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것도 사랑이라고 하신다면.. 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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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집이예요.. "
부동산 사장이 오피스텔 문을 따고 들어가면서 말했다.
".. 월세가 얼마라고 했죠?"
별다른 표정없이 묻자, 그가 상세히 대답해준다.
화장실 변기의 물을 내려주면서 수압을 체크해주고, 에어컨은 작동은 잘되는지, 거실에 조망권이 참 좋다는둥. 그의 설명을 듣고는 나는 그 집을 계약하기로 했다.
".. 와이프는 바쁘신가 보죠?"
".. 네?"
그의 질문이 내 뼈를 때린다. 어쩌겠는가 나도 겉으로 보았을때는 그럴 나이가 된것을. 이 나이에 결혼도 안하고 있는건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좀 모양새가 빠져보이는건 사실이다.
".. 저 결혼 안했어요..."
".. 아이고 그래요? 말 실수했네..."
".. 아니요.. 괜찮습니다..."
괜히 손사레를 쳐보며, 무안해 하지 말라고 그를 다독였다.
".. 어디 지방에서 올라오셨어요?"
꼬치꼬치 왜 묻는건지. 인사치레의 겉만 빙빙도는 질문은 딱 질색이다. 하지만 꽤나 큰 앞섬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귀엽게 봐주기로 했다. 혹시나 또 모르지 않는가. 그럴리는 없겠지만.
".. 지방에서 올라온건 아니구요..
.. 애인이랑 얼마전에 헤어져서요.."
아차 싶었다. 애인이라함은 분명 여자라 생각할텐데, 여자와 헤어졌다고 원룸 오피스텔을 구하는 40대 남자의 처량한 처지라는것까지 다 까발린셈이었다. 그도 나의 못난 정체를 파악했는지 더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계약을 위해서 부동산으로 돌아왔다. 그는 내게 서류를 내밀며 싸인을 하면 된다고 사람좋게 웃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나는 어디서 듣고 배운건 있어서 집주인과 같이 계약을 해야되는것 아니냐며 묻자, 그가 인감증명서를 내보이며 자신이 집주인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바지춤을 한번 크게 위로 올리자, 그의 성기의 윤곽이 순식간에 드러났다. 순간 눈이 휘둥그래졌지만, 애써 못본척 고개를 돌렸다.
".. 생각보다.. 나이가 있으시네...
.. 한참 어려보이는데..."
나는 어색하게 그의 물음에 웃으면서 그걸로 답변을 대신했다. 검붉으스름한 피부에 적당히 뚱뚱하지 않고 탄탄한 몸매에 축구나, 골프나 야외 스포츠를 즐길것 같고, 또 꽤나 실력이 있을법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놈의 앞섬은 왜 이렇게 돋보이는지. 여러 아줌마들 혼쭐을 내주겠구나.
".. 요게.. 싸인 하면 됩니더.."
그가 웃으며 계약서를 내밀었다.
".. 이 동네는 처음 이죠?"
".. 네.. 어떻게 아셨어요? "
그는 진한 미소를 머금고 요상한 눈빛을 담아서 바라봤다.
".. 딱 보면 알죠...
.. 제가 사람을 꾀뚫어 보는 눈이 있어요.."
어찌나 확신에 찬 목소리인지, 정말 내 속이 다 읽히고 있는건 아닌지 순간 가슴을 두손으로 움켜 잡으며 그의 뭉툭히 튀어나와있는 앞섬에서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계약을 끝내고,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인사를 하자 그가 악수를 청했고, 악수까지 하고 돌아서려는데, 그가 물었다.
".. 밥은 먹고 다녀요?"
".. 네?"
".. 별거 없어요.. 잘먹고 눈 꼭 감고 좀만 참으면.. .. 다 .. 지나갑디다..."
".. 네?"
".. 얼굴이 많이 상해보여서..."
그런말을 오늘 처음 만난 부동산 사장님에게 듣는다는게, 어색해서 괜히 얼굴을 만지작 거렸다.
"..... 누가 보면 세상 다 산줄 알겠네.."
".. 아.. "
그때 우리의 이별 때문에 나도 어느정도는 힘들어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부장님과 헤어진지 3개월정도가 지났다. 모르겠다. 왜 그렇게 결말이 난건지. 돌아 볼 틈도 없이, 예정된 수순이라고 해도 의심치 않을 정도로 우린 너무 자연스럽게 서로를 놓아 주었다. 행님때문도 아니었고, 김명석때문도 아니었다. 모르겠다. 어쩌면 그 둘때문이었는지도.
