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곰이 떠오르는 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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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종로의 한 가라오케. 늦은 밤, 한산하지 않을 정도로만 테이블을 채우고 있는 중년의 손님들. 예약된 노래는 대여섯개가 넘어가고, 사람들은 옆 테이블의 남자들을 힐끔 힐끔 바라보며 오늘 밤, 어떤 정의되지 못한 특별한 사건을 기대하는 듯 눈빛을 보낸다.
허나 역시 이내 체념한 듯 눈을 돌리고, 애석한 술 잔만 들겠지. 내 앞에 앉아있는 나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 동료들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며. 우리의 생김새와 성격, 좋아하는 노래 취향이 모두 다를지라도, 같은 점 하나는 있어 좋다고, 부딪힌 술잔에 이 밤의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다며 말이다.
'오. 임창정.'
'큼 크흠.'
자신이 예약한 노래가 드디어 나왔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한 남자. 무대에 오르기 전 가볍게 맥주를 머금어 목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화면에 뜨는, 남자가 예약한 임창정의 '나란놈이란' 이라는 노래를 보고는 늦은 밤 취기에 살짝 감긴 눈을 뜨고 입술을 모으는 한 남자. 그 앞에는 무대에서 누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관심도 없는 듯한 모자를 뒤집어 쓴 남자가 앉아있다. 두 주머니에 손을 꽂고 벽에 등을 기대고 살짝 시선을 내리고 있는 이 남자.
김승환, 37살. 전반적으로 중년 나잇대의 손님들로 채워진 이 가라오케에서는 어린 편이지만, 키 180에 90키로가 넘는 승환의 듬직한 체구와 남자다운 이목구비 때문일까 그리 어색해 보이지는 않는다.
'승환이 니 임창정 좋다고 안했나?'
'좋아하죠'
'술 더 마시냐? 에이 이거 다 먹었네'
'네, 전 뭐. 아직 멀쩡해요.'
그런 승환을 왜인지 안타깝게 바라보는 남자. 이 남자의 이름은 이남우. 46살. 승환보다 9살이 많다. 오동통하게 오른 뱃살에 나이에 비해서도 은근히 앳된 얼굴이 꽤나 귀염상. 남우는 승환에게 병에 남아있던 양주를 채워주고, 승환은 그제서야 주머니에서 두 손을 빼고 술을 받는다. 그리고 잠시 무대에 시선을 돌려주는 승환. 길었던 반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된다.
'그대를 잊는다는 건 지금의 나로선 좀 힘들 거 같아. 아무리 원망을 해도 어느새 흐르는 눈물 나도 모르게. 그리워 그 목소리 보고 싶어 일어설 수도 없어. 시간은 잊으라 하는데 오히려 선명해진 얼굴.'
'가사 참 좋네'
'참ㅋ 너도 별 거 없네'
'저라고 뭐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다 똑같지 뭐.'
짠-
열창하는 남자, 그 남자의 뚱뚱한 실루엣 뒤로 자꾸만 가려지는 화면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승환.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점점 더 애절해지고, 노랫말은 승환의 가슴을 후벼판다. 괜히 애석한 입꼬리만 살짝 올리고 남우를 바라보며 짠을 하는 승환. 남우는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이해가 간다며 고개를 끄덕끄덕 짠을 한다.
'이제는 잊어야 할텐데 오히려 선명해진 그 말 여전히 선명한 목소리'
그렇게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무대에 나간 남자가 뚱뚱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노래를 마무리할 때까지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는 승환.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다시 유리 잔을 매만지던 손을 주머니에 꽂는다. 그런 승환을 바라보고 있는 남우. 승환은 그제서야 남우의 시선이 머쓱한지 한 마디를 잇는다.
'형님도 노래 하셔요'
'말해줘 이제'
'예?'
'이야 바쁜 사람 술 먹자고 불러내놓고 다섯시간 동안 술만 따르게 했으면 됐지. 언제까지 질질 끌려고 하냐.'
'형님 안 바쁘시잖아요'
'야이씨. 너는 은근히 나 무시한다?'
'저랑 술 마셔주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렇게 종로에서 술 마실 사람이. 제가, 뭐 아는 이쪽 사람이라고는 두명.. 아니 한명, 형님 한명인데요'
자연스레 말을 잇다가 잠시 멈칫하는 승환. 남우가 말을 잇는다.
'주접떨고 있네'
'주접이죠. 예.. 아으...'
결국 술 기운에 붉어진 얼굴을 박박 긁듯 문지르는 승환. 오똑한 콧대에 두툼한 눈두덩이. 티셔츠를 가득 채운 살반 근육반의 팔뚝. 늦게 나와 안 사실이지만, 이쪽 사람들은 굳이 사람의 체형을 규정지으며 놀던데, 보는 사람마다 승환보고는 통은 아니고 약.통.건.장 이란다. 승환은 앞에선 형님들이라 웃지만 사실 약통건장인지 뭔지는 어딘가 소름돋아서 제일 듣기 싫은 단어다. 그래도 일반 친구들 사이에서는 언제나 돼지로 통하던 승환인데 여기선 돼지하기엔 살이 덜 쪘다고 해주니 감사하지.
