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그늘에서 자라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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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는 이제 붉게 물들었던 나뭇잎이 서늘한 돌개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 주위에서 빙글거리며 맴돌고 있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회색으로 변하는 시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 암울함 속으로 들기 전, 모든 생명체들은 모두 한껏 절정을 즐긴다. 바로 나의 눈에 빤히 보이는 창밖의 나무들이 그랬다. 회사 근처에 있는 카페의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이 나무들은 바로 얼마전까지 울긋불긋한 색으로 자신들의 온몸을 휘감고 최고의 자태를 한껏 뽐냈었다. 그렇게 삶의 최절정기를 보내고 있는 그 모습에 감탄하며 그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잠시 발을 멈추고 넋을 잃은 듯 황홀해 하고, 갑작스레 시를 읊기도 하며. 휴대폰을 꺼내 그들을 배경으로 초라한 자신들의 모습을 비교하며 셀카를 찍었다.

 

고개를 돌려 테이블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지한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실내인데도 여전히 쪽빛 후드 티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녀석을 보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한아, 너의 절정기는 언제니? 나는? 내 아내는? 내 아들 승우는? 모두 절정기가 언제였을까? 그렇게 삶의 희망과 기쁨을 노래하던 절정기가 있긴 했던 것일까?

 

승우엄마....보러갔었니?”

아내의 기일에 그녀를 보려고 납골당에 갔었다. 그리고 그녀의 자리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분홍색의 글라디올러스를 보게 되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한창인 꽃송이만이 층층이 피어있는 그 꽃을 보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은 이 녀석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커피나 한잔 하자고 불러냈다.

어머니 기일이었잖아요.”

녀석은 여전히 머리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런 녀석의 표정을 읽기가 어려웠다.

고맙다.”

내 말에 녀석은 아무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참을 녀석은 그렇게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자신의 커피잔을 주시하듯 했고 나는 그런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고마워서요.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고 녀석이 낮은 기침을 했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생각도 많이 났구요.”

간신히 말을 하고는 마치 목이 메인 듯 녀석이 손을 뻗어 커피잔을 쥐고 입으로 가져갔다.

 

녀석은 아내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아내와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부터 녀석은 넉살 좋게도 아내를 어머니라고 불렀다고 했다.

 

어렸을 때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로 인해 갑자기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된 어머니와 둘이서 힘겹게 살아왔다고 했다. 그랬던 어머니도 녀석이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녀석도 알지 못하는 병으로 자리에 앓아누웠다고 했다. 도와줄 친척도 없던 녀석의 어머니는 반년을 그렇게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 이후, 혼자 남겨진 녀석을 음식점을 하는 친가의 먼 친척 한 분이 거두었다고 했다. 잘 키워주려고 일면식도 없던 녀석을 데려갔을리도 없었을 터, 녀석은 그 이후 그 음식점에서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면서 눈칫밥을 먹고 살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면서도 얼굴에 그림자는커녕 어두운 티끌하나 보이지 않는다면서 아내는 녀석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그리고 아내가 암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기 전까지 아내는 녀석들과 쇼핑도 즐기고 녀석을 집으로 불러 음식도 해서 먹이고 영화를 같이 보러 가는 등,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듯 했다.

 

그렇게 아내 앞에서는 얼굴 표정에 어두운 티하나 없던 그 녀석은 지금 내 앞에서 고개를 들고 나와 눈도 한번 마주치지 않고 있다.

여기...” 그런 녀석에서 시선을 돌려 나의 옆자리에 놓여있던 커다란 쇼핑백을 집어 들고 녀석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손을 내밀어 받아 놓고는, 녀석이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먹먹한 빛을 띠고 있는 동그란 눈, 날렵하고 균형잡힌 콧대와 멍하게 벌려져 있는 도톰하고 부드러운 입술은 여느 젊은이라면 타인으로부터 가리고 싶지 않을 만큼 잘생긴 얼굴이었다.

 

나와 닮았다는 아내와 아들의 말을 그대로 믿고 처음 녀석을 만나러 나갔을 때가 떠올랐다. 나와 비슷한 평범하고 동글동글한 녀석이 나와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자리에는 나와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외모의 녀석이 나와 있었다. 그런 녀석의 외모에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저렇게 생긴 녀석과 나를 닮았다고 추켜 세워 준 아내와 아들놈이 마음 한구석에 고맙기도 했다.

