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술 한 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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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타 슌페이님의 만화 [술 한잔]을 일본어를 몰라서 제 멋대로 각색한 글입니다. 하지만, 혹시 진짜 내용을 아시더라도 말하지는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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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캬아! 역시 이 맛이죠."


 유진은 손에 든 맥주잔을 들고 탄성을 내질렀다. 

 미국에서 온 사람답게 유진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몸짓이 크고 표정도 다채로웠다. 소위, '대화할 맛 나는 사람'인 셈이었다. 

 혼혈 특유의 묘하게 이질적이면서도 서글서글하고 뚜렷한 이목구비 덕분에, 주변 테이블에 앉은 여자들은 저마다 한번씩 세 사람이 앉은 테이블을 쳐다보곤 했다.


 한편, 정우는 5분전에 본 시계를 또 한번 들여다보고 있었다. 

 억지로 끌려와 빈정이 상해 있는 정우는 육포를 씹으며 영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창민은 싹싹한 유진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여어, 잘 마시는데. 그런데 너무 빨리 마시는거 아니야?"


 "걱정마십쇼. 제가 대학 축제 때는 '올해의 주당'으로 뽑힌 적도 있다는거 아닙니까."


 "대학 때? 그러고보니.. 유진 씨는 대학 때는 미식축구부라도 들었었나? 체격이 굉장히 좋은걸."


 "아.. 대학 때는 뮤지컬 동아리에 들었었죠."


 "아아.. 그래서. 봐봐, 김주임. 유진 씨가 글쎄, 환영회 때는 그... 뭔 노래였지?"


 "<지금 이 순간>이요."


 "아무튼 그걸 사람들 앞에서 딱 부르는거야. 여직원들 반응이 대단했지. 영어버전이라 알아들을 사람이 얼마나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하하.. 여기서도 한번 불러볼까요?"


 그 말에, 정우는 정색을 하고 손사래를 쳤다.


 "아니 됐어.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 끼치지 마라. 환영회 때야 우리 회사가 통채로 예약을 했었을 테지만 지금은 안되지."


 "아, 그, 그렇겠죠?"


 분위기가 가라앉아 버리자, 창민은 혀를 차며 화제를 돌렸다.


 "쯧... 그런데 운동이라도 따로 하는거야? 보통 체격이 아닌거 같은데?"


 "아, 네. 집 근처에 있는 헬스장에 자주 가고 있습니다." 


 "헬스장?"


 시계만 들여다 보던 정우가 그 말에 귀를 쫑긋하자, 유진은 신이 나서 대답했다.


 "네.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되어서요. 이제는 안가면 좀 몸이 근질근질하단 말이죠."


 "호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간 건가?"


 "아니요. 제가 가고 싶어서요. 뭐... 미국에서 동양인이나 다문화가정 꼬마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잘 알잖습니까. 그 마동x과 줄리엔x도 애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서 운동을 시작했다잖아요."


 "괴롭힘을 당할 만한 몸집은 아닌거 같은데..."


 "의외로 괴롭히는데 몸집은 중요한게 아니거든요. 아무튼 헬스장에 다닌게 살면서 큰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


 유진은 말을 하면서도 연신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었다. 

 덕분에, 그 큰 맥주잔이 벌써 다 비어가는 모습에, 창민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에헤이, 혼자 그렇게 빨리 마시면 어떻게 해. 아무리 미국에서 왔다 해도 그렇지 맥주를 무슨 물처럼 마시고 있잖아. 안되겠다. 유진 씨는 조금 독한 술을 줘야 천천히 먹을거 같은데?"


 "독한 술이요? 뭐, 주십쇼! 오늘은 이렇게 술이 다니까 뭐든 잘 들어갈 것 같은데요."


 '술이 달다고..?'


 정우는 그 말의 결과들을 숱하게 봐왔지만, 일단은 창민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했다.


 "그럼 폭탄주 어떻습니까? 소맥 한번 말아보죠."


 "그거 좋지. 아주머니! 여기 맥주랑 소주요!"


 잠시 후, 점원이 술병과 술잔을 들고 오자, 정우는 젓가락과 소주잔을 이용해 멋들어지게 폭탄주를 만들어냈다.


 "역시, 언제봐도 김주임이 폭탄주는 참 잘 만들어. 자, 유진씨. 이제 천천히... 저런."


 유진은 폭탄주를 또다시 맥주처럼 들이켜고 있었다. 잠시 후, 아까까지와는 달리 얼굴이 붉게 변한 유진은 머리를 양쪽으로 불규칙하게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아.. 아..! 확실히 독하긴 합니다만... 뭐! 그건 그렇고... 주임님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뭘?"


 "주임님은 이 회사 오시기 전에 어디 계셨습니까?"


 "뭘 묻고 싶은거야? 주소? 직업?"


 "직업 말입니다. 윽...!"


 유진은 취기가 올라오는지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테이블에 기댔다. 정우는 피식대며 입을 열었다.


 "어디 있었을거 같은데?"


 "글쎄요... 묘하게 말투도 행동도 딱딱하시고... 혹시... 군대? 에 있으셨습니까?"