옆 테이블에서는 아까부터 꼭 한번씩 승환과 남우를 힐끔 힐끔 쳐다보고 있다. 충분히 매력있는 두 남자의 모습.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그저 심각하다. 그리고 얼굴을 문지르며 한참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승환에게 닿는 남우의 목소리.
'나는 뭐 아는 게 없어. 니들이 하나도 말을 안 해줘서.'
'종철 형이 말 안했어요?
'야 이씨 걔가 개뿔 나한테 지 연애사 떠벌리겠다. 니 소개시켜준 게 기적이라고, 내가 니 처음 본 날에도 그러지 않았냐? 내가 배종철 알고 지낸 지가 10년이 됐는데, 애인이라고 소개시켜준 게 너 하나다.'
'형이 연애를 안했대잖아요.'
'못한 거지. 그래도 걔가 남자가 없었겠냐? 그 덩치에, 그 성욕에. 남자를 얼마나 밝히는데'
'아 그 얘기는 듣기 싫어요.'
'어쭈'
종철의 이야기가 점점 깊어지자 듣기 싫다며 남우의 입을 살짝 가리듯 손을 뻗는 승환. 승환의 덩치에 비해 유독 얇고 이쁜 손가락이 남우의 얼굴에 닿고, 남우는 살짝 목을 뒤로 빼며 말을 잇는다.
'아무튼 이제 얘기해줘. 끝났는데 뭐 해도 되지. 안 그러면 집에 못가 이제, 사장님 여기 이거, 이거 새거 한 병 줘요'
'아 이거 킵해뒀으니까 먹은 거지 얼마짜린데 뭘 또 시켜요 소주 먹어요'
'아니, 아니. 내가 이거 술은 오늘 살테니까. 넌 그냥 입만 털어. 아주 얌전히 제가 술도, 오우. 어이구, 빨리 주시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술도 이렇게 쪼로록 따라드릴테니까. 잡수시면서 입만 터시죠.'
승환이 그토록 남우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해줄 것만 같은 분위기에 남우는 조금 신이 나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몇시간 째 승환의 죽기 직전 표정만 마주 보고 앉아있었으니. 이 때까지 집에 안가고 놀아준 게 용하다.
그렇게 새 술병을 따서 잔을 더욱 채워주는 남우에 다시 잔을 들어 술을 받는 승환. 순식간에 얼굴에 화색이 도는 남우가 아예 두 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자세를 잡아 승환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한다.
'ㅎ'
그런 남우 형님을 보니 귀엽기는 하다고 헛웃음을 짓는 승환. 나이가 들어도 남자들은 철부지.
드디어 처음으로 웃어보이는 승환의 미소가 참 매력적이다. 남우의 애교에 기분이 조금은 풀린 듯한 승환이 그렇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술 잔을 들어 넘긴다.
'처음에 어떻게 만난 건데 둘이. 너는 일반이었다길래. 근데 그래 보이기도 해. 니가 어딜 봐서 호.모냐'
꿀꺽-
'크으.. 음, 후... 좀 민망하네. 말 하려니까.'
'너 이거 술 이미 까먹어놓고 입 싹 닦으면 그냥 양아치다. 에? 알지? 양아치야 양아치.'
'아흐 ㅋㅋ 예. 말 할 거에요.'
'왜 이렇게 사람을 궁금하게 해. 어떻게 만난 건데. 처음 봤을 때 어땠는데'
'빨가벗고 있었어요'
'뭐?'
'빨가벗고 있었다고요 둘 다.'
1년 전, 서울 외곽의 한 가구 매장. 쫙 빼입은 정장 차림의 듬직한 가슴을 내밀고선 가만히 서 있는 승환과 침대에 앉아보고 살짝 동동거리기까지 해보는 승환의 여자친구. 승환의 표정은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어보인다. 한 마디로 뭐, 기분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다.
'오빠도 앉아 봐.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은데?'
'괜찮네'
승환의 미적지근한 반응. 굳이 침대에 앉아보라고 승환의 손을 잡아 끄는 여자친구에 승환은 검지 손가락 하나만 대충 잡혀서는 끝내 앉기를 거부한다.
그런 승환을 노려보는 여자친구. 승환은 여자친구의 시선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살짝 고개를 돌린다.
'왜 그래? 아직도 삐진 거야?'
'삐지긴 누가 삐져'
'내가 말했잖아. 우리 엄마 돈 엄청 밝힌다고. 오빠 옷이랑 차랑 시계랑 다 스캔할 거라고. 그래서 내가 준ㅂ..'
'그렇다고 내가 니가 빌려온 니 친구 차 끌고 니 친구 시계 차고 나타나는게 최선은 아니었을텐데. 나는 뭐냐 그럼.. 아.. 아니다. 휴..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오빠 괜찮다며.'
'누가 뭐래? 침대나 골라'
'뭐?'
'아니, 침대 고르라고. 침대 고르려고 여기 온 거 아니냐'
순식간에 차가워지는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 결혼을 앞두고 있는 듯한 두 사람. 오늘은 여자친구의 부모님까지 뵙고 왔는데, 거기서도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보다.
