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그늘에서 자라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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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참 좋다.”

 

병원 침대에 누워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아내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네. 오늘 날씨 좋아.”

 

그녀의 주치의로부터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그녀의 사형선고를 받은지 며칠 되지 않은 때였다.

그의 말을 들은 이후로 나의 세상은 항상 잿빛이었다.

잿빛연기로 가득한 돔으로 된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 듯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밖에서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꽃이 피든 화창한 날씨이든 나의 세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 되어있었다.

 

... 저 날씨 같이 기분좋은 남자를 한명 알고 있는데....”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창밖에 두고 있던 시선을 그녀에게로 돌렸다.

당신 말고....”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슬며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쥐는 나를 보고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승우?”

나의 말에 다시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 아들이야 말해 뭐해?” 그녀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게 우리 아들이지.”

그럼 누구?”

의아해 하는 나의 표정을 살피면서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다.

그게....”

그녀가 자신의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나의 손등을 슬며시 문질렀다.

.... 당신한테 꼭 할 말이 있어.”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가 나를 올려다 보았다.

이건...내 유언이고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꼭 부탁하는거야.”

여보.” 그녀의 입에서 나온 유언이라는 말과 마지막이라는 말에 갑자기 전신에 경련이 일었다.

입도 갑작스럽게 마비된 듯 입 밖으로 아무말도 낼 수가 없었다. 터져 나오는 한숨을 가까스로 참았다. 지금 더 강해져야 하는 것은 나였다. 아내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어떤 일에도 담담해져야 한다고 수시로 다짐하고 있었다. 모두 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말들과 현실에서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을 듣는 것의 괴리감은 생각보다 너무 컸다.

그게..... 뭔데?”

그렇게 말은 해 놓고 순간 후회를 했다.

서로가 알고 있는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내가 듣고 싶은 말은, 아내가 원한 반응은 이게 아니었을 것이다. ‘당신 절대 못 보내’ ‘내가 어떻게든 당신 낫도록 할거야.’ ‘내가 지켜줄게라는 말을 아내는 듣고 싶었을 것이다.

당신 단단히 마음 먹어야 해.” 그런 나의 생각과 달리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심각한 말투로 표정의 변화없이 나의 눈을 응시했다.

뭔데 그게?” 불안한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가능한 부드럽게 다시 물었다.

먼저...” 그녀가 나의 손을 잡고 있던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약속부터 하나만 해.”

“.........”

꼭 그래 줘. 부탁이야.”

도대체 뭔데 그래?”

갑작스런 그녀의 이런 태도와 말에 점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하라는대로 하겠다고 약속부터 해줘.” 마치 노려보듯이 아내는 나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내가 말하는 것 다 듣고,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은 말, 행동 다 제쳐두고 내가 하라는대로 하겠다고.... .” ‘이라는 말에 힘을 주고 그녀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았다.

알았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하라는 대로 다 할게.”

꼭이지? 약속한거야?” 못 믿겠다는 듯 그녀가 그렇게 다시한번 물었다.
지금 죽으라면 그냥 여기서 죽을게.”

터무니 없는 나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한순간 부드럽게 바뀌고 피식 하고 웃었다.

여보....”

그렇게 약속까지 받아놓고도 아내는 잠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지 못하고 나의 표정을 살폈다.

우리 아들....승우가....”

“.........”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녀가 다시 나의 표정을 살폈다.

근데...그게....”

그렇게 망설이는 그녀를 보면서 순간 짚이는 것이 있었다.

 

학창시절에도 녀석은 여자친구가 없었다. 녀석의 방에도 그 흔한 걸그룹 사진한장 붙어있지 않았다. 우연히 본 녀석의 휴대폰 배경사진도 푸른잎을 펼치고 있는 대나무 한그루였다. 그런 녀석을 보면서 열심히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행이고 대견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아들놈의 입 밖으로 여자의 이름이 나온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혹시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럴리 없다고 일축했었다.

 

투병중에 시한부 선고까지 받은 아내가 아들이 사귀는 사람을 말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이유가 그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혹시...승우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이는 그녀 대신 내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좀 전에 말한 저 바깥 날씨처럼 기분좋은.....남자...인거야?”

나의 말에 아내의 두 눈이 똥그래졌다.

설마...당신도....” 그녀가 떡 벌어진 입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알고 있었어?”

나의 추측이 들어맞았다.

 

티비 드라마에서나 무슨 퍼레이드에 반대 시위로 나온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거나 절망으로 가슴이 가득 차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슬픔의 물결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목구멍이 꽉 막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딴에는 아들 녀석하고 굉장히 친한 사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아들이 완전히 다른 세상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니...” 힘들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냥....” 가능한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무엇이든 나의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아내를 내려다 보면서 여유있는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한쪽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꼬리에 맺히기 시작한 눈물 방울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볼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아내가 천천히 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나의 볼을 문질렀다.

미안해 여보.”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고 나는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어떻게 알았어?‘

여전히 나의 볼을 만지고 있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승우가 그렇다고 얘기했어?“

그런 나의 말에 아내는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어쩌다가 우연히 길에서 눈에 띄었어. 승우가 지한이하고 같이 걸어가는 것이.....“

”.......“

 

그 기분좋은 남자 이름이 지한이야.“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고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예전에 명동 나갔다가 우연히 봤어. 간만에 친구들 만나서 수다 좀 떨다가 헤어지고 그렇게 나온김에 당신 속옷이나 사려고 백화점 쪽으로 걸어가는데 내 앞에 승우가 어떤 남자하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거야.“

”.......“

난 순간 당신인줄 알았다?“ 그녀가 나를 올려다 보면서 배시시 웃었다.

