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이랑 한달살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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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새로운 인연이 시작될 때에는 항상 종소리가 들린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전 회진을 도는 원장님들과 직원들 맨 뒤 있던 나는 507호에 점점 가까 워 질수록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갔다.
‘다 있는 앞에서 또 막 그러는 건 아니겠지..?’
드르륵
507호 병실의 문이 열리고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데 예상과는 달리 아주 차분하고 진정된 모습으로 의료진들을 마주하는 서현이었다.
‘이제 체념하시기 시작하신건가..’
“이서현군 이게 간단한 전립선염 문제가 아냐 상태가 좋아졌어도 진즉에 좋아졌어야 하는데 좀 이상해 뭔가 다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좀 더 지켜보자구”
“네..”
원장님의 말을 끝으로 507호를 빠져나오면서 몰래 슬쩍 본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 요로결석에 걸리면 이따 만한 돌덩이를 요도로 빼내는 기분이래! 득배형님이 그랬어.”
“환자한테 형님이 뭐냐”
“너나 잘하셔~”
각자의 케이스 환자들과 어느 정도 말을 트기 시작했는지 긴장했던 처음과는 달리 얼굴에 웃음기가 드러난 모습이었다.
“형은 좀 어때요? 그 성격파탄자가 형 케이스 환자라면서요”
“응? 맞아 이서현님이 내 케이스 환자긴해”
“너무 힘들면 이제라도 바꿔 달라 얘기 해보시는건 어때요? 광주샘 착해서 사정만 잘 설명하면 들어줄 것 같긴 한데.”
“아냐.. 벌써 목요일인데 언제 바꾸고 언제 발표 준비해”
“하긴..”
아침부터 나의 표정이 안 좋았는지 동생들이 눈치를 보며 말을 거는 것이 뭔가 미안해서 억지로라도 신경 안 쓰이는 척을 해야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어 정면돌파다 강월!’
이젠 정말 시간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서현님의 케이스 발표 자료를 만들 정보를 수집해야했기에 아주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용기를 내 507호 앞에 당당히 섰다.
똑 똑 똑
“누구세요?”
“아.. 네 저에요 실습생 강월이요”
“들어오세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지난밤 잠은 잘 주무셨어요?”
“네”
“저.. 상황이 되게 많이 꼬였지만 제가 환자분의 상태와 질병을 맡아서 발표하게 되었는데요. 혹시 동의하시고 참여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솔직히 거절당할 것을 알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단 일초라도 보기 싫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 네 뭐 마음대로 하세요”
“네? 정말요? 정말 감사합니다 환자분!”
순간 나도 모르게 바닥만 보고 말을 하다 거절이 아닌 승낙의 얘기를 듣자마자 아이처럼 하이 톤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버렸다.
그리고 찾아오는 3초간의 정적.. 우리는 그 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서로를 마주 본 처음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네..? 조건이라면 어떤..?”
서현이의 조건은 총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자신이 호출 하면 늦더라도 꼭 507호로 와주기
두 번째 점심 같이 먹기
세 번재 자신이 고자가 아님을 진심으로 믿기
“저 환자분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환자분에게도 좋지 않은 것 같아요 현실을 빨리 깨닫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 진짜 아니라고요 어떻게 바지 까요? 진짜 다 까야 믿을래요?”
“아뇨아뇨 네 알겠습니다. 믿어보려고 노력할게.. 아니 믿을게요”
광주선생님께 환자와의 과제를 위해 환자가 내건 세 가지의 조건을 말씀드리자 흔쾌히 507호 호출알람기와 점심시간에 서현이와 점심을 함께 먹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징~ 징~
서현이가 나를 부른 첫 번째 호출이었다. 주머니에서 검은 색깔 작은 호출기기가 시끄럽게 울려대고 있었다. 하고 있던 혈당체크를 멈추고 재빠르게 서현이가 있는 병실로 걸음을 옮겼다.
“네 환자분 저 부르셨어요?”
“아 저기 있는 물컵 좀 가져 다 주세요.”
“네?”
“못 들었어요? 저기 앞에 있는 물컵 좀 여기로 가져다 달라구요”
“아..네..”
‘악질이다...’
온전히 나를 부려먹기 위해 저런 조건들을 내건가 싶었다.
“환자분 이런 건 좀 혼자서..”
“아 싫으시면 지금이라도 발표 환자 바꾸세요.”
이 녀석 고단수다..
급성기 환자가 많지 않고 대게 간단한 수술로 입원하신 분들이 많은 비뇨기과 특성상 이서현님 만큼의 케이스는 흔치않다.
