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그늘에서 자라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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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앉아서 스케치북을 펴고 아직까지 짜 놓은 계획을 다시 꼼꼼하게 하나하나 확인을 하고 있었다.
녀석의 출옥일은 두 달 후였다.
그 후에 나는 녀석의 그림자가 될 것이다.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있으면 나에게 기회가 올 것은 틀림없었다.
녀석의 온 가족이 이천으로 이사를 왔다는 정보도 이미 입수하고 있었다. 출옥 후 타인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사 왔다는 녀석의 집을 알아 놓은 후, 셀 수도 없이 그곳을 찾아 그 집 주변의 온 동네를 샅샅이 돌며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 놓았다.
아무도 몰래 녀석을 납치하는 시뮬레이션도 머릿속에서 수백번은 돌려봤을 것이다.
킥복싱 체육관에서 가끔 상대와 일대일 대전이 열릴 때면 제일 먼저 앞으로 나가 제일 젊고 큰 녀석을 상대로 고르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녀석이 내 눈앞에 있는 것처럼...어떻게 녀석을 제압해 무릎을 꿇리고 차로 끌고 갈 것인가를 염두에 두면서 내 손과 발의 한동작 한동작을 계산에 넣었었다.
녀석은 이제 내 아들 승우가 겪은 고통의 몇백만 배는 돌려 받게 될 것이다.
내 눈 앞에서 내 발목을 잡고 차라리 죽여달라고 나에게 무릎을 꿇고 빌도록 만들 것이다.
녀석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나의 삶의 의미이고 쾌락의 절정이다. 그러한 환희를 맛보기 위해 아직까지 나의 목숨이 붙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나의 삶은 완성이 되는 것이다.
”고기 자르는 가위를 가지고 어떻게 사람의 가슴을 수십차례나.....“ 분노가 다시금 치솟아 올라 이를 악물었다. 눈 앞에 보이기만 하면 내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수백 번 들었지만 절대로 그렇게 녀석을 쉽게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이라는 게 지한테 무슨 잘못을 지은 거라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놈을 향한 분노에 치가 떨려왔다.
”게이 새끼들 역겹다는 말 취소하라고 했다고 사람을.....“
승우가 화장터의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한줌의 재가 되고 있을 때 나는 녀석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까짓 더러운 똥을...피하지 뭐하러 상대했냐고... 왜 그 젊은 나이에 나를 버리고 너는 그렇게 가버렸냐고... 늙어가는 아버지 혼자 뒤에 남겨놓고 가면 먼저 가는 너의 눈은 감기겠냐고...
이제 나는 녀석에게 다시 말한다.
이제 아빠가 그 더러운 똥 깨끗하게 치워주겠다고. 어디 다른 곳에서 또다시 다른 애먼 사람을 오염시키지 못하게 완전히 제거해 버리겠다고...
계약을 마친 후 부동산 중개업자가 건네주는 열쇠를 받아들고 산 아래의 집을 다시 찾았다.
안방의 벽지는 낡았지만 그럭저럭 새로 도배를 할 정도 까지는 아니었다.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주방안에서 노래기 서너마리가 열심히 벽을 오르고 있었다.
방마다 전등도 모두 켜지지 않아 교체가 필요했다. 침대는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필요한 것은 그저 병원에서 쓰는 환자용 철제 침대였다. 튼튼한 쇠파이프로 침대 주위를 단단히 고정시킨 레일이 있는 것으로 말이다. 녀석은 키가 172라고 했다. 나이도 이제 사십이 넘었고 그리 크지 않은 놈이다. 나의 단련된 근육이 불끈거리는 한 손이면 한방에 나가 떨어질 놈이었다. 인기없는 한물 간 개그맨이라고 했다. 티비에서 나와 ‘게이를 혐오한다’라고 했다고 했다.
아들 녀석은 그 자식을 그때 알아봤어야 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티비에 나와서 게이를 혐오한다고 떠들 수 있는 인간이 술에 취해서 간이 배 밖으로 나오면 무슨 짓을 할 수 있을지를 말이다.
나도 머리에 의사들이 쓰는 수술용 모자를 뒤집어 쓸 것이다. 수술용 고무장갑을 양손에 끼고 오른손에 메스를 쥐고 공포에 떠는 녀석의 눈을 내려다 볼 것이다. 그리고 녀석에게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녀석의 신체의 어느 부분부터 조금씩 잘려나가고 싶은지... 손가락을 잘라낸 후, 다시 붙여줄 것이다. 나는 의사가 아니므로 순간접착제면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녀석의 폭력과 잔인한 살인에 대한 합당한 판결을 내가, 내 자신이 녀석에게 다시 내려줄 것이다.
여전히 그 놈에게 판결을 내리던 판사의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그 개 같은 인간이 악마의 혀로 나불거리던 말들을 똑똑히 기억한다.
‘피고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나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미풍양속을 해치는 반 사회적인 동성애자에 대한 반감이 음주로 인해 냉정을 잃고 한순간 폭발하여 격분한 것은 누구나 이해되는 일이다. 피고는 평상시에도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을 많이 사랑하고,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행하고 기부를 실천하는 삶을 살았으며....’
한 사람을 살해한 짓을 ‘누구나 이해되는 일이다’ 라니....
삼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그 사악한 판사의 목소리는 한밤중에도 끊임없이 유령처럼 나를 찾아와 억지로 잠을 청하려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 깜깜한 새벽에 마치 뾰족한 창끝처럼 이미 시커멓게 타 버린 나의 심장을 찔러댔다.