여자친구는 겨우 잡고 있던 승환의 검지 손가락을 놓고는 화가 올라온 듯이 한숨을 내쉰다. 그런 여자친구를 꿍하게 바라보는 승환. 그 때,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나 혼자 하는 거야?'
'뭐가, 또?'
'지금 결혼 나 혼자 하는 거냐고'
'무슨 말이야 그건 또. 너는 왜 이렇게 사람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났냐. 내가 지금 뭐 했냐?'
결국 살짝 언성이 높아지는 두 사람.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은근 두 사람을 쳐다보며 지나가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다툼을 잇기 바쁘다.
'침대에 안앉아서 그래? 뭐, 여기 앉으면 되냐?
털썩-
'너 지금 장난해?'
'아니 그럼 나한테 뭐 어쩌라는 거야? 뭐가 문제야'
아니라고는 하지만 불만이 가득 찬 승환의 두 눈. 지금 승환의 두 눈에 보이는 여자친구의 모습은 오늘따라 왜 이리도 미워보일까.
'내 가방 주고, 넌 가.'
'어딜 가래'
'집에 가라고. 딱 보니까 결혼이고 뭐고 집에나 가서 드러눕고 있고 싶나본데'
그렇게 승환의 넓은 어깨에 늘 습관처럼 걸려있던 자신의 핸드백을 뺏어들고는 승환을 밀치는 여자친구. 승환은 이 멀리까지 와서는 집에 가라 말하는 여자친구의 태도가 더 어이가 없어서 벙찐 모습이다.
나를 알기는 잘 아네. 집에 가라니 고맙기도 한데. 하필이면 차 키는 여자친구 가방에 있지. 심지어 그 차 키도 여자친구가 빌려온 친구 외제차니 승환이 타고 갈 차는 없고, 대중교통으로 집에 가려면 지하철로 두시간은 족히 가야할텐데.
허나 이미 제대로 토라진 듯한 여자친구는 또각 또각 잘도 걸어서 저만치 사라져버리고. 승환은 오늘은 더 이상 토라진 여자친구의 마음을 풀어줄 힘이 남아있지 않아서 자리에 선 채로 한참을 벙쪄있다.
그러다 점점 크게 쿵쿵대기 시작하는 심장. 불쾌한 감정이 든다. 이건 설레고, 흥분될 때의 심장 박동이 아니다. 확신을 갖지 못한 자가 섣불리 행동할 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기감. 이대로 현상을 유지하다가는 정말 큰 실수를 할 것만 같다는 다급함. 여자친구에게는 말 하지 못했지만, 승환에게는 다가오는 결혼이 늘 이런 불안함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삐빅-
결국 연고도 없는 동네에서 피곤함이 제대로 몰려온 승환. 도무지 지하철 두시간을 타고 돌아가기는 싫고, 어디서 눈이나 붙이고 자고 싶다. 그렇게 들어온 찜질방. 승환은 나름 여자친구 부모님을 만난다고 어젯밤에 다렸던 정장을 마구잡이로 벗어 캐비넷에 집어넣는다.
스윽 스으윽-
하루종일 갑갑하던 넥타이도 목을 들어 풀어내는 승환. 탈의실에 그리 사람이 많지 않다. 승환은 그렇게 넥타이를 목에서 빼내고는 급히 셔츠 단추를 풀어낸다.
동시에 벨트를 풀러 허물 벗듯 두 다리 아래로 바지를 내려버리는 승환. 두 눈이 반쯤 감겼다. 얼른 탕에나 들어가서 눈 좀 붙이고 싶다.
삐빅-
그 때,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다른 손님이 조금은 떨어진 옆 캐비넷을 열었나 보다. 승환에게는 그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셔츠를 벗어 두툼하게 살집이 오른 팔뚝을 빼내는 승환. 메리야스에 차오른 가슴과 배의 속살이 꽤나 균형지게 오동통하고, 팔을 빼낼 때 드러난 겨드랑이도 적당히 털이 나있어 더 남자다워 보이는 몸매다.
훌러덩- 쿵- 쿵!
헌데 옆 캐비넷을 연 손님이 내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거대한 짐승이 쿵쿵대기라도 하는 듯한 위협적인 소리. 캐비넷이 살짝 흔들릴 정도의 진동을 내며 과감하게도 옷을 벗어던지는 옆 손님의 소음에 승환은 메리야스까지 벗어내고 마지막으로 입고 있던 보드라운 스판 재질의 드로즈 허리춤을 잡고는 옆을 돌아본다.
힐끔-
'ㅇ..!'
그 때, 하필이면 옆 손님과 눈이 딱 마주치고야 마는 승환. 어디가서 덩치도 기도 눌리지는 않는 승환인데, 남자의 모습을 본 승환의 머릿 속에 연상 되는 것은, 불곰 한마리.
언제 바지는 다 벗어던진 건지 발가벗고 있는 하체. 허벅지가 장난이 아니네. 남자와 눈이 마주치며 느껴지는 남자의 포스에 눌려버리는 승환. 짧은 머리에 무쌍이지만서도 큼직한 눈매가 엄청난 위압감을 준다. 이 남자의 이름은 배종철, 당시 45살. 키 173에 98키로에 육박하는 덩치다.
