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훈아명훈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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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가 들리는 아침이었다.
명훈의 체취가 느껴지면서 안 떠지는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명훈은 나를 안고 자고 있었다.
향기로운 날이다. 그리고 꿈과 같은 날이다.
그러나 이젠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비라도 오고 번개라도 쳐서 서울로 가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명훈아 명훈아"
곤히 자고 있는 명훈이를 깨우는 것도 마음이 아팠다.
명훈은 작게 골고 있던 숨을 멈추고 일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밖에서는 저 멀리서 먹구름이 오고 있었다.
펜션 사장님께 물어 보니 오늘 오후 중으로 심한 비가 올 거라고 한다.
우리는 이래저래 바쁜 마음을 정리하고 차에 올랐으나
벌써 굵직한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가는 길목에 비탈길이 많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충고해주고
수염이 멋진 펜션 사장님은 저 멀리 사라져 보인다.

명훈은 술이 아직 덜 깬 건지 눈이 풀려 있어서
운전하는 내내 불안해 보였다.
"내가 해도 되는데..."
"야, 내가 운전을 더 잘하잖아."

우박이라도 떨어지고 있는 것 마냥
차 지붕은 빗소리로 요란하다.
세상이 전부 어두워져 있다.
헤드라이트가 비치는 그 곳만
우리의 시야를 비춰주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려가고 있는 자동차는
이따금 반대편의 차량만 만날 뿐
적막함 그 자체였다. 난 라이오라도 틀려고 했지만
수신이 좋지 않아서 끄고 이어폰을 들었다.
한 쪽을 빼서 명훈의 오른쪽 귀에 꽂아주었다.
감미로운 음악이 들렸는데 알지도 못하는 노래였다.
추천 음악 목록에 있었는데 비오는 날에 어울린다는 노래가
굵직한 여자 가수의 목소리로 울려퍼졌다.

분위기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뭔가 로맨틱한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가다가...
명훈이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나 좋아했어?"
난 혼잣말인가. 귀에서 울리는 음악소리와 빗소리가 섞여서
잘 들리지도 않았지만 분명히 입으로 나에게 말을 한 것이었다.
난 듣지 못한 척했다.

"고등학교 때부터였지?"
난 마음으로는 놀랐지만 표정과 몸짓은 전혀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그의 얼굴을 흘깃 보았을 때
명훈은 아주 차분하고 안정스러웠다.

"민지한테 계속 물었지만 민지는 끝까지 얘길해주지 않았어.
너에 대한 의리였겠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었을까... 난 답답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심장이 쿵당쿵당 뛰었다.
그 소리가 나에게는 얼마나 크게 들리던지
온몸의 동맥들이 맥박하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한참을 아무말 없이 가다가
점점 차가 느려지더니 갓길에 차가 세워졌다.
난 뭔가 올 것이 온 것 같았다.
주적주적 비가 오는 이런 날
내 삶의 갈림길에 있는 것이었다.

명훈은 긴 한숨을 내쉬며 정면을 그대로 유지한 채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여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난 단 한 번도 남자를 좋아해 본 적은 없어."
"....."

난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이 꿀꺽 넘겨졌다.

"난 줄곧 니가 나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 말 못했어."
"............."

"그렇다고 너랑 나랑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그건 알지?"
하며 내 쪽을 바라 보았는데 내 눈과 마주칠 때
난 두렵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우리.... 우리 그냥....."
눈물 때문에 명훈의 얼굴이 그렁그렁 울고 있었다.


"우리 그냥 여기서 끝내자.
난 더 이상 널 가까이에서 보기 힘들어."

내 얼굴엔 이미 비처럼 주룩주룩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난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미안해... 미안해....은우야."


크르르릉 우르르르 쩍~~~!

갑자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니
그 소리가 엄청 크게 가까이 왔다.
마치 기차라도 지나가고 있는 것같이
어마어마한 소리였다.

0.1초 안에 밖을 봤는데 엄청난 흙더미가
우리 차 쪽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 차는 그 힘에 밀려 낭떨어지로 구르고 있었다.
차가 옆으로 4~5바퀴 구르는 동안에도 안에서 명훈은
나를 감싸고 있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난 기억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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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상의 기억들은 이렇다.
누군가 우리를 끌어다 꺼낸 기억
비는 계속 오고 얼굴에 비가 계속 때렸던 기억
병원의 흰 건물
의사와 간호사의 목소리
악! 통증
기절
그리고 잔상으로 중환자실로 옮겨야 되겠어...라는
의사의 말
명훈이가 옮겨지는가? 안 돼! 명훈아... 명훈아....

명훈아!

몸은 안 움직여졌지만 눈이 번쩍 띄였다.
병원이었고 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목도 잘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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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훈이가 무사히길 바랍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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