 한 병을 꺼낸다.

'저기 처음처럼이잖아. 지금껏 열병은 시켰는데'

'아 그래요? 네'

'그리고 이거 빨리 서빙해. 뭐하는 거야 오늘따라 얼이 빠져서'

'아 잠시만요 네'

'사장님! 여기 카스 한병이요!'

'네에 잠시만요~'

아주 정신이 없다. 알바생이 소주를 잘못 꺼내자 그 모습을 힐끔 지켜보고 말을 하는 승환. 이 곳은 승환이 운영하는 곱창집이다. 그리 크지 않은 매장이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는 야외 매장까지 운영이 가능하니 손님이 북적하다.

요즘 시국에 상황이 말이 아니다 보니, 알바생이 한 명 밖에 없는 승환의 매장. 승환은 주방과 매장 운영을 동시에 보고 있어서 더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듯 하다.

그렇게 알바생은 예민한 승환의 꾸지람에 살짝 기분이 상했는지 표정 없이 소주를 나르고, 주방에서 나온 밀린 곱창을 서빙한다. 그리고 주방에서 계속 일을 보며 그런 알바생을 힐끔 힐끔 바라보는 승환.

애가 훤칠하고, 성격도 야무지다. 일도 참 잘해주고 있고 성실해서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알바생이다. 그런 알바생에게 괜히 방금 예민한 목소리를 뱉은 것 같아서 마음이 쓰이는 듯한 승환이다.

'준영아'

'네? 왜요. 아 진짜 정신 없네'

'고맙다. 화이팅이다. 잘하고 있어'

'ㅋ하. 뭐에요. 사장님 땀이나 닦으세요'

그렇게 승환이 먼저 고맙다는 뻔하지만서도 따뜻한 한 마디를 뱉으니 순식간에 희미해지는 둘 사이의 미묘했던 불쾌한 분위기. 이래서 말 한마디가 참 중요한 것 같다. 준영도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불 앞에 서있는 승환을 챙겨주듯 휴지를 말아 뜯어 건넨다.

'새끼. 센스있기는'

쨍그랑!!!!!

'꺄악'

그 때, 야외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테이블이 넘어가며 병 깨지는 소리와 놀란 무리의 외마디 비명소리. 승환과 주영은 동시에 두 눈이 동그래져서는 통 유리가 활짝 열려있는 매장 바깥을 바라본다.

싸움이 났다. 방금 갖다준 소주까지 셋이서 소주 열한병은 주문하더니 결국 술에 취해 사단이 났나보다. 무리 중 한명은 플라스틱 의자까지 뿌셔먹고는 바닥에 나자빠져있다. 놀라서 주춤하는 준영과 곧바로 주방을 나와 바깥으로 뛰어가는 승환. 승환은 싸움이 나서 혼란해진 매장 분위기를 정리한다.

'뭐하시는 겁니까. 어. 조심하세요. 준영아'

승환은 손님들이 혹여나 깨어진 소주 파편에 다치기라도 할까봐 엎어진 테이블 주위를 몸으로 막으며 준영을 부른다. 준영은 곧바로 빗자루를 들고 나와 소주 파편을 치워내고,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담배를 뻑뻑대고 앉아있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다시 묻는 승환.

'남의 가게에서 싸우시면 안되죠.'

'뭐야? 이 새끼는

'이 새끼는 이 가게 주인이고요. 이제 계산하시고 가세요, 많이 드셨어요. 이거 의자 부러진 거는 제가 그냥 봐드릴테니까'

'야이 씨.발 내가 내 돈 내고 더 먹겠다는데 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술이나 나를 것이지 이 새끼야'

'아이 그만해'

'아니 이 새끼 눈 부라리는 거 봐라. 야 요즘에 장사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손님한테 눈 부라리고, 되냐고 이거'

'아.. 흐으...'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취한 듯한 한 아저씨는 계속해서 승환에게 시비를 건다. 속으로 이미 참을 인 열번은 썼지만 참아지지가 않는다. 이게 무슨 민폐인지. 당장이라도 아굴.창을 날리고 싶은데 보는 눈이 많아서 주먹만 부들거리는 승환.

테이블이 엎어질 때 같이 의자에서 뒤로 나자빠져진 듯한 아저씨는 그제서야 술에 취해 비틀비틀 일어나더니 두 허리에 손을 꽂고 비스듬한 자세로 하늘을 향해 목을 들어올리고 있다. 두 눈도 제대로 못뜨는 꼬라지가 술에 제대로 취한 듯. 싸움이 왜 났는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왜 내 가게에서 싸우냐고.

취객을 상대하다보니 이런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오늘은 좀 심하게 난장판이네. 계속 아무 말 없이 화를 참아내며 테이블을 들어올리는 승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폭언을 내뱉는 아저씨와. 그런 아저씨를 아까부터 만류하는 듯 하면서 별 도움은 안되는 다른 일행. 오히려 시끄럽게 굴어서 승환의 고막만 더욱 자극한다.

'야 이 씨벌.새끼야 말 해보라고. 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지.랄 허냐'

'아 이 씨ㅂ. 새끼가.'

'어웁.. 욕했냐?'

결국 끓어오르는 화를 참아내지 못하고 욕을 하는 승환. 그런 승환의 순간적인 포스에 아저씨는 움찔하면서도 건 수 잘 잡았다는 듯 승환에게 대가리를 들이댄다. 손님이 왕인거지.

