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그늘에서 자라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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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리를 시작점으로 해서 대흥리를 거쳐 해룡산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다시 내려와서 대대리를 지나고 원퉁산을 돌아 이천단월 초등학교 옆길로 빠져나갔다.

 

주말을 이용해 이천 주변의 조용하다는 말을 들은 곳을 찾아보고 있었다. 잠시동안 지낼 곳이 필요했다. 그곳의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찾아다녔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인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작은 집 한 채가 필요하다고 했다. 크기는 상관없다고 했다. 그냥 잠시동안 사람들과 떨어져서 자연을 벗삼아 그림을 그릴 장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출발하기 전, 미용실에서 이발을 했다.

예전에는 옆 머리에 나는 흰머리 카락이 눈에 거슬려 염색을 하곤 했지만 오늘은 나의 그 흰머리카락이 필요했다. 그래서 염색이 되어 검은 색으로 바뀐 머리를 모두 잘라달라고 미용사에게 부탁을 했다. 나의 말에 반신반의를 하면서도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보기좋게 해 드리겠다면서 나의 머리카락에 미용 가위를 댔다.

 

젊어 보이고 싶었던 전과는 다르게 나이가 들어보이길 바랬다.

 

이제 은퇴하고 시골에서 한가하게 그림을 그리면서 남은 인생을 즐기려고 하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으로 보여야 했다.

 

이천에 있는 여러곳의 부동산 중개인들은 마침 좋은 곳을 알고 있다면서 나를 여기저기로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은 찾을 수가 없었다. 풍수지리설을 따지면서 아주 좋은 곳이라고 따라 간 곳도 집 앞이 터져있어 큰길과는 거리가 있다고 해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는 곳이었다.

 

그렇게 소득이 없이 오후의 끝자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지는 나의 눈앞에 낯익은 도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아내와 몇 번 드라이브를 왔던 길이었다.

 

그리고 몇 분을 더 달려 마침내 그곳에 다다랐다.

 

큰 길가에 꽤 나이먹은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곳이었다. 길 옆에 세워진 허름한 카페의 간판이 없다면 큰길에서 왼쪽으로 난 좁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저 안쪽에 그렇게 예쁜 카페가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곳이었다.

 

처음에 아내와 이곳을 지날때에도 지나가는 차량도 드문 이런 곳에 그런 카페가 있을 것이라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 자그마하고 보잘 것 없는 카페의 간판을 언뜻 본 아내가 나에게 차를 멈추라고 다급하게 말을 했을 때에도 나는 그런 아내가 화장실이 급한 줄로 생각했었다.

 

그곳은 아주 호젓하고 아늑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 야외의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을 음미하면서 붉은빛이 사라져가는 해질녘의 서쪽하늘을 바라보고 있을때면 고즈넉한 그 풍경에 머릿속에도 없던 시 한 구절이 나올만한 그런 곳이었다.

인터넷에 광고를 올리면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올거라고 커피를 내오는 주인에게 아내는 말했었다. 하지만 그런 조언에 나이가 꽤 들어보이던 주인 내외는 그냥 잔잔한 웃음만 얼굴에 띄고 있었다. 오히려 광고를 해 주겠다는 손님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에게 그 카페는 이익의 수단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과 함께 조용하게 살아가는 가족이었고 보금자리였다.

 

아내와 같이 앉아있던 그 변함없는 자리에 혼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바로 이곳이 내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오는 사람이 드문 이 곳...

큰 도로와 연결되는 입구를 막아버리고 카페의 간판만 치워버린다면 이곳은 정말 어느 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작업 공간이 되는 것이었다.

 

갑작스런 그런 생각에 기쁨에 젖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텅 비어있는 카페안의 계산대 옆의 테이블에 앉아 도란거리면서 대화를 하고 있는 주인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길을 달리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적의 장소였다.

그곳보다 더 나은 곳은 찾기 힘들 듯 싶었다.

하지만 혹시 카페를 파실 의향이 없으시냐는 나의 말에 그 노부부는 희미한 웃음만 보일 뿐이었다.

이삼년은 더 그렇게 생활하다가 자식들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넘겨받은 자식들이야 마땅한 가격에 팔아버리고 말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가꾸어놓은 그대로 고맙고 예쁘게 보존하겠노라고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들도 앞으로 이삼년은 그렇게 사는 삶을 원했고 나는 당장 그렇게 인가와 떨어진 고립된 장소가 필요했다.