뒷모습이 당신하고 똑같더라니까. 키도 그렇고 어깨 넓이며 걸음걸이까지... 아주 당신하고 판박이였어. 입고 있는 옷이 젊은 애들 취향에다가 머리카락이 당신하고 다르게 곱슬인 것을 빼면 난 당신인 줄 알고 놀래켜주려고 몰래 다가가서 팔짱이라도 끼었을걸?“ 말을 멈추고 밝아진 표정으로 아내가 까르르 웃었다.

도대체 누굴까. 내가 아는 승우 친구중엔 본적이 없는 애인데.. 하면서 아는 척을 할까 하다가 그냥 여자한테 뭔가 그런 촉이란 게 있잖아. 끼어들면 안되는 듯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분위기 뭐 그런거 느끼는 거...그래서 잠자코 슬며시 뒤를 따라갔는데 둘이서 어떤 카페에 들어가더라고.“

”.......“

뭐 거리를 두고 따라 들어가서 뒤쪽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서 보고 있는데 역시 얼굴은 당신하고 많이 다르지. 그렇긴 한데도 어떻게 보면 당신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평범한 친구사이인가 보다 생각하고 가서 아는척을 할까 하다가 그냥 가야겠다고 슬며시 나와서도 공연히 가로수 뒤쪽으로 서서 창문으로 잠깐 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다시 나의 손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여보. , 우리 승우가 그렇게 환하게 웃는 것은 아기때 빼놓고는 정말 처음인 것 같더라고...“

”.......“

그런 애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까 우리 승우 앞에 앉아있는 녀석이 한편 부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둘이서 무슨 조각 케익 하나 먹고 있는 것 같던데, 그 애가 손을 뻗어서 우리 승우 입가에 뭍은 크림을 손가락으로 닦아냈어.“

”.,.....“

집에 오면서 오만가지 생각 다 들더라고... 그래서 우리애가 예전에 가끔씩 아무 이유없이 울적해 하고 그런 녀석 보면서 고민 있으면 다 들어준다고 말하라니까 아니라고 도망가고... 아무 이유없이 툴툴대다가 공연히 나한테 이유없이 잘 해주기도 하고... 그런 행동이 다 자기 번뇌속에서 생겨난게 아닌가 하고....엄마인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아내가 말을 멈추고 낮은 기침을 했다.

 

그래서....“ 창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잠시 동안 말을 잇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내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언제... 승우가 그렇다고 얘기 했어?“

...“ 나의 말에 그녀가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냥. 물어 볼 방법이 없어서 시간만 보내다가 어느 날, 집에서 저녁먹고 우연히 유튜브를 같이 본 적이 있었거든. 그때 마침 무슨 드라마 시리즈 요약해서 보여주는 거를 보고 있었는데 그 안에 주인공 중 한명이 게이였거든. 그래서 그거 보면서 기회다 싶어서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말했지. ’난 우리 아들이 게이라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안아줄거다라고....’좋아하는 상대도 만나서 많이 사랑해주고 다독거려 줄거라...“

”.......“

그때, 승우가 당황해 하면서 나를 보는데 그 눈에 불신이 가득해서....“ 말을 멈추고 그녀가 슬며시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시침 뚝 떼고, 엄마 대학 다닐때에도 가장 친한 친구중에 게이가 있었다고 했지. 아주 착하고 반듯해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녀석이었다고.... 지금은 성공해서 애인하고 잘먹고 잘 살고 있다고...“

”........“

난 내 자식이 외롭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어. 사랑 많이 주는 상대 만나서 사랑 듬뿍 받고 사는 것이 내 소원이라고....“

”........“

그날 밤늦게 승우가 나에게 문자를 했더라고.... 자기가 그렇다고...“ 말을 멈추고 아내가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눌렀다

"손에 휴대폰을 들고 그 문자를 보내기 까지 애가 또 얼마나 초조해 하면서 마음고생을 했겠어."  입술을 파르를 떨면서 아내는 나에게서 다시 창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렇게 누워 있었다.

 

마치 나에게 이 모든 일을 소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듯 했다. 나도 아무 말 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두고 앉아있었다.

반쯤 열린 창문을 통해 사람들의 목소리와 차량의 경적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둘이... 어떻게 만났대?“

몰라. 안물어봤어.“ 여전히 시선을 창으로 향한 채 그녀가 조용히 대답했다.

 

당신한테 부탁 좀 할게.“ 좀 더 침묵을 지키던 아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승우하고 지한이 좀 만나 줘.“

”.......“

걔네들한테 다 괜찮다고 얘기해 줘.“

”.......“

좀 지나면 걔네들한텐 당신이 전부야.“ 눈에 눈물이 고이면서 아내가 나를 애원하듯 바라보았다.

제발....나 가기전에....?“

”.......“

나 좀 도와줘. 여보.“ 찡그러진 미간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 그런 아내를 바라 보면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얘기를 어떻게 꺼내?“ 마치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려는 듯한 막막한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승우한테 미리 얘기 해놨어. 당신한테 말 해 놓는다고...“

”.......“

승우가 주저하는 걸 내가 그래야 한다고 했어. 엄마를 위해서... 엄마 가기전에 엄마 짐 좀 덜어달라고... 그러니까 승우만 부르면 녀석이 알아서 얘기 할거야.“

 

그녀의 말에 고개를 슬며시 끄덕였다.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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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합니다 자식이 걱정 어머니는 용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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