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것도 사랑이라고 하신다면.. 7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아린 상처들은 언젠가는 아물겠지만, 흉터는 남는것처럼 우리들도 아물수 있을지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때 우리는 조금은 맞았고, 조금은 틀렸다. 솔직하게 털어놨다고 했지만, 전부다 말하지 않았다. 온전하게 내 모든걸 말할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설사 있다해도 모든걸 다 말하는게 맞기는 한걸까?

 나는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실제로 본적이 있으니까. 얼마나 만났냐고도 묻지 않았다. 얼마나 만났을지 알것 같아서. 몸을 섞었냐고는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 안물어? 누구냐고?"

".. 네.. 안물어요.."

쿨하려는척을 하려던건 아니었는데, 그때 나의 심정은 정말로 그랬다. 부장님은 절망적인 얼굴로 한숨을 계속 내쉬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수천가지인데, 무슨 말부터 해야하는지 고르고 있는것 같았다.

".. 난 좀 묻고 싶은데.. 젊어? 나보다?"

일일히 내 감정을 말해야한다니, 사랑이라고도 바람이라고도 할수 없는 내 쓰레기같은 감정을. 마음이 갑갑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해야할지. 젊은지는 왜 물어 봤을까. 그게 중요한걸까? 마음이 더 중요한데.. 바보다. 벌써부터 마음이 짠해진다. 내가 부장님을 사랑하기는 하나보다.

"..아까도 그사람이랑 만났던거야?
  .. 혹시... 잤어? "

내가 부득불 입을 닫고있자, 다시 질문이 쏟아져 내렸다. 흔들리는 눈빛과 부글부글 손은 어찌나 떠는지, 어떻게 이 사람을 두고 내가 떠나나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서 부장님 앞에서 무릎을 받히고 올려다 보았다. 용서를 빌겠다는 뜻이 아니라, 너무 서글프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서였다.

".. 부장님... 일반이야.. 그사람..
  .. 잔적 없고.. 오늘 두번째 만났어..
  .. 가정도 있는 사람이고.. 거절 당했어.. 나..
  .. 근데.. 좀.. 좋아해.. 내가.. 아직..."

그렇게 말하는데, 좋아한다니 왜 그런 말까지 붙였을까 순간 후회가 몰려왔다. 부장님은 그 말을 듣고는 조금 안도의 숨을 내쉬는것 같아 보였다.

".. 슬프다.. 그 말.. 그사람 좋아한다는말..."

나는 본인도 바람피우지 않았냐고 순간 따져 묻고 싶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 얘기하고 싶었다. 자주 주말마다 출장을 간다고 했을때. 못 맡아본 바디샤워 냄새가 났을때.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을때.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때. 나는 일일히 모조리 다 나열할수도 있었다.

".. 나는 이제 싫어? "

그럼에도 그는 이기적으로 자신만 생각하나보다. 나는 아픈데.. 아직 여기가 쓰라린데..

".. 좋은데.. 좋아.. 사랑하는데..."

나는 거기서 조금 더 덜 상처받을만 하고, 덜 아파할수 있는 단어들을 생각하느라, 머뭇거리며 말를 했다.

"... 그분이 내 마음속에 많이 들어와있어..
  .. 그래서.. 부장님한테 솔직히 좀 미안해.."

".. 그래서 헤어지자는거야?"

".. 아니.. 그분 가정도 있고, 자식들도 있고..
  .. 그런거 아니여.. 거절 당했다니까?"

".. 니가 고백을 했어? 좋아한다고 얘길 했어?"

".. 아니.. 그런건 아닌데... "

그때 부장님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부장님이 의자를 뒤로 빼면서 났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중이었다. 내 몸과 눈알은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서 계속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굴러 다니고 있었다.

" 이준이씨!! 내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바람핀거.. 용서 받지 못할 일입니다..
사실.. 사실은..."

부장님은 그때 머뭇거렸다. 할말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처럼..

".. 준이 너는 큰 사람이잖아..
  .. 제발 이번 한번만.. 날 용서 해주면 안될까?
  .. 난 너 없이 못살아... "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줘야 하는지 답답해 죽겠던 그때, 부장님이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던 그때 나는 노인네의 무릎이 걱정이 되었다.

