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원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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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타 슌페이님의 만화 [원룸]을 제 맘대로 조정한 글입니다. 왜냐면.. 영어판, 한글판이 없어서 세세한 내용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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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걸린 시계는 이제 밤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7월의 열대야는 이 시간이 되어도 수그러들줄을 몰랐고, 그래서인지 주말의 거리에는 잠들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평소보다도 많은 듯했다.
주점 <뱃놀이야> 구석의 작은 칸막이 안에서 두 남자, 진우와 동욱은 오뎅탕등의 안주와 함께 소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벌써 꽤나 많은 양의 술병을 해치웠는지, 두 사람의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제법 감돌고 있었다.
대화의 대부분은 진우가 동욱에게 하소연하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쌓인게 꽤나 많았는지, 진우는 술과 안주를 먹는 잠시간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생활비 좀 아껴쓰라고 그랬더니, 이 XX년이 글쎄 뭐라는줄 아냐?"
"글쎄..?"
동욱은 진우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도 무언가 초조한 기색이었다. 눈치빠른 진우가 기분나빠하지 않도록 슬쩍 상 아래로 핸드폰을 틈틈히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동욱의 한쪽 다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 불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벌어다주는 돈이 쥐꼬리라 아껴쓸 것도 없다는거야 글쎄! 아니 그렇게 쪼들리면 지가 나가서 돈을 벌어오던가! 결혼한 것도 아닌데 벌써 전업주부 흉내나 내고 있다니까..."
"뭐, 동거 3년 했으면 결혼한 거나 다름없지. 그런데 아직 둘 사이에 애는 없었지..?"
"애? 야, X발 진짜 그 얘기는 꺼내지도 마라. 안그래도 1년쯤 됐을 때 애가 들어섰었는데, 내가 잘됐다고, 낳자니까 그 XX년이 글쎄...!"
진우는 갑자기 속이 탔는지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때, 동욱의 핸드폰쪽에서 부웅하고 진동음 소리가 시간을 두고 연속으로 들렸지만, 들여다볼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자기는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됐다는거야... 도대체 언제, 어디까지 준비를 해야 부모가 될 수 있는건데? 건실한 직장도 있고, 전세집도 있고, 도와주실 부모님도 근처에 사시고... 식이야 나중에 올리면 되는건데, 도대체 뭐가 부족하다는건지 모르겠다."
"그냥.. 어려서 그런거겠지. 수현이랑 너랑 나이차가 얼마였지?"
"네 살. 직장 다닐 때부터 사귄거니까.. 그래도 스물다섯이면 너무 어린건 아니잖아?"
"야, 요즘 사람들이 워낙 결혼을 늦게 하잖냐. 걔 친구들은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경험도 없는 애들도 있을텐데, 그런걸 부끄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부끄러워? 뭐가? 이런 내가? 아니면 내 아이를 낳는게?"
진우의 눈은 시벌겋게 변해 있었다. 안그래도 어린 아이의 머리만큼이나 굵은 그의 팔뚝은, 분노로 떨리면서 그 시퍼런 핏줄들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아.. 잘못 건드렸네.'
동욱은 빨리 끝내려고 대충대충 둘러대려던 자신의 생각을 후회했다. 혹시나 예전처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동욱은 얼른 진우의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그의 크고 긴 팔로 진우를 감싸안듯 바싹 붙어앉은 동욱은, 다부진 진우의 반대쪽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그의 귓가에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내가 말을 잘못했다. 한번 봐줘라."
잠시 후, 부들대던 진우의 몸에서 힘이 서서히 빠지는게 느껴지자, 동욱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은 학교다닐 때랑 달라진게 없군.'
그 때, 바지 주머니에서 동욱의 핸드폰이 또다시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동욱은 인상을 한번 찌푸리고는, 진우에게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막잔 하자. 벌써 11시가 다 되어가잖아. 막차 끊기기 전에 가야지."
"... 가기 싫어."
"그게 뭔 소리야. 너가 애냐?"
"그 XX년 면상 쳐다보기도 싫다고. 어차피 내일부터 휴일이라 출근도 안하는데. 야, 동욱아..."
동욱은 나쁜 예감이 들었다.
"나 오늘 너네 집에서 하룻밤 재워주면 안 되냐?"