 

 

허탈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아파트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터덜거리며 아파트의 현관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404호 선생?”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백발에 허리까지 불편해서 수시로 고생을 하고 있다는 가장 나이 많은 경비실의 할아버지가 나에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따라들어간 작은 경비실 안에 작은 쇼핑 가방하나가 놓여있었다.

이것 좀 전해주라고 아까 누가 왔었어.”

지한이가요?” 경비실 아저씨도 우리집에 가끔 들르는 지한이를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만약에 그 녀석이 왔더라면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놓고 갈 사람이 그 녀석 밖에 없을 듯 했다. 그래서 그렇게 물었다.

그 젊은이는 아니고....” 그가 손을 저었다.

한 사십은 좀 넘어 보이는 여자던데?”

?”

고급 외제차 타고 왔던데? 404호 선생 찾아왔다길레 외출했다고 했더니. 그런줄 이미 알고 있다고 하던데?”

“........”

나중에 오면 주라고 했어. 집에서 만든 음식이라고 꼭 잘 건네달라고...”

그의 말에 큰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설마 하고 생각하지만 역시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은 헬스장 그 여자였다.

어쩔수 없이 그 쇼핑백을 손에 들고 집으로 무거운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쇼핑백을 거실 바닥에 내려놓고 겉옷을 벗어서 소파 위에 걸쳐 놓았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베란다 쪽으로 걸어가서 창 밖을 내다 보았다. 맞은편의 아파트 여기저기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내려다 보이는 도로에 차 한 대가, 주차 되어있는 다른 차들 사이로 힘겹게 몸을 밀어넣고 있었다.

승우야.”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 이외에는 어둑한 집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승우 없니?”

고개를 돌려 어둠에 쌓인 공허한 거실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나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쪼그리고 앉아 베란다의 통창에 등을 기대고 거실의 어두운 허공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소파로 향했다.

윗옷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통화 목록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마치 쓰러지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오빠?” 서너번의 신호음 뒤에 여동생의 목소리가 반갑다는 듯 들려왔다.

선애야.”

.”

아무말도 잇지 못하고 그렇게 휴대폰을 귀에 대고 다른 손으로는 손바닥을 펴고 이마를 짚었다.

오빠, 무슨일 있어?”

아냐. 그냥....”

“.......”

사실..... 가끔, 꿈 속에 승우가 나와.”

“.......”

그런데 너무 진짜 같아서. 꿈이 깨고 나서도 승우를 찾게 돼. 방금까지 같이 있었는데.. 금방 사라진 것 같아서....”

오빠.....” 위로하는 듯한 아픈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어떻게 사실을 말할 수 있을까?

꿈이 아닌 현실에서 내 눈에 승우가 보인다는 말을...

가끔씩 나를 찾아와서 죽기 전에 바로 그 모습으로 나를 보고 웃어주고 말을 걸어 준다고..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까?

허상이라고 할 것이다.

너무나 그리운 생각으로 내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이라고 할 것이다. 나에게 마음을 다잡으라고 할 것이다. 힘내고 잊으라고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힘들어도 잊으려고 노력하고 미래를 보려고 하면 고통스러웠던 과거도 모두 잊고 새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필요하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할 지도 모른다.

 

내가 미쳐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반쯤 미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어쩔 것인가. 이미 나의 인생은 그 고사리의 그늘 속처럼 어둡고 비좁고 답답하다. 나의 인생은 죽었다.

 

괜찮아. 오빠.” 전화기를 통해 그녀의 위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그래. 어떻게 자식의 기억이 무 베듯 사라질 수가 있어?”

“.......”

승우도 오빠 많이 보고 싶은가 보다 그렇게 꿈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편해질거야. 지금보다...”

 

그럴까봐 두렵다.” 입을 악물었지만 참았던 눈물이 꼭 감은 눈 사이로 스며나왔다.

녀석을 그렇게 보내고도 두 다리 편하게 뻗고 살게 될까봐 무서워....”

“.......”

벌써 녀석이 며칠 째 나타나지를 않아.” 한 손을 들어 눈을 문질렀다. 밀려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손에 잡히는 웃옷을 낚아 채어 목을 조르듯 움켜쥐었다.

이렇게 기다리는데, 녀석이 눈앞에 나타나기를 이렇게 기다리는데.... 다시 내 눈에 보이지 않을까봐 너무 두렵다.”

그렇게 말을 해 놓고 북받친 감정을 주체 하지 못하고 통화종료 버튼을 눌러버리고 그 자리에 쓰러져서 입을 악물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있으면 다가와서 등을 어루만지며 위로라도 해주련만 야속한 녀석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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