행님은 전화번호를 바꾸고나서, 소식을 알 방법이 없었다. 유튜브의 영상도 올라오지 않았다. 물론 내가 책방을 찾아가볼수도 있었겠지만, 왠지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만큼 행님이 내 마음을 절절하게 만들지 않는 이유도 컸다. 나의 시간은 더이상 행님의 중심으로 흐르지 않았다.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영원히 그의 시간에 맞출것같은 마음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혼자서 끙끙 앓았던 시간이 부끄럽기도 하다.
김명석은 감옥에 가지 않았다. 부장님이 그를 고소하지 않았기에, 그의 자수는 의미가 없어졌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이에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것이다. 나의 잘못도 있었을것이고, 부장님에게도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지 않았을까? 이건 나의 억측에 불과하긴 하지만.
억울함에 대해서 얘기하자니, 조금 서럽기도 하다. 그 절절하고 열렬한 섹스와 마음을 나누던 시절, 우리는 서로에게 진심이었을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쓰기 부끄러운 단어들을 쏟아 내면서 어떻게든 들끓는 애정을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을 내기 바빴으니까..
왜? 왜? 그런 말들이 결국에는 지켜지지 않았지?
영원한건 없다고 믿으면서도, 나 하나쯤은 영원하길 바랬던 모순.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어느 한날, 부장님이 밥을 먹다가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소리가 좀 크게 울렸는데, 그래서 부장님을 바라봤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 그만.. 할까봐.. 너랑..."
이별이란건 예감할수가 있다는말. 나는 좀 공감을 하는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갑작스러웠다. 아마도 내가 뭘 잘못했겠지. 아니면 너무 솔직해져서 질렸거나. 모르겠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더 이상 의리로 살기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는지도. 어쩌면 나를 향한 사랑하는 감정이 다 소진되어 버렸는지도. 이미 너무 빨리 당겨 쓴것일지도.
왜 우리가 헤어져야되냐고, 왜 묻지 않았냐고 물으신다면, 나 또한 그냥 그러했다. 부장님을 사랑할수있는데까지 사랑해보았고, 내가 줄수 있는 마음을 다 주었기에, 그가 조금 변했다고 해서 아쉽지 않았다. 나는 부장님이 할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의 사랑을 받아 봤기에.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아이처럼 떼쓰지 않았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게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부장님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가만히 있었냐고? 그러게 말이다. 애매해진 부장님의 눈빛을 보면서, 나는 그냥 할말이 없었다. 그냥 언제나 내 옆에서 내가 무슨짓을 하더라도 큰 산처럼 묵묵히 있을줄 알았는데..
나도 그랬는데.. 그도 그럴수 있구나.. 우리가 영원히 함께 못한다는게 새삼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냥 그 순간 그가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나는 부장님의 집을 나왔다. 집을 알아보기까지 부모님 집에서 잠시 지냈다. 헤어진 이후로 부장님이 어떻게 사는지 나는 모른다. 다른 남자를 만났거나, 아니면 김명석을 만났거나, 아니면 정말 여자에게 돌아갔는지도.
돌이켜 보니, 모든게 다 꿈만같다. 내가 정말 부장님과 10년을 같이 살았는지, 아니면 나는 원래 이렇게 살고 있었는데 그런일은 없었는데 내 머리속에서 상상만 한것인지.
아직도 부장님이 내게 웃어주던 미소가 생생한데. 내가 해준 반찬을 먹고서 맛있다며 해맑게 웃어주던 눈웃음이 생생한데.
내가 고스란히 바쳤던 10년의 세월이 또 뭐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다. 나는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았다. 결국 같이 늙을때까지 함께 있지 못하게 되었지만. 잠시라도 영원할것처럼 모든걸 다 쏟아붓는 사랑도 있는것이다.
사랑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그 사랑의 깊이도 같이 깊어진다고 누군가는 그러기도 했는데, 과연 꼭 그렇게 비례한다고 할수 있을까.
누군가는 억지로 사는 사람도 많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사랑과 헤어짐은 어쩌면 축복이었는지도. 부장님의 사랑은 나에게 기적이었다. 그래서 그 기적이 다른사람에게 이어진다면, 그래서 부장님이 행복하다면 나는 그것도 괜찮은 일이라 생각했다.
정말이다. 나 혼자 그의 사랑을 독차지 하기에는, 그는 너무 따뜻했고,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부족한건 언제나 나였다.