"그게 무슨..! 얌마, 나 원룸 살아. 침대도 하나밖에 없고."
"나 침대서 안 자도 돼. 걍 바닥에서도 잘자. 그러니까 좀 재워주라."
"야이..! 네가 무슨 가출고딩이야? 걍 모텔 가서 자면 되잖아."
"나 이번달 용돈 거의 다 썼다.. 서울은 주말이면 모텔비 20만원 넘게 나온다며."
"그건 그렇지만..."
"좀 재워줘. 이번 기회에 박사님 집도 구경 좀 해보자."
"원룸이 뭔 대단한 집이라고..."
동욱이 계속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진우는 다시 얼굴이 시벌개졌다.
"야! 나는 너 대학 때 집에서 쫓겨났을 때 내 자취방에서 몇 달을 재워줬었는데, 넌 하룻밤도 못재워주냐? 좀 섭섭하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지금 집에 와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사람이 와 있어? 누구? 가족? 아니면... 설마..."
"쉿! 조용히 해 임마."
"아하~ 우리 엉큼한 박사님도 겉으로는 순진한 척하시더니 말없이 애인이랑 동거라도 시작하셨나보구만."
"동거는 아니고... 요 근래 만난지 좀 됐어. 수업 끝나고 할 일 없다길래 우리 집에 들어와 있으라고 해뒀었거든."
"수업? 대학원생이야?"
"아니... 그냥 학부 2학년. 학교 동아리 홈커밍(졸업생들과 학부생들의 만남 행사)할 때 만났어."
학부 2학년이면 아무리 잘 쳐줘야 23살이다. 진우는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2학년? 하나 둘 셋 넷... 야이! 아까 그 년한테는 네 살차가 어리니 어쩌니 하더니, 넌 2학년? 양심은 안녕하시냐?"
"쉿쉿! 시끄럽다니까 진짜! 여기 계산이요!"
동욱은 카운터로 가서 얼른 계산을 마치고 비틀대는 진우를 끌고 가게 밖으로 나섰다. 진우는 꺼억하고 트림을 한번 하더니, 동욱을 따라서 천천히 걸어갔다.
"이야~ 박사님이 좋긴 좋구만. 앉아서 그런 영계도 꼬시고. 어때? 잘생겼어?"
"생긴거야 잘생겼지. 운동도 좋아해서 몸도 좋고. 아니, 어쨌든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잠깐만 기다려. 승현이한테 오늘은 그냥 가라고 전화할테니까..."
"아, 걔 이름이 승현이야? 날 재울라고 걔보고 가라고 할라구? 됐어 됐어. 걍 셋이서 자자. 어차피 네 사정은 옛날부터 나도 잘 알고 있잖냐. 안그래, 최동욱씨? 꺼억."
동욱은 넘어질듯 비틀거리는 진우를 가까스로 붙잡아 세우며 입을 열었다.
"...진짜 괜찮겠어? 우리집엔 소파도 없어서 넌 맨바닥행이야. 어차피 네가 내 침대 속으로 들어오지도 않을테지만."
"괜찮아 괜찮아. 7월이면 길바닥에서 자도 얼어죽진 않을걸 뭐. 남는 이불이랑 요만 좀 깔아주면 돼."
"그건 있어. 그래. 그럼 잠깐만... 다시 카톡 좀 보내놓고... 그래, 가자 그럼. 지하철 타고 가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겠지."
"그래! 그래... 고맙다! 동욱아! 내가 친구를 잘 둬서! 자다가 입돌아가진 않겠네!"
"시끄러워 임마! 지금 시간이 몇신데. 진짜... 확 자는거 따먹을까 보다."
"그랬다간 마! 낼 아침에 너도 죽고 나도 죽는거야! 4층 옥상에서 마! 너도 던져버리고 나도 뛰어내려버릴 거니까!"
"아이고.. 또 그 소리한다. 자, 내가 지하철비 네거까지 낼테니까... 얌마. 똑바로 좀 서 있어."
아무리 동욱 쪽이 키가 더 크고 몸집이 좋다고 해도, 술취한 남자가 매달리는걸 감당하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늘 강단 있고 씩씩한 진우가 이렇게까지 흔들리는건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동욱은 왜인지 자신의 가슴 한구석도 아파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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