".. 일어나셔.."

내가 말했지만, 목소리가 조금은 떨렸던것도 같다.

"..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져..
  ... 근데 집에선 못나가.. "

".. 그게 조건이야..."

".. 나도 잘못했으니까.. 헤어져 주겠다고..
  .. 근데 집에선 못나가!! "

".. 알았어.. 그니깐 제발 일어나셔... 알았다고.."

그게 우리의 최소한의 합의였다. 그게 맞는일인지 그 순간은 분간할수가 없었다. 단호한 그의 의지를 꺾기에는 가슴이 한편 아리기도 했으니까. 어디 우리가 그렇게 쉽게 헤어질수 있는 운명이던가. 자그마치 10년이었다.

애틋한 마음들이 모였다. 우리도 처음엔 그런 마음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다만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서 그 부피가 조금 닳았을 뿐이었다.

나는 나보다 더 나은 사람. 내 사랑을 일으켜서는 등에 토닥토닥 해주었다. 그의 뜨거운 눈물은 곧 내 어깨를 적셨다. 좋은 사람인데. 이렇게나 좋은 사람인데. 나는 왜 지금 이순간도 행님이 떠오르는가. 그가 토닥거려주던 그의 손길이 잊히지 않는가 말이다.

터질듯한 마음들. 쓰레기같은 내 마음과 처신의 잔상들이 내 머릿속을 휘젓는다.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사람은 참 이상하다. 그렇게 설레어서 좋았고, 하루종일 그 사람 생각만으로도 행복한데, 그래서 더 바랄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 마음이 하나 둘씩 쌓이기 시작하자, 겉잡을수 없이 커져서 결국에는 나는 돌아 보지 못하고, 온전히 그 사람에게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니까. 얼마나 피폐한 삶이던가. 얼마나 건강하지 못하는 삶이던가.

나는 안방으로 들어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하나 와있었다.

[ 안녕하세요.. 이준이씨 핸드폰 맞죠?]

[ 네.. 누구세요?]

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다시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

우리는 조금 애매한 관계가 되었다. 모든걸 다 털어 놓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룸메이트와 애인 그 어중간한 사이에 머물러있었다.

그 와중에, 행님한테서는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알듯 하면서도 모를것 같았던 미소. 명랑한 문자들. 전화 한다면서, 또 술한잔 마시자면서, 그런말들만 내뱉어 놓고는 원래 몰랐던 사람처럼 숨어 버렸다.

무슨 기대를 했다라기 보다, 그냥 목소리만 들어도 좋을것 같았는데,  막상 아무런 연락이 없자, 내 마음은 자꾸 타들어갔다. 기대라는건 참 신기해서, 불쑥불쑥 내 마음을 속이면서 나타났다. 사실 나는 그의 전화를 기다렸다. 넥스트 스텝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적어도 일주일에 세번은 올리던 영상도 올라오지 않았으므로, 댓글을 달수도 없었다. 영상이 올라왔어도 댓글을 달지 않았겠지만.

그러는 동안,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할 다짐은 차츰 멀어져만 갔다. 개운하게 새로 시작하고 싶었는데. 나의 죄책감은 나날히 커져갔다. 지금 중요한건 부장님도 행님도 아니고, 내 자신 그 자체였다.

부장님은 일주일에 한번은 분위기를 잡으려 노력했다. 나는 그때마다 행님을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쩌다 생각은 나는건 어떻게 할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대한으로 나는 행님을 내 머릿속에서 지우려 노력했다.

  그뿐이었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 살아가지는 인생. 재미는 한층 줄었고, 설레였던 마음은 자꾸만 고개를 삐쭉이며 나를 빨리 데리러 오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결코 녹록치 않은 현실을 직시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 부장님은 매주 나를 데리고 부지런히 나가려했다. 그날도 피크닉을 제안했다. 나는 몸만 가면 되고, 나머지는 자기가 다 알아서 준비 하겠단다.

