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과 군바리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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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물일병의 하루는 그 누구보다 바쁘게 흘러간다.

새롭게 늘어난 후임들을 교육하면서도

본인의 일까지 소홀이 할 수는 없다.

위에서는 후임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고 갈굼이 내려오고,

아래에서는 아직 어설픈 녀석들이 사고를 치고 있는 상황.

 

그런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던 와중에

인원 부족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무기고 사수근무까지 잡게 되며

동규의 양 어깨에는 더욱 큰 부담감이 짐처럼 지워지게 되었다.

 

혹여나 실수를 할까 평소보다 과하게 긴장을 했고,

점차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마저 벅차지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동규는 주변에 있는 수많은 녀석들처럼.

자연스럽게 담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구하기 힘든 사제는 제쳐두고

멘솔이 들어간 담배를 추천받은 동규의 손에 들린 것은 쿠바나 샷이었다.

 

“후우우...”

흡연장에서 혼자 담배를 물고

가만히 눈을 감으며 코로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알싸하고 시원한 멘솔의 향이 녀석의 코를 간질인다.

 

비록 그 비슷하면서도 다른 냄새에서는 형우가 떠오르진 않았지만

그래도 매캐함 속에서 콜록대다보면, 잘 피우지 못해 기침을 하는 자신을 보며 웃던 그 표정이 떠올라 잠시라도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지쳐가는 몸.

닳아가는 정신.

 

안 그래도 힘들건만

그런 녀석을 더욱 괴롭게 만드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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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규.VER

 

두렵다.. 무섭다.

도저히 저 명령에 저항을 할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또다시 얻어맞아야 하니까.

정말 개처럼 얻어맞아야 하니까.

 

어떻게든 버티며... 깨끗한 장난감이 되겠다는 생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나는 더 이상 그 매를 버틸 수 없었고,

김형우 병장님을 위한다는 핑계가 휩쓸려가자...

그 곳에 남은 것은

박성훈 일병님에 대한 두려움뿐이었다.

 

 

마치... 고양이 앞의 생쥐마냥...

나는... 그 뒷모습이라도 보일라치면.. 얼어붙어서...

가쁜 숨만 겨우 내쉬는 날들이 이어졌다.

 

 

“에엑?? 이동규 일병님? 괜찮으십니까?”

 

“허억.. 허억.... 어.. 어? 잘 못들었습... 어어.. 뭐라고 건아..?”

 

“이동규 일병님? 행정반 가셔서 아프다고 보고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엄청 땀도...”

 

“후우.. 아, 아냐... 그냥 잠깐.. 그냥 잠깐 이러는 거야. 괜찮...아.”

 

“거짓말... 인거 압니다. 요즘.. 이상하십니다...”

 

“헤헤... 아냐아 건아아.”

 

“으엑? 가, 간지럽습니다!!”

 

언제나 나를 걱정해주는 소중한 후임.

평소에는 맹하게만 보이면서 나에 관해서는 너무나도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이는 이 후임 때문에...

나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가라앉은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녀석이 걱정할 테니까.

선임이 되어서 후임의 걱정이나 받고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면.. 최소한 다른 사람이라도 걱정시키지는 말아야 겠지...

그래서 나는 녀석의 앞에서 만큼은 웃음을 지었다.

피멍이 들어 시커멓게 죽어버린 엉덩이가 아무리 아파도.

목구멍 깊은 곳을 휘저어 댄 박성훈 일병님의 자지 탓에 목이 욱신거려 삼키는 것마저 힘들어도.

나는 언제나... 웃고 있는 가면을 쓰고 녀석을 대했다.

 

그런데...

 

후임 앞에서 억지로 보여주는 이 밝은 모습을...

나는 대체 언제까지 연기할 수 있을까...?

 

차라리...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이동규 일병님! 우리 냉동 먹으러 가시지 말임다! 냉동! 제가 쏩니다!”

 

“야, 야 건아아...”

 

“맛난 거 먹으면 우울한 것도 풀리는 법입니다아!!!”

 

그렇게 건이는 내 팔을 붙잡고 px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박성훈 일병님과의 일 이후로.. 계속해서 힘이 빠진 상태로 있던 나는..

녀석의 넘치는 활기에 저항하지 못하고 이끌려...

몇 개의 냉동을 집어 취사장으로 끌려갔다.

 

 

.

.

.

 

“으아아악!!!”

“치, 치워!!”

“몰라! 난 저거 못 만져!!!”