늘 헛헛했던 나의 마음. 서글프고 혼자서 괴로워 하던 시간들. 배신과 거절. 혼자서 삮여야만 했던 나의 정체성에 대한 거짓말. 늘 당당 할수 없었던 나의 본 모습. 남들은 당연시 하는것도 나는 쉽지가 않던 시간들. 그런 서러운 시간들을 잊게 해준 사람이었다. 그정도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무언가 변했다는데, 그를 못놓아줄 이유는 또 무엇인가.
굳이 그를 붙잡고 왜 나한테 이러냐고 질질짜서라도, 결국 그를 내곁에 두더라도 그건 정말 우리를 위한 길일까?
그래서 묻지 않았다. 예전에 바람을 피우는것을 알면서도 묻지 않았던 때와는 다른 마음이었다.
헤어졌다고 이제 더 이상 술을 미친듯이 마시지 않는다. 처음엔 조금 그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보니까. 그 마음이 차츰 녹아 내려졌다. 돌이켜 보니까 좋은 시간만 떠올랐다. 내가 슬프고 의심에 쌓였던 힘들었던 시간은 다 가라 앉았다.
진짜다... 그런데 부동산 사장님이 그런 나를 아니다. 너 아직 얼굴 좋지 않다. 나를 꾀뚫어 볼때까지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차분히 나를 돌이켜 보니, 나는 사실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드디어 이삿날이 되었다. 부동산 사장님이 도와주겠다고 전화까지 해주었지만, 나는 그럴필요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나에게 짐은 캐리어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 정말 그게 다예요?"
캐리어 하나만 딸랑 들고온 나를 보면서 부동산 사장님이 물었다. 마치 믿기지 않은 사람처럼. 그랬다. 그게 내가 가진 전부였다. 지난 시간 나는 부장님에게만 기생했던것이 아니었다. 그가 가진 모든 물것들에게까지도 나는 기생해서 살고있었던것이었다.
".. 잠은 어떻게 자려고?"
그의 때묻지 않은 친절함에 의구심이 들때쯤, 잠시후에 부동산 사장님은 가벼운 침구류와 생활 필수품 휴지 등등을 들고 나타났다.
".. 우리집이 바로 옆집이라서..."
그의 친절함은 점심식사까지 이어졌다. 이사 쳣날에는 짜장면이 국룰이라했다. 탕수육과 빼갈까지. 그는 신문지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그가 앉으니, 그의 앞섬이 더욱 도드라져보인다. 안그래도 힐끔힐끔 그곳을 훔쳐보고 있긴 했는데, 그만하자고 마음을 먹어도, 시선은 몇번이고 그곳을 힐끔거렸다.
사장님은 유쾌한 사람이었다. 말수가 없어서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가 불편한 나를 대상으로 쉴새없이 이야기가 쏟아지게 만들었다. 빼갈이 많은 도움을 주었겠지만, 마치 우리가 원래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재주가 꼭 책방행님과 비슷했다.
".. 하나 하나.. 천천히 시작하면 되지.. 뭘.."
그는 내가 기구한 사연의 주인공이라도 되는듯이 그렇게 말했다.
".. 여자? 아이고 시끄럽기만 하지..
삐치기는 또 얼마나 잘 삐치는지..
..바라기는 또 얼마나 바라는지... 잔소리에..
..아유!! 말 말어... 혼자가 편하지.."
".. 사장님은 결혼 안하셨어요?"
".. 어? 나는 갔다왔지...."
그가 혼자라는 사실. 여자에대한 반감들. 그 두가지가 갑자기 내 마음을 움켜쥐는것 같았다. 조그만 불씨만 보여도 나는 언제든지 희망을 싹틔우는 인간이었다. 헤어진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 아퍼? "
".. 네?"
".. 가슴이 아프냐고?"
네. 아파요 라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아주 사소한 미소와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자 그는 내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치 자신은 그런 사랑놀음은 다 예전에 뗐다는 사람처럼 초연해 보이기도 했다. 그게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도, 애처롭기도 했다.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아서 마음이 푸석거릴일도, 아파서 애리는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살면서 이런 감정들은 때때로는 메마른 가슴에 오아시스 같을때도 있으니까.
".. 자.. 한잔해..."
목이 타들어갈 고통을 이겨내자, 취기가 올라온다. 모든것이 다 덧없이 느껴진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들. 부동산 사장님의 체취. 그럴일없다는걸 알면서도 매번 고개를 쳐드는 헛된 욕망을 나는 힘없이 바라만 보았다.
이렇게 태어난걸 어떡하란말인가.
"... 사장님도 여자 좋아하시죠?"
".. 여자 안좋아하는 남자도 있나?"