30분가량 차를 타고 나름 유명한 J호수에 갔다. 중간에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도 샀다. 날씨는 상쾌했다. 자동차 창문을 열어도 될만큼. 바람은 내 속도 모르고 눈치도 없이 유쾌하게 굴었다. 호수 한바퀴를 부장님 손을 잡고 돌고서, 한적한 곳에 돗자리를 피고 자리를 잡았다. 도시락을 꺼내고서 바람이 불어서 헝클어진 머리를 만지면서, 고개를 드는데 행님이 서있었다. 와이프와 딸과 함께. 우리는 멀리서도 서로의 눈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내 욕정의 대상이 아무렇지 않게 평범하게 가족과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면,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부장님을 봤을때도 들었던 감정이었다. 임자가 따로 있는데, 도둑놈도 아니고. 왜그럴까. 그러니까 탈이나지. 서둘러서 그의 눈빛을 피해보지만, 그는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녹아 내릴것만 같았다. 그가 반가워서 그런것도 있지만, 옆에서 내 비위를 맞추려 노력하는 부장님때문에도. 그리고 조금 멀리 떨어져서 걷고 있는 그의 가족들때문에라도.

부장님은 그 모습이 어리둥절했을것이다. 웬 모르는 사람이 우리쪽으로 오고 있었으니까.

" 안녕하세요?"

그는 생긋 웃었다. 어쩜 저렇게 사람좋은 얼굴을 만들어 낼까? 나는 피어오르는 마음을 애써 잡아서 저만치 밑에 황급하게 숨겼다.

"... 누구신지..."

빨리 입을 띄어서 상황을 모면해야하는데, 그러기가 쉽지가 않았다.

"... 아.. 제가 유튜버인데요...
  .. 준이씨가 우리 구독자예요...
  .. 몇번 만나서 술도 한잔 먹었습니다..."

부장님은 어디까지 추측을 해냈을까. 이미 내 마음을 다 관통해서 읽고있을까?

".. 아버지세요?"

그 한마디에, 부장님은 정색을 하면서 되받아쳤다.

"... 애인입니다.. 준이 애인.."

".. 아... 그러시구나..."

순식간에 해맑은 표정이 굳어졌다가 다시 밝아졌다가 모르겠다. 어떤얼굴인지 도저히 가늠할수가 없었다.

그 사이에 그의 가족들이 당도를 했다. 나는 머리를 조아리며 마음속으로 깊은 사과를 전했다. 부장님도 가볍게 목례를 했다.

".. 여기 구독자분이야..."

행님은 나를 구독자라고 표현했다. 아는 동생이라고 표현 할수도 있었을텐데.. 섭섭하지는 않았다..사실이니까.

남들이 봤을땐, 가벼운 만남으로 보였겠지만 우린 저마다 무겁게 느껴졌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똘망한 눈을 가진 딸아이는, 행님과 쏙 빼닮았고, 와이프는 얼마나 아름다우신지.

적어도 부장님과 나와의 관계를 묻지는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안그러면 부장님이라면 분명 또 애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했을것이다.

분명 나보다 훨씬더 늦게 이쪽에 발을 들였건만, 이쪽이라는 사실을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나는 그런 당당함이 부럽고 또 든든하기도 했다.

행님은 다시 또 전화하자고 술 마시자고 말하고는 우리에게서 가족과 함께 멀어져 갔다. 중간중간 딸아이의 꺄르르 웃는 소리가 이상하리만큼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특별히 어색할것도 없었지만,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우린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실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는지도.

먼저 입을 뗀건 부장님이었다.

".. 저 사람이지? "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 젊네... 나보다...."

마음이 조금 시리는 말이었다. 맹세코 나는 행님이 처음엔 젊어 보여서 별로 마음이 가지 않았다. 내가 마음을 뺐겼던 이유는 젊어서가 절대로 아니었다. 내가 그를 마음속이 품은 이유는 그의 올바른 사고 때문이었다. 평소에 그가 뿜어내는 인성.그거였다. 얼굴도 몸도 자지도 아니었다. 그의 인성과 사고가 좋아지자, 나머지게 따라왔을뿐이었다.