'표정 봐라 한대 치겄다? 주먹 좀 쓰나봐 어잇 어이'

'후.. 가세요. 아 손님분들 죄송합니다. 식사 계속 하ㅅ.. 우욱'

더 이상은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몸을 돌려서는 놀란 손님들에게 사과를 하는 승환. 그 순간, 키가 큰 승환의 목을 점프까지 해서 둘러잡은 뒤 자신의 품 쪽으로 잡아당겨 내리는 취객. 그대로 승환은 놀란 채로 몸이 뒤로 엎어지듯 넘어진다.

우당탕-

'꺄악'

다시 난장판이 된 가게. 덩치가 좋은 승환이 그대로 목을 부여잡힌 채 넘어지자 사람들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을 피하고, 눈치를 보며 소주 파편을 치운 준영이 놀라서 취한 아저씨로부터 승환을 풀어주려고 달려든다.

승환의 목을 있는 힘껏 조르며 발버둥을 치는 아저씨. 승환은 그대로 자빠진 채 아저씨의 팔뚝을 부여잡고 시뻘개진 얼굴을 잔뜩 꾸기고 있다.




퍽!!!!!!

'아악'

그 때, 갑자기 외마디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팔에 힘이 풀리는 취객 아저씨. 승환은 그 틈에 겨우 빠져나와 중심을 잡고 일어난다.

그리고 승환의 눈 앞에 보이는 한 덩치의 모습. 오늘 마감 후에 소주 한잔 하자고 약속을 잡은 종철이다. 마감은 4시간도 더 남았는데 벌써부터 와있던 것일까. 그대로 취객의 뒷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버린 종철. 아저씨는 눈물이 핑도는 통증에 뒷통수를 부여잡고 바닥에 앉은 채 고개를 떨군다.

'일로 와. 임마. 일로 와. 이 새끼'

진상 중의 진상을 부리는 취객을 자신이 끌고 가겠다고 귀를 부여잡고 잡아당겨 일으키는 종철. 종철은 가게나 얼른 정돈하라고 승환에게 눈빛을 보내며 애교스럽게 입술을 삐죽 내밀고. 압도적인 힘으로 취객 아저씨를 저만치 끌고간다.

'아익 뭐야 씨.발!!! 아아악!!!'

'어우 술 냄새 아.굴창 다물어. 임마.'

퍽!!!

발버둥을 치며 욕을 하는 취객의 뒷통수를 한대 더 후리며 웃기다고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종철. 종철은 술집 골목 저만치 앞에 보이는 파출소로 취객을 인계하려는 건지 계속해서 걸어간다.

그런 갑자기 나타난 종철의 뒷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승환.

두근댄다. 취객에게 목이 졸려 숨이 안쉬어져서 가슴이 쿵쿵대는 것 같기는 한데.. 쿵쿵대는 건 쿵쿵대는 건데.... 확실히 아슬아슬 심장이 기분좋게 두근댄다. 이 감정은 너무나도 전혀 낯설지 않고 익숙하다. 이건 예전부터 누군가에 많이 느껴봤던 바로 그 감정이니까, 지금 여자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두근거림이 느껴졌었으니까.

그렇게 준영이 괜찮냐며 먼지를 털어주며 등에 손을 대고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승환. 그제서야 승환은 정신을 차리고 급히 다시 가게를 수습하기 시작한다.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간다. 웃으면 안되는 상황이고, 내 소중한 가게가 난장판이 되어서 손님들은 얼굴을 찌푸리는데, 승환은 자꾸만 애교스러운 표정을 짓고 여유롭게 취객을 끌고 가던 그 종철의 표정이 떠오르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언제부터 와계셨던 거에요 죄송해요. 마감이 조금 늦어져서.'

새벽 두 시. 아예 내가 그리 갈테니 작정하고 마감 후에 술을 먹자던 종철의 제안. 승환 입장에선 나쁠 게 없었다.

그렇게 급히 마감을 하고 달려와 먼저 근처 연탄 불고기집에 자리를 잡고 있던 종철의 앞에 앉는 승환. 종철은 승환을 위한 고기라는 듯 고기를 진작부터 먹음직스럽게 구워놓고 있었다.

'흐흐. 할 거도 없는데 일찍 와있었지. 승환이 보고싶기도 하고. 안그냐'

'아까는 감사했어요.. 큭.큭ㅋㅋ 아 왜 이렇게 웃음이 나지. 민망하기도 하고.'

'원래 그런 새.끼들이 많지? 나도 장사 해봐서 알어'

이제는 종철의 얼굴만 보아도 웃음이 나는 승환. 승환은 자꾸 종철의 두 눈은 똑바로 마주치지도 않고 고개를 살짝 돌려 웃음을 짓고 있다.

그런 승환을 또렷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종철. 고기를 계속해서 휘저으며 구우면서 말을 잇는다.

'고맙지?'

'아우 감사하죠. 진상들 처리하는 게 진짜 난감한데 그래서 오늘은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대접은 됐고,'

그 때 다 익은 고기에 불을 줄이며 말을 잠시 끊는 종철. 승환은 잘 익어가는 고기에 잠시 침을 꿀꺽 삼키고는 순간적인 미묘한 분위기에 눈을 들어올려 종철과 눈을 맞춘다. 그런 승환의 표정에 너무 긴장감이 가득 묻어나온 걸까. 호탕한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 종철.

'푸하핫. 됐고. 응. 먹어.'

그렇게 종철은 말을 애매하게 끊어내며 승환의 앞 접시 앞에 고기를 한가득 쥐어 덜어주고 있고, 승환은 다시 한 번 움츠러든 어깨를 펴내며 소주 병을 돌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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