"... 저요... 저 여자 안 좋아해요..."
그렇게 평생을 끙끙 앓아대더니, 이게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내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 이렇게 깃털처럼 가벼운 문제었나.
부동산 사장님은 눈빛이 흔들렸던거 같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겠지. 살면서 그런일이 어디 흔할라고. 그는 대뜸 술병이 비었다면서 자기 집에서 금방 술을 더 가져오겠다고 했다. 나는 당연하다는듯 그에게 미소를 잔뜩 뿜어주었다. 마치 경기에서 이긴 사람마냥 환희가 차올랐다.
바로 옆집이라던 자기 집에서 부동산 사장님은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 이게 일반적인거지. 그제서야 나는 정말 홀로 되었다는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은 백지상태. 누구라도 붙잡고 신세한탄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이냐! 왜 어째 너라는 인간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느냐! 마구 마구 내 자신의 마음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서러웠다. 부장님이 떠난것도 서러웠고. 행님도 그렇게 사라진것도 서러웠다. 하물며 부동산 사장님이 돌아오지 않는것도 서러웠는데, 그간 이 악물고 버틴것들이 다 내안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할수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뻔한 조언들을 내뱉으려는 사람들은 그냥 닥치고 계시라.
또 눈물이 난다. 제기랄. 또 눈물이..
썩어빠진 내 인생. 나보고 뭘 어찌라는것이냐.
하늘에 대고 조목조목 따져보고 싶었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냐고.
내가 이런꼴로 살라고 나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한참을 어깨가 들썩일정도로 울었나보다. 그가 내 어깨를 잡고서 술병을 들이밀때까지도, 나는 누가 왔는지 분간도 못하고 있었으니까.
"... 누가 돌아가셨나?
.. 너무 늦게 왔어? 집에 가니까.. 술이 없어서.."
최악의 상태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잡는데, 나는 그가 누군지 상관이 없었다. 그냥 누구든 붙잡고 울고 싶었다. 그가 부동산 사장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왜 이제 왔냐고 하면서, 마치 죽은줄 알았는데, 살아서 돌아온 남편을 반기는 여인처럼 기뻐서 울기도 했다.
".. 왜? 안올줄 알았어?
.. 남자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터져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 이봐...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데..
.. 그게 남자건 여자건 무슨 상관이야?"
그는 그렇게 말해놓고, 나를 더 안아주었다. 낯선 사람이 주는 위안.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사람이 내 아픔이 무언지 알고 나의 아픔을 같이 들어주는가. 그 마음이 참 괜찮다. 좋다. 그냥 스쳐 지나갈수도 있었을텐데.
위로라는것을 건낼때, 뻔한 말로 길게 늘어 뜨리는것보다 멍청한게 없다. 아주 특별한 말이 아니면, 그냥 한번 안아주는것도 참 효과가 크다.
".. 제 애인 남자였어요...
.. 그리고 사장님처럼 나이 많으신분..."
한참을 울고 진정을 한후에, 술을 몇잔 더 받아먹고 나는 그에게 작정한듯 털어놓았다.
".. 그래? "
그는 태연한척 했지만, 당혹감을 감출수 없는듯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여자랑은 정말 한번도 안해봤어?"
".. 네.. 저는 남자랑만 해봤어요..
..그것도 나이 많은 아저씨들하고만.."
".. 세상에.. 그럴수도 있구나...."
난줄 이런 대화를 할줄 알았겠나. 놀래서 그만 갈법도 한데, 그는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 징그럽지 않아? 남자랑 하면?
.. 어디다 하는거야? 거기로?"
".. 네.. 거기로.."
상상만해도 아찔하다는듯, 어깨가 저절로 올라가는 모양이었다. 그러고서는 두손으로 얼른 자신의 앞섬을 가린다. 나는 그 모습이 우스웠다. 차라리 톡 터놓고 얘기하니 왠지 내가 우위에 있는 기분이들어 우쭐하기까지 했다.
".. 안 잡아 먹어요.. 사장님..."
".. 어.. 그게 아니라..."
그가 두손을 치우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 이해가 안가네..
.. 젖가슴이 얼마나 부드러운데..
.. 또 밑에 넣으면 그 황홀감이..
.. 안해봐서 그래.. 해보면 .."
".. 저한테 그 젖가슴은 남자 자지예요..
..막 빨아주면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 딱딱해지면서 물이 얼마나 흐르는데요..
.. 또 그걸 넣으면..."
더 말하려다 거기서 멈췄다. 일반과 이런 대화를 서스름없이 뱉는 내가 새삼 놀라웠다.
