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가 노리는 그 - 03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본문
「그와 그가 노리는 그」
03.
지하철 탈 때만 해도 마른 날씨였는데 뉴스에서 떠들어대던 대로 정말 열대기후가 되려는지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다. 도착역에 내려 출구로 걸어갈수록 역사로 들어온 사람들의 옷이 젖어 있는 게 수상쩍다했다. 여름철이면 가방에 우산 하나 넣어놓는 습관 덕에 어지간한 비는 잘 피해 다녔지만 지금은 삼단 우산으로는 턱도 없을 것은 강우량이었다. 성미 급한 태석이 놈이 빨리 오라고 몇 번이나 전화를 해대어 역 안에서 버텨보려던 것도, 차려 입은 옷도 결국 포기 한 이준이 어기적어기적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한이준!” 가게 앞 처마 밑에서 어서 오라며 손짓하는 녀석에 이준이 우산을 쥐지 않은 손을 흔들었다.
“얼마만이야 이게? 비도 오는데 들어가 있지 왜?”
“기다려야 한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만석이랜다. 다들 술 못 마셔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뭐야. 비 그칠 때 까지 역 안에서 기다려도 됐었네.”
“복장 터지는 소리 한다. 빨리 와야 내가 우리 이준이를 일 초라도 더 보지?”
“수작부리지마라. 나 보는 척 하면서 다른 테이블 흘끔거리려는 거 다 알거든.”
“들켰냐?” 태석과 이준이 서로의 어깨를 밀며 키득댔다. 이준이 잿물 같은 구름이 그득한 하늘을 바라보자 ‘다른 데로 갈까?’ 태석이 물어온다.
“아니. 비가 너무 와서 움직이기가 영 그렇다.”
“그렇긴 하다.” 태석이 대답하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녀석도 태석이 만큼이나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폈는데. 햇볕에 적당히 그을린 그 큼지막한 손으로 하루에 한 갑을 족히 비우던 녀석. 생일이라고 지인들과 모였던 그 날, 친구 녀석들이 특이했던 원나잇 상대 경험담을 하나씩 까놓았고, 이채욱 그 녀석은 술이 흥을 불러들였는지, 흥이 술을 불러들였는지 벌건 얼굴로 낄낄대며 이준의 팔이며 허벅지를 밀고 당기고 하였다. 투박해 보이던 녀석의 손등과는 달리 부드러운 손바닥의 촉감. 그의 손짓에 페니스가 짓궂게 반응한 밤. 녀석의 뜨거운 체온이 느껴지던 허벅지.
태석이 담배 연기를 뱉자 무거운 공기 사이로 스며드는 담배 냄새가 이준의 주변의 공기를 에워싼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코를 스치는 체리 향…. 이준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담배 냄새 나쁘지 않네. 보통은 별론데.”
“어? 아, 이거 채욱이 담배.”
“…채욱이?” 이준의 눈이 커졌다. 태석과 만나기로 했을 때 한 번은 나올 이름일 줄은 알았다만 만난 지 몇 분 만에 듣게 될 줄이야.
“이채욱 만났어? 언제? 걔 요즘 뭐하는데?!”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말을 제대로 안했네. 채욱이가 피던 거랑 같은 담배라고. 채욱이가 담배 나눠준 게 아니고 걔 거랑 같은 담배.” 내리는 비처럼 후다닥 쏟아내는 태석의 중언부언에 이준이 김 샌 표정을 지었다.
“아, 난 또 뭐라고.”
“엄마가 담배 못 끊겠으면 냄새라도 덜 역한 걸로 바꿔 보래서.”
“담배가 거기서 거기지. 전자 담밸 펴, 효도 하고 싶으면.”
