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이랑 한달살기 8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8. 너라는 동그라미가 나라는 네모와 부딪히면










“월아 아직도 자~?”



아직도 내가 자고 있는 줄 알고 방문 앞에서 노크를 하시는 삼촌.



“일어났어요..”



힘 없이 방문을 열어 삼촌을 마주했다.




“우리 조카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얼굴에 구름이 가득이야?”

“삼촌~”




실습을 가기가 너무 싫은 아침이다. 케이스도 벅차고 혈당체크를 하러 병실을 돌아다닐 때마다 아파하는 환자들의 넋두리, 잔소리, 남 탓들이 나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지점토인 것만 같았다. 


“이리와 우리 조카~”



두 팔을 벌려 자신에게 안기라는 제스쳐를 취하는 삼촌을 보자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천천히 삼촌에게 걸어가 품에 안기자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신다.



삼촌의 포근한 품에 안겨 얼굴을 부비 다가 고개를 들어 삼촌의 얼굴을 보며




“삼촌~ 이제야 금요일인데 언제 한 달을 버텨?”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마냥 기쁜 일만은 아니지~ 그렇지만 지금 월이 너에겐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너를 자꾸 던질 필요도 있어”

“왜? 낯설고 지치고 겁나는데 왜 나를 그런데다 던져야해?”

“너라는 사람이 좀 더 단단해지고 좀 더 뚜렷한 색깔을 띄우려면 여러 번 너와 다른 사람과 부딪혀도 보고 싫어하는 상황에도 맞닥뜨려야 하는 거야.”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나는 지금껏 주변을 신경 쓰며 지내온 편이 아니었기에 나만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을 하며 살아왔고, 나와 맞지 않는 무리라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난 그쪽으로 시선조차 주지 않았었다.




“무슨 말인지 어렵지 이눔아”

“응.. 알 듯 말듯해요..”

“쉽게 생각해보자 월이 니가 생각하기엔 넌 삼각형, 동그라미, 사각형 중 어디에 더 가깝다고 생각 하냐?”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삼촌?”




삼촌이 내게 갑작스레 물어 온 도형들의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

남에게 공격적이고 성격이 예민하고 일처리를 할 때의 우선순위가 빠르게 정리가 되면 삼각형


누구나의 의견을 동등이 여기고 일단 다 들어보고 판단하며 일처리를 할 때에도 둥글둥글 하여 주변의 조화를 이루게 도와주는 것이 동그라미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각이 네 개나 있어 혹여나 나 때문에 누가 찔릴 까 걱정이지만 막상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생각이 너무 많이 일의 진행이 더디고 남에게 자신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사각형




“음.. 전 사각형인거 같아요.”

“그래? 삼촌이 보기에는 우리 월이가 동그라미 같은데?”

“사각형은 안 좋은 거에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좋고 안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저 각자의 특색이 다 다른거지. 그냥 삼촌이 보기엔 우리 월이가 동그라미 같아서”

“그런가..”

“이러다 진짜 병원 늦겠다. 언능 내려와서 밥 먹어 오늘 아침은 오므라이스다~”

“아싸!”




아침에 일어나서 병원을 갈 준비를 하는 내내 짜증과 한숨만 쉬던 내가 어느새 웃으며 아침밥을 먹으러 가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삼촌이 내 옆에 있는 지금이 너무 감사하고 또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서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선생님들이 제출하신 케이스 발표사본은 잘 받았습니다. 특히 김 득배님 담당 선생님이신 유성화 선생님의 새로운 수술 접근방식이 새롭고 통통 튀어서 원장님들도 좋아하실 것 같네요. 그리고 월 선생님은 자료조사와 케이스 접근방식 모두 뛰어난 것에 비해 환자와의 인터뷰, 친밀도 형성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래요? 이서현님이랑 어느정도 친해지셨죠?”

“그..그게..”

“이서현님의 질병은 다른 질병들과는 다르게 분류가 됩니다. 왜죠?”

“신경성 염증이어서 그렇습니다.”

“환자분이 어떨 때 염증 수치가 가장 많이 올라가죠?”

“.....”

“논문과 질병이론만 다 알면 그 환자랑 친해 진건가요?”

“아..아뇨”


서늘한 아침 조회시간의 정적이 힘들었는지 백현이가 헛기침을 몇 번 한 후 광주선생님에게 애교를 부리듯이 말꼬를 틀었다.



“광주샘~ 저희 비뇨기과 1주차 실습생들이 이번 주 첫 번째 발표 꼭 1등해서 오겠습니다!”

“당찬 포부치고는 오백현 선생님의 발표 자료가 가장 차린 게 없는 밥상이시던데요? 발표하러 올라가자마자 내려오실 생각이신가요?”

“잘못 했습니다!!”

“풉..푸하하!”