 

이제 계절 바뀌어서 금방 많이 추워져.”

녀석이 내 말에 그제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옆자리에 쇼핑백을 올려놓았다.

매일 그 후드 티만 입지 말고.... 옷 소매도 다 떨어졌던데...”

손가락으로 낡아서 속이 드러난 녀석의 옷소매를 가리켰다.

.... 이거면 돼요.”

언뜻 나와 눈이 마주치고 씁쓸하게 웃어보이고는 녀석은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승우가... 준거라서....”

녀석의 말에 내가 피식하고 한번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녀석에게 입을 열었다.

그거 내가 먼저 입어본거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녀석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너한테 잘 맞을지 어떨지 확인하려고 승우가 날 그거 파는 데로 끌고 가서 그 옷 강제로 입혀 보고 확인한거야. 너하고 나하고 체격이 비슷하다고...”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 외투하고 패딩도 내가 다 입어보고 샀으니 너에게 딱 맞을거다.” ‘이라는 말을 강하게 말하고는 내 자신도 쑥스러워져서 피식 하고 웃었다.

잘 입을게요. 아저씨.”

그래.”

녀석이 손을 뻗어 커피잔에 남아있던 커피를 모두 마셨다.

 

아직 사는 집은 거기 그대로지?“
.. 왜요?“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녀석이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농사짓는 시골 친척집에서 쌀하고 배추를 보내왔는데 너무 많아서 너 사는 주소로 조금 보냈거든. 얼마 안되니 부담스러워 할 것도 없고...“

고맙습니다.“ 표정의 변화없이 녀석이 그렇게 말을 하고는 옆에 놓여있던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 아저씨. 이제 가봐야 할 시간이...“

그래. 어서 가봐라.“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쇼핑백을 들고 다시한번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해 보이고는 돌아섰다. 주말에는 어느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한다고 지나가는 말로 한번 들은 듯 했다.

카페의 문을 열고 나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고는 커피잔으로 손을 뻗었다. 남아 있는 커피를 모두 마신 뒤 나도 내 갈길을 찾아야 할 듯 보였다.

 

그래 어땠어?“

커피잔을 내려놓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나의 눈 앞에 병원에 누워있던 아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뭐가?“ 아내의 질문이 무엇을 말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대답을 찾지 못하고 그렇게 아내에게 다시 물었다.

애들 만났잖아. 지한이 어땠냐고.“ 기대감에 찬 듯한 표정이었지만 조심스러운 말투로 아내가 다시 물었다.

....“ 손을 들어 뒷통수를 긁적거렸다.

당신이 하라는대로 했어. 아버지처럼 편하게 대하라고...“ 그제서야 표정이 부드러워지면서 그녀의 양 입꼬리가 올라갔다.

애 정말 괜찮지?“

입 밖으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나는 머리만 주억거렸다.

그런 나를 보고 미소를 띠고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잠시 입을 다물고 가만히 그대로 있었다.

 

녀석이 그 옷을 입고 있더라고...“

무슨 옷?“ 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아내가 나에게 시선을 돌리고 빤히 올려다보았다.

전에 의도치 않게 승우하고 같이 쇼핑몰을 간 적이 있었거든. 녀석이 아빠한테 어울리겠다면서 강제로 되지도 않는 젊은 것들이 입는 옷을 입혀보면서 좋아라 하더니, 그게 나한테 한 말이 아니었어. 지한이가 그 옷을 입고 있더라고...“

나의 그 말에 아내가 큰 소리로 깔깔거리며 웃었다.

것 봐. 내가 지한이하고 당신하고 판박이라고 한 말이 그냥 한 말이 아니지? 승우도 알고 있는거지 뭐. 내 뱃속에서 나온 자식 아니랄까봐 남자보는 눈도 똑같네....“ 벌개진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녀가 여전히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아내의 상태를 확인하고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당신 오기 좀 전에....“ 아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티비에서 집 찾아주는 방송 있잖아. “구해줘 우리집..... 그런 거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이천에 있는 시골집을 보여주는데 그거 보다가 당신하고 같이 갔던 카페가 생각났었어. 거기도 이천 어디였잖아. 나무에 둘러쌓여서 입구도 찾기 힘들던 곳.”