“분무량과 맛이 다르거든요. 전담은 빡빡하게 흡입되는 느낌도 덜… 아니다. 비흡연자랑 뭔 얘길 하냐 내가.” 담배 연기를 주욱 뱉으며 태석이 인생 다 산 표정으로 말하자 이준이 쯧쯧 혀를 찼다. 문득 태석이 궁금한 표정으로,
“근데 너 채욱이랑 요새 연락 안 해? 채욱이 뭐하고 사는지를 왜 나한테 묻냐? 네가 제일 잘 알잖어, 그 놈 소식은.” 이준에게 묻는다.
“아니, 그냥 요즘 좀 뜸했어.”
별 일 아닌 듯 얘기하는 그의 대답에 태석이 ‘그렇구나.’ 중얼거리고는 담배를 마저 피기 시작했다. 이준은 최근에 채욱과 연락 해보았냐는 말이 목울대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참고 속으로 도로 삼키었다.
그 날 밤, 이준은 기억한다, 전라의 채욱을. 짧게 자른 뒷머리와 그을린 목, 어깻죽지에 송골송골 맺히다 미끄러져 흐르던 땀방울. 군살 없이 탄탄한 그의 등과 쉼 없이 놀리던 허리. 금방이라도 튕겨져 나갈 듯 빳빳이 솟은 그의 발기 된 페니스. 전희가 끝나고 숨을 헐떡이던 둘은 침대 위에서 한동안 가만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흘렀을까, 채욱이 손을 뻗어 침대 옆 탁상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더듬거려 찾아내고선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는 그의 뒷모습에 이준의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자기만 민망한가. 나도 마찬가지인데….’
초침소리가 거슬릴 정도로 이어지는 침묵에 결국 목이 졸려 휴대폰이나 애꿎게 만지작거리던 때, 녀석이 담배를 뱉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는 소리가 이준의 귀에 박힌다. 문득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다. 그 한숨에 묻은 의미가 무어냐 물어보고 싶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그는 그저 등을 돌려 눕는 것으로 질문을 삼키었다. 침묵을 깨지 않으려, 조용히….
“아, 맞다. 내가 사실 너한테 얘길 안 했는데. 친구 하나 오기로 했거든?” 생각에 잠겨있던 이준에 태석이 말을 다시 붙인다.
“친구? 네 친구?”
“응. 본 적은 없을 거야. 비도 오고 한 잔 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대서.” 태석이 말을 끝내며 담배를 반대편 물웅덩이로 툭 던졌다.
“너한테 얘기하면 너 안 올 것 같아서. 이참에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보고 그러라구. 맨날 채욱이 놈만 옆에 끼고 살래? 영양가 없게?”
일리 있다 생각했지만 녀석 이름을 들을 때 마다 속으로 괜히 뜨끔하고 또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적당한 답을 찾으며 머뭇거리던 그 때 이준은 자신 등 뒤편을 향해 ‘왔어?’ 하며 손을 흔드는 태석에 자신도 자연스레 몸을 돌렸다. 짙은 남색 우산을 쓰고 걸어오는 남자. 커다란 키에 단추를 단정히 잠근 셔츠, 널따란 어깨, 잘 여문 허벅지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왔어? 인사하고 있어. 여긴 내 친구, 한이준. 나 가게 안에 좀 들어 가볼게. 사장이 곧 한 테이블 빌 것 같다고 했는데 아직도 말이 없어. 손님 안 놓치려고 순 거짓말이야 하여튼. 두 사람 자리 딱 하나 남은 거 비좁아서 기다리겠다고 했더니 내일 들어오라고 할 판이네. 그냥 의자나 하나 더 놔달라고 할까봐.” 태석이 긴 내용을 속사포로 말하며 가게 문을 대차게 열고 사라졌다. ‘내가 들어가 본다 할 걸.’ 소득 없는 후회를 하며 태석의 친구가 천천히 처마 아래로 들어와 우산을 털고 접는 것을 지켜보다,
“아, 안녕하세요, 하하.” 이준이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태석의 친구가 어색한 이준의 웃음 섞인 인사에 답하며 살며시 눈꼬리가 휘어진다. 셔츠를 입었음에도 드러나는 적당히 널찍하고 도드라진 대흉근이 인상적인 그였다. 어느새 체리 향의 담배냄새는 오롯이 사라졌고 그 남자의 청량하고 푸릇한 베르가못 향이 산개했다.