"... 무슨 유튜버인데? "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어차피 내가 한짓을 언젠가는 다 말하려고 했으니까.

".. 얼굴은 내가 더 나은거 같은데..."

늘 농담으로 나를 다독거리는 버릇이 있는 부장님은 이번에도 그랬다.

"...또 몰래 만난거 아니야?"

이때쯤에 나는 다시 심각해졌다. 내 모든것을 다 까벌릴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가 나를 안아줬다고. 입맞춤도 해줬다고. 내가 원한다면 자신의 몸도 줄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 그 이후로는... 연락도 없었고..
  .. 만난적도 없어..."

"... 그런데 저렇게 해맑게 다시 만나자고 해?
  .. 뭐야? 사람 마음가지고 장난치는것도 아니고?"

거기서 잠시 대화가 끊겼는데, 나도 모르게 그런 혼잣말이 튀어 나왔다.

".. 그러게..."

그 순간 부장님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무어라 설명할수가 있을까. 속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왜 자꾸 허락도 없이 튀어 나올까.

이렇게 애매하게 살아도 괜찮은걸까? 이미 다 깨진 유리 조각을 애써 붙히려드는것처럼. 절대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 갈수 없는데.

나는 부장님을 안심시키려 들었다. 나의 처참한 마음을 꺼내 놓아야 하는데, 이야기가 자꾸 산으로 갔다. 이건 부장님에게도 나에게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데.

그때 내 전화가 속없이 울었다. 이름을 확인한 나는 얼굴이 불이나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급하게 소리는 껐지만, 진동이 문제였다.

"... 받어 왜 안받어?"

눈치 빠른 부장님은 운전하면서 나와 전화기를 번갈아 보았다. 나중에 받아도 될일이었지만, 그러면 더 수렁텅이로 빠지는 기분이 들어서 당당하게 전화를 받았다.

행님이었다.

"... 아깐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

".. 아니예요..."

"... 내가 전화 한다고 해놓고.. 못해서 미안... "

"...아니예요.. 충분히 이해해요.."

"... 이제 마음 정리 하던참이라..
   ... 오늘내일 전화 하려고 했었는데..
  .. 이거 진짠데, 하필 오늘 운명처럼 만나서..
  .. 내 말 믿기 쉽지 않겠다 그치?"

".. 아니예요..."

".. 이번주 주말에 시간 비워줄수 있나?
 
... 너가 좋아 할만한 얘기를 할까 하는데.."

"... 네... 그러죠 뭐...."

"...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

"... 네... "

"...... 근데 애인이 있었어?
... 이야... 그런데 나한테 들이댄거야?
  .. 하하하하... "

"... 아..."

"... 그럼 우리 불륜인가?"

".. 농담이야...이번주 주말에 꼭 보자..
  .. 이따 좋은꿈 꾸고..."

나는 그때 공교롭게도, 비록 지금 상황이 그렇게 보여서 오해를 살수도 있지만, 내가 든 생각은 일단 부장님과 헤어지는 것이었다.

"... 좋은 꿈은... 무슨..."

다 들렸을까? 손쓸틈도 없이 무장해제가 되버린 내 마음의 소리까지 다 알아챘을까?

"... 그만해요.. 우리.. "

그때 나는 무슨마음으로 그런소리를 입밖으로 꺼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하지만 나는 말해버렸다. 지금처럼 지낼수도 있었는데도. 절대 행님때문만은 아니었다. 절대로 일어나서도 안될일이지만. 나의 지독한 운명은 자꾸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것 같았다.

"... 준아..."

나직한 부장님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깊게 베어있었다. 차라리 화를 내주면 좋겠건만. 그래서 용기가 났다. 내 마음속을 다 터트려버릴 기운이 생겼다.

"...그때 나 집 나가려고 했을때...
  .. 우리 오랜만에 했었잖아요..."

무겁고 쌀쌀한 공기가 내가 쉬는 숨과 부장님이 쉬는 숨을 억지로 내려 앉힌다.

  "... 그때 저 행님 생각하면서 했어요..."