“아뇨아뇨 물이 너무 차가우실까봐 데워 드릴까 해서요~”
“메모장 있어요?”
“네? 갑자기요?”
“네 이제부터 여기 오실일이 많으실 거 같은데 제가 한 얘기를 또 하는걸 별로 안 좋아해서요.”
‘미친놈이다’
“아..네.. 잠시만요~ 수첩 좀 꺼내구요, 네 준비 다 됬습니다.”
“서현이는 찬 물만”
“서현이는... 찬 물만..”
어려서부터 무언 갈 적을 때 적어야 할 내용을 말하면서 적는 버릇이 있어서 이번에도 똑같이 말하면서 받아 적고 있었는데
“오.. 좋은데?”
“네? 뭐가요?”
“방금 서현이는 이라고 했잖아요”
“아 그건 뭘 제가 적을 때 말하면서 적는 습관이 있어서요. 방금 환자분이 한 말 그대로 따라한 건데요...”
“조건 하나 더 추가해주세요”
‘미친놈이 분명하다.’
“어떤..”
“현 시간부로 저랑 대화할 땐 편하게 말 걸어주세요”
“그건 어려워요 전 실습생인데 환자랑 말을 트는 건 좀..”
“어려워요? 그럼 저도 뭐..”
“그만!”
자꾸 치사하게 협박을 해 오니까 머리가 어지럽고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와서 그만이라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이만 나가볼게요. 점심시간에 뵙겠습니다.”
병실을 나서는 나에게 뒤에서 뭐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 당장은 더 이상 대화가 하고 싶지 않았다.
‘삼촌.. 너무 힘들어요 ㅠ ㅠ’
갑자기 병원 실습이 확 지치고 삼촌이 너무 보고 싶어졌다.
507호를 나와 다시 103호부터 혈압을 재러 이동하는데 정말 갑자기 궁금한 게 한 가지 떠올랐다. 이서현환자를 광주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찾아내었냐는 말이다. 물론 비뇨기과 층에 있었으니 비뇨기과 관련 환자일수도 있지만 아니라면 병원 지하 4층부터 8층까지 입원실에 있는 환자를 다 뒤져야했을 것이다. 게다가 환자의 지팡이를 맞고 기절한 환자를 소문내봤자 병원 이미지에도 좋을 게 없기에 조용히 넘어 갔을 텐데 광주선생님은 어떻게 하루도 채 걸리지 않고 서현이를 찾아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광주선생님을 찾아 나섰다.
“광주선생님 못 보셨어요?”
“아까까지만 해도 여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지?”
늘 B병동 안내 데스크 자리지킴이였던 광주선생님이 보이질 않았다.
‘어디로 가셨을려나’
라고 생각하며 화장실 좀 들렀다 가려하는데 안내데스크에서 화장실로 이동하는 복도의 끝에 방금 광주선생님이 왼쪽으로 커브를 틀었다.
‘저기 계시구나!’
빠르게 따라가려고 경보로 복도를 걸어 커브를 틀려는 순간 광주선생님이 누군가와 은밀하게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는 듯이 둘이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뭐지.. 저사람은 누구지..?’
그렇게 커브 모퉁이 뒤에 숨어 그들의 행적을 살피는데 이런 큰일이다 때 아닌 재채기의 느낌이 확 몰려왔다.
‘안돼,, 안돼,,!’
“엣취!”
황급히 뒤를 돌아 재채기를 했지만 그들이 과연 들었을까? 조마조마 하며 천천히 뒤를 돌았을 땐 광주선생님만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아까 속삭이던 정체모를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월선생님이 여기는 어떻게?”
“아.. 하하.. 그게 그.. 혈당체크 하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요.. ”
“그래요? 병원이 이렇게 크면 종종 길을 잃는 사람도 많으니까 너무 무안해 하지 마시고 뒤로 돌아가세요”
“넵!”
‘누굴까.. 둘이서 은밀하게 무슨 얘기를 주고 받은걸까..’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상황이 마치 내가 광주선생님의 뒤를 몰래 밟은 것 같아 보여서 지금은 안 물어보는 게 낫겠다 싶어 자리를 급하게 떴다.
"내 뒤를 따라 온 건가..? 당분간은 조심 해야겠어“
황급히 왔던 길을 돌아가는 월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광주
“환자분 점심시간입니다.”
“어 왔어? 말 편하게 하라니까~”
“침대 아래 있는 식탁 위로 올려주시고 개인 식기 준비 해주세요~”
“이젠 아예 대답도 안하시겠다?”