승환의 몸이 건장하고 훤칠한 느낌이라면, 종철의 모습은 우락부락 그 자체다. 근육의 선이 명확하진 않지만서도 두툼하게 차오른 살집에 옆에 있으면 승환이 날씬해보이는 착각이 들 정도니까.
그렇게 급히 승환이 눈을 피하자, 조금은 여운있는 눈빛으로 승환을 위 아래로 훑더니 마지막으로 입고 있던 티셔츠를 두 팔로 들어올려 뒤집어 벗는 종철. 쫘악 펴지며 드러나는 종철의 상반신. 음모가 올라와 가슴골까지 덮고 있는 털이 예술적이다. 털에 뒤덮인 탓에 더욱 불곰 같고. 털만 예술일까. 가득 차오른 두툼한 배와 떡 벌어져 넓게 퍼진 가슴까지. 심지어 얼굴도 곰처럼 생겼다. 눈빛까지 맹수같다. 조폭인가. 그렇다기엔 피부는 또 맨들맨들 그림 하나 없이 굉장히 얌전하네.
결국 승환은 괜히 허리를 반대편으로 돌리며 팬티를 내린다. 누가 붙인 싸움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싸움에서 완전히 밀려버렸다. 그렇게 완전히 드러나는 승환의 알몸. 키가 크다보니 오동통하게 길쭉한 다리에 배꼽까지 자연스레 올라온 털. 꼬추는 깔끔하게 포경이 되어서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이즈다. 전반적으로 균형이 제대로 잡힌 듯한 몸매. 피곤함에 쩔어도 부담없이 남자다운 인상은 어딜 가지 않는다.
허나 어디 가서 기죽은 적 없는 승환을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종철의 자태. 종철은 대충 바닥에 벗어버린 바지와 양말 따위를 줍는 듯 허리를 숙이고, 그렇게 승환의 앞에 드러나는 종철의 푸짐하고 돌같이 단단한 엉덩이. 심지어 살짝 벌어진 두 허벅지 사이로 털이 덥수룩한 불알 가죽이 이어져있다.순간 승환의 정신이 아찔할 정도다.
주운 옷가지들을 대충 캐비넷에 쑤.셔넣고는 다시 승환 쪽을 힐끔 바라보는 종철. 승환은 또 다시 눈이 마주쳐 놀라 급히 눈을 피한다. 그 때, 낮고 짙게 울리며 깔리는 종철의 목소리.
'왜 자꾸 쳐다보십니까'
'아, 예? 아니요. 그, 몸이- 참 멋있으시네요'
'그쪽이 멋있지. 나는 짜리몽땅해서.'
'와.'
그 때,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다가 승환의 눈에 그제서야 들어오는 종철의 중심부. 승환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이 튀어나온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길이는 평범보다 조금 짧은 수준인데, 저렇게 굵고 통통한 꼬추가 우리나라에도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묵직한 모습. 살면서 목욕탕에서 수많은 남자들의 꼬추를 봤지만, 이제보니 꼬추는 길고 짧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저게 발기가 되면 더 굵어질까. 그렇게 승환은 충격을 받기라도 한 듯 멍하니 종철의 꼬추를 쳐다보고 있다.
'뭐하시는 분인데 남의 꼬추를 그렇게 관찰하십니까 ㅎ'
'어..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 하하..'
그렇게 종철이 승환의 시선에 민망하기라도 한 듯 자신의 꼬추를 내려다 보며 손으로 만지작 대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종철을 지나쳐 사우나를 향해 가려하는 승환. 그 때, 종철은 굳이 비좁은 통로에서 캐비넷 쪽으로 엉덩이를 붙여 돌아 승환이 통과할 자리를 내어준다.
승환이 급한 발걸음으로 종철이 반 이상은 막고 있는 통로를 지나가려니 통로가 비좁다. 자칫하면 저 둔기같은 꼬추가 승환의 몸에 닿겠다. 옷도 다 벗어놓고, 자기가 먼저 나가면 되지 왜 굳이 몸을 돌려 비켜주는지.
결국 워낙 두툼한 종철의 배에 어쩔 수 없이 승환의 팔이 스치고. 승환은 느껴지는 종철의 땀에 끈적해진 피부결에 살짝 움찔대며 어깨를 모은다.
꿀꺽-
그 때, 승환의 알몸을 살짝 시선을 내려 바라보며 통로를 내어주던 종철의 목에서 선명히 들려오는 침 삼키는, 목젖 움직이는 소리.
그 침 소리에 승환은 순식간에 식은땀이 터져나와서는 급히 사우나를 향해 걸어간다. 아까 여자친구와 다퉜을 때 처럼 심장이 뛴다. 두근두근. 아니, 아까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으로 심장이 뛴다.
그리고 그제서야 승환의 뒤를 따라 걸어나오기 시작하는 종철.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차분하게. 쿵. 쿵. 쿵. 앞서 걸어가는 벌거벗은 승환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그렇게 승환의 뒤를 밟는, 아니 사우나로 향해 걸어가는 종철.
