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그늘에서 자라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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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완전히 사라지고 어두워진 창 밖은 이제 가로등과 네온사인의 불빛이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나의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등에 달라붙은 셔츠는 불쾌하게 끈적 거렸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눈을 찌르고 볼을 따라 턱 끝에 고였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쁜 숨을 내 쉬면서 나는 여전히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러닝머신 위를 달린지 이제 삼십여분이 지나고 있었다.
”보기 좋네. 아빠가 건강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으니...“
러닝머신의 왼쪽 옆에서 들려오는 승우의 목소리에 손을 뻗어 정지버튼을 누르고 반대편으로 뛰어내려 버렸다. 그리고 녀석을 무시하고 발을 옮겨 바벨의 무게를 확인하고 스쿼트를 시작하려고 자세를 잡았다. 근처에 있던 젊은 트레이너가 그런 나를 눈여겨보고 와서 나의 자세를 확인해 주고 한번 웃어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쳐갔다.
”유산소 운동을 열심히 하길레 마라톤 대회라도 나가려는 줄 알았는데, 근육 운동도 열심히 하네?“
”너, 이렇게 자꾸 따라다닐래?“
”아빠가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보기 좋아서 그래.“
”그래.....요즈음엔 킥복싱도 배운다.“ 스쿼트 동작에 따라 입 밖으로 가뿐 숨을 내쉬면서 녀석에게 대꾸를 했다.
”하는김에 검도도 배우면 어때?“ 녀석이 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예전엔 아빠도 뱃살만 빼면 지한이 못지않은 몸매라고 생각했었거든. 근데 지금은 온몸에 근육도 아주 잘 잡힌 것이 삼십대 같애. 누가 아빠를 낼 모레면 육십이라고 보겠어?“
스쿼트를 끝내고 헬스장을 한번 돌아보고 있는 나에게 녀석이 한마디 더 거든다.
”여기 아줌마들도 많이 오던데, 여자들에게도 인기 많겠다.“
녀석의 말에 코웃음을 치고 몸을 돌려 샤워실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
누군가의 목소리에 무심코 목소리의 주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게 좀 안 걸리는데 한번 좀 봐주시겠어요?“
사십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실내 자전거의 페달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전 여기 직원이....“ 말끝을 흐리며 나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딘가 근처에 그녀를 도와줄 트레이너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두 명은 한참 운동중인 고객에게 무엇인가 설명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피곤하고 귀찮았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페달 끈이 너무 넓어서 발이 자꾸 빠져서요. 한칸만 줄여주시면....“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녀가 손가락으로 페달을 가리켰다.
”비어있는 다른 자전거도 많은데 맞는 것을 찾아 타시지...“
별일 아닌 듯해서 허리를 굽히고 고무밴드의 끈을 조정하면서 마치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제가 항상 이것만 타서 그래요.” 나의 그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 새침한 말투로 그녀가 대꾸했다.
양쪽의 밴드를 모두 조정하고 난 후 몸을 일으키는 나를 보고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공연히 힘드셨을텐데, 제가 그럼 저녁을 살게요.”
“아닙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말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뇨.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서...” 그런 나를 무시하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여섯시부터 일곱시 넘을때 까지는 거의 매일 운동하시는 듯 하시던데, 내일 저녁 어때요? 제가 대접할게요.”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말을 끝내고 그녀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샤워실을 향해서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외간남자 운동하는 시간은 뭐하러 알고 있는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뒤통수에서 그녀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개의치 않고 나는 샤워실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가 끈적거리는 땀 투성이의 셔츠를 벗어버렸다.
티비 화면에서는 한 남자가 철제 침대 위에 알몸으로 누워있다.
그의 입 주위는 은빛 테이프가 여러겹으로 단단히 붙여져 있고 그의 양팔과 다리는 큰 대(大) 자로 침대를 둘러싼 레일에 묶여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 남자의 온몸은 마치 정육점의 포장육처럼 몸 전체가 투명 비닐랩으로 단단히 둘러져 있다.
냉장고를 열고 쟁반 위에 대충 반찬을 담아와서 거실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숟가락을 들고는 밥공기에서 흰 쌀밥을 듬뿍 퍼서 입 안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티비 화면의 오른쪽에서 한 남자가 나타난다. 머리는 수술용 모자를 눌러쓰고 흰 티셔츠에 흰 바지를 입고 있다. 덱스터이다.
그의 오른손에는 수술에 쓰이는 외과용 메스가 들려져 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침대에 묶여있는 남자가 온몸을 허둥댄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공포가 가득한 그의 두 눈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된다.
녀석의 두려움에 가득해서 떨고 있는 얼굴 가까이에 덱스터가 자신의 얼굴을 갖다대고 나지막히 속삭인다.
“기대하라고 친구. 자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한 그 예술작품을 내가 이제 자네에게 보여줄 차례이니까.”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메스를 슬며시 그 남자의 볼에 갖다 대고 덱스터가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인다. 마치 나비가 날 듯, 가볍고 날렵한 움직임이다.
순간 한 줄로 그어진 그의 볼에 새빨간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한다. 놈은 이를 악물고 덱스터를 노려보면서 신음한다.
맛깔나게 버무려진 파김치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한 두 개만 잡았을 뿐인데 여러개가 줄줄이 끌려 올라왔다. 반동으로 떨어뜨릴 요량으로 젓가락을 김치 그릇 위에서 한두번 툭툭 쳐보지만 마치 서로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는 듯 다시 그대로 끌려 올라왔다. 포기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통째로 집어들어 입 안에 넣었다.