“우상혁입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뇨. 한 십 분 정도….”
“태석이가 기다리는 걸 잘 못하죠.” 그가 느긋한 말투로 대답한다.
“많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죠, 예전에 비하면.” 이준의 말에 상혁이 아무 말 없이 다시 눈을 반달로 만들었다. 짧은 대화가 끝나자 더 이을 말이 안 떠올라 이준은 맞은편에 있는 전봇대만 애꿎게 보았다. 상혁이 무언으로 그를 응시했다.
“태석이 친구인데 한 번도 못 뵈었네요.” 겨우 이준이 한 마디를 뱉자,
“태석이 전 애인의 친구였거든요.” 그가 부드럽게 답한다. 태석과 이준의 사이에 공백이 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벌써 삼 년 전이었다. 이준이 ‘그러셨구나.’ 대답하자 그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들어와! 내가 만들었어, 자리.” 가게 문이 열리고 고개만 쏙 내민 태석이 둘을 불러들이고 다시 사라졌다. 이준이 다시 어색하게 하하 웃었다.
“들어갈까요?” 이준이 상혁에게 물으며 가게 문을 열려고 할 때,
“그런데요.” 상혁이 조용히 이준에게 물어온다.
“네?”
“알고 그런 거예요?” 의미 모를 질문에 이준이 궁금한 표정으로 ‘…네? 뭐가요?’ 되물었다.
“빨간색 속옷 입으면 재물 운이 생긴대요.” 상혁이 대뜸 무슨 얘기를 하는가 싶어 미간을 찌푸리던 이준이 삽시간에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돈 많이 버시겠어요.” 상혁이 빙긋 웃으며 이준에게 말하더니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준이 재빨리 고개를 돌려 바지 뒤를 확인했다. 갈지자로 세차게 오던 비 때문인지 뒤가 자신도 모르는 새 군데군데 젖어있었다.
“…와, 변태새끼 아냐 저거.” 얼빠진 표정으로 이준이 가게 문을 향해 중얼거렸다.
―
테이블 위로 어느새 빈 병이 여러 개다. 에어컨 덕에 실내까지 후덥지근하진 않았지만 술 때문인지 이준은 얼굴에 더운 열감이 올랐다. 아니, 어쩌면 술이 아니라 태석이 친구 놈 때문 일지도. ‘사람 민망하게.’ 거창한 저의가 있어 그런 농을 던졌을 리 만무하겠다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을. 부러 속옷 자랑하려고 그런 것도 아니었고.
그 때 상혁이 잠깐 밖에 나갔다 오겠다고 일어서 저벅저벅 걸어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이준이 태석에게 말을 붙였다.
“원래 저래?” 이준의 물음에 그가 휴대폰 보던 것을 멈추고 이준을 바라본다.
“네 친구라는 사람.”
“뭐, 상혁이? 왜?”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가 이준을 바라보자,
“아니, 그냥. 심심하다는 사람치고 말도 없고.” 이준이 말을 잇기 시작했다.
“우리 떠드는 거 듣고 싶었겠지.”
“집에서 티비를 보지 왜.”
“티비에서 게이 얘기 하냐?”
“하긴. 우리 사회가 열린사회 되려면 갈 길이 멀긴 하지.”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이준에 태석이 피식 웃었다.
“말은 없어도 잘 생겼잖아. 그리고 너무 말 많아도 피곤해. 말수는 적을수록 고추는 클수록 좋은 거 아녔냐?” 능청맞게 구는 그에,
“잘도 갖다 붙인다. 대화가 돼야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알지.” 정색하며 이준이 대꾸했다.
