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가 노리는 그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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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가 노리는 그」
02.
게이트가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남자가 캐리어 두 개를 끌고 나와 출구로 빠져나오더니 트렁크에 짐을 실고 택시에 올랐다. 출국 할 때는 그래도 콧잔등에 시원한 바람이 슬며시 닿았었는데 귀국하니 후텁지근한 공기가 반김을 느낀다.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향해 가는 시간만큼 속절없이 흐르는 게 또 있을까? 채욱은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문자라도 해야하나.’ 택시 안에서 그는 한이준을 생각한다. 녀석을 작정하고 회피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이준의 집에서 나온 뒤 그에게 연락 할까 말까 며칠을 고민했다. 이 바닥에 나와 알고 지낸 지 가장 오래 되었고, 또 절친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친했으니.
생일이라고 여럿이 모인 평범한 술자리에서, 서로 옆에 앉았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도 그날따라 이준이 자신에게 맞댄 허벅지에 열병이 난 듯 몸이 달은 그였다. 안 한 지 꽤 되어 자지가 방향성을 잃었나 싶었고, 집에 돌아가 여력이 되면 자위나 하고 자야겠다 생각한 그였다. 순간 맞은편에 앉은 친구가 떨어트린 빈 소주병이 바닥에 부딪히며 덩그렁 소리를 낸다, 다행히 깨지진 않은 채.
“새끼 넌 술 마시면 꼭 하나씩 깨부시려고 하더…?!”
친구에게 이죽거리며 자신의 발 앞으로 굴러 온 병을 집으려고 고개를 숙인 채욱은 이준의 앞섶이 유난히 부풀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단순히 바지 소재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처럼 이준 녀석도 달아올라 있다는 생각에 이상야릇한 감정이 식은땀처럼 등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하더라, 자 여기….”
처음이었다, 그런 기분은. 부지불식간에 녀석이 친구가 아닌 남자처럼 느껴질 줄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병을 친구에게 건네며 채욱이 이준을 향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맞은편 친구의 농담을 받아치는 녀석. 달력이 몇 번이나 바뀌어도 몰랐는데 이제 보니 녀석의 옆모습은 꽤나 근사했다. 쌍꺼풀 없이 큰 눈, 휘지 않고 곧은 코 그리고 제법 날렵한 턱선까지…. 채욱이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었다. 숨 좀 죽였나 싶었던 페니스가 다시 고개를 쳐든다.
‘오늘 왜 이러냐.’
술기운에 본정신이 아니라고 진정하자고 스스로 타일러봤지만 바로 옆에 앉은 녀석의 앞섶에 자꾸 눈길이 가는 게 제어가 되지 않기 시작했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이준은 무슨 생각이기에 그의 것이 저렇게 벌컥거리나 궁금했다.
자리를 파장하고 가게를 나오며 채욱은 이준에게 많이 취했냐 물었고, 이준은 그에게 ‘별로?’ 가볍게 대답했다. 둘은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왔다. 가는 날이 장날인가, 둘의 핸드폰 전원이 꺼져 어플리케이션으로 택시를 부를 형편이 못 돼 그저 손만 흔들며 택시를 잡으려는데 어찌나 앞에서 도깨비처럼 낚아 채 가는지. 택시를 잡는데 이십 분은 족히 걸렸다. 그 바람에 술이 다 깨버린 둘이었고, 이준은 집에 가서 남은 와인이나 마시다가 자고 가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종종 그래왔던 제안이었고, 늘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리 허벅지를 맞댄 이준의 자지가 불거졌어도, 채욱 자신의 자지 또한 그에 끄덕거렸어도 서로 혈기 있는 나이이기에 순간의 정욕이라 채욱은 가볍게 여기기로 했다. 이준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하며.
‘하, 씨`발. 몰라.’ 채욱은 속으로 욕지기를 해댔다. 박 부장으로부터 연락이 와 집에 돌아가 쉬고 다음 주에 출근하라 연락이 왔다. 택시는 한적한 공항 고속도로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생경한 표지판이 가득 적힌 도심을 떠나 다시 돌아 온 익숙한 도심. 그 곳에 사는 자신과 한이준. 집에 가기 아쉬우니 막차로 와인이나 하자고 제안한 한이준. 풀어진 눈으로 한껏 팽창한 자신의 것을 핥던 한이준.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에게 다리를 벌리고, 그의 젖꼭지를 비틀며 자지가 뻐근할 때 까지 퍼부었던 환영 같지만 실재한 섹스. 친구를 탐하는 배덕감에 젖었던 그 날의 성교를 떠올리자 채욱의 페니스가 곧장 반응한다. ‘후, 씨`발….’ 조용하던 택시 안에 욕지거리가 들리자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흘끔거린다. 채욱이 부러 헛기침을 해대었다, 목이 갑갑하다는 양.
“갑자기 목이, 크음, 타네요.”