안그래도 굵어보였던 종철의 꼬추가 지금은 왠지 더 길어져서 굵직한 몽둥이처럼 보이는 건 착각일까.
허나 역시 이내 체념한 듯 눈을 돌리고, 애석한 술 잔만 들겠지. 내 앞에 앉아있는 나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 동료들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며. 우리의 생김새와 성격, 좋아하는 노래 취향이 모두 다를지라도, 같은 점 하나는 있어 좋다고, 부딪힌 술잔에 이 밤의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다며 말이다.
'오. 임창정.'
'큼 크흠.'
자신이 예약한 노래가 드디어 나왔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한 남자. 무대에 오르기 전 가볍게 맥주를 머금어 목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화면에 뜨는, 남자가 예약한 임창정의 '나란놈이란' 이라는 노래를 보고는 늦은 밤 취기에 살짝 감긴 눈을 뜨고 입술을 모으는 한 남자. 그 앞에는 무대에서 누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관심도 없는 듯한 모자를 뒤집어 쓴 남자가 앉아있다. 두 주머니에 손을 꽂고 벽에 등을 기대고 살짝 시선을 내리고 있는 이 남자.
김승환, 37살. 전반적으로 중년 나잇대의 손님들로 채워진 이 가라오케에서는 어린 편이지만, 키 180에 90키로가 넘는 승환의 듬직한 체구와 남자다운 이목구비 때문일까 그리 어색해 보이지는 않는다.
'승환이 니 임창정 좋다고 안했나?'
'좋아하죠'
'술 더 마시냐? 에이 이거 다 먹었네'
'네, 전 뭐. 아직 멀쩡해요.'
그런 승환을 왜인지 안타깝게 바라보는 남자. 이 남자의 이름은 이남우. 46살. 승환보다 9살이 많다. 오동통하게 오른 뱃살에 나이에 비해서도 은근히 앳된 얼굴이 꽤나 귀염상. 남우는 승환에게 병에 남아있던 양주를 채워주고, 승환은 그제서야 주머니에서 두 손을 빼고 술을 받는다. 그리고 잠시 무대에 시선을 돌려주는 승환. 길었던 반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된다.
'그대를 잊는다는 건 지금의 나로선 좀 힘들 거 같아. 아무리 원망을 해도 어느새 흐르는 눈물 나도 모르게. 그리워 그 목소리 보고 싶어 일어설 수도 없어. 시간은 잊으라 하는데 오히려 선명해진 얼굴.'
'가사 참 좋네'
'참ㅋ 너도 별 거 없네'
'저라고 뭐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다 똑같지 뭐.'
짠-
열창하는 남자, 그 남자의 뚱뚱한 실루엣 뒤로 자꾸만 가려지는 화면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승환.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점점 더 애절해지고, 노랫말은 승환의 가슴을 후벼판다. 괜히 애석한 입꼬리만 살짝 올리고 남우를 바라보며 짠을 하는 승환. 남우는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이해가 간다며 고개를 끄덕끄덕 짠을 한다.
'이제는 잊어야 할텐데 오히려 선명해진 그 말 여전히 선명한 목소리'
그렇게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무대에 나간 남자가 뚱뚱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노래를 마무리할 때까지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는 승환.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다시 유리 잔을 매만지던 손을 주머니에 꽂는다. 그런 승환을 바라보고 있는 남우. 승환은 그제서야 남우의 시선이 머쓱한지 한 마디를 잇는다.
'형님도 노래 하셔요'
'말해줘 이제'
'예?'
'이야 바쁜 사람 술 먹자고 불러내놓고 다섯시간 동안 술만 따르게 했으면 됐지. 언제까지 질질 끌려고 하냐.'
'형님 안 바쁘시잖아요'
'야이씨. 너는 은근히 나 무시한다?'
'저랑 술 마셔주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렇게 종로에서 술 마실 사람이. 제가, 뭐 아는 이쪽 사람이라고는 두명.. 아니 한명, 형님 한명인데요'
자연스레 말을 잇다가 잠시 멈칫하는 승환. 남우가 말을 잇는다.
'주접떨고 있네'
'주접이죠. 예.. 아으...'
결국 술 기운에 붉어진 얼굴을 박박 긁듯 문지르는 승환. 오똑한 콧대에 두툼한 눈두덩이. 티셔츠를 가득 채운 살반 근육반의 팔뚝. 늦게 나와 안 사실이지만, 이쪽 사람들은 굳이 사람의 체형을 규정지으며 놀던데, 보는 사람마다 승환보고는 통은 아니고 약.통.건.장 이란다. 승환은 앞에선 형님들이라 웃지만 사실 약통건장인지 뭔지는 어딘가 소름돋아서 제일 듣기 싫은 단어다. 그래도 일반 친구들 사이에서는 언제나 돼지로 통하던 승환인데 여기선 돼지하기엔 살이 덜 쪘다고 해주니 감사하지.
옆 테이블에서는 아까부터 꼭 한번씩 승환과 남우를 힐끔 힐끔 쳐다보고 있다. 충분히 매력있는 두 남자의 모습.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그저 심각하다. 그리고 얼굴을 문지르며 한참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승환에게 닿는 남우의 목소리.