“친구 놔뒀다가 어따 쓰려고. 커뮤니케이션은 나나 이채욱이랑 많이 하시구요. 몸이 통하는 건 다른 사람이랑 하셔야죠?” 태석이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정곡을 찌르자 이준이 순간 멍해졌다. 미혜나 태석이나 요즘 따라 왜 아픈 구석만 골라 찔러대는 지.
“됐어 인마.” 의기소침하게 이준이 대답한다.
“왜에에. 너 남자 별 소득 없이 살고 있을 거 뻔해서 데려왔더니. 영 별로냐?”
“별로라는 게 아니고….”
“관심은 있어? 쟤 잘 생겼지? 상체도 두껍고.”
“난 이 대화에서 쟤 칭찬 한 기억이 없는데.” 왠지 신난 표정이 된 태석에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태석이 혀를 찼다.
“골 때리네 한이준. 일부러 그러는 거지? 모르는 척 하는 거.”
“뭐래.”
“쟤는 아까부터 너가 말만하면 짐승 눈이 돼서 너 쳐다보던데 잡아먹으려고.” 태석이 기가 차다는 듯 이준에게 대답했다. 그런 그의 말에 무어라 대꾸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를?’ 이준의 멍한 표정을 보며 태석이 말을 이으려다 말았다. 자리를 비웠던 상혁이 다시 돌아 온 까닭이었다. 널따란 가슴께에 얼굴은 조막만한 상혁이 앉으며 이준의 빈 잔을 보고 술을 따라주는데 정작 이준은 그의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어 애꿎게 그의 팔뚝만 쳐다보았다.
“나도 있거든요, 우상혁씨.” 태석이 불퉁한 표정으로 상혁에 자기의 빈 잔을 흔들어 보였다.
“내가 줄게, 내가.” 이준이 그의 잔을 채웠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요?”
“어, 이준이 고추 자를지 말지 그 얘기.”
“하하. 왜?” 상혁이 태석의 대답이 재밌었던지 눈꼬리가 휘어졌다. 반면 이준은 태석의 몽니에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
“쓰지도 않는걸 뭐 하러 달고 있나 해서.”
“아 뭐래, 저 새끼.” 이준이 당황한 눈이 되어 욕을 해대자 상혁의 웃음이 조금 더 커졌다. 이준이 자작을 하고 소주를 벌컥 들이키자 상혁이 갈증 난 사람처럼 술 마시는 그를 빤히 바라본다.
“연애 안 한 지 오래 됐어요?
“…그냥. 좀 됐어요.”
“얼마나요?”
“몇 년 됐어, 쟤. 야, 너는 연애는 고사하고 성욕도 없냐? 부처야?” 중간에 태석이 끼어든다.
“대처승이라고 아니? 그 분들은 결혼도 하시고 아이도 가지신단다.” 이준이 빙긋 웃으며 태석에 이죽거렸다.
“염병하네, 모태 신앙이 별 걸 다 알어. 넌 뭔데? 성당 신부님이야?” 태석이 부러 억지를 부렸다. 옥신각신하는 이준과 태석에 상혁이 이준의 종알거리는 입을 보며 슬쩍 웃었다.
“연애 하고 싶어요?” 상혁이 이준의 말에 꼬리를 이었다. 이준이 다시 답하려다 뜸을 들였다.
“근데 연애가 하고 싶다고 하게 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생각 안하고 살다보면 좋은 사람 찾아오는 것 같기도 하고.” 이윽고 하는 이준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태석은 기가 찬 표정이다.
“연애박사 나셨어. 요즘 고학력 백수가 천지라더니. 박사님도 학위는 따시고 취직은 아직 못 하셨나 봐?” 이죽거린다.
“백수 아니고 취준생이라 해주라 기왕이면. 준비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잖냐, 그냥 백수 보다는.” 이준이 샐쭉한 표정으로 슬픈 척 대답했다.