“비행기 안이 건조한 편이죠, 하하. 서울 들어가서 편의점 보이면 잠깐 들리시겠어요?”
“괜찮습니다, 도착지로 바로 가주시죠.”
대답하며 채욱은 노상 보아 왔던 익숙한 차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 이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준이 무슨 생각으로 두 달 가까이 자신에게 연락 한 통 안 했는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나만 만족한 섹스였나.’ 아닐 것이다. 살면서 자지 작아서 못 만나겠다는 소리 들어 본 적도 없고, 애무가 형편없다는 소리 또한 들은 적 없었다. 어쩌면 녀석의 오랜 침묵은 그 성격 상 자신과 더는 친구로 지낼 수 없음을 함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겠다, 니미럴….’
오래되고 절친한 친구 한이준은, 속을 모를 여우같은 새끼였다.
―
“아침반이 좋으세요, 오후반이 좋으세요?”
“오후로 해 주세요.”
“네, 주 3회 오후반입니다. 결제 되셨어요. 교재비 포함이고 여기 교재 가져가세요.”
프랑스어를 꼭 배우고 싶던 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억지 아닌 억지로 배웠던 영어는 지겨웠고 일본어는 흥미가 없었다. 직업 특성 상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는 이상 숫제 집에 있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이준이었기에 억지로라도 나갈 일을 만들어야했고, 기왕이면 건설적인 취미를 갖는 게 어떠냐 싶었다. 누가 알겠나, 여행으로 간 프랑스에서 벽안의 남자가 대시라도 할 지. 아니면 할 수 없고.
이왕 배워보기로 한 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이준은 서점에 들러 불한사전도 샀다. 목표는 르몽드지 일면이라도 읽어보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러 종각역으로 향하다 주머니 속으로 진동이 느껴져 이준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혜였다.
“살아있었냐?”
“응. 서점에서 나오는 길.”
“서점은 왜?”
“프랑스어 학원 끊었거든. 취미로 배워보려고.”
“지랄을 해라. 차라리 예전처럼 복싱을 한다고 해. 그게 더 낫겠다. 후려치는 맛이라도 있지.”
“됐거든?”
“갑자기 웬 프랑스어래. 걔 프랑스 갔대?”
“야 이 씨.” 이준이 성을 내자 수화기 저 편에서 미혜 특유의 깔깔대는 웃음이 들려온다.
“장난이야, 장난. 신경질은 새끼가. 아, 나 오늘 드디어 만난다, 저녁에. 며칠 전에 말했던 그 남자. 그 얘기 하려고.”
“남자 만나는 거 안 지겨워?” 이번엔 좀 길게 가나 싶었던 미혜의 이별 애도기간이 끝난 듯하였다. ‘그럼 그렇지.’ 나이 먹고 정신 좀 차렸나 싶었는데 역시나 미혜는 미혜였다. 몇 해 전 제 아빠가 새엄마랑 신접살림을 나갔는데 그게 자기가 기억하기로 여섯 번째라고 했다. 새엄마가 하도 많아 이름 외우는 건 진즉 포기했단 말과 함께. 그 얘기에 정말 핏줄은 못 속인다 생각했던 이준이었다. 아니, 핏줄도 핏줄이지만 물려받은 체력이 대단하다 생각했다. 한 번 싸우는 것도 피곤한데 싸우다 관계를 뒤엎고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고 지지고 볶고 살다가 또 갈라서고. 보통 체력이 아닌 집안이었다.
“지겹기는. 넌 자지생각 추석 설날 일 년에 딱 두 번 하냐? 고상 그만 떨고 너도 나처럼 털고 일어서. 전진 할 때다.” 비장한 말투로 제 할 말을 다 했는지 그녀가 전화를 툭 끊었다. 용감무쌍하고 입은 걸걸하지만 내겐 퍽 다정한 미혜. 이번에는 제발 그녀의 체력에 도망가지 않을 튼튼한 남자를 만나길 바라며 이준은 플랫폼 안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을 응시했다.
―
집에 돌아 온 이준은 얼마 전 들어온 의뢰를 마지막으로 점검 한 후 전송 하였다. 백오십 페이지가 넘는 프레젠테이션 작업을 사흘 만에 해줄 수 있냐니. 평소 같으면 어림없다고 거절했을 이준이었지만 억지로 일이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수락했다. 밤을 새가며 육체를 쥐어짜내어 해내야하는 분량인데 클라이언트는 기한에 맞춰주면 다음번에도 분명 마감이 코앞일 때 연락 와 저번처럼 해달라고 할 게 눈에 선하였다. 두 번은 이렇게 하지 않으리라 이준은 다짐했다. 얼마 후 클라이언트로부터 만족스럽다는 대답과 함께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문자가 들어왔다. 당분간은 돈으로 형편 아쉬워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이준은 답장하였다.