“으악!! 움지, 움직였어!!!”

 

 

“뭔가.. 엄청 소란스럽습니다..”

 

“그러게...? 무슨 일이지?”

 

제발 별 일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 옆에서 뭐가 맛있을까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녀석의 해맑은 모습을 보며

간만에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었는데... 그 웃음이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마냥 사라지기 시작한다.

 

대체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왠지 들어가기가 두렵다.

 

“에잇. 뭐 별거 아닐겁니다아”

 

건이는 자기도 머뭇거린 주제에 금방 떨쳐내고 문을 밀어버렸다.

때로는... 저렇게 단순한 게.. 부럽기도 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순간 우리 둘을 향해 시선이 모였다.

꿀꺽... 전부.. 선임들이시네...

 

 

“어? 야 강건! 잘 왔다!”

 

“앗! 이병 강건! 부르셨습니까?”

 

구석에 모여서 무언가를 내려다보던 선임들 중 한분이 강건을 부르셨고,

강건은 나에게 냉동을 맡기고는 그쪽을 향해서 반쯤 뛰어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시지...?

 

“이.. 이거 치워줘!!! 부탁해!!!”

 

“엣.. 그 정도야... 금방 치우 아아아악!!!!”

 

거, 건아?! 무슨 일이야!!! 왜 갑자기 비명을!!

놀라서 냉동을 식탁위로 던지고 달려간 그 곳에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끈끈이 쥐덫과,

그 쥐덫에 걸려 꿈틀대는 새끼 쥐 세 마리가 존재했다.

 

“쥐.. 입니까..?”

 

“어! 제발!! 제발 저것 좀 치워!! 동규야! 강건아! 부탁해 제발!!”

 

“으에에.. 막 꿈틀댑니다! 사, 살아있는!!”

 

취사장 구석진 곳에 놓인 끈끈이

그 위에 올려진 세 마리의 쥐.

저게 뭐라고... 이렇게 소리를 지르시는 걸까?

 

“이거, 풀어주면 되는 겁니까?”

 

“뭐? 이동규 미쳤어? 이걸 왜 풀어줘?! 버려! 그냥 이대로 쓰레기장에 버려!”

 

천천히 쥐덫으로 뻗던 손을 그대로 멈추었다.

이대로.. 버리라니?

살아 있는걸요? 얘네 지금 살아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걸요?!

 

“얘, 얘들 살아있습니다!”

 

“그러니까 버려야지!!! 취사장에 쥐 나오면 안된다고!”

 

“아.. 그, 그럼 하연병장까지 내려가서 풀어주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야.. 너 혹시.. 저게 불쌍해서 그러냐...?”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 선임님은

잠시 한숨을 쉬더니.. 갑작스럽게 나를 껴안아 주셨다.

 

“이, 일병 이동규??”

 

“짜식.. 엄청 착한놈이구마. 그래. 생명은 소중하지.”

 

너무 뜻밖의 행동에 놀라 얼어버린 내 머리위로

선임님의 손바닥이 부드럽게 비벼졌다.

이, 이게... 왜 갑자기 눈물이 날라고...

 

“야. 눈까지 빨개지냐? 와 씨... 난 저거 징그러워 죽겠는데, 넌 불쌍해 죽겠냐?”

 

“살아 있..잖습니까...”

 

“그래. 그렇긴 한데... 어차피 쟤들 곧 죽어.”

 

“잘 못들었습니다?”

 

“저기서 뜯어내면 쟤네 가죽 다 벗겨진다. 혹여 잘 뜯었다고 쳐도, 그렇게 도망가는 쥐도 죽으라고 끈끈이엔 독약 같은 게 섞여있어.”

 

“아......”

 

 

 

잠시 뒤.

내 손에는 반으로 접힌 쥐덫과,

그 속에서 여전히 비명을 지르는... 세 생명이 들려있었다.

 

혹여나 가능할까 싶어 살짝 건드려 보았지만 선임님의 말대로... 여기서 녀석들을 뜯어냈다가는 가죽이 그대로 뜯겨 나올 것 같아서 그럴 수 없었다.

이렇게 살아있는데...

힘겹게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아무리 그렇게 노력해 보아도... 녀석들에게 남은 것은...

 

간이쓰레기장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생각과, 우울함이 스쳐지나갔다.

 

내 손에 들려있는 녀석들이 마치... 나처럼 느껴졌다.