 "이야. 예리한데. 김주임은 원래 전문하사관으로 말뚝박으려고 했다고 했지? 원래는 GOP쪽에서 근무하고 있었다고 했었나?"


 "...그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요."


 정우의 표정이 숨길 수 없이 일그러지자, 유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재!송합니다! 제가 괜히 물어봐서...!"


 "아니야, 됐어. 괜찮으니까 앉아."


 하지만, 유진은 무슨 속죄의 의식이라도 하듯, 그대로 그 큰 술잔에 담긴 술을 한번에 다 마셔버리는 것이었다.


 "무슨! 야 임마! 그러다 탈날려고 그래!"


 "갠찮습!니다. 우리 재밌는 애기! 하죠... 웃어야 좋지 않!습니까? 안그래요 주임!님?"


 유진은 삐에로의 화장처럼 자신의 입을 양쪽으로 벌리며 웃어보였다. 

 그 우스꽝스러운 표정에 정우가 미소를 짓자, 유진은 그제서야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더니 갑자기 테이블에 머리를 쿵소리 나게 처박았다.


 "무슨! 저기.. 유진씨? 괜찮아..?"


 "....."


 정우가 유진을 이리저리 흔들어봤지만, 유진은 눈을 감은채 헤~하는 바보같은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이녀석... 기절했나? 살아 있긴 한거지? 뭐랄까... 의식이 잠들어 버린거 같은데? 뭐, 이런 종류의 술버릇도 있긴 하지. 내일 아침이 되면 괜찮아질거야."


 "난동부리는것보다 낫기야 합니다만... 어쩔까요?"


 "뭘 어떻게 해. 집에다 던져넣고 우린 갈 길 가면 되지."


 "집이요? 어딘지는 아십니까?"


 "이 근처랬어. 그래서 여기서 먹자고 한거거든. 여기로 온지 얼마 안 되어서 지리도 잘 모를테니까. 어디보자... 아, 여기 있네. 환영회 때 핸드폰 주소록에다 적어뒀었거든. 근데 열쇠는..."


 "...핸드폰에 매달려 있네요."


 정우는 테이블 위에 있던 유진의 핸드폰을 들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누가 훔쳐가면 어쩌려고 열쇠를 핸드폰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우는 유진의 몸을 일으켜 부축했다. 순간, 자기도 모르게 '끙'하는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힘쓰는 일이라면 회사 누구에게도 이길 자신이 있는 정우였지만, 195센티는 되어보이는 무의식의 근육질 거구를 혼자 옮기는 일은 꽤나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다행히, 계산을 끝낸 창민이 곧 달려와 반대쪽에서 유진의 몸을 같이 부축했다.



 창민의 말대로, 유진의 집은 술집과 매우 가까운 골목에 있었다. 유진의 무게 때문에 정우는 속으로 이를 갈며 짜증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 올해의 주당? 외국 놈들 꼴같잖게 굴면 소맥을 전부 한번씩 입에다 처박아줘야겠습니다."


 "후후.. 됐어됐어. 도수가 묘하게 안 맞은 거일 수도 있지. 그 왜 있잖아. 보드카는 잘 마시던 사람이 포도주 먹고 떡이 되더라는... 아니면 너무 급하게 마셔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아... 그건 그렇지요. 그런데 대리님, 혹시 이 녀석 전에 어디서 본 적 없습니까?"


 "아니? 없는데. 그건 왜?"


 "아닙니다. 그냥... 혹시나 해서 말입니다."


 "싱겁기는... 아, 저기다."


  유진의 월셋집은 흔한 다세대주택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꽤 낡은 명패들 중, 만든지 얼마 안된 최유진이라는 명패를 찾아낸 둘은 한숨을 쉬며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휴... 됐다 됐어."


 정우는 현관 위 마루에 유진의 몸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유진은 여전히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했다. 

 창민이 유진의 신발을 벗기고 마루 위로 그의 몸을 좀더 끌어당기는 사이, 정우는 안으로 들어가 전등을 켜고 유진의 이불을 찾아 보았다.


 "에... 이 녀석 이런 모포밖에 없네요. 침대도 없고."


 "이 키를 봐라. 웬만한 침대는 밖으로 발이 삐져나올걸. 자네도 키가 180 센티는 되니까 알거 아냐. 지금 밥 먹을 돈도 간당거린다는데 침대는 무리겠지."


 "키 큰 사람도 이런저런 고충이 있군요. 대리님은 이제 어쩌실 겁니까? 방향이 반대라 빨리 가셔야 하시지 않습니까?"


 "뭐.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1시간 정도는 넉넉해. 이 녀석이 이렇게 빨리 떨어질 거라곤 예상을 못했으니까."


 창민은 유진의 옆에 주저앉아 그를 고생시킨 이 웬수의 길쭉한 다리를 손으로 꾹꾹 눌러보였다. 그러자, 유진의 다리가 무의식적으로 벌어지며, 바지에 덮힌 그의 앞섶이 적나라하게 두 사람의 시야에 노출됐다.


 '꿀꺽' 누가 뭐랄것도 없이,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두 사람에게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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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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