".. 니가 넣는거야? 아님 받는거야?
.. 아프지 않아? "
".. 천천히 이완 시켜주면 아프지 않아요..
.. 저는 받아요.. 주로.."
많이 컸다. 이준이! 이런말도 할줄알고. 늘 끙끙대더니.
".. 살다 살다 별일이 다있죠?
.. 저같은 인간도 만나보고.."
".. 어.. 그러네.. 참.. 재밌다.. "
부동산 사장님은 그래도 예의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대화가 호기심을 자극했겠지만, 적어도 나를 이상하게 더럽다고 대하지 않았다.
".. 자꾸 사장님이 친절하시니까..
.. 제가 오해할거 같아서..
.. 그래서.. 얘기했네요..."
".. 오해? 아...."
".. 나야.. 뭐.. 어느정도는 오픈 마인드라..
.. 그럼 나 같은 늙은이를 좋아한다는건가?
.. 막.. 나랑 하고 싶은건가?"
그때쯤에 그는 소년처럼 부끄럽게 물었는데, 나는 그의 순수함이 귀여워보였다.
".. 네.. 맞아요..
.. 사장님 정도면 .. 괜찮을거 같네요.."
그가 두손으로 온몸을 방어하는듯한 자세를 취한다. 땀까지 뻘뻘 흘린다.
"... 주실꺼예요?"
".. 어?"
".. 안주실건데.. 제가 뭐 겁탈이라도 할까봐요?"
".. 그러게.. "
그는 그제서야 두손을 풀고는, 겸언쩍었는지 크게 웃었다. 나도 그 모습을 보고 서로 웃었다.
그날밤 부동산 사장님의 체취가 묻은 이불에서 잠을 자는데, 유독 행님 생각이 간절했다. 부장님 생각도 간절히 떠올랐다.
그토록 바라던 혼자만의 시간이 되었다. 나를 돌아보는일. 그동안 정처없이 내 마음 둘곳없이 떠돌며 방치했던 나를 또렷이 들여다 보는일. 나는 나를 사랑해주기로 했다.
힘든일이 될것이라 예상된다. 성욕은 불쑥 불쑥 올라올것이고, 혼자서 해결하겠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럴수도 없을것이다. 찜방을 전전하거나, 아니면 의미없는 원나잇을 할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다 어쩌다 또 우연히 사랑에 빠지게 될수도 있겠지만, 이 험난한 여정을 잘 헤쳐갈수 있을까. 나이도 먹어서 누가 나를 좋아해줄까? 이러다 영영 혼자서 늙어버리는건 아닐까?
기웃기웃만 데다가 시간을 다 버리는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이럴때 행님이라도 있었다면, 그와 가까이 지내지 않고 멀리서 응원만 해주면서 힘을 얻는 그런사이였더라면. 덜 힘들수도 있었을텐데.
나는 오랜만에 책방아재 채널에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나눴던 수많은 댓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벅차오름과 위로와 때때로는 원망이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큰 결심을 하고서 댓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 행님 잘 지내시죠?
저때 보니까 얼굴에 뭐가 났던데..
피곤하셔서 그런건지..
너무 무리를 하셔서 그런건지..
잘 나았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들으면 좋아할 소식이있다고...
전화 주신다더니..전화번호 바꿨던데요..
아무래도 무리였겠죠?
이해합니다..
아무렴 그게 있을수 있는 일인가요?
그럼에도 제가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사과 드리고 싶었어요..
그때 제가 한말.
때때로 너무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왜 그런 말을 해서 우리의 우정을 다 깨트려 버렸는지..
꼭 사랑일필요 없었는데..
그냥 서로 좋아하고 응원하고..
몸을 섞는 일이 없어도..
가끔 만나서 술도 한잔하고.. 일상도 나누고..
힘들면 잠시 어깨에 기대기도 하고..
내어 주기도 하고..
이런것도 사랑이라고 하신다면..
이런 우정도 괜찮은거였는데..
그러면 될일이었는데..
밤이 깊습니다. 주무시겠죠?
근데 왜 영상 안올리세요?
저때문에 불편하셔서 그러시는거면..
안그러셔도 되는데..
저 이제 댓글 안달게요..
그냥 좋아요만 누르겠습니다..
이때쯤 새벽 2시쯤에 누를테니,
그때 알람뜨면 저인가 보다 하세요..
너무 질척거리죠? 저?
처음 행님과 술을 마시던날이 잊혀지지 않네요
진짜 우와 어쩜 나랑 이렇게 잘 맞나...