“환자분 저한테 정말 왜 그러세요 ㅠ ㅠ 이러다 과제발표 하기도 전에 환자한테 반말했다고 저 실습 잘려요”
“내가 다 책임질게 응? 제발~~”
“후..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는 반말이 아니잖아”
“아..알겠어”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자신에게 하는 반말을 듣고 좋다며 박수까지 치며 웃는 서현이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 불닭볶음면 먹고 싶어 월아”
“전립선 염증 수치 때문에 안돼.”
“근데 넌 몇 살이야?”
“나? 23살”
“오 나랑 동갑이네 거봐 우린 서로 반말 할 사이었다니까~”
“그런 사이가 어딨냐 그냥 동갑이면 반말 하는거지.”
“근데 왜 아까는 그렇게 안 한다고 튕겼냐 지금은 이렇게 잘 하면서”
“야! 그땐..”
순간 여기가 병실이고 내가 서현이와 나누는 대화가 밖에서 들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언성이 자동적으로 낮아졌다.
“풉..! 야 너 소리치다가 갑자기 소리 줄이는 거 너무 웃곀ㅋㅋ”
“뭐래 밥이나 먹어”
“니가 먹여줘”
“손이 없니 발이 없니”
누가 보면 오래전부터 우리가 친구 인줄 오해 할 수도 있을거 같았다.
나를 향해 계속 말도 안 되는 무리수를 두며 혼자 웃고 박수치는 서현이의 얼굴을 같이 밥을 먹을 때서야 자세히 보게되었다.
전체적인 느낌이 샤프하다고 할까 공룡상인데 눈이 크고 눈매가 부드럽게 내려온다. 코는 적당히 높고 입술은 얼굴에 비해 조금 작은 느낌? 피부는 엄청 하얗고 깨끗했던 기억이 난다.
‘잘생겼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뭘 그렇게 빤히 쳐다 봐? 잘생긴 사람 처음 봐?”
“뭐래 밥 다 먹었지? 그릇 줘”
“와 다해준다~ 엄마다 엄마~”
“엄마 같은 소리하네. 나 간다”
“아직 점심시간 안 끝났잖아 좀더 있다가~ 나 심심하단 말이야”
자꾸만 아이처럼 치대는 서현이 때문에 좀처럼 내 병원 실습 패턴이 4일만에 무너져 내려가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내가 여기 놀러온 줄 알아? 넌 맘 편하게 누워있으면 그만이지만 난 달라 난 빨리 실습하고 좋은 데 취직해야 하거든? 너랑 희희낙락거릴 시간 없어. 정말 미안한데 실습하는 동안 병원에서 조용히 지내고 싶어 협조 좀 해줄래?”
벌써 오늘만 두 번째다. 서현이가 말하고 있는데 듣지 않고 병실을 나온 것이..
‘짜증나..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이야..’
그렇게 불편하게 병실을 나온 후부터 오후 실습 내내 시간도 가지않고 영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월선생 아까 아침에 당 체크 했는디 또 혀?”
“아 환자분 오전에 당체크 하셨어요?”
“제일먼저 와서 혔자녀~”
안 하던 실수도 계속 하고 병실의 위치도 반복해서 놓치기
마련이었다.
‘이게 다 이서현 때문이야 세상 고민 없이 편한 애랑
나랑 같냐고..‘
그렇게 서현이랑 엮인 일을 후회하였지만 발표준비를 위해서는 당분간은 계속 서현이를 봐야하니까 너무 미워하지는 말자고 혼자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나 왔다 들어갈게”
나도 어느 샌가 모르게 편하게 반말로 병실에 들어가겠다
얘기 후 노크도 없이 병실을 열어 서현이가 누워있는 침대로
걸어갔다.
“환자 인터뷰랑 통증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정도 알아가야
해서 왔어. 요새는 어디가 제일 불편해?“
“.....”
“삐졌냐?”
“.....”
자세히 보니 잠이 든 것 같았다. 자고 있는 서현이의 얼굴이 궁금해서 자세를 낮춰 서현이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속눈썹도 길고 감고 있는 눈과 코가 묘하게 이쁘게 어울려서 순간 나도 모르게 넋 놓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아이돌 블락비의 멤버 피오를 살짝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보니까 엄청 잘 생겼네. 아까는 미안해,, 불안해서
그랬어.. 발표도 겁나고 남은 실습도 잘 할 수 있을지도 겁나.. 그래서 괜히 너한테 화풀이 한거야..“
‘깊게 잠들었나 보다.. 인터뷰는 내일 하고 좀 자라고 둬야겠다.“
깨지 않게 조용히 월이 병실을 나가고 문을 닫자 그제 서야 슬며시 서현이 눈을 떴다.
“니가 더 이쁘게 생겼거든 ㅎㅎ 내일보자 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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