"... 끼익!!!!!!"

부장님은 급 브레이크를 밟았고, 우리의 몸은 앞으로 쏠리던 그때 그 적막함과 배신감들은 충분히 일어날만한 감정이었다.

".. 부장님 애쓰는것도 싫고..
  .. 나도 내 마음을 속이는것도 싫고.. "

".. 내가 애쓰는데 니가 왜 신경을 써?
  ..  내가 쓰고 싶어 쓰는데!!"

너무 소리를 질러서 미안했는지 한동안 겨우 숨만 내쉬었다.

".. 그 사람 일반이라며?
  .. 가정도 있고!! 왜그러냐 준아?
  .. 나야.. 나라고... "

그때 속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맞는말만 하는 부장님이 미워서는 아니었는데.. 내 마음이 고장이 나버려서 그래서..

"... 내가 너 사랑하는건 알고?"

".. 알죠.. 알아서 지금 그러는거예요..."

"... 그럼 됐어..."

"... 내가 니 마음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거 아니야..."

부장님은 한번씩 나를 관통하지 못하다가도, 급습적으로 꿰뚫는 통찰력이 뛰어난편이었다.

"... 다시 뺏어보지 뭐... 니 마음..."

어느새 아파트에 다다르자, 부장님은 차에서 내렸다. 그제서야 얼굴을 한번 쳐다봤는데 실로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부처님이 살아있다면 이정도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어주고 손까지 잡아주었다.

".. 그래 그만하자.. 그만해..
  ..근데 집에서는 못나가...
.. 그 작자하고 만나고 술도 마시고..
  .. 다 해...  니가 하고 싶은데로..
.. 헤어져 주지만, 내 집에서는 못나간다고!!"

단호한 말투에 분명 어떤 따스함같은게 묻어있었다. 그래 같이 산지 자그만치 10년이었다. 아무히 그래도 맞바람도 맞바람이라고, 끊어내면 그만인것이 이쪽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 질질 끌려가는것일까.

우리는 그날부터 각방을 썼다. 안방을 내어주지 않는건 괜히 내가 부담스러워 할까봐라는 말을 하던 부장님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슨 유튜버인지 묻고는 안방으로 들어가던 쓸쓸한 그의 어깨를 보면서 마음이 처참해졌다. 무슨짓을 저지른것인가. 하루빨리 그에게 나의 어깨를 내어주야되는데..

그러면서 나는 혼잣말을 했다.

아는데.. 다 아는데..
지나칠수 없는 사람이 있잖아요..

..........

안방으로 들어온 유부장은 핸드폰을 열었다. 책방아재라고 치자, 아까 그녀석의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의 영상에 달려있는 댓글을 읽기 시작했다. 준이의 댓글을 찾는건 아주 쉬운 일이었는데, 문제는 영상마다 다 댓글이 달려있다는것이었다. 가관은 그녀석도 희멀겋게 웃으며 그 댓글을 읽고 댓글을 달았을 생각을 하니 오장육부가 뒤틀리는것 같았다.

[  이러다 찐팬 되겠어요 ]
[ 오오 1호팬? 감사감사]

[ 너무 멋있습니다. 정들겠어요 ]
[ 정 들지 뭐 ㅎㅎ 난 이미 정들었는데..ㅎㅎ]


[ 뭐지? 나 왜 이렇게 힘이 나지?]
[  알러뷰 , 내가 힘이나는 이유는 그대 ]

[ 꺄악!!! 오늘 영상 너무 좋았어요
 책방아재 너무 멋져!! 책며들다 죽을것 같음]
[ 이러다 사귀는거 아니예요? ㅎㅎ]


유부장은 핸드폰을 닫았다.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았다. 그가 그날밤 내쉰 한숨은 그동안 살면서 내쉰 한숨들과 절대 뒤지지 않을만큼의 양이었다.

우리의 2막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jjd008008008" data-toggle="dropdown" title="헬정자헬린이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헬정자헬린이</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각자의 마음이 다 이해가면서도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니까 답이 안나오는 상황이네요 ㅜ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