내가 무엇을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내 마음을 잘 알까..
마음이 통한다는말. 그때 알았어요.
무슨 말인지. 그거라도 느끼게 해줘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제 다 지나가버렸네요..
행님.. 무슨일이 있건간에..
전 언제나 행님편인거 아시죠?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거기까지 쓰고 나는 잠시 머뭇대다가
댓글을 지워버렸다.
지나간 인연은 붙잡지 않는다. 잡히지 않겠다고 떠난 사람인데, 무슨 미련이 남아서 질척거리나.
그의 마음이 진심이었든, 아니었든 떠나간 사람이었다.
대신에 마지막 영상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런데 그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 쿵쿵쿵쿵!!!"
시간을 보자, 새벽 2시였다.
..........
".. 여보 안일어나? 서점 문 안열거야?
왜이래 진짜 요즘? "
책방아재는 어김없이 꾸물거린다. 요 몇달 뭔가 이상해진 남편의 행적이 맘에 들지 않아서 톡 쏘아부친다.
"..당신이 열던지... 몰라... 좀... 내비둬.. "
성실한 모습에 반해서 한번도 속 썩인적도 없어서, 늘 주변의 부러움을 샀는데, 언제부터는 서점문을 여는일도 다 그녀의 몫이 되어버렸다.
늦은 점심에도 안 나타나길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다. 평생 이번호만 썼는데. 갑자기 없는 번호라니. 언제 바뀐거야? 집으로 전화를 걸어봤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시각 책방아재는 뚝방길을 따라서 걷고 있는 중이었다. 내리쬐는 햇빛이 유난히도 부셨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한걸음 힘을 주어 걸었다. 중간중간 바람도 불고 조금 맺힌 땀도 식혀주었기에, 겉으로만 봐서는 나무랄때 없는 날씨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것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사람처럼 한숨을 푹푹 쉬어댔다.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금새 고개를 푹 숙이기도 했다.
마음이 그랬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마음. 50대도 그럴수가 있는가. 그런 에너지가 남아있는가. 먹고 사는 문제로도 충분히 신경써야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아직 부양해야될 자식도 있었다.
영상을 올리고 나면, 늘 준이의 댓글이 먼저 달렸다. 별다른 말도 아닌데, 그 댓글이 참 기다려졌다. 신경이 그렇게 쓰이는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준이의 댓글이 달리지 않으면 자꾸 시무룩해져갔다. 그러다 뒤늦게라도 댓글이 달리면 반가웠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기분. 마치 뒤늦게 연애세포가 올라오는듯 두근댄다는 젊은시절이 떠올리기도 했다. 그가 남자나 여자나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한번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큰 힘을 받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차원의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나날이 더욱 넉넉하게 그리고 풍성하게 쌓여만갔다. 가볍게 그의 말에 힘을 얻어서, 나도 되려 힘을 주고 싶은 마음에 그의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쓰는일은 때때로는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리곤 했다. 장난같은 댓글엔 장난으로 응수하다가도, 무언가 한없는 애정표현이 담긴 글에는, 나도 진심을 담아서 그에게 애정을 표시하곤 했는데,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 생각 대부분이 그에게 머물러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영상을 몇개 올려도 준이의 댓글이 달리지 않자, 초조해하던 나를 보고 얼마나 놀라웠는지. 준이를 위한 영상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부터는 얼굴도 모르는 그의 반응을 살피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까지 앞섰으니, 이런건 누구에게 상의를 할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을 이어가던 어느날,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처음엔 누군가 싶었다. 소포를 뜯는데 익숙한 아이디와 편지. 그리고 나를 위해 준비한 옷가지들.
와이프도, 직원도 모두 놀랐다. 나도 물론 놀랐다. 누가 이러겠는가. 나같이 늙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게. 준이는 나에게 자랑이었다. 나를 놀려대던 친구와 가족들에게 으시댈수 있게 만들어준 사람이었다.
그간 왜 댓글을 남기지 않았냐고, 무슨일이 있었던건 아니었냐고 물어보고 싶은 말이 무수히 머리속에 가득찼다. 그 감사한 마음과 감동이 물결을 치듯 내마음에 밀려왔다.
그렇게 준이를 만나자마자, 나는 그때부터 바로 사랑에 빠젔던걸까. 남자라는건 왜 아무 상관이 없었을까. 그가 갑자기 나에게 내 몸을 가지고 싶다라고 얘기했을때, 나는 그렇게 거부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얘기하는 그가 순수해보였다. 자신의 더러운 마음을, 나를 생각하면서 내가 더럽혀지지 않게하고 싶었다는 말. 얼마나 기특한가. 나는 거기서 더 나아가 그의 아픔까지 읽어냈다. 그래서 그를 안아주고 아꺼주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딱 그정도 인줄 알았다. 그때까지만해도.