허리가 뻐근해 기지개를 켜던 그는 문득 집이 너무 썰렁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학 다닐 때부터 자취한답시고 이사를 몇 번이나 다녔는지. 이삿짐 들고 동서남북 다니던 것에 진력이 나 오랫동안 이사 안 갈 요량으로 형편보다 욕심내어 이사하려고 했다. 그 얘길 듣던 미혜는 자기네가 가진 오피스텔 중에 큰 평수로 나온 호실이 마침 비었다고 거기 들어와 살라 했고 이준은 룸 컨디션도 좋고 역세권이기도 한 오피스텔을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 입주하였다.
“액자를 하나 걸어야하나. 아니면 커다란 식물을 하나 들여놓을까.” 돌아오는 대답 하나 없는 걸 알면서도 이준은 부러 혼잣말을 해본다. 빈 벽에 자신의 목소리가 반향 되어 돌아오는 듯 하다. 허전한 마음에 어플리케이션을 열어 플레이리스트를 재생시키자 음악이 흘러나온다.
곧 이준이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들어 소파로 향했다. 밥하기 귀찮아 저녁은 넘기려했는데 맥주가 한 모금씩 들어갈수록 헛헛한 기분이 든다. 세월이 시나브로 흐를수록 적응되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이따금씩 몰려오는 적적함이 익숙하면서도 퍽 낯설다. 애인이 없으면 이럴 때 친구라도 만나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한 잔 해야 하는 맛이 있어야하는데 하필 미혜는 남자 보러 간다고 부재중이다. 하릴없이 그 녀석으로 생각을 옮겨가는 이준이었다.
‘이제는 친구도 아닌 건가.’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아 이제는 절연하게 되었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느끼며 이준은 다 마신 맥주 캔을 구겼다. 수 년 간 쌓아와 안정을 느꼈던 자신의 인생 한 축이 흡사 무너지는 기분이다.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꽤나 슬픈 일인 것이다. 적당히 만나다 헤어진 애인이었다면 이렇게 상처에 모래를 문지르는 따가움은 외려 없었을 텐데. 차라리 싸웠더라면 내가 그 때 미안했다며 털털하게 용서라도 구할 텐데.
미혜가 좋은 친구이긴 하지만 그녀를 붙잡고 하루 종일 게이들은 이렇다 저렇다 떠들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 고분고분 들어주던 그녀도 결국엔 염증을 느끼지 않을까. 이준은 휴대폰을 열어 녀석과 찍었던 사진들을 하나씩 보다 그만 소파에서 새우잠이 들었다. 알코올이 주는 나른함이 신경안정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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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 소개 시켜줄 테니 나오라는 미혜의 제안을 이준은 거절했다. 이쯤 되면 미혜도 미혜지만 그녀가 만나는 남자들은 무슨 용감함으로 그녀와 척척 사귀어대나 궁금해진다. 미혜가 예쁜 편이기는 했으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얼굴에 반도 못 따라 갈 텐데. 이번 남자친구는 미혜의 어디가 맘에 들어 만나는지 궁금해 듣고자 그녀의 제안을 승낙할까 했지만 그럼에도 거절 한 이유엔 그녀의 남자친구를 앞으로 봐봤자 얼마나 더 보겠나 싶었고, 대충 술 마시며 눈치나 보다가 저들끼리 손잡고 모텔로 들어갈 것이 빤할 것이라 꼴 보기 싫은 측면도 없잖아 있었다. 다음에 시간 만들어 제대로 보자 적당히 눙치고 이준은 다른 친구에게서 온 오늘 한 잔 어떠냐는 연락에 그러자 답장하며 침대에 누었다.
미혜 말마따나 자기가 상등신도 아니고 이 쯤 했으면 절친한 친구 하나 잃어버린 객쩍은 인생 연기는 충분하다 싶기도 했다.
‘전진 할 때다.’ 전에 미혜가 말한 것을 상기하며 이준은 거울을 보며 착의 해본다. 골라놓았던 옷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 서너 번은 바지를 입었다 벗었다 하고, 상의는 그 곱절은 더 바꿔입어보았다. 상의와 하의가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그는 다섯 번 째 바지를 집어 들다 다시 거울에 비친 드로즈만 입은 자신의 맨몸을 멍하니, 바라본다.
순간 그 날의 기억과 더불어 자신을 탐닉하던 녀석의 손길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열이 오른 듯 이준은 자신의 하체가 뜨거워짐을 느낀다. 자위를 안 한 지 오래 돼 얄궂은 생각이 든다 이준은 치부하고 싶었다. 그는 바지를 올리며 팽창한 자신의 것을 억지로 눌렀다. 지퍼를 잠그며 녀석과 연락 하지 않게 된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는 생각에 다다랐고, 곧 떠올렸다, 자신과의 섹스 후 담배를 피며 숨을 길게 내쉬던 그의 뒷모습을. 파정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팽창 했던 이준의 페니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제 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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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잊고 살았던 글 쓰는 취미에 다시 맛(?)을 들여 나름 열심히 쓰는 요즘입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마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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