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할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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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래 남아 있는 그의 아이는 이제 혼자인데.....


부랴부랴 회사에 연차휴가 내고 대구로 향했다

영안실에 도착하고 보니 장례식장 관계자들 몇명과 그의 아이 세림이가 놀란듯 나를 쳐다보며 큰아빠가 어떻게 아시고 오셨어요 한다 그사람과 첫만남이 있던해에 세림이가 태어났다

세림이가 태어났을때 부터 열살이 될때까지 친 큰아빠와 조카처럼 지냈었다

돌잔치에도 참석했고 그이의 생일은 물론 그이 아내의 생일,

그리고 세림이의 생일  심지어 그들의 결혼기념일 까지 꼬박꼬박 챙겼으며 함께 여행도 여러번 다녔었다 


세림이가 나를 보더니 달려와 눈물,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울었다

나는 눈물마져 놀라서 말라져 버렸는지 먹먹한 가슴을 혼자 진정 시키며 그저 울고있는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세림이를 진정 시킨 후에서야 장례 절차를 밟았다

찾아 오는이 라고는 세림이의 담임 선생과 그이의 일반친구 세명이 전부였다

그 아이의 엄마도 그아이의 아빠도 어릴적 고아원 출신이어서 그런지 친척이라곤 없었다

삼일 화장장을 치르고 수골실에서 그의 뼛가루가 들어있는 유골함을 받아들고 1년전 먼저간 아이의 엄마가 뿌려져 있다는

곳을 세림이의 안내로 내려갔다


포항 시골의 한적한 바닷가 

아 여기는 그이가 나를 버리고 대구로 내려가기 열흘전에 둘이 여행온곳이 아니었던가 낚시도 하고 예쁜곳에서 사진도 찍으며 작은 민박집에서 2박3일동안 머물다간 곳이었다

아직도 그때 찍은 사진이 내 전화기 보안폴더에 들어 있는데...

그이의 유골가루를 바다로 뿌리며 몇일동안 참았던 슬픔을 못이겨 하늘이 무너질듯한 괴성을 부르짖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한참을 울고 있으니 이번엔 세림이가 큰아빠 그만 울라며 나를 도닥이며 안아 주었다


그이를 잘 보내주고 대구로 올라와 그이의 집으로 갔었다

평소에도 워낙 깔끔한 성격의 그이답게 아픈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을 어디에도 찾아볼래야 찾을수가 없을 정도로 집은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었다

세림이를 제워놓고 안방에 들어 가보았다

먼저간 아이의 엄마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문갑을 열어 보았다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문갑안에는 온통 약봉지 뿐이었다

미련한 사람 

나한테는 한마디 말도 안하고 아프다는 내색도 전혀 하지 않고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문갑 가득 들어있는 약봉지를 보니 눈물이 장마철 내리는 빗줄기 마냥 흘러 내렸다

미운사람

기쁜일 함께 해서 두배로 만들고 슬픈일 함께 해서 반으로 줄이자고 약속 해놓고 왜 아픔은 혼자 감당을 했는지

나를 이렇게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가버린 미운사람

건너 방에서 자는 아이가 깰까봐 이를 악물고 흐느끼며 한참을 울었다


수많은 약봉지 사이에 편지 봉투가 하나 있었다

꺼내 보니 그이가 나에게 유언을 써 두었다


이편지를 영원한내사랑 ○○○씨가 읽을지 모르겠지만

짧은 생을 마감할것 같아 이렇게 형에게 편지를 써봅니다

43년 살면서 어렸을적 기억없는 10년 빼면 33년 그 33년동안 자기와 함께한 10년 6개월이 가장 행복 했습니다

때로는 친구처럼 펀한 사랑을 주셨고 때로는 형처럼 포근한 사랑을 주셨고 때로는 부모처럼 어진 사랑을 주셨지요

부모님의 기억이 전혀 없는 고아였던 저를 아무런 편견없이 사랑해 주셨고 늘 내리사랑으로 끝없이 주기만 하셔서 고마웠습니다

함께 했던 수많은 날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가네요

그거 아세요? 우리 10년6개월동안 한번도 싸운적 없었던거

그게다 형이 조건없이 져 주셔서 싸울 일이 없었던거 압니다

그렇게 천사 같으신 형한테 저의 마지막을 보여 드리기 싫어 

혼자 병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서울서 내려올때 이미 췌장암 4기판단을 받고 내려왔습니다

병원 에선 1년생존율 50%, 3년 생존율 10%, 5년생존율 1%라 하더군요

엎친데 덮친다고 작년 5월 아내가 사고로 떠났습니다

형님 어쩌죠 우리 세림이

제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형이 아시다 시피 저와 저의 아내가 어렸을적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우리 세림이 마져 고아원으로 보내야 한다니 어떡하든 안죽어야 겠다 싶어 하루도 빠짐없이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다만 힘들거 같습니다

이 또한 하늘의 뜻이라면 받아 들여야 겠지요

보험금은 세림이가 성인이 될때 수령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형 덕분에 꼬박꼬박 한푼두푼 모아 마련한 이집은 올해 5월까지 살기로 하고 이미 매각을 해두었습니다

얼마 안되는 현금과 집을 매각한돈은 형과제가 함께 노후대책 하려고 조금씩 모았던 통장 아시죠 형이름으로 ○○은행에서 만든거 거기에 넣어 두었습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형이 관리좀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세림이가 고아원에 가게되면 후원자가 되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4년전이나 지금이나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늘은 3월 17일

세림이가 중학교에 입학 한지 보름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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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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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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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ㅠㅠ
너무 가슴아픈 한 남자의 기구한 서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음생은 부디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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