이미 온 몸이 달라붙어 벗어날 수 없는... 점차 힘이 빠져 죽게 될 그 녀석들은 정말로.. 지금의 나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미안해...

나는 너희들을 도와줄 수 없어...

 

“너도, 나도... 천천히 말라 죽어가겠지...?”

 

구석에 놓인 새 쓰레기봉투를 펼쳐 쥐덫을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은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미안해!”

그 봉투 위를 힘껏 내려찍었다.

 

[파악][찌익][오도독]

 

처음 내려찍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한번 시작한 이후에는 바로 두 번째, 세 번째 발길질이 이어졌다.

 

딱딱한 전투화 너머로

분명하게 느껴지는... 살아있는 생명의 말캉함.

그 말캉함이 점점 사라지고.. 무언가 작은 것이 부러지고 으스러지는 소리가 날 때까지.

더 이상 살아서 고통스러워하는 생명이 남지 않을 때까지.

 

제발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어줘...

제발 내 발 밑에서 꿈틀거리지 말아줘...

차라리.. 차라리 이게 편할거야..

거기 붙어서.. 천천하 죽어갈바에는... 이게 나을거야...

 

 

무슨 소리가 났다고 하더라도 내가 저 봉투를 밟는 소리보다 작았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내 귓가에는... 출처모를 비명소리가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좋은..곳으로 가렴...

 

 

 

몇 번이나 밟았을까.

살짝 찢어진 곳까지 생긴 쓰레기봉투를 들어 구석에 내려두었다.

방금 전까지 들리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도저히 무언가를 먹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냥... 그냥 담배가.. 피우고 싶다.

 

 

힘없이 흡연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내 오른발에는...

자꾸만 그 말캉함이

잊을 수 없는 그 부드러운 촉감이

떨어지지 않고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었다.

 

 

나도.. 차라리.. 저렇게......

 

 

 

“이동규 일병니임~”

 

“아... 건아...”

 

“냉동 다 돌렸는데... 담배 피우시고 계시다니! 몸에 지지 입니다 그거.”

 

“풉.. 지지라니... 하아 건아아”

 

“맨날 기침 콜록 하시면서! 에비 지지! 빨리 끄고 냉동 먹으러 가시지 말임다!”

 

“그래.. 그러자.”

 

그래야지. 조금 더 버텨야지.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너도, 그리고 네 후임들도 조금은 편해질 수 있으니까.

건아.. 꼭 그런 의미에서는 아니지만...

고마워...

 

지금 당장 내가 버틸 수 있는 건... 너 덕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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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 ver.

 

또.. 엄청 표정이 어두우십니다.

맨날 아니라고는 하시지만... 개뿔! 박성훈 그 자식이 괴롭히는 걸 모를 줄 아십니까!

짜증나! 대체 그 자식은 왜 그렇게 이동규 일병님을 못 괴롭혀서 안달인 거지?

나도... 왜... 저 호의에 기대기만 하는 거고...

 

내 소중한 선임인데.

약하고, 착해서 내가 지켜드려야 하는 선임님인데.

맨날 나만... 도움을 받고 있을 뿐이니...

 

차라리 다 엎어버릴까...?

진짜 미친 척. 눈 딱 감고 박성훈 그 자식 면상에 주먹을 꼽아줄까?

예전에 이동규 이병님처럼...

못된 선임에게... 주먹을...

 

“아...?“

 

“응? 왜 그래 건아?”

 

“에에.. 아닙니당. 어서 드시러 가시져. 헤헿.”

 

......다리가 후들거린다.

심장이 막 쿵쾅거리고, 머리끝까지 피가 몰린다.

솔직히 말해서...

무섭다.

선임한테 덤빈다는 것이, 그리고 잘못되면 그 엄청난 뒷감당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무섭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그냥 도망가 버리고 싶다.

대체.. 이런 걸 이동규 일병님은 어떻게 하신거야...

 

하아... 그래도...

 

 

 

“이동규 일병님.”

 

“응? 왜 건아?”

 

“고맙습니다.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풉.. 뭐야아. 갑자기 왜 그래.”

 

“흐힣.. 아무것도 아닙니당.”

 

미리..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언제 제가 터질지 모르니까요.

그렇게 폭발해버리면.. 이동규 일병님께 고마웠다는 말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지금 미리 해둔 겁니다.

 

아무리 무서워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임이 아파하는 것은...

더 이상 못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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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규가 안타까우면서도 건이같은 후임이 있다는게 부럽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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