“취준생하면서 알바라도 좀 뛰지?”
“무슨 알바?”
“몸으로 뛰는 알바.”
“뭔 소리야.” 이준이 가늠이 안 된다는 표정을 짓자,
“네 말마따나 하늘이 내려줘야 하는 운명 같은 연애가 안 찾아오면 그 동안 남들이랑 자기도 해보고 그러란 말이야, 인마. 남들처럼.” 태석이 얄궂은 눈빛을 보낸다.
“난 또 무슨 소리 한다고. 됐어, 새꺄. 술이나 마셔.” 연거푸 들이킨 소주 탓인지 이준은 혀가 말을 안 듣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아껴뒀다가 언제 쓸래? 무덤에 묘비 대신 고추 세워놓을래?”
“오줌 눌 때 쓸란다, 왜.” 말하며 이준이 상혁을 흘끔 보았다가 그만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갑자기 여태 조잘거린 태석과의 대화가 괜히 멋쩍고 또 민망스러운 작태 같아 이준의 얼굴이 붉어졌다. ‘친구 분도 계신데 자꾸 이상한 얘기만 하냐.’ 묻자 상혁이 ‘재밌는데요.’ 곧장 대답한다. 재밌다는 말에 대꾸할 말이 없어진 이준이 안주로 나온 국물을 떠먹기 시작하자 상혁이 홍합이며 새우를 건져 이준의 앞접시에 덜어준다. 태석이 다시 무어라 말하려다가 일어섰다. ‘오줌 하니까 오줌 마렵다. 화장실 갔다 올 거야.’ 우악스럽게 나가는 태석을 보고 상혁이 씩 웃었다.
“그러면.” 조용하던 상혁이 물어오자 이준이 고갤 들었다.
“….”
“그것도 오래 됐어요?”
“…뭐가요?”
“섹스요.”
“…?!” 이준이 눈이 두 배는 더 커졌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들어 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금욕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이준은 그의 질문에 퍽 당황한 눈빛이 되었다. 섹스 얘기가 부끄러운 나이도 아니었고 같은 남자끼리인데 뭐 어떠냐 싶기도 했다만 까닭 모르게 가슴께로 뜨끈한 열이 오른다. 이준은 맞은편에 그림처럼 한갓지게 앉아 평온한 표정을 한 상혁을 바라본다.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두 눈동자와 실내의 아늑하고 침잠된 조명, 그리고 약간의 취기. 이준은 흡사 꿈속에서 부유하는 느낌이다. 머리가 빙글 돌았다. 우상혁이라는 남자가 끌어들인 만화경 속에 갇힌 듯…. 이준이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얼마 안 됐는데요. 최근이에요.” 덤덤한 척 이준이 답을 내놓았다. 두 어 달 전이라 최근은 아닌데다 상대가 하필 자기와 제일 친한 친구였지만 알 길 없는 그에게 시시콜콜 읊을 이유가 없었다. 더불어 태석이 놈이 괜히 제 구실 못하고 사는 가여운 게이같이 만들어 놔 이준은 그리 답하는 것으로 체면을 나름 살려야 했다. 이준의 대답에 상혁은 꼬고 앉아있던 다리를 풀고 의자를 더 앞으로 당겨 앉아 자신의 빈 잔에 술을 따르더니 곧 단숨에 삼키었다.
“잘 됐네요.”
“…네?” 선문답 같은 말에 이준이 되묻자 상혁의 눈이 다시 반달이 되었다.
“잘 벌어지겠어요, 한이준씨 애널.” 태연하고 예의바른 양식으로 생긋거리며, 능청스럽고도 뻔뻔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우상혁에 이준은 거의 졸도 할 지경이 되었다. 그는 정말 변태새끼였던 것이었다.
---
조금(?) 긴 3회입니다. 추천과 평점,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4회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마테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