준이를 보내고, 남자의 급작스러운 고백에 나는 심정이 묘해짐을 느꼈다. 그가 내게 뱉었던 말들이 하루종일 머리속을 헤집고 다녔다. 일단 그를 안심시키고 싶은 마음에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했다.
서로의 연락처를 모를때는 온라인으로 겨우 소통했는데, 얼굴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의 진심을 알게되니 신기하게 더 많은 정들이 순식간에 쌓이기 시작했다. 무슨일인지 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도무지 알수없는 내마음을 들여다 보기위해 그 다음날에 친구 하나를 불러놓고 술자리를 가젔다.
술에 취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서, 진짜 내가 숨겨온 저의를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 내가 지금.. 좀 이상한가봐..."
".. 왜? "
".. 너 오십 먹어서 하루종일 어떤 사람이 생각나고 그러냐?"
".. 미쳤냐? 그럴 시간도 마음도 없지..."
".. 그렇지? "
".. 왜? 너 뭐 바람피우냐 요새?"
".. 아니.. 그런건 아닌데..."
".. 뭔데? 무슨일 있어?"
나는 진지하게 이 대화에 임하고 있었다.
".. 계속 생각나.. 어떤 사람이..."
".. 뭐?"
".. 딱 한번 만났는데...
.. 하루종일 그 사람만 생각나는데...
.. 이거 뭐지? "
친구는 머뭇거렸다. 자뭇 진지한 모습을 보이더니, 그렇게 말했다.
".. 그거 사랑 아니냐?"
두개골이 번개를 맞고 쪼개지는 기분까지는 아니었는데, 나도 어느정도 짐작은 하고 있던터라, 그러나 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을땐 적잖히 충격이 있기는 했다.
".. 뭐 어떤 여자인데? 손님이야?
.. 누가 내 친구 마음을 뺏었어?"
올곧게만 살아왔던 나를 칭찬하는듯 했지만, 사실 내심 너무 정도로만 걸으려는 나를 내친구는 늘 답답해 했었다. 그걸 베이스에 두고 한 말이었다.
".. 여자 아니야..."
이런것도 사랑이라고? 이런 마음이? 와이프와 연애를 했던 시절을 억지로 떠올려 보기도 했지만 그날들의 기억만 남아있을뿐, 그 시절의 감정들은 정말 생각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정의해보려고 애를 썼다. 이게 사랑이라면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명확한게 떠올랐지만 당장은 그럴수가 없는게 내 형편과 처지였다.
막상 나의 감정을 마주하고 있으니, 새삼스러웠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도 이런 감정들을 만날수가 있구나 싶어서. 그러나 명확해진 나의 감정을 가지고 준이를 만나는 일은 실상 무서운 일이기도 했다.
나는 명확하게 그를 만나면 무엇을 할지 알고 있어서 그게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킬게 뻔해 보였다.
어느 일요일에 가족들과 야외를 나갔는데, 거기서 준이를 보았다. 멀리서도 그는 찬란하게 빛이나서 나는 단숨에 그를 알아보았다. 신기한 일은 그도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내 가슴이 얼마나 뛰었겠는가.
와이프와 딸아이가 있었지만, 그를 내 눈에 담고싶은 마음이 커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떼었다. 미안한 마음도 컸다. 내 마음이 이래서 그랬다고 설명해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가까이서 보니 웬 남자랑 같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준이의 애인이라 소개했다. 그때 나는 마음이 순간 절절하면서도 쓸쓸했는데, 준이도 나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묻고 싶었다. 이내 마음을 추스리고 몇마디를 나눈채, 헤어지는데 어째 더 그의 곁에 머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던지.
그 마음에 못이겨 다시 전화를 걸고 사과를 했다. 만나자고 해놓고 연락을 못해서 미안하다고.괜찮다는 그의 말이 나는 서운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내가 왜 그랬는지 내 마음을, 내 진심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나는 또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만든것이다.
애써 웃으며 그와 농담을 나누면서도, 나는 그렇게 내 마음이 흡족할수가 없었다. 평온해짐이 나를 오랜만에 웃게 해주었다.
나의 유일한 자랑이 사랑이었다니.
혼란스러운 생각은 나를 더 가중시켜서 하루 왠종일 몸이 아팠다. 일년에 한번 아플까 말까하는 나를 준이에 대한 들끓는 애정이 보기좋게 비웃고 있었다.