'나는 뭐 아는 게 없어. 니들이 하나도 말을 안 해줘서.'
'종철 형이 말 안했어요?
'야 이씨 걔가 개뿔 나한테 지 연애사 떠벌리겠다. 니 소개시켜준 게 기적이라고, 내가 니 처음 본 날에도 그러지 않았냐? 내가 배종철 알고 지낸 지가 10년이 됐는데, 애인이라고 소개시켜준 게 너 하나다.'
'형이 연애를 안했대잖아요.'
'못한 거지. 그래도 걔가 남자가 없었겠냐? 그 덩치에, 그 성욕에. 남자를 얼마나 밝히는데'
'아 그 얘기는 듣기 싫어요.'
'어쭈'
종철의 이야기가 점점 깊어지자 듣기 싫다며 남우의 입을 살짝 가리듯 손을 뻗는 승환. 승환의 덩치에 비해 유독 얇고 이쁜 손가락이 남우의 얼굴에 닿고, 남우는 살짝 목을 뒤로 빼며 말을 잇는다.
'아무튼 이제 얘기해줘. 끝났는데 뭐 해도 되지. 안 그러면 집에 못가 이제, 사장님 여기 이거, 이거 새거 한 병 줘요'
'아 이거 킵해뒀으니까 먹은 거지 얼마짜린데 뭘 또 시켜요 소주 먹어요'
'아니, 아니. 내가 이거 술은 오늘 살테니까. 넌 그냥 입만 털어. 아주 얌전히 제가 술도, 오우. 어이구, 빨리 주시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술도 이렇게 쪼로록 따라드릴테니까. 잡수시면서 입만 터시죠.'
승환이 그토록 남우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해줄 것만 같은 분위기에 남우는 조금 신이 나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몇시간 째 승환의 죽기 직전 표정만 마주 보고 앉아있었으니. 이 때까지 집에 안가고 놀아준 게 용하다.
그렇게 새 술병을 따서 잔을 더욱 채워주는 남우에 다시 잔을 들어 술을 받는 승환. 순식간에 얼굴에 화색이 도는 남우가 아예 두 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자세를 잡아 승환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한다.
'ㅎ'
그런 남우 형님을 보니 귀엽기는 하다고 헛웃음을 짓는 승환. 나이가 들어도 남자들은 철부지.
드디어 처음으로 웃어보이는 승환의 미소가 참 매력적이다. 남우의 애교에 기분이 조금은 풀린 듯한 승환이 그렇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술 잔을 들어 넘긴다.
'처음에 어떻게 만난 건데 둘이. 너는 일반이었다길래. 근데 그래 보이기도 해. 니가 어딜 봐서 호.모냐'
꿀꺽-
'크으.. 음, 후... 좀 민망하네. 말 하려니까.'
'너 이거 술 이미 까먹어놓고 입 싹 닦으면 그냥 양아치다. 에? 알지? 양아치야 양아치.'
'아흐 ㅋㅋ 예. 말 할 거에요.'
'왜 이렇게 사람을 궁금하게 해. 어떻게 만난 건데. 처음 봤을 때 어땠는데'
'빨가벗고 있었어요'
'뭐?'
'빨가벗고 있었다고요 둘 다.'
1년 전, 서울 외곽의 한 가구 매장. 쫙 빼입은 정장 차림의 듬직한 가슴을 내밀고선 가만히 서 있는 승환과 침대에 앉아보고 살짝 동동거리기까지 해보는 승환의 여자친구. 승환의 표정은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어보인다. 한 마디로 뭐, 기분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다.
'오빠도 앉아 봐.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은데?'
'괜찮네'
승환의 미적지근한 반응. 굳이 침대에 앉아보라고 승환의 손을 잡아 끄는 여자친구에 승환은 검지 손가락 하나만 대충 잡혀서는 끝내 앉기를 거부한다.
그런 승환을 노려보는 여자친구. 승환은 여자친구의 시선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살짝 고개를 돌린다.
'왜 그래? 아직도 삐진 거야?'
'삐지긴 누가 삐져'
'내가 말했잖아. 우리 엄마 돈 엄청 밝힌다고. 오빠 옷이랑 차랑 시계랑 다 스캔할 거라고. 그래서 내가 준ㅂ..'
'그렇다고 내가 니가 빌려온 니 친구 차 끌고 니 친구 시계 차고 나타나는게 최선은 아니었을텐데. 나는 뭐냐 그럼.. 아.. 아니다. 휴..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오빠 괜찮다며.'
'누가 뭐래? 침대나 골라'
'뭐?'
'아니, 침대 고르라고. 침대 고르려고 여기 온 거 아니냐'
순식간에 차가워지는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 결혼을 앞두고 있는 듯한 두 사람. 오늘은 여자친구의 부모님까지 뵙고 왔는데, 거기서도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보다.
여자친구는 겨우 잡고 있던 승환의 검지 손가락을 놓고는 화가 올라온 듯이 한숨을 내쉰다. 그런 여자친구를 꿍하게 바라보는 승환. 그 때,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나 혼자 하는 거야?'