진지했던 광주선생님과 백현이의 대화가 너무 웃겨서 웃음을 열심히 참고 있었는데 성화가 백현이의 우스꽝스러운 잘못했습니다! 때문에 빵 터져 버렸다. 이내 나도 참고 있던 웃음이 터져버렸고 우리 넷은 그 자리에서 박장대소를 한 후 시끄럽다는 A병동 간호사들의 눈초리를 눈치 채고서야 각 자의 업무를 하러 흩어졌다.




‘생각해보니 그러네.. 23살에 왜 서현이 너는 그렇게 아픈거냐..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냐?”

“깜짝이야!”

“설마.. 내생각했냐?”

“뭐..뭐래 미쳤냐?”

“아니 안 미쳤는데? 근데 왜 얼굴은 빨개지고 그러실까?”



서현이 생각을 하다 미쳐 복도 끝에서부터 방정맞게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걸 보지 못 했는데 자기 생각을 하느라 못 봤냐는 말에 괜시리 내가 찔려서 얼굴이 빨개져 버렸다.



“감.. 감기기운이 있어서 그런 거 거든!”

“그래? 어디 이마 좀 대봐”



내 의견을 물을 새도 없이 서현이가 손을 들어 내 이마에 올려 놓고 열이 있는지를 체크했다.



“뭐..뭐해 미친놈아!”


반항적으로 서현이의 손을 뿌리쳤다.



“너야말로 이게 이렇게 화내고 사람 무안 줄 일이냐..?”

“아..아니 갑자기 말도 없이 사람 이마에 손을 얹는 게 어딨냐?”

“친구가 감기기운이 있대서 걱정 되서 그랬다 왜!”

“친구..?”

“그래 너하고 나하고 동갑이잖아 그럼 친구지!”

“내가 왜 너같은 애랑 친구냐!

“뭐..?”




‘헉... 실수다...’




그대로 나의 말을 끝으로 서현이의 얼굴은 차갑게 변해가며 오던 길로 다시 걸어갔다.


“야.. 그런게 아니라,,! 야 서현아 멈춰봐!”




멈추라는 나의 말에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빠르게 자신의 병실로 서현이가 가버렸다.




“얘들아.. 너네는 첫 단추가 단단히 잘못 맞춰진 사이라던가 그런 비슷한 친구 있어?”

“밥 먹다 말고 갑자기 왠 단추에요 형님?”

“오백현 이 멍청아 그 단추가 그 단추냐?”

“알아 나도~ 그냥 장난 친 거야”

“저 말의 뜻이 뭔데?”

“하~ 이 오백현님을 뭘로 보고”

“그니까 뭔데”

“형님이 오늘 입고오신 셔츠 단추 하나가 말썽이라는 뜻이잖아~”

“밥 먹어”

“응!”



난 진지한데 백현이와 성화는 계속 장난만 치려는 분위기인 거 같아서 더 이상 말을 꺼내진 않았다. 





‘광주샘을 찾아가 볼까..’



저번에 복도에서 오해할 만한 등장으로 광주선생님과 만났어서 그런지 괜시리 광주선생님의 얼굴을 보기가 민망했다,



‘그래도... 과제발표가 당장 내일이야.. 헤쳐 나가야해’



다행히도 오늘은 광주선생님이 B병동 데스크에 앉아계셨다.



“저.. 광주선생님..”

“어 왔어요?”

“네?”

“왠지 오늘 월선생님이 날 찾아올 거 같더라고요”



실습 두 번째 날 왔었던 옥상에 3일이 지난 지금 다시 광주선생님과 올라오게 되었다.



“고민이 되게 많아 보이시네요?”

“네?.. 네..”

“제가 한번 맞춰볼까요?”

“광주선생님이요..? 어떻게요..?”

“이서현님 때문이죠?”

“크게 보면 서현이 때문은 맞아요.”

“인터뷰 아직도 못 따온거 때문에 그래요?”

“당장 내일이 발푠데..”

“그럼 제가 질문하나만 해 볼게요 월선생님”

“네 하셔도 됩니다.”

“내일이 당장 발표여서 서현이와의 인터뷰가 필요한거야? 아님 남자 이서현이라는 사람이 궁금한거야?”

“그게.. 무슨?”

“숨기고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였구나.. 월선생님은 자기가 지금 뭐 때문에 힘든지 진짜 모르는거였구나.. 재밌네..“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는 광주선생님 때문인지 머리가 살짝 어지러워지는 것 같았다.





“뭐가 재밌어요 광주선생님..?”

“월선생님은 아직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요. 저는 그게 보이니까 재밌다는거에요. 월선생님은 지금 누굴 케어하고 분석하고 할 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제일 먼저 들여다봐야 할 거 같은데요?”

“광주선생님 진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그런데 돌려 말씀 하지 마시고 직접적으로 얘기 해주시면 안 되요?”