그래.” 그녀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 마시면서 같이 노을 구경했었지.”

그때 정말 너무 멋졌지?” 아내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정말 그 광경 잊지 못해.” 아내가 환한 얼굴로 마치 지금 눈 앞에 그 모습을 보고라도 있는 것처럼 들떠 있는 듯 보였다.

지고 있는 해 주위에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요동치는 붉은 노을하며.......” 그녀가 다시 감탄을 했다.

지금 같았으면 휴대폰으로 사진이라도 잔뜩 찍어놓는 건데.. 정말 아쉬워.”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입맛을 다셨다.

다시 가면 되지.” 의도하지 않게 아내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는 바램에 말이 툭 튀어나왔다.

다시....갈 수 있겠지?” 아내가 그렇게 말한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목이 메어 간신히 대답을 하고 나는 그녀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가자. 가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사진도 많이 찍자.”

나의 말에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여보...” 아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오른손을 뻗어 나의 손을 잡았다.

.... 살고 싶어.” 아내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애들하고 거기 가서 우리가 본 그 장관이었던 노을... 애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

걔네들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지 겨울에 군고구마 호호 불면서 물어보고 녀석들 키득거리면서 서로 쳐다보고 겸연쩍어하면서 나에게 해 주는 말 듣고 싶어.” 아내의 눈꼬리에서 눈물이 고여 흘러내렸다.

그 녀석 손 잡고 우리 아들 만나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계속 철없는 녀석 잘 부탁한다 라고 말도 해주고 싶어.”

“....,..”

내가 생각이 많이 모자랐어.” 마치 터져나오는 신음소리라도 막으려는 듯, 아내가 왼손을 들어 올려 손바닥으로 입 주위를 가렸다.

시간이 많이 있을 줄 알았어. 나 아직 젊다고,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하면 된다고.... 그렇게 애들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미루고 있었어...”

꽤 많은 시간을 아내가 녀석들과 같이 보냈다는 것을 그 즈음에는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그녀에게는 녀석들과 보내고 싶은 시간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무말 못하고 나는 손을 뻗어 아내의 눈꼬리를 손바닥으로 슬며시 문질렀다.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 한숨을 슬며시 내쉬고는 나지막히 혼잣말 하듯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해 줘.” 그녀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내 대신 당신이 그렇게 살아 줘.”



. 안녕하세요,”


누군가 나의 옆에 서서 부르는 큰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한 여성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누구...신지...”

얼마전에 헬스장에서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웃었다.

헬스장요?” 여전히 무슨말인지 몰라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자전거 페달요.”

.....” 그제서야 나의 눈앞에 잘 차려입고 서 있는 여성과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겹쳐져 보였다.

이 근처 사시나봐요?” 묻지도 않고 그녀가 지한이가 앉았던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 아닙니다.”

그럼 회사가 이 근처이신지...”

나의 눈치를 보면서 그녀가 계속 말을 이었다. 불편한 감정이 스멀거리면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사생활을 침입하려고 하는 것은 여동생 한 사람이면 충분했다.

혹시 오늘 저녁 괜찮으신가요?” 입을 굳게 다물고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면서 여전히 여유있는 표정으로 그녀가 물었다.

아니면 내일 저녁도 괜찮고요. 제가 가진게 돈과 시간뿐이라....”

죄송합니다. 아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요.” 일부러 오른손 손가락으로 왼손가락에 여전히 빼지않고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문지르면서 그녀에게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에 대해서 아주 조금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봤거든요.”

그녀의 말에 놀라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람들은 기본적인 예절쯤은 몸에 배어있어야 하고 그것을 따라야 한다. 그렇게 믿고 살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 범위의 밖에서 사는 존재이다.

그럼 저 먼저...” 기분이 상해져서 더 이상 어떤 예의를 차릴 여유가 없었다. 그녀를 무시하고 카페를 박차고 뛰어 나왔다.

 

그녀 같은 사람을 상대할 시간은 나에게는 없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몸을 더 강하게 단련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천이나 용인 주변 변두리의 인적이 드문 곳에 잠시 머물 곳도 어서 구해 놓아야 한다.

마음이 급해져서 나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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