세상이 정의롭지 않다면 내가 세상에 정의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집 밖으로 걸음을 옮겨 나와보니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언뜻언뜻 아래쪽 마을의 집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집 주위에 담장을 치는 편이 확실해 보였다. 녀석에게 충분히 끔찍한 고통을 주고 완전히 저 세상으로 보내기 전에 남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한이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아무래도 녀석의 도움이 여기저기 필요할 듯 싶었다. 녀석같이 입이 무겁고 조용한 녀석은 나에게 왜 이 집을 임대를 했는지, 왜 담은 설치하는 것인지 왜 병원 침대가 필요한 것인지와 같은 것은 궁금하다 하더라도 입 밖으로 묻지는 않을 것이다.
녀석은 전화를 받지 않고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 버렸다. 녀석도 여러 가지로 바쁜 모양이었다.
집 주위를 돌면서 하나하나를 살펴보다 보니 벌써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저녁을 같이 먹을 생각으로 지한이에게 다시한번 전화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녀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두워지며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지기 시작했다.
지한이에게 부족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지를 못했다.
날씨는 이렇게 많이 추워지는데 옷은 제대로 입고 다니는 지 걱정스러워졌다. 내가 사서 건네 준 겨울 옷을 모두 옆으로 제쳐놓고 여전히 그 낡은 후드 티만 걸치고 다닐 것이 눈앞에 선했다.
그 추웠던 지난해에도 녀석은 고집스럽게 그 후드 티로만 겨울을 보냈다는 것이 다시 떠올랐다.
앞으로 나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지기 전에 단단히 녀석을 붙잡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던 길가에 눈에 띄는 조용한 음식점 앞에 차를 세우고 간단하게 요기를 때웠다.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녀석은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일이 아무리 바빠도 내 전화는 꼬박꼬박 받던 녀석이었다.
녀석의 집으로 가보기로 생각했다. 순간 녀석에게 건네 줄 물건을 거실 테이블 위에 놓고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 일찍부터 몇시 쯤 출발하냐는 공인중개사의 재촉하는 전화에 마음이 급해져서 그렇게 테이블 위에 꺼내 놓고도 제대로 챙겨 나오지 못했다. 역시 서두르면 일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냉정함을 유지해야만 한다.
녀석에게 건네주려고 꺼내놓은 그 검은 빌로드 천 안에 있는 상자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 것일까?
토요일에 연휴까지 겹쳐 고속도로에 교통 체증이 심각했다. 아무래도 집에 들렀다가 다시 녀석의 집으로 가기에는 무리일 듯 싶었다. 네비를 취소하고 다시 녀석의 주소를 입력하고는 앞으로 나가지도 않는 차의 핸들을 단단히 거머쥐었다.
그렇게 꽉 막혀있는 고속도로에 스멀스멀 안개까지 몰려와 급해지는 나의 마음도 몰라주고 그렇게 도로 위에 뿌옇게 주저앉아 버렸다.
녀석의 집에 도착할 무렵에는 거의 자정이 되어버렸다.
차를 근처에 세우고 작은 다세대 주택의 계단을 뛰어 내려가 녀석이 살고 있는 지하방의 초인종을 눌렀다. 두 번, 세 번, 네 번... 여전히 문은 단단히 잠긴 채 열리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손으로 문을 두드려 보았다.
”지한아. 아저씨다.“ 여전히 안에서는 대꾸가 없었다.
”승우 아빠야. 지한아 안에 없니?“
다시 휴대폰을 꺼내들고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이렇게 받지 않으면 곧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겠지...
순간 현관문 안쪽에서 희미하게 무엇인가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귀를 문에 대었다. 온 신경이 문에 바짝 댄 귀로 쏠렸다.
아주 작은 소리이긴 했지만 틀림없는 휴대폰 착신 신호였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지한아....“ 녀석을 부르는 나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조급한 마음에 주먹으로 쾅쾅 문을 쳐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안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급하게 다시 휴대폰을 켜고 119를 누르려고 하는 순간 문 안쪽에서 잠금쇠의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
그 어두움 속에 서 있는 흐릿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급한 마음에 문을 당기고 들어가 벽면을 따라 손을 더듬거려 방의 스위치를 찾아서 켰다. 하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집 밖 보다 녀석의 방안에서 더 추운 한기가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녀석의 팔을 잡았다.
”지한아.“
”아저씨.“ 어쩐일인지 목이 메인듯한 목소리로 녀석이 나를 나직하게 불렀다.
휴대폰의 화면을 켜고 손전등 스위치를 눌러 녀석을 비추어 보았다. 그 어둠 속에서도 녀석은 후드 티에 달린 모자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있었다. 녀석의 손을 잡은 나의 손바닥에 이질적인 느낌이 와 닿았다.
휴대폰의 전등에 비친 녀석의 손바닥과 손등에 피가 배어나와 굳어 있었고 여기저기에 상처가 가득했다.
순간 놀라 녀석의 팔을 잡고 방의 한 구석에 있는 화장실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녀석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화장실의 불을 켰다. 다행히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지한아.“
녀석의 양손 뿐만 아니라 후드 티의 옷 소매 부분에 붉은 핏자국이 잔뜩 튀어 있었고 녀석의 가슴팍 부분에도 마치 핏물에 담가 놓았던 것처럼 혈흔이 가득했다.
”너 왜 그래? 어디 다친거야?“ 깜짝 놀라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혹시 자해라도 한 것일까? 내가 너무 늦은 것일까?
”지한아.“ 사정하듯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 녀석이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둡고 굳은 표정이었다.
”아니예요. 제가 다친건...“
녀석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아저씨..“ 녀석이 나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제가...그 놈을...죽였어요.“ 나지막하고 담담하게 녀석이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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