“조만간 일거 같아요. 월선생님의 삶이 크게 뒤틀릴 날이 엄청 행복할 수도 있고 아주 불행 할 수도 있습니다. 부디 신중히 선택하시길”




마지막까지도 의미심장한 말만 남겨 놓은 채 옥상을 먼저 내려가 버리는 광주선생님 덕분에 고민을 털어 놓으려 왔다 되려 더 많은 고민에 빠져버린 꼴이 되 버렸다.



‘진짜 뭐야 사람이 가면 갈수록 별로야 별로’



그렇게 혼자 터덜터덜 옥상에서 지하 2층으로 내려 왔는데 비뇨기과 병동이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끌시끌 했다.



“성화야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뭔일 있어?”

“아 형님 못 들으셨어요?” 

“응? 나 아까 옥상에 잠깐 가느라 못 들었나본데 뭐 전체공지 나온 거라도 있어?” 긴급검열? 보건소에서 점검 나온대?“

“사라졌대요”

“응? 뭐가 사라져?”

“이서현님이요”

“이.. 서혀..ㄴ 뭐?!?!”



비상사태다 오전 복도에서 나와 나눈 대화를 끝으로 서현이가 병동을 탈출해 버렸다. 엄밀히 말하면 실종이다. CCTV를 다 뒤져도 서현이가 병원을 빠져나가는 영상이 찍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월 선생님 원장님 호출입니다 지금 당장 원장실로 와주세요”



정신을 차리려 할 때쯤 비뇨기과 병동 복도에서 전체방송으로 원장님이 나를 호출한다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제대로 사고 쳤다 강월...’



똑 똑 똑



“당장 들어와!”



문을 두드리자마자 안에선 화가 잔뜩 나 있는 거처럼 보이는 원장님이 앉아계셨다.



“이서현 환자가 사라지기 직전에 강월 선생님이랑 대화를 했다더군?”

“네..”

“둘이 무슨 대화를 했지?”

“별 말 안했습니다..”

“솔직하게 얘기 해주시는 게 환자를 찾는 방면에서도 병원에서 일을 수습하는 면에서도 도움이 됩니다. 강선생”


목소리는 차분하게 내려가 있지만 지금 원장님은 서현이가 사라진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그..그게”

“강선생 시간이 없어요. 이제 곧 있으면 해 떨어져요. 이서현 그 환자 전립선만 아픈 게 아냐 면역력이 일반인들 보다 현저히 낮아 이 날씨에 갈데없이 길바닥에 쓰러져 뭔 일이라도 나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가 없어”

“친구.. 내가 왜 니 친구냐고 말해버렸습니다..” 

“둘이 동갑인가?”

“네..”

“누가 환자랑 친구 먹으라고 실습 허가해 준줄 아는가?”

“저도 처음엔 안 된다고 강하게 얘기를 했는데요..”

“그래서 결국엔 둘이 말도 놓고 잘 지낸 거 같은데 왜 그런 말을 강선생이 서현이에게 한거지?”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로 끝날 거였으면 여기 부르지도 않았을 거라며 원장님은 계속해서 내게 역정을 내셨다.



“원장님.. 서현이가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집으로 잠시 나갔다온 게 아닐까요? 병원에서는 외출이 허가가 안 되니까 충동적인 마음으로..”

“둘이 친구 먹었다면서 그런 얘기까지는 서로 안하나보지?”

“네? 무슨 얘기요..?”



원장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서현이는 중학교 때 교통사고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고 시설로 거처가 옮겨졌다가 거기서 새아버지를 만나 입양이 되었는데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새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과 폭언, 술주정을 견디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집을 뛰쳐나왔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서현이의 밝은 모습만 보고 가벼운 아이라고 속단하고 그런 서현이의 가슴에 상처를 준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제가 찾아올게요!”

“이름. 나이, 기본적인 인적사항 밖에 없는 애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온다는 말씀이시죠?”

“뭔가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냥 그럴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도 곧 제가 잘릴 거 같은 느낌이 드네요.”

“저 때문에 서현이가 병원을 탈출 했다면 잡아 오는 것도 제가 해야죠.

“젊은 사람이라 그런가 패기는 보기 좋네요. 허나 찾지 못 했을 시 강선생님은 내일부로 실습 종료입니다. 명심하세요.”

“네!”




왠지 모르게 가슴이 계속 뛰었다. 지금 상황은 서현이가 말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무런 단서도 없이 나 혼자서 찾아야만 하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근데 가슴속 한 구석에서 자꾸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확신과 원인 모를 몽글몽글함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일단 서현이의 병실에서 단서를 찾아보자.. 서현아.. 좀 만 기다려 내가 어떻게 해서든 너 찾아서 사과할게 그리고 꼭 다시 병원으로 데려올거야’




만나면 무조건 사과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507호 문을 열었는데



“으아아아 누구야!!”



생각지도 못한 조력자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konan66" data-toggle="dropdown" title="GTman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GTman</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re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광주샘 점점 궁금해져요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