화면속에서는 이제 칼을 쥔 덱스터의 손은 그의 배꼽 근처로 향한다. 어느 쪽으로 칼의 방향을 향할 것인지 고심하는 듯 보인다.
입안 가득 매콤상큼한 파 내음이 번지고 난 후 코를 통해 밖으로 빠져 나오는 듯 했다. 콧등이 찡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파의 향을 음미하면서 부들부들한 파의 줄기를 한참을 잘근잘근 씹고서 꿀꺽 삼켰다. 역시 아들 녀석이 말한대로 지한이의 요리솜씨는 일품이다. 당장 음식점 하나를 개업한다고 해도 꽤 손님이 들 듯 느껴지는 정도였다.
이제 마음의 결심을 한 듯, 덱스터가 메스를 배꼽에 대는 순간 옆에 놓여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상대방의 이름을 확인 한 후 나는 손을 뻗어 리모콘을 집어들고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오빠?” 여동생의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지금 통화 괜찮아?”
“괜찮아.” 아무 감정없이 전화기에 대고 대답했다.
“올해 크리스마스 지나고 한국에 들어가려고....” 기대에 차 있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남편하고도 얘기 했어. 휴가를 한국에서 보내자고.. 비행기 표도 예약해 놨고....”
“.........”
“오빠한테 혈육이라고 나 하나밖에 없는데 내가 오빠한테 너무 소홀이하고 신경 못써줘서 정말 미안해.”
“아냐. 무슨...”
“가까이 살면 자주 들를텐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안타까워 하는 여동생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강화도의 한쪽 구석에 살면서 농사를 짓느라 새벽부터 바쁘게 일해야 했던 부모님을 대신해서, 어렸을 때부터 나이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던 여동생은 자신이 마치 누나나 되는 것처럼 나를 그렇게 살뜰하게 챙겼다. 그런 그녀를 나는 가끔 오지랖쟁이라고 놀리곤 했다. 그랬던 그녀의 성격을 미루어 보면, 아내가 떠난 후 혼자 남겨진 내가 더욱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넌 할 만큼 했어. 신경 쓰지 마.” 
“오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동생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오빠 잘 지내고 있는 것 맞지?”
“잘 지내지 그럼.”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가 대답을 했다.
“아픈데 없고?”
“아주 건강해.” 그녀를 안심 시키려고 일부러 밝고 강하게 대답을 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을 따라 미국의 루이지애나 어딘가에 이사를 가서 정착을 했고 벌써 그 곳에서 십년이 넘게 살고 있었다. 아들 둘 낳고 잘 살고 있는 녀석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바로 그녀의 오빠인 나 뿐이었을 것이다.
통화를 끝내고 소파에 앉으려다 다시 몸을 돌려 그릇이 담겨있는 쟁반을 두 손으로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 안에 그릇들은 대충 집어넣고 여전히 입 안 가득한 파 냄새를 지우려 화장실로 들어갔다.
치약을 집으려고 손을 뻗다가 그 옆의 거울 앞에 여전히 놓여있는 아내의 샴푸가 눈에 들어왔다.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집어들고 액체가 나오는 구멍에 왼손을 대고 오른손으로 샴푸의 머리를 슬며시 눌러보았다. 쪽빛이 감도는 액체 덩어리가 손바닥 위로 쏟아져 나왔다. 손바닥을 코 앞으로 당겨서 슬며시 냄새를 맡아 보았다. 아직도 익숙한 아내의 머리카락 향이 콧속을 가득 채웠다.
한순간 그녀를 향한 그리움이 가슴속에서 솟아 올라와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이 번졌다.
아내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삶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어느 한순간 어렸을 때 엄마를 따라 집 뒤에 있는 산에 올라갔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밭에서 김을 매는 엄마를 뒤로 하고 나는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우거진 나무의 그늘 아래로 향했다.
큰 아름드리 나무 서너 그루 아래에 햇볕이 들지 않는 어두운 바닥에는 짙은 초록색의 이끼가 가득한 거무죽죽한 바위 서너개가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그 중에 납작한 것 위에 앉아서 이마에서 배어나오는 땀을 닦았다.
서늘한 나무 그늘 아래에 푸른 향의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발 아래 근처에서는 개미 몇 마리가 부지런히 기어다니고 이끼가 낀 큰 바위 아래에 고사리가 자라나고 있었다. 그렇게 햇볕이란 것을 구경하지도 못하고 자라나는 녀석이 대견해서 쪼그리고 앉아서 마치 둥그런 돋보기를 들고 조사하고 있는 둥그런 모자를 쓴 탐정 마냥 그렇게 녀석을 둘러보았다.
아마도 그렇게 깊은 음지에서 자라나는 생명체는 녀석이 마지막일 듯 했다. 그 녀석마저 어두움을 드리우는 그 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자라나지 못할 것 같았다.
“승우 엄마야...”
나도 몰래 입 밖으로 그녀를 불러보았다.
“내가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가슴이 꽉 막혀오면서 뜨거운 한숨이 한꺼번에 몰려 올라와 목구멍을 채웠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화장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쪼그리고 앉았다.
“그렇게 약속해 놓고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헉 하고 한숨이 터져 나오고 꽉 누르고 있는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나중에 당신을 어떤 면목으로 내가 볼 수가 있어. 이 못난 남편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기 위해 손바닥으로 입을 눌러 막으며 간신히 몰려오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을 때 다시한번 거실에 있는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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