아프고 나니, 명확해지던것은 더욱 명확해졌다. 그러고 나니 정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나는 무슨수를 써서라도 준이와 함께하기위해, 내가 쌓아온 모든것을 버릴것 같았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바꿨다. 오랫동안 써온 그 번호를 과감히 버렸다. 연락처도 모두 다 저장하지.않고 모두 버렸다.
당분간은 내가 준이를 마음에서 몰아낼때까지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기운은 쉽게 차려지지 않았다. 늘 밝은 성격의 내가, 늘 유쾌하다는 말을 들었던 내가 처참하게 밣히고 무너져 내렸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바다에 치는 그 성난 파도는, 지금 내 마음에 요동치는 물결에 비하면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일에 불과했다.
그래도 삶은 살아지는것이라, 알고는 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다 잠잠해지라는것을. 다만 시간이 걸릴뿐이다. 어떤 파도라도 잠잠해지지 않는것은 없다.
열병같은 이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식겠지.
세상에 제 아무리 뜨거운것도 언젠가는 식는법이니까.
그러나 이 마음을 준이가 알면 어떨까?
그가 나를 바라보는 마음과..
이제 내가 준이를 생각하면서 느끼는 마음과
똑같아져버렸다고..
그 사실을 준이가 알면 기뻐할까?
그 남자를 버리고 나에게 올까?
그 힘듦이 조금 줄어들까?
어쩌면 준이는 평생 내 마음이 이러는지 모르고 살게될것이다. 내가 입을 열지 않는한. 그러면 지고지순한 우리의 마음은 결국 땅속에 묻히게 될것이고, 우리의 짧았던 사랑은 영영 사라지게 되겠지.
혹시 지금도 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아무런 말도 없이 전화번호까지 바꾸었는데, 원망하진 않을까? 내가 왜 이러는지 그는 절대 모를것이다.
이런것도 사랑이라고 할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살을 섞고, 일상을 나누고,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밥을먹고 웃음을 나누고, 슬픔을 함께하는것만이 사랑이라고 부를수 있을까?
이 아이러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를 사랑하고 있는데, 그 사실을 죽을때까지 모르는건 그것은 억울한일일까? 아니면 설령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어떤식으로든 알게만 된다면 그것은 위로가 되는 일일까?
고백되어지지 않아도, 내 이 들끓는 마음이, 이 간절한 마음이 둥둥 떠다니다가 그에게 자연스레 내려 앉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멀리서 서로를 응원하며 살아가기에는, 지금 내마음의 온도가 너무 뜨겁다. 언젠가 조금 식어지면, 그땐 웃으며 준이를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의 사랑은 나의 머리에 기억되겠지만, 나의 사랑은 세상 어디에도 기억되지 않을것이다. 나는 그것이 조금 슬플뿐이다. 준이가 내 진짜의 마음을 하나도 모르고 살아가야 된다는 사실이.
그때 그의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다른 사용자가 다음 댓글에 좋아요를 표시했습니다.
그때가 새벽2시였다. 잠시 핸드폰에 눈을 고정하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
에필로그
1년후,
말 그대로 나는 천천히 조금씩 나아졌다. 이 나이에 이런 열병같은 사랑을 경험하게 해준 준이가 때때로 고맙게 여겨지기도 했다.
유튜버도 다시 시작했지만, 조회수와 구독자수는 여전히 처참했다. 준이로 보이는 댓글들이 몇개 보였지만, 그가 아닌것 같았다.
어쨌든, 모든것이 조금 정상으로 돌아왔다.
".. 아버님 오늘 퇴원 몇시까지지?"
".. 지금 출발해야겠다.. "
우리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주차를 하고 정문으로 걸어가는데, 한 중년의 남자가 정장을 입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선가 낯이 익어서 누군지 한참을 생각하고도 있었는데, 그는 길을 잃은 사람처럼 헤매는것도 같아서 주의를 끌기도 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그가 누군지 생각이 났다.
준이의 애인. 그 유부장이라는 사람이었다. 모른체를 하려다가 준이의 소식도 궁금하여서 그를 아는체를 했다.
".. 안녕하세요?"
그는 내가 누군지 전혀 기억이 안나는 사람처럼 보였다.
"... 누구시죠? "
".. 아.. 저.. 준이랑 저번에 호수에서..."
".. 준이가 누구죠?"
"... 네?"
".. 그런 사람 저 모르는데요... "
"... 그런데 여기가 어디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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