'뭐가, 또?'
'지금 결혼 나 혼자 하는 거냐고'
'무슨 말이야 그건 또. 너는 왜 이렇게 사람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났냐. 내가 지금 뭐 했냐?'
결국 살짝 언성이 높아지는 두 사람.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은근 두 사람을 쳐다보며 지나가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다툼을 잇기 바쁘다.
'침대에 안앉아서 그래? 뭐, 여기 앉으면 되냐?
털썩-
'너 지금 장난해?'
'아니 그럼 나한테 뭐 어쩌라는 거야? 뭐가 문제야'
아니라고는 하지만 불만이 가득 찬 승환의 두 눈. 지금 승환의 두 눈에 보이는 여자친구의 모습은 오늘따라 왜 이리도 미워보일까.
'내 가방 주고, 넌 가.'
'어딜 가래'
'집에 가라고. 딱 보니까 결혼이고 뭐고 집에나 가서 드러눕고 있고 싶나본데'
그렇게 승환의 넓은 어깨에 늘 습관처럼 걸려있던 자신의 핸드백을 뺏어들고는 승환을 밀치는 여자친구. 승환은 이 멀리까지 와서는 집에 가라 말하는 여자친구의 태도가 더 어이가 없어서 벙찐 모습이다.
나를 알기는 잘 아네. 집에 가라니 고맙기도 한데. 하필이면 차 키는 여자친구 가방에 있지. 심지어 그 차 키도 여자친구가 빌려온 친구 외제차니 승환이 타고 갈 차는 없고, 대중교통으로 집에 가려면 지하철로 두시간은 족히 가야할텐데.
허나 이미 제대로 토라진 듯한 여자친구는 또각 또각 잘도 걸어서 저만치 사라져버리고. 승환은 오늘은 더 이상 토라진 여자친구의 마음을 풀어줄 힘이 남아있지 않아서 자리에 선 채로 한참을 벙쪄있다.
그러다 점점 크게 쿵쿵대기 시작하는 심장. 불쾌한 감정이 든다. 이건 설레고, 흥분될 때의 심장 박동이 아니다. 확신을 갖지 못한 자가 섣불리 행동할 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기감. 이대로 현상을 유지하다가는 정말 큰 실수를 할 것만 같다는 다급함. 여자친구에게는 말 하지 못했지만, 승환에게는 다가오는 결혼이 늘 이런 불안함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삐빅-
결국 연고도 없는 동네에서 피곤함이 제대로 몰려온 승환. 도무지 지하철 두시간을 타고 돌아가기는 싫고, 어디서 눈이나 붙이고 자고 싶다. 그렇게 들어온 찜질방. 승환은 나름 여자친구 부모님을 만난다고 어젯밤에 다렸던 정장을 마구잡이로 벗어 캐비넷에 집어넣는다.
스윽 스으윽-
하루종일 갑갑하던 넥타이도 목을 들어 풀어내는 승환. 탈의실에 그리 사람이 많지 않다. 승환은 그렇게 넥타이를 목에서 빼내고는 급히 셔츠 단추를 풀어낸다.
동시에 벨트를 풀러 허물 벗듯 두 다리 아래로 바지를 내려버리는 승환. 두 눈이 반쯤 감겼다. 얼른 탕에나 들어가서 눈 좀 붙이고 싶다.
삐빅-
그 때,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다른 손님이 조금은 떨어진 옆 캐비넷을 열었나 보다. 승환에게는 그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셔츠를 벗어 두툼하게 살집이 오른 팔뚝을 빼내는 승환. 메리야스에 차오른 가슴과 배의 속살이 꽤나 균형지게 오동통하고, 팔을 빼낼 때 드러난 겨드랑이도 적당히 털이 나있어 더 남자다워 보이는 몸매다.
훌러덩- 쿵- 쿵!
헌데 옆 캐비넷을 연 손님이 내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거대한 짐승이 쿵쿵대기라도 하는 듯한 위협적인 소리. 캐비넷이 살짝 흔들릴 정도의 진동을 내며 과감하게도 옷을 벗어던지는 옆 손님의 소음에 승환은 메리야스까지 벗어내고 마지막으로 입고 있던 보드라운 스판 재질의 드로즈 허리춤을 잡고는 옆을 돌아본다.
힐끔-
'ㅇ..!'
그 때, 하필이면 옆 손님과 눈이 딱 마주치고야 마는 승환. 어디가서 덩치도 기도 눌리지는 않는 승환인데, 남자의 모습을 본 승환의 머릿 속에 연상 되는 것은, 불곰 한마리.
언제 바지는 다 벗어던진 건지 발가벗고 있는 하체. 허벅지가 장난이 아니네. 남자와 눈이 마주치며 느껴지는 남자의 포스에 눌려버리는 승환. 짧은 머리에 무쌍이지만서도 큼직한 눈매가 엄청난 위압감을 준다. 이 남자의 이름은 배종철, 당시 45살. 키 173에 98키로에 육박하는 덩치다.
승환의 몸이 건장하고 훤칠한 느낌이라면, 종철의 모습은 우락부락 그 자체다. 근육의 선이 명확하진 않지만서도 두툼하게 차오른 살집에 옆에 있으면 승환이 날씬해보이는 착각이 들 정도니까.
그렇게 급히 승환이 눈을 피하자, 조금은 여운있는 눈빛으로 승환을 위 아래로 훑더니 마지막으로 입고 있던 티셔츠를 두 팔로 들어올려 뒤집어 벗는 종철. 쫘악 펴지며 드러나는 종철의 상반신. 음모가 올라와 가슴골까지 덮고 있는 털이 예술적이다. 털에 뒤덮인 탓에 더욱 불곰 같고. 털만 예술일까. 가득 차오른 두툼한 배와 떡 벌어져 넓게 퍼진 가슴까지. 심지어 얼굴도 곰처럼 생겼다. 눈빛까지 맹수같다. 조폭인가. 그렇다기엔 피부는 또 맨들맨들 그림 하나 없이 굉장히 얌전하네.
결국 승환은 괜히 허리를 반대편으로 돌리며 팬티를 내린다. 누가 붙인 싸움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싸움에서 완전히 밀려버렸다. 그렇게 완전히 드러나는 승환의 알몸. 키가 크다보니 오동통하게 길쭉한 다리에 배꼽까지 자연스레 올라온 털. 꼬추는 깔끔하게 포경이 되어서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이즈다. 전반적으로 균형이 제대로 잡힌 듯한 몸매. 피곤함에 쩔어도 부담없이 남자다운 인상은 어딜 가지 않는다.
허나 어디 가서 기죽은 적 없는 승환을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종철의 자태. 종철은 대충 바닥에 벗어버린 바지와 양말 따위를 줍는 듯 허리를 숙이고, 그렇게 승환의 앞에 드러나는 종철의 푸짐하고 돌같이 단단한 엉덩이. 심지어 살짝 벌어진 두 허벅지 사이로 털이 덥수룩한 불알 가죽이 이어져있다.순간 승환의 정신이 아찔할 정도다.
주운 옷가지들을 대충 캐비넷에 쑤.셔넣고는 다시 승환 쪽을 힐끔 바라보는 종철. 승환은 또 다시 눈이 마주쳐 놀라 급히 눈을 피한다. 그 때, 낮고 짙게 울리며 깔리는 종철의 목소리.
'왜 자꾸 쳐다보십니까'
'아, 예? 아니요. 그, 몸이- 참 멋있으시네요'
'그쪽이 멋있지. 나는 짜리몽땅해서.'
'와.'
그 때,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다가 승환의 눈에 그제서야 들어오는 종철의 중심부. 승환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이 튀어나온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길이는 평범보다 조금 짧은 수준인데, 저렇게 굵고 통통한 꼬추가 우리나라에도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묵직한 모습. 살면서 목욕탕에서 수많은 남자들의 꼬추를 봤지만, 이제보니 꼬추는 길고 짧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저게 발기가 되면 더 굵어질까. 그렇게 승환은 충격을 받기라도 한 듯 멍하니 종철의 꼬추를 쳐다보고 있다.
'뭐하시는 분인데 남의 꼬추를 그렇게 관찰하십니까 ㅎ'
'어..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 하하..'
그렇게 종철이 승환의 시선에 민망하기라도 한 듯 자신의 꼬추를 내려다 보며 손으로 만지작 대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종철을 지나쳐 사우나를 향해 가려하는 승환. 그 때, 종철은 굳이 비좁은 통로에서 캐비넷 쪽으로 엉덩이를 붙여 돌아 승환이 통과할 자리를 내어준다.
승환이 급한 발걸음으로 종철이 반 이상은 막고 있는 통로를 지나가려니 통로가 비좁다. 자칫하면 저 둔기같은 꼬추가 승환의 몸에 닿겠다. 옷도 다 벗어놓고, 자기가 먼저 나가면 되지 왜 굳이 몸을 돌려 비켜주는지.
결국 워낙 두툼한 종철의 배에 어쩔 수 없이 승환의 팔이 스치고. 승환은 느껴지는 종철의 땀에 끈적해진 피부결에 살짝 움찔대며 어깨를 모은다.
꿀꺽-
그 때, 승환의 알몸을 살짝 시선을 내려 바라보며 통로를 내어주던 종철의 목에서 선명히 들려오는 침 삼키는, 목젖 움직이는 소리.
그 침 소리에 승환은 순식간에 식은땀이 터져나와서는 급히 사우나를 향해 걸어간다. 아까 여자친구와 다퉜을 때 처럼 심장이 뛴다. 두근두근. 아니, 아까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으로 심장이 뛴다.
그리고 그제서야 승환의 뒤를 따라 걸어나오기 시작하는 종철.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차분하게. 쿵. 쿵. 쿵. 앞서 걸어가는 벌거벗은 승환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그렇게 승환의 뒤를 밟는, 아니 사우나로 향해 걸어가는 종철.
안그래도 굵어보였던 종철의 꼬추가 지금은 왠지 더 길어져서 굵직한 몽